232편
<-- Chapter 5 : 이상의 기사 -->
◇
이게 무슨 말이지…?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베디비어는 뇌가 얼어붙는 듯한 감각에 휩싸였다. 그는 시야의 한 구석에 떠오른 화면을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바라보았다.
[유하는…. 어디에 있지?]
트리슈의 카메라는 불에 타오르고 있는 가게의 앞에 선 두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침묵을 거듭하던 타나토스가 끝내 입을 열어 질문을 던졌다.
“트리슈…?”
의아해 돌아보았으나 트리슈는 입술을 질끈 깨문 채였다. 옆의 모드레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 모습에 베디비어는 뭔가 한 가지 예감에 휩싸였고,
[네가 모르는 곳이지.]
가웨인이 말을 이었다.
더없이 여유로운 태도로, 담배를 꼬나문 채 킥킥 웃은 그가 타나토스를 향해 다가갔다. 검은 가죽 재킷과 새하얀 코트가 가까워졌다.
[정말 놀랐다고…? 그 여자, 나한테 아무런 경계심도 가지지 않았거든. 애초에 그 시점부터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이 코트에 대해 모른다는 거잖아?]
“기억을 잃어서….”
그것을 보충하듯 트리슈가 인상을 쓴 채 중얼거렸다. 그녀 역시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같은 생각을 했다.
유하는 아무것도 몰랐다.
의심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이준이 무슨 일을 하는가에 대해서. 하지만 그게 아서리안은 결과로 도출되지는 못했다. 그녀는 그 세계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할 킬러즈.
아서리안, 엘레노어.
그리고 넬의 존재에 대해서까지도.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동생을 걱정할 뿐이었다.
“설마, 가웨인도…?”
모드레드가 나서 설마 싶은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거기에 대답하듯 화면 속의 가웨인이 입을 열었다.
[이거 참, 정말 재미있지 않아? 너와 내가 친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코트를 입은 나와 네가.]
“가웨인…!”
비웃는 기색이 물씬 풍기는 말투에 트리슈는 입술을 빠득 깨물었다. 하지만 화면 속의 가웨인이 그런 분노를 들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리고 뭐라고 했는지 알아?]
“준을…. 지켜달라고….”
지켜 달라. 유하는 허리를 숙여가며 그렇게 부탁했다. 자신에게는 알 수 없는, 기억을 절제 당한 세계가 있음을 그녀 역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부탁한다.
자신은 그럴 수 없으니.
[웃기지 않아? 그 여자, 결국 도망친 거잖아. 그때 사건 파일을 보니까 그렇게 되어 있더라고. 그 이후로 갤러해드가 목격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가웨인이 타나토스의 볼을 툭툭 두드렸다.
[그리고 울었어, 그 여자. 자각은 없는 상태에서…. 그래서 스스로도 놀라서 의아해했지.]
분해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속에서, 송유하는 분함에 치를 떨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웨인이 그런 마음을 이해할 리는 없었다.
[병신 같은 년이야, 참…. 도망친 주제에.]
그리고 그는 타나토스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사람을 모욕했다. 하지만 타나토스는 반응하지 않고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모두들 그런 그의 태도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트리슈님, 발렌타인님.”
거기에 먼저 반응해 모드레드가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이 당황한 와중 고개를 들었다.
“두 분은 유하 언니의 탐색을 부탁합니다. 그리고 베디비어님은 저와 함께 타나토스 씨의 지원을.”
그 말을 이해한 일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면이 거두어지고 일어선 트리슈와 발렌타인이 각자 방향을 지정하고 빌딩 위에서 반대편으로 찢어졌다.
“가시죠.”
“네.”
그리고 베디비어와 모드레드는 같은 방향으로 뛰어올랐다. 어두운 곳으로부터 두 사람은 빛의 근원지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는 카페를 향해 내달렸다.
“…?”
이내, 멈춰 섰다.
눈앞에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타오르는 불꽃을 등진 채 거대한 남자와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여자가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모드레드는 깨달았다.
여자가 웃고 있음을.
“하하, 아하하…. 진짜 재미있네, 이거.”
“헥터….”
익숙한 목소리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한참을 웃음을 주체하지 못한 채 있던 헥터가 이내 옆으로 돌아섰다. 불꽃이 그 사악한 얼굴을 일그러지게 했다.
“비비안을, 당신이…?”
“응?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 모드레드.”
헥터는 아무렇지도 않게 시치미를 뗐다. 거기에서 모드레드는 자신들이 크게 한 가지를 잘못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아차렸다.
비비안을 보낸 건 희생양으로 삼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 가웨인의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함이었다.
“역겨운 여자로군요, 당신은.”
분노를 숨기듯 강한 독설을 내뱉으며 모드레드는 판초의 안에서 단검을 한 자루 꺼내들었다. 그리고 전력을 담아 헥터의 얼굴을 향해 내던졌다.
하지만 닿지 못했다.
헥터의 앞을 거대한 덩치의 사내가 가로막았다. 대검을 등에 짊어지듯 쥔 채 단검을 튕겨낸 그가 이윽고 모드레드를 돌아보았다.
바이크 헬멧에 슈트,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갈 수 없다.”
남자가 검을 들고 두 사람을 겨누었다.
“…. 어쩔 수 없겠군요.”
철커덕, 하고 공이가 당겨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뒤를 이어 베디비어의 팔에 달려 있던 의수가 기계적인 소음을 내기 시작했다.
“헥터….”
가고자 하는 두 사람과,
“왜? 모드레드.”
그것을 막으려고 하는 두 사람.
그 두 세력이 날카롭게 부딪쳤다.
◇
“나에게도 보이더군.”
녀석은 인상을 찌푸린 채 그렇게 중얼거렸다.
“지금의 이 풍경이, 불타오르고 있는 가게가….”
“결국 뭘 하고 싶은 거냐. 너란 놈은.”
나는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지 못하고 가웨인을 노려보았다. 잠깐 멍하니 날 바라보던 그는 이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물어보고 싶은 건데, 그건.”
“…?”
“결국 뭐가 하고 싶었던 거냐? 이준. 하나의 이상을 향해 뻗어나가는 것처럼 행동하더니.”
오해를 하고 있다.
아니 보다 저급한 단어를 사용하고 싶다. 착각을 하고 있다. 눈앞의 남자는 나를 완전히 오독하고 있다.
“난 한 번도 변한 적 없어, 언제나 네 멋대로 뇌내 망상을 펼쳤을 뿐이지. 백시호.”
“그런 것치고는 꽤나 멋진 말을 하지 않았어?”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고 있다.
대체 언제쯤 끝나는 것일까, 싶을 정도였다. 나는 등이 후끈거리며 상처가 아파오는 감각에 휩싸였다.
등에 세로로 길게 난 상처가.
“나에게 그랬잖아? 가상을 통해 현실을 유린하고 있다고. 하지만 네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어?”
가웨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도망친 네가.”
“….”
“스스로 완벽한 사람이기 때문에 갤러해드가 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어. 너는 그저 뒈진 네 누나의 망령을 쫓고 있었을 뿐인 거라고.”
“결국…. 그걸 원했던 거냐?”
나는 슬며시 검을 뽑아들었다.
“내게 완벽함을 원하고 있었던 거냐. 가웨인.”
“그렇다고 말한 적은 없는….”
“헛소리 집어 치워!!”
나는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누군가 단죄해주길 바라고 있을 뿐인 새끼가!!”
“…. 금방 흥분하네.”
“나에게 대체 뭘 바랬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완벽한 인간이 아니야! 네놈의 소망대로, 여자를 위한 빌어먹을 ‘순교’에 어울려줄 수는 없다고!!”
분노로 인해 머리가 뜨거워졌다.
나는 가웨인을 향해 세차게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막아낸 녀석은 순교라는 말을 읊조리더니 이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비비안을 납치한 네놈이 할 소리냐?!”
“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결국에 그런 비겁한 짓을 벌여놓고서…!!”
검이 튕겨져 날아올랐다. 훌쩍 다가선 가웨인이 증오를 담아 나를 노려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복부를 걷어차였다.
“크헉!”
튕겨져 날아가, 무너지기 직전의 가게에 처박혔다. 순식간에 뜨거운 감각이 전신을 파고들어 나는 멍한 채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갤러해드도 아닌 주제에 나를 악으로서 단죄할 생각 따위는 하지 말라는 거다!! 이준!!”
다가온 녀석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부서진 창가의 틀에 올라선 그가 흉흉한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았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참으로 어이가 없어지는 광경에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내,
“유하를 내놔.”
녀석을 향해 진지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럴 수는 없지.”
하지만 가웨인은 코웃음을 치며 다가왔다.
불길이 치솟는 가운데 우리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말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유도해가면서까지, 눈앞의 남자는 나에게 ‘비비안을 돌려줘.’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거기에서 결국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비비안에 대한 녀석의 감정은.
하지만 나는, 과연 어떨까.
복잡한 머릿속을 느꼈다.
과거의 기억이, 그로서 성립되는 나 자신이.
현실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 이준이.
가상의 세계에서 싸우게 된 타나토스가.
그 모든 것은 결국 한 사람을 위해서였다.
나의 누나였던, 그리고 동시에 지금은 ‘유하’인 그 사람을 위해서, 나는 싸워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과연, 제대로 된 행동이었을까?
나는 결국, 누구를 위해 싸운 것이지?
“가웨인…!”
“타나토스!”
스스로에 대한 분노를 지워버리듯 나는 검을 휘둘렀다. 가웨인이 거기에 맞서 불꽃의 사이에서 검이 맞붙었다. 녀석은 나를 강하게 노려보았다.
“결국 가상과 현실이 혼합된 세계에서 정의 따위를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는 거다!!”
“큭…!”
밀려났다.
“세계는 변하지! 그 속도에 평범한 인간을 따라갈 수 없다! 뒤쳐지지 않기 위해, 약자가 되지 않기 위해 싸워야할 뿐이야! 네놈도 결국 그런 것이었어!!”
“무슨 소리를…!”
“결국 네놈 역시 싸우기 위해서 재킷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타나토스!”
버럭 소리를 내지른 녀석이 검을 휘둘렀다. 튕겨져 날아가 계단 밑에 처박힌 나는 매캐한 연기에 제대로 숨이 쉬어지지 않는 것을 느꼈다.
“빌어먹을….”
필터를 착용한다.
마스크의 안쪽에서 기계적인 소음이 이어지더니 이내 숨을 쉬는 것이 편해졌다. 일어선 나는 휘몰아치는 불길 너머에서 다가오는 가웨인을 바라보았다.
불꽃이 걷혔다.
녀석의 손에는 총이 들린 채였다.
“뭣…?!”
나는 옆으로 굴러 계단 쪽을 타고 올라갔다. 강렬한 폭음의 뒤를 이어, 방금 전까지 있던 자리에 빛이 일었다. 나는 입술을 빠득 깨물며 2층으로 향했다.
유하의 방은 텅 빈 채였다.
난자된 침대, 모든 것이 불에 타들어가 형태만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머릿속이 핑 하고 물드는 듯한 감각에 휩싸였다.
“주인님!”
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