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재킷-231화 (231/321)

231편

<-- Chapter 5 : 이상의 기사 -->

깨진 유리가 바닥에 흩어진 채였다.

밟을 때마다 날카롭게 짓이겨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무렇지도 않게 완전히 박살난 창문을 타고 넘어간 가웨인은, 타오르기 시작한 의자를 걷어차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어둠이 걷히며 불꽃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단 일격으로 엉망진창이었다.

의자에서 비롯된 불길이 주변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커피가 담긴 자루가 불타오르고 벽에 걸려 있던 액자나 책장의 책이 더러운 바닥에 흩어졌다.

마지막으로 창가에 있던 것처럼 보이는 꽃까지.

“….”

흐드러진 노란 꽃의 머리를 짓밟았다.

안쪽으로 걸음을 옮긴 가웨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눈앞에 ‘출입 금지 구역’이라는 메시지가 떴지만 무시하고 모르가나를 꺼내들었다.

가게의 권한을 가져온다. 스프링클러, 침입자가 있다는 경보 장치를 모조리 해제. 그리고 가웨인은 2층의 방문앞에 도착해 갈라틴을 뽑아들었다.

비헤딩 슬래셔.

그렇게 중얼거린 그는 세차게 검을 휘둘렀다.

“큭…!!”

갤러해드의 검이 날카롭게 얼굴을 스쳤다.

너절해진 십자가의 방패는 땅바닥에 꽂힌 채였다. 검이 지나치고 찰나의 순간, 아래에서 스파다를 들어 올린 나는 그대로 갤러해드의 어깻죽지를 베어냈다.

“스컬!”

그리고 누군가 어깨를 짓밟는 게 느껴졌다.

“우아랑?!”

순간적으로 무게감이 이어지고, 뒤를 이어 우아랑이 앞으로 뛰어올랐다. 검은 코트의 자락이 얼굴을 스쳐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녀석의 검이 갤러해드의 투구를 꿰뚫었다.

“하아아앗!!”

동시에 올려치듯 검을 들어내자 그와 함께 투구가 튕겨져 날아올랐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나는 순식간에 어깨의 방패를 다른 형태로 뒤바꾸었다.

검은 바람이 흩날렸다.

순식간에 시야가 투명해져, 나는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에 휩싸였다. 공중에서 뛰어오르고 있는 우아랑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앞으로 도약한다.

투구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갤러해드는 투구가 떨어져 나온 충격으로 인해 무척이나 천천히 뒤로 쓰러지고 있었다. 나는 그 뒤로 파고들어 검을 찔렀다.

푸욱, 하고 손에 감각이 휘감겼다.

“크윽…!!”

삐걱거리며 가슴을 관통 당한 갤러해드가 멈춰 섰다. 그리고 검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다, 이내 버텨내지 못하고 추욱 늘어졌다.

“허억, 헉….”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반대편에 내려앉아 그런 내 모습을 확인한 우아랑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뒤를 이어 갤러해드의 환영이 사라졌고 검이 묶여 있던 감각이 없어져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 경험치가 상승하였습니다.

강한 상대였다.

솔직하게 말해 지금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스킬을 쏟아 부었다. 아마 혼자 싸웠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을 터였다. 우아랑 역시 그것을 깨달았는지 싸움의 중반부터는 협력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제 뭐, 나름대로 손발이 잘 맞게 되었군.”

숨을 골라낸 나는 너스레를 떨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다음 순간, 우아랑은 그런 내 목에 검을 들이밀었다. 차갑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친한 척 굴지 마라.”

녀석은 나를 노려보았다.

“…. 일단 이것 좀 떼고 얘기하지.”

“얘기하고 말 것도 없다. 재고할 가치도 없지, 비비안에 관한 이야기는 전부 네놈이 지어낸 거짓말이다.”

“그럼 지금 우리 쪽에 있는 비비안은 뭐지?”

“증명할 수 있나?”

“증명한다면 협조해줄 거냐?”

“….”

우아랑이 침묵했다.

“이유가 대체 뭐지.”

그리고 뒤를 이어, 녀석은 불쾌하다는 기색을 감추지 않은 채 날 노려보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서있던 그녀가 이내 말을 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군. 네놈은 랜슬롯을 꾀어내 사건을 일으킨 다량의 테러리스트를 체포하려던 백 대위와 비비안을 모조리 물 먹이지 않았나? 그런데 왜 지금에 와서 비비안을 보호해주겠다는 듯 말하는 거지?”

“그런 게 아니니까.”

“뭐?”

“그 사건은 오히려 린슬렛이 엿을 먹은 일이야. 그 녀석을 희생양으로 삼아서 너희 그 높으신 분들께서 시민들을 공포에 몰아넣으려 꾸민 짓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마라!”

“너야말로 정신 좀 차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말에 설득력이라는 걸 갖춰 보는 건 어떠냐?!”

목덜미에 검이 파고들었다.

“그러니까, 확인을 해보자고!”

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고 우아랑을 향해 다가갔다. 날카롭게 하나로 합쳐진 검이 내 목덜미를 바이올린의 현을 켜듯이 울렸다. 붉은 피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윽….”

우아랑이 어깨를 움츠렸다.

“이렇게 하지.”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함께 확인을 해서 내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내 재킷을 없애버려도 좋아. 순순히 체포되어주지.”

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녀석의 어깨를 쥐었다. 겉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가녀린 감각을 느꼈다.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스컬….”

우아랑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날 올려다보았다. 조금 재려는 듯한 태도였으나 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쳤다. 녀석이 원하는 답을 내놓을 때까지.

하지만 다음 순간, 눈앞에 팝업창이 떠올랐다.

“음…?”

내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앞에 떠오른 그것을 우아랑이 이내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고, 표정이 점차 굳어졌다. 나는 그런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내용인데 그래?”

“아니….”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다. 혼란스러워하며 나를 올려다본 그녀가 이내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이, 준?”

그리고 내 이름을 말했다.

“…?”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졌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드는 감각이었다. 메시지를 읽고 경악해 내 이름을 이야기한 우아랑의 모습에서 나는 어떤 불길한 형태의 소름을 느꼈다.

[타나 오빠…!!]

그 뒤를 잇듯 비명에 가까운 트리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에 굳어져 있던 상황에서 겨우 정신을 차린 나는 마른 입술을 열었다.

“트리슈?”

[큰일이야! 지금 가게가!!]

트리슈의 당황한 목소리에,

[불길에…!]

나는 시야가 한순간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아니, 왜?

누가? 어째서?

“백, 시호….”

그리고 겨우 정신을 차렸다. 휘청거림에 무릎을 꿇지 않고, 나는 눈앞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생각 따위는 머릿속에 떠오르지도 않았다. 시야의 모든 부분이 흐릿해지고 오직 눈앞의, 가게를 향해 걸어가는 길만이 또렷하게 떠오를 뿐이었다.

그리고 유하의 모습이.

“잠깐, 스…!”

누군가가 팔을 붙잡았다. 하지만 나는 단숨에 쳐내고 이내 속도를 내어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가면 안 돼. 라고.

중간쯤부터 누군가 계속해서 말을 걸어온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말들이 이내, 송유하라는 이름에 가려져 사라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신에게 빌었다.

유하가 제발 무사했으면.

“크윽….”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부터 불쾌한 냄새가 느껴졌다. 더욱더 세차게 달음박질을 해 달려든 나는 건물의 옥상 위에서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평소와 같은 장소다.

나는 이곳에서 골목으로 뛰어내려, 재킷을 해제하고는 현실로 돌아와 가게로 돌아가고는 했다.

내 현실, 내 모든 것.

가장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

“….”

하지만 지금 그곳은 불길에 휩싸인 채다.

매캐한 연기가 하늘을 향해 끝없이 치솟았다. 내 가장 소중한 장소는, 한순간에 내 최악의 기억이 있는 장소로 돌아가고 말았다.

“주인님….”

옆에 떠올라 있던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나는 애처로운 목소리를 무시한 채 건물로부터 뛰어내렸다. 그리고 천천히 가게를 향해 다가갔다.

늦은 밤, 하나의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가운데 불꽃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기세로 타올랐다.

“왜….”

나는 그 불꽃을 바라보며,

“이런 짓을….”

뒤쪽에 서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하지만 스스로 하고서도 미련하다는 생각이 일었다. 녀석이 언제라도 이럴 수 있다는 예상을 계산속에 넣어두어야만 했다. 녀석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폭탄 같은 존재였으니.

그럼에도 나는, 그러지 못했다.

유하와의 평화를 너무도 사랑해, 돌아갈 장소가 필요했다. 현실과 가상, 그 두 개가 혼재된 세계에서 나는 심신을 여밀 장소를 너무나도 갈망했다.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또 다시, 나는…. 실패하고 말았다.

“…. 송유하는 네게 소중한 사람인가?”

담배를 입에 문 채, 가웨인은 내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 거기에 나는 스스로의 얼굴이 엉망진창이 된 것을 느꼈다. 거기에서, 가웨인은 내게 있어 송유하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를 알아차린 듯 피식 웃었다.

“왜, 소중한 거지?”

질문이 이어졌다.

“가족이라서? 고작 그런 이유뿐인가?”

녀석의 얼굴이 일렁거리는 불꽃에 드러났다. 진지한 눈동자가 가만히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이어진 목소리는 어쩐지, 희미했다.

나는 멍한 채 불길에 사로잡히는 듯한 그 목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이야기를 들었거든, 송유하에게서. 4년 전의 사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더군. 심지어는 그 사고가 아서리안에 관련되었다는 부분도.

할 킬러즈에 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

이야기를 듣는 내내 뭔가 이상하다고 계속해서 생각했어. 왜냐면 너는 그냥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

근데 그러지 않았지, 왜일까.

“그럴 수가 없게 되어버린 거지. 현실로 돌아갈 수 없게 되어버린 거야. 그 이유가 뭘까? 대체.”

가웨인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검을 뽑아들었다.

“송유하가 갤러해드였기 때문이잖아?”

녀석은 나를 겨누었다.

“그래서 현실과 가상을 구분 지을 수 없게 된 거지.”

그리고 차갑게 중얼거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