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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230화 (230/321)

230편

<-- Chapter 5 : 이상의 기사 -->

“정말이야?”

“네, 모두 제가 시킨 일입니다.”

확인을 하듯 되묻자 비비안은 망설이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시선이 마주쳐 그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린슬렛은 이내 피식 웃어버렸다.

“당당하네, 비비안.”

“그렇군요.”

남의 이야기를 하는 말투였다.

쓸쓸한 얼굴로 웃은 비비안이 린슬렛을 바라보았다. 침묵이 맴도는 가운데, 린슬렛은 그녀가 어째서 그런 대답을 한 건지를 깨달았다.

“언제나 휘둘려지기만 했다면서?”

며칠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녀는 물었다. 분명히 비비안은 그렇게 말했었다. 자신은 언제나 가웨인에게 휘둘릴 뿐인 존재였다고.

“그런데, 잘도 말하네.”

그런 상황에서 그녀는 증오를 느끼지 않는 걸까?

린슬렛이라면 그랬을 터였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일방적으로 구속할 뿐인 관계는 싫었다.

“결국 그 정도로 소중한 사람이라는 말이잖아.”

하지만 비비안은?

“….”

그렇게 꿰뚫어본 형태의 질문을 던지자 비비안은 침묵했다. 그리고 이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소중하지 않아요.”

“그런데 네가 시킨 일이라고?”

“네, 제가 시킨 일이죠, 결과적으로는.”

“…?”

의아해져 바라보자 비비안은 손가락을 매만지며 무릎을 내려다보았다. 그런 모습에 린슬렛은 그녀가 하고자하는 말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네 책임이라는 듯이 말하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제 다리가 이렇게 되고 나서…. 좋던 싫던 저는 가장 크게 이 일에 관여한 사람이 되고 말았으니까요.”

“그것에 죄책감을 갖는 것 자체가 위선이야.”

“어째서죠?”

“왜냐면 넌 그냥 가만히 앉아있을 뿐이니까.”

린슬렛은 차갑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같은 여자로서, 가웨인에게 비비안이 느끼고 있는 감정에 대해. 하지만 그러는 만큼, 린슬렛은 그 모순점을 알아차렸다.

“성녀라도 되고 싶다는 것 같네.”

“그렇, 지는….”

“내 말을 부정하고 싶다면 휘둘려서는 안 되는 거였어. 가웨인에게도…. 그리고 할 킬러즈에게도.”

인상을 쓰며 이야기하자 비비안의 눈동자에 당혹스러운 기색이 깃들었다. 홧김에 말해버렸다는 자각을 하면서도 린슬렛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

“어떻게 하고 싶은 거야? 비비안, 너는.”

“제가….”

“가웨인을 어떻게 생각하는 건데.”

“제가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비비안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저는 움직일 수 없다고요! 그 사고로…. 인형이 된 거예요…. 그 남자의 에고를 채우기 위한 인형이…! 그런 상황에서 제가 도대체 뭘 할 수 있단 거죠?!”

그녀는 린슬렛을 강한 분노를 담아 노려보았다.

“몇 달 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산속에 유폐되어있었는데! 그리고 갑자기…!!”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말을 이어나가던 그녀가 흠칫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린슬렛은 가까이 다가가 비비안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윽…?!”

놀란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린슬렛은 제대로 서지도 못한 채 괴로워하는 비비안을 아무렇지도 않게 소파 쪽으로 내던졌다.

“꺅?!”

“말을 못한다면, 부숴버리면 되겠지?”

그리고 린슬렛은 품안에서 아론다이트를 꺼내들었다.

“무엇을…?!”

비비안이 놀라 소리쳤으나, 원형의 방패는 파르스름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린슬렛은 단호하게 방패를 휘둘렀다.

위치는 파악해두고 있다.

넬이 말을 해주었기 때문에.

“린슬, 렛….”

쩌억, 하고 휠체어의 중심부가 갈라져 반으로 부서져 내렸다. 그 모습을 어이가 없어 바라보던 비비안을 돌아본 린슬렛은 손을 내밀었다.

“알아, 네가 다리를 쓸 수 없다는 거.”

“그런데 왜…!”

“하지만 우리에게는 재킷이 있어, 비비안.”

그녀는 진지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일어설 수는 없지만, 인간을 초월할 수는 있다고.”

그 목소리가 비비안에게 닿기를 소망하며.

재킷을 통해 인간은, 초월한 존재로서 거듭난다.

단순히 신체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재킷’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단어였다.

세계의 인식을 바꾸어놓는 것이었다.

인간의 뇌를 확장시켜, 컴퓨터에 버금가는 빠른 사고를 하도록 한다. 거기에 더불어 지치지도 않는 방면까지 컴퓨터와 비슷할 정도였다.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재킷은 그 한계를 없애버린다.

가끔 가웨인은 인간이 재킷을 해제하는 이유가 단순히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재킷은 어떻게 보면 올림픽 도핑을 수천 배 늘려놓은 물건이었으니까, 평범한 인간의 인식으로는 뭔가 안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나 싶은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재킷은 그런 물질이 아니다.

“….”

눈앞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사내를 보며, 가웨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 역시 자신처럼 재킷이 어떠한 존재인지에 대해서 깨달은 인간이라고.

보통은 아주 약간은 인간성이 남아있는 법이기에.

전투나 활동에 있어서, 높은 위치에서 뛰어내린다던가, 눈앞의 적이 검을 들이밀면 보통의 사람들은 죽음에 엇비슷한 공포라도 느껴 몸을 움찔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타나토스는 달랐다.

“….”

그는 강한 의지를 지닌 채 갤러해드와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다. 처음에는 송전탑 위에서, 하지만 이내 그 아래로 떨어져 지상에 도달해 그곳에서도 자신의 몸은 생각지 않고 검을 휘둘러댔다.

가웨인의 검이, 그의 가슴을 관통해 지나갔다. 하지만 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채 그것을 쥐고 기사의 투구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카페에서 우아랑의 연락을 받았을 때는 솔직히 말해 좋지 못한 기분이었다. 그때 마침, 송유하로부터 무언가의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타나토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가게를 나설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대단한 녀석이다.

이 아서리안을 시작한지 몇 달이 채 되지 않는 시점에서, 그는 누구와 맞붙어도 밀리지 않을 실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 성장 속도는 경이로울 정도였다.

마치 게임의 ‘주인공’과 같은 모습이다.

“타나토스….”

그 모습을 적으로 상정해두었기 때문에 가웨인은 지금껏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히 박살이 나버리고 말았다.

“네가 왜, ‘그녀’를….”

혼란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가웨인은 입술을 빠득 깨물었다. 완벽함을 바라고 있던 적이 그런 행동을 보였다는 사실에 치가 떨렸다. 아버지와 자신의 예상이 그렇게 현실로 뒤바뀌자 그는 모든 것을 놓았다.

담배 연기가 허공에 흩날렸다.

약간 몽롱한, 또한 알 수 없는 기분인 채 송유하의 말을 머릿속에 생각하던 가웨인은 이내,

“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타닥거리며 장작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동시에, 불에 타들어가는 종이처럼 현실이 지워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가상이 대체했다.

“이곳, 은….”

본 기억이 있다.

카페였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있던 이준의 가게였다. 그곳이 불에 타 점점 무너져가는 모습에 가웨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주변을 살폈다.

갤러해드와 이준은 싸우고 있다. 우아랑의 모습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가웨인은 불꽃 사이에서 몇 번이고 부딪치는 이준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지, 이 퀘스트는…?

분명히 갤러해드의 흔적을….

“아.”

그리고 그는 크게 깨달아,

“이준…. 너는….”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불타는 카페의 풍경을 보고, 가웨인은 비참한 기분에 휩싸여 킥킥거리며 웃어댔다. 그리고 그 끝에서, 그는 자신이 가장 증오하지만 닮아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그래…. 아버지.”

또한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남자에게.

“하겠어, 지금 당장.”

그는 그렇게 보고를 했다.

별 것도 아닌 일이다.

그저 녀석의 ‘전부’를 빼앗으면 되니까.

0137시.

은평구 내에 대규모 피난 명령이 내려졌다.

잠에 빠져 있던 시민들은 느닷없이 디멘션 커넥터에 의해 깨워져 일어났다. 그리고는 곧바로 훈련을 받은 대로 지하 쉘터로 대피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당황한 눈치였지만 할 킬러즈에 소속된 전경들이 그것을 금방 통제하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송유하라는 인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알겠어.”

전경의 보고에 가웨인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손으로 끊어 재를 털어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어둠에 잠긴 가게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카페 T’amo

두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낡은 건물이었다. 직접 본 바로는 1층을 가게로, 2층을 일반 가정집으로 사용하는 듯했다. 지금은 불이 꺼져서 고요한 상태.

전경들은 없다. 혹시 자신이 ‘흥분’할 우려가 있었기에 가웨인은 일부러 그들을 멀찌감치 떨어뜨려둔 상태였다. 사실 가까이 있다 한들 디멘션 커넥터도 부대에 반입할 수 없는 노예들이 뭔가 할 수 있을 리는 없지만.

어쨌든,

“계속해서 확인해.”

시간은 충분히 지났다. 하지만 대피가 다 끝나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행여나 바깥에서 나는 소란을 듣고 대피를 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물론 그렇게 된다 한들, 그녀는 그곳에 있는 요원들에게 잡혀 미끼로 사용이 되겠지만.

“…. 갈라틴.”

그리고 가웨인은 검을 뽑아들었다.

스스로의,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태양의 검.

그것이 휘둘러진 것은 다음 순간이었다.

번쩍 하는 빛과 함께 실존하는 검기가 날아들어 가게의 유리창을 박살내고 파고 들었다.

“날 기만하다니….”

가장 증오하는, 그리고 가장 ‘기대했던’ 적에 대한 분노로 몸을 감싼 채,

“이준….”

가웨인은 폭발에 휩싸인 가게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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