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편
<-- Chapter 5 : 이상의 기사 -->
◇
타나토스에게 패배한 직후, 가웨인은 고통에 몇날며칠을 괴로워하며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등뼈처럼 생긴 검에 찔린 상처가 다 낫지 않은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스스로를 지탱하던 단 하나의 의지가 완전히 무너져, 그는 며칠 뒤에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그 사이, 많은 것이 변한 채였다. 별 것도 아닌 그런 변화는, 무척이나 많은 시간이 흘렀음을 상기시키듯 가웨인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할 킬러즈는 으레 썩어빠진 조직이 그렇듯 파벌이 갈린 뒤였다. 기존부터 있던 요원 세력과 아서리안의 유저로 있다 복귀한 기사 세력으로.
그리고 가웨인은 그들을 이끄는 인물로 선택되었다.
그녀를 인질로 붙잡혀,
“아버지에게.”
“네?”
비참함에 젖은 목소리에 반응하는 사람이 있었다. 멍한 상태로 앉아있다 고개를 든 가웨인은, 눈부신 조명 아래에 서있는 그녀를 발견하고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아무것도.”
“후후, 무슨 일 있으면 또 불러주세요.”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여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잔을 내려놓은 뒤 돌아섰다. 진한 커피에 조금 우유가 섞인 듯한 연갈색의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그녀를, 가웨인은 멍한 눈동자를 한 채 가만히 바라보았다.
괜찮겠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방식이다. 아버지의 말대로 또한 정당한 일이었다. 하지만 가웨인은 스스로가 했던 말을 머릿속에 떠올리고는 쓰게 웃었다.
“가상의 일은 가상에서.”
그렇기 때문에 건드리지 않았던 것이다. 상부에 보고는커녕 머릿속에서도 지워내려고 했다. 적으로서 유일하게 타나토스의 이준으로서의 모습을 알고 있지만, 가웨인은 그것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왜냐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그에게 승리하는 것은, 가웨인에게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가장 원하는 것을 이미 빼앗겨버리고 말았기에. 알량한 자존심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변해버리고 말았다.
아버지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마치 으레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아버지는 가웨인에게 있어 엘레노어나 진배없는 존재였다. 그에 관해서는 무슨 사실이던 알아 교묘히 행동을 유도했다.
그게 싫은 것이다.
아버지라는 사람에게 종속되는 듯한 느낌이었기에.
하지만, 또 이런 식이다.
“…. 씨발.”
자리에서 일어서, 가웨인은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저도 모르게 담배를 꺼내 입에 문 그는, 테이블을 정리하느라 뒤로 돌아 서있는 유하를 향해 다가갔다.
간단한 일이다.
코트를 입은 상태다. 힘은 언제나 뇌의 생각을 따라 움직이게 되어 있다. 적당한 정도의 힘을 상상하고 목을 조르면 된다. 경동맥을 누르면 10초도 되지 않아 기절하겠지, 그보다 더 가면 죽을 테고.
물론 그럴 마음까지는 없다.
새하얀 목덜미를 향해 손을 뻗으며, 가웨인은 그런 생각을 했다. 자신은 그저 단순히…. 그녀를 되찾기 위해서 이런 일을 할뿐이라고 여겼다.
그럴 자격이 있는가는 모르겠지만.
“아, 뭐 찾으시는 거라도 있으세요?”
바로 그때, 인기척을 느낀 유하가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마주쳐 순간적으로 그 자애로운 눈빛에 당황한 가웨인은 이내 미소를 짓는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준의, 친구 분?”
거기에 그녀가 대답한다.
“아 네, 담배는 어디서….”
“나가서 왼쪽으로 도시면 되요.”
천진난만한 대답이다.
“…. 감사합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가웨인은 몸을 돌려 가게를 빠져나가려 했다.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낀 채로.
하지만 이내, 붙잡혔다.
“…?”
“그, 한 가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요.”
“네?”
코트 끝을 당겨져, 가웨인은 눈썹을 찌푸리며 유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웃은 그녀는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맞으시죠? 준과 친구이신 게….”
그렇게 보이나.
“한 가지, 부탁을 해도 괜찮을까요?”
그런 이야기를 들은 직후, 가웨인은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거기에 반응하지 못하고 유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
다시금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시간에 딱 맞췄네요.”
철골로 된 송전탑 위에 올라서자 넬이 시간을 확인해주었다. 가볍게 숨을 내뱉은 나는 손가락이 살짝 떨리는 것을 느끼고는 의아해했다.
아니, 그렇군.
“평범한 인간이었을 때의 기억이 남아있는 건가….”
“네?”
“아무것도 아니야.”
넬이 되묻자 나는 피식 웃으며 시치미를 뗐다. 녀석에게 이런 사실을 이야기했다가는 호들갑을 떨며 내려가자고 말을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뭐, 녀석 역시 멀쩡해 보이지는 않고.
“괜찮겠지….”
“뭐가 말이냐?”
가볍게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다음 순간, 철골 구조물의 반대편에 서있던 여자가 반응했다. 팔짱을 낀 채 서있던 녀석은 차갑게 눈동자를 빛내며 고개를 들었다.
검푸른 머리가 바람에 가볍게 흩날렸다.
“퀘스트 때문인가? 이렇게 부른 이유는.”
“아니,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이유야.”
우아랑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그것을 느낀 나는 일부러 조금 빠르게 이야기를 진전시켰다. 그리고 뜸을 들이며 가만히 바라보자 녀석의 눈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할 킬러즈가 또 무슨 짓을 벌이려는 거지 싶어서.”
“…? 그게 무슨 말이냐.”
“사람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일부러 정론을 통해 이야기를 꺼냈다. 우아랑은 전혀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신체의 반응 또한 변함이 없이 그대로였다.
전혀 모르는 건가…?
아니, 아직 단언하기에는 이르다.
“그게 아니라면 비비안을 우리 쪽으로 보내두고 있는 이유가 대체 뭔데?”
“뭐…? 그건 무슨….”
눈동자에 혼란스러운 기색이 일었다.
“녀석을 죽여서, 사악한 테러리스트들이 제 살을 깎아 파먹는 광경을 만천하에 공개하겠다는 거 아니야?”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비비안은 분명 행방불명으로 처리가 되어 있었….”
“헛소리 지껄이지 마.”
슬쩍 짜증을 내자 우아랑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비비안은 너희 할 킬러즈 측에서 일부러 감춰두고 있었던 거잖아. 가웨인을 부려먹기 위해서.”
“네놈이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라!”
녀석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손을 휘둘렀다.
그리고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녀석은 분명 강직하다. 말뿐만이 아닌 분명한 형태의 신념을 지니고 있고 그걸 위해서 스스로를 단련하는 부분 또한 분명히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근본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녀석은 끝없이 의심하기보다는 현실에 안주해버리는 쪽이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대해서 분명히 짜증을 느꼈던 것이고.
“정말로 확신할 수 있는 거냐?”
나는 차갑게 중얼거렸다.
“네가 믿고 있는 게 진실이라고.”
“다수에 의해 쌓아올려진 규칙이다. 적어도 네놈처럼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는 것보단 옳을 터. 그게 아니라면…. 증거라도 있는 것이냐?”
“함께 증명해보는 건 어때?”
“뭐…?”
내 제안에 우아랑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나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너 또한 조직에 대해 맹목적인 충성심만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 테잖아? 분명히 말했었지. 어두운 부분이 있다고. 그걸 같이 확인해보자는 거야.”
“이제 와서, 대체 무슨…! 결국 네놈도 아무런 증거도 없이 조직을 매도하고 의심하고 있을 뿐이면서!”
“증거는 없어, 하지만 근거라면 있지.”
단지 그걸 설명할 수 없을 뿐이다.
린슬렛이 관련되어있던 랜슬롯 퀘스트에서도 그렇고, 녀석들은 무언가를 조작하면서까지 자신들의 정당성을 증명하려고 했다. 비비안의 경우에도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절대 없었다.
“네가 속한 그 조직이 썩어빠졌다는 근거라면.”
“….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어째서?”
“이게 네놈이 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왜 내가 그걸 믿고 따라서 행동을 해주어야 하는 거지?”
나는 거기에 대답하지 못했다.
물론 그럴 이유는 없다.
“서로 정의가 있고, 타협할 수는 없다. 그렇게 말했었지, 스컬.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는 네놈을 악으로서 규정한다.”
우아랑은 검을 뽑아 나를 겨누었다.
“형태를 갖춘 규칙을 명백히 벗어났으니 말이다. 결국 그 시점에서 너에게 발언을 할 권리는 사라지는 법이다. 갤러해드가 되어서 이 게임을 끝내겠다고 했지, 그건 그렇게 멋진 자신이 되고 싶기 때문이 아닌가?”
“그건….”
“그게 아니라면 대체 뭐지? 자신을 가장 혐오한다고 말하면서도 너와 네 주변 인물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길을 관철해 나가는 거냔 말이다!”
우아랑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 다음 순간, 녀석이 검을 내 쪽을 향해 쏘아 보냈다.
“그걸 설명해라! 스컬!”
“윽…!”
검이 볼을 스쳐지나갔다. 고개를 비틀어 아슬아슬하게 피해낸 나는 이내 눈썹을 찡그리며 고개를 들었다. 검을 회수한 우아랑이 다시금 그것을 세차게 휘둘렀다.
“네놈의 정당성을…!”
바로 그 순간 무언가 빛나기 시작했다.
“윽…?!”
검을 쏘아 보내려던 우아랑이 동작을 멈췄다. 그녀 역시 나처럼 눈앞에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란 것이었다.
새하얀 빛으로 휩싸인 기사.
그리고 눈앞에 팝업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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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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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갤러해드의 여정 5/10
난이도 : ★★★★★★★★★☆
내용 : 갤러해드의 환영을 먼저 쓰러뜨리세요.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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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저…?”
그렇다면 협력이 아니라 경쟁이라고 보면 되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품안에서 스파다를 꺼내들었다. 마찬가지로 퀘스트창을 읽은 우아랑이 검을 손에 쥐고 가만히 서있는 갤러해드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윽…?!”
그 직후, 휘둘러진 검에 나는 뒤쪽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자세를 바로 잡은 나는 이내 입술을 빠득 깨물었다.
눈앞의 풍경이 변화했기 때문이었다.
퍼져가는 물감처럼, 그것은 내 시야에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리고 그게 완성되자, 나는 저도 모르게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3년 전의 불타는 가게였다.
엘레노어…. 그 증오스러운 신이 그려낸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