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편
<-- Chapter 5 : 이상의 기사 -->
“…?”
의아해져 바라보자 린슬렛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이내, 스스로 너무 흥분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아니, 그….”
“응?”
“말이 너무 심하잖아!”
어떻게든 이어가는 린슬렛.
나는 대답을 하는 대신 길게 한숨을 내쉬며 뒤로 돌아섰다. 조금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나는 대답을 하기 조차 싫다는 듯 그런 연기를 했다.
일단 넬의 도움으로 큰 진전이 있었다.
그것은 물론, 발신기의 존재였다. 그로 인해 비비안의 탈출이 할 킬러즈와 어떤 방식으로든 연관이 되어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아마도, 비비안은 자신의 휠체어에 있는 발신기의 존재를 모르진 않을 터였다.
즉, 할 킬러즈는 일부러 그녀를 우리에게 보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더 있었다. 그 의도를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가웨인, 인가…?
문득 그런 예감이 들었다. 그러자 나는 어쩐지 등줄기가 세차게 당기는 감각을 받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가웨인은 비비안의 신원에 대해 모르고 있다. 그렇다면 할 킬러즈는 그런 식으로 해서 대체 뭘….
잠깐, 설마?
“티티, 얘기 좀 해.”
“하아, 잠시만.”
린슬렛이 진지한 목소리를 냈으나, 나는 더 못 참겠다는 듯 돌아섰다. 물론 이것은 비비안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시간을 더 벌어들였다.
“….”
화장실로 향한다.
문패가 걸려 있어 찾기는 쉬웠다. 안으로 들어서 문을 일부러 소리를 내 닫은 나는, 길게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신을 확인했다.
곱슬곱슬한 앞머리, 그 아래로 드러난 얼굴.
물론 이것은 단순한 예감이다.
하지만 가볍게 물로 얼굴을 씻어낸 나는, 그런 조금의 예감에서조차 불쾌함을 느끼고 어깨를 떨었다.
비비안은 어쩌면, 희생양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염탐이나 정찰을 하기 위해 보냈다고 보기에는 그녀의 몸을 생각했을 때 어딘가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린슬렛과 마찬가지인 거다. 그녀는 헥터가 일으킨 사고로 인해 위축된 할 킬러즈의 행동에 다시금 명분을 주기 위해 선택된 걸지도 모른다.
“가웨인….”
그리고 나는 한 남자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순간적으로 녀석에게 이야기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싶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 최우선은 분명 비비안일 테니까.
하지만 이내,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웨인.
물론 본명은 아니다. 하지만 그 남자는 나에게 있어 백시호이자 동시에 가웨인이었다.
가상을 도구로 이용해 현실을 유린하는.
그런 상황에 자신의 연인이 이용을 당한다면? 녀석은 대체 어떻게 반응할까? 그걸 받아들이나 할까? 좋다고 하면서 평소처럼 자신의 행동을 로맨스로 포장해 도리어 비난의 화살을 ‘테러리스트’인 나에게 돌리진 않을까?
“빌어먹을….”
고민에 빠져 있던 나는 타일로 된 벽에 기대어 섰다. 그리고는 이내 망설이지 않고 귓속말을 걸었다.
“모드레드.”
목소리는 금방 돌아왔다.
[네,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 어디야?”
[아침에 말씀드렸던 대로 동향 파악을….]
[아, 타나 오빠야?!]
느닷없이 옆에서 목소리 하나가 끼어들었다.
“응, 트리슈.”
물론 곧바로 누구인지 파악한 나는 가볍게 거기에 대답했다. 애교스러운 목소리를 낸 것은 분명 그녀였다.
[잠…. 지금 작전 중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뒤를 이어 모드레드가 당황한 듯 소리를 냈다. ‘작전’이라는 말에 나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괜찮아, 괜찮아. 주변 정찰은 트리슈의 카메라가 다 하고 있다고? 모디모디.]
[그 모디모디라는 것은 대체 왜….]
“왜 그래, 모디모디.”
[아니, 당신마저….]
모드레드가 침울한 목소리를 냈다.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듣자 어쩐지 어깨에 힘이 풀렸다. 고민을 하던 게 다 뭔가 싶어져 나는 조금 생각을 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할 킬러즈에서 비비안을 보낸 게 맞는 것 같아.”
[그렇습니까.]
“혹시 우아랑하고 연락할 수 있겠어?”
[네?]
조금 의아하다는 듯 되묻는 모드레드. 하지만 나는 그것이 나름대로 근거 있는 말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가웨인의 이후로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올린 것은 라이오넬이었지만, 녀석은 매사에 능숙했기에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남은 건 우아랑 뿐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내가 비난을 하면, 그 비난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생각을 할 녀석은.
“가능해?”
[응, 트리슈가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오늘 오전 0시에 송전탑으로 와달라고 전해줘. 퀘스트와 관련해서 할 말이 있으니 혼자 오라고.”
[…. 알겠습니다.]
“부탁해.”
그렇게 중얼거린 뒤, 나는 귓속말을 종료했다.
협력을 구할 마음까지는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살짝 떠봐서라도 녀석들이 어떤 의미에서 비비안을 ‘사용’하고 있는 것인가 확인해봐야겠지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비비안이다.
“넬.”
“네, 주인님.”
나는 그때까지 옆에 서있던 넬을 돌아보았다. 녀석은 조금 걱정스럽다는 눈을 하고 있었다.
“린슬렛한테 이쪽으로 와달라고 좀 해줘. 화내면서.”
“아하하…. 약간 진심이실 것 같은데요.”
어색하게 웃은 넬이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얼마 기다리지 않아, 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침착하게 그 과정을 기다린 나는, 이윽고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티티! 문 좀 열어봐!]
“….”
진짜 연기 잘하는데.
연기, 맞지?
[지금 뭐하는 거야? 혼자 안에서…!]
이쯤이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문을 벌컥 열었다. 문 앞에 서서 잔뜩 인상을 구긴 린슬렛의 모습을 보자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 하지만 일단 그 뒤쪽에서 거의 무너지기 직전에 놓인 비비안을 확인했다.
그녀는 이내 안으로 들어왔다.
“뭐, 뭐하는 거야…?”
그리고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잠깐 할 얘기가 있어.”
“어떤?”
“계획을 바꾸자.”
“응?”
“일단 내가 화를 내면서 집을 나갈 테니까, 오늘 밤까지만 비비안을 지키고 있어줘.”
“으음, 이유는?”
그녀는 조금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거기에 나는,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사실들을 모조리 설명했다. 비비안을 이렇게 행동하도록 시킨 할 킬러즈의 의도가 무엇일까에 대한 나름의 예상을.
“물론 확실하진 않지만.”
지금까지 우리의 계획은, 비비안을 내쫓은 뒤 이후에 할 킬러즈가 어떤 식으로 나오는지를 지켜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녀석들의 행동을 파악하려 했다.
하지만 지금 머릿속에 떠오른 예감은, 행동에 보류를 해야 한다고 내게 말을 했다. 일단 할 킬러즈 쪽에서도 현재까지는 상황을 관망하고 있으니 괜찮겠지.
비비안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용해야겠지 싶으면서도, 혹시 만에 하나라도 ‘최악의 결과’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함부로 내쫓았다가 만약 이 예감처럼 그녀가 희생양으로서 죽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린슬렛에게 있어 돌이킬 수 없을 상처로 남을 테니까.
“…?”
“아니, 아무것도.”
그런 부분을 제외하고 말한 뒤, 조금 뜸을 들이자 린슬렛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나는 시치미를 떼며 린슬렛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착하네, 린은.”
“가,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녀는 당황해 뒤로 물러섰다.
“아니, 실제로 그렇지 않아?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이 곤경에 처하니까 곧장 받아들여주고.”
“그, 그렇다고 해도 그런 얼굴로 갑자기 웃으면서 말하면 반칙이라고!”
“…?”
이번에는 내가 이해를 못했다.
“하아, 어쨌든…. 확실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
린슬렛은 불쾌한 기분에 휩싸인 건지 나직이 입술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그녀로서는 현재의 상황에서 예전의 기억을 연상한 듯싶었다.
“그 전에, 한 가지만 확실히 해두자.”
그리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응.”
“위험한 짓을 할 거면, 미리 말을 해줘.”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나는 놀라 슬쩍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내 그 내부에 있는 그녀의 감정을 이해하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린슬렛은 언제나 나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
갑작스레 창문에서 쿵쿵 거리는 소리가 났다.
“…?”
방안에서 환복 중이던 아랑은 그런 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뭔가 조그만 게 유리에 계속 부딪치는 것이 보여 대체 무엇인가 싶었다.
“카메, 라…?”
그런 자각이 일자마자, 그녀는 몸을 비틀어 동시에 검을 쏘아 보냈다. 날카롭게 유리의 파편이 튀었지만 칼날은 카메라에 명중하지 못하고 허공을 날았다.
“칫!”
군용 셔츠만 입고 있는 상태에서 우아랑은 순식간에 앞으로 도약했다. 깨진 창문을 타고 뛰어넘자 곧바로 몸에 검은 코트가 휘감겨 그녀는 지상에 펼쳐진 군부대 위를 날아 카메라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날 파리 같은…!”
새하얀 그것이 시선의 너머에서 날고 있다.
분명 어디선가 본 기억이 없지는 않았다. 저것은 분명 트리스탄의 능력이었다. 때문에 그녀는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대응에 돌입한 것이다.
부대의 담장을 넘어, 그녀는 카메라의 뒤를 계속해서 밟았다. 골목길로 파고들어 낮게 날아 그것은 아랑의 시야를 벗어나려고 들었다.
하지만 놓치지 않는다.
발바닥에서 까끌까끌한 감각을 느꼈다. 골목의 벽을 박차고 뛰어오른 아랑은 더욱이 속도를 높이는 카메라의 뒤를 따라 옥상 위로 뛰어올랐다.
“…!”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어머, 대위님. 바지는 좀 입고 다니셔야죠.”
이 모든 게 의도된 것임을.
“트리스탄….”
아랑은 인상을 찌푸린 채 눈앞의 두 사람을 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서있던 트리스탄은 챙이 달린 모자를 손가락으로 밀어 올리며 웃었다.
“…. 싸움을 하러 온 것은 아닙니다.”
그 뒤에 서있던 모드레드가 앞으로 나섰다.
검은 판초에 반쯤 얼굴을 파묻은 채 그녀는 날카롭게 푸른 눈동자를 빛냈다. 긴 코트의 앞섶을 여며 훤히 드러난 허벅지를 감춘 우아랑은 천천히 거기에 대답했다.
“그렇다면?”
“전할 말이 있습니다.”
“누구에게…. 아니, 물을 필요도 없군.”
아랑은 피식 웃으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무기는 꺼내들지 않고 있는 상태였지만 어쨌든 경계를 해둘 필요는 있을 것 같아 그녀는 주변에 검을 드러냈다.
“퀘스트와 관련되어서인가?”
“그건 저희도 잘 모릅니다.”
“…?”
“오늘 오전 0시에 송전탑으로 혼자서 올 것.”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한들 갈 거라고 생각하나?”
“헤에, 올 수밖에 없을 텐데요?”
트리슈가 장난스럽게 윙크를 했다. 아랑이 거기에 인상을 쓰며 반응을 하자 그녀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안 그러면 대위님이 섹시하게 옷을 갈아입는 영상이 전 세계의 네트워크에….”
“…. 트리슈님.”
모드레드가 골치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엑, 왜? 안돼?”
“당연하지 않습니까! 장난하자는 것도 아니고!”
“으음, 그래도 모디모디….”
“모디모디라고 좀 그만 하십시오!”
“….”
아랑은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꼈다.
“알겠다. 가도록 하지.”
더는 상대하기가 피곤해져, 우아랑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두 사람이 거기에 반응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어쨌든 퀘스트를 보고 한 번쯤은 만나야겠지 싶었다.
다만 그 만남이,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
일단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은 라이오넬이었지만, 그는 지금 임무를 맡고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