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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225화 (225/321)

225편

<-- Chapter 5 : 이상의 기사 -->

“시우야.”

재킷을 벗고, 평범하게 사람들 사이로 섞여 들어오자 베디비어는 그런 이름으로 트리슈를 불렀다.

“응?”

기분이 딱 좋을 정도의 피로감을 느끼던 트리슈는 거기에 대답하며 고개를 들었다. 바로 옆에 서면 그녀의 오빠는 고개를 휙 꺾어야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같이 먹고 오는 게 어때.”

“….”

가게에서 나온 지 10분이 지나서 하는 말이라니.

“아니, 괜찮아.”

역 근처에 거의 도달해가는 시점이었다. 따라서 조금 얼이 빠진 행동이 아닌가 싶어 트리슈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는 내가 아주 융숭한 대접을 받았으니, 이번에는 린 언니가 대접을 받아야하는 것이야.”

“…? 응?”

베디비어를 두고 반대편에 있던 발렌타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거기에 트리슈는, 어제의 그 황홀경과도 같았던 광경을 머릿속에 되새겼다.

“음, 사실 지난번에 대표님이랑 호텔 레스토랑을 간 적이 있었거든? 무려 미슐랭 투 스타였단 말이지.”

“그거, 자랑하는 거?”

“응, 그렇기도 한데…. 문제는 그게 아니라! 어제 유하 언니랑 잤는데 거기 음식이 더 맛있었어.”

그것을 다시 상상한 트리슈는 입안에 침이 잔뜩 고이는 것을 느꼈다. 환상적인 가정식이었다.

“그, 그럼 더 먹고 싶지 않아?”

“뭐, 그것도 그래. 유하 언니한테 시집가서 살고 싶을 정도로. 트리슈가 종업원하면 장사 잘 될걸? 거기.”

“….”

“거기다가 밤에는 같이 대중탕으로 목욕도 하러 가서…. 유하 언니가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참 재미있었지.”

그렇게 중얼거린 트리슈는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나름대로 자신이 있는 몸매였는데, 어제의 목욕으로 인해 자신감이 완전히 박살나고 말았다.

어쨌든 즐거웠다.

타나토스가 연락을 할 수 없는 환경에 있어 유하 언니의 걱정을 덜어주고자 하는 심정이었는데, 완전히 마음을 놓고서 즐기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같이 잘 때 ‘부탁’을 받아버려서.”

트리슈는 진지했던 유하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렇기 때문에 문밖에서 자고 가는 게 어떻겠냐는 유하의 말을 들었을 때도 그녀는 납득을 했다.

오늘은 린슬렛의 차례라고.

“무슨 부탁을?”

“글쎄, 조만간 오빠나 발렌타인도 받지 않을까?”

베디비어의 질문에 트리슈는 킥킥 웃으며 윙크를 했다. 그리고는 앞장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유하의 부탁이란 사실 그런 느낌이었다.

등을 꽤나 무겁게 짓누르는 듯한.

그래서 함부로 입 밖으로 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자자, 많이들 먹어요!”

상다리가 부러졌다…. 고 착각이 들 만한 식탁이었다.

“자, 잘 먹을게요.”

내 옆에 앉아 있던 린슬렛은 먹다 체하겠다는 듯 어색하게 웃으며 젓가락을 들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유하는 신이 난 눈치로 접시를 우리 쪽으로 밀었다.

보통 노인들이 하는 행동인데 말이지.

“잘 먹겠습니다!”

“….”

넬까지 그런 식으로 밥을 먹으니, 린슬렛은 더욱이 당황한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싱긋 웃었고, 모드레드와 유하는 아무렇지도 않게 식사를 시작했다.

메뉴는 몇 가지 추가가 더 된 상태였다.

자고 가라는 말에 린슬렛이 알겠다며 대답하자, 유하가 곧바로 주방에 들어가 잔뜩 요리를 해나왔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비록 한 시간이나 기다렸지만.

닭튀김에 떡갈비에 무려 육회까지.

“호오….”

닭튀김을 하나 먹어본 린슬렛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새하얀 뺨이 조금 붉어져 녀석은 금세 또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배가 많이 고팠나보군.

사실 나는 조금 조심스러웠지만.

“안 드십니까?”

머뭇거리고 있자니 옆에 있던 모드레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거기에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못 먹었으니까.”

“그러시다면….”

“갑자기 맛있는 걸 먹으면 속이 놀랄까봐.”

“…. 곤란합니다.”

“응?”

침울한 목소리에 조금 놀라 돌아보았다.

“어, 어제도 트리슈님이 오셔서 얼마나….”

“자, 잠깐 진정해.”

거의 울먹거리려 하고 있다.

“이걸 다 먹지 못하면 일어설 수 없습니다.”

공포에 질려 속삭이는 모드레드의 모습에 나는 린슬렛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유하를 돌아보았다. 하긴, 그녀는 모드레드가 조그맣다면서 매번 씨름선수마냥 밥을 먹이려고 했었으니까.

“열심히 먹어볼게.”

“아, 넬도 많이 먹을게요!”

갑작스레 옆에서 튀어나온 넬이 신이 나서 소리쳤다. 입가에 잔뜩 밥풀을 묻힌 녀석의 모습을 모드레드는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힝, 왜 그런 눈으로 보시는 거죠.”

“많이 먹어.”

나는 가볍게 웃으며 녀석의 볼에 붙은 밥풀을 떼어주었다. 그리고는 이 엄청나게 호화스러운 식탁의 앞에서 각오를 굳힌 뒤 조심스럽게 젓가락을 들었다.

어쨌든 모드레드의 말대로, 유하는 우리가 이걸 다 먹지 않는 이상 일어나지 못하도록 할 테니까.

식사는 즐거웠다.

유하의 요리는 완벽했고 식탁 위에서의 대화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덕분에 조금 과식을 해버리기는 했지만, 나는 그녀들과 함께 뭐 어떠랴 싶은 마음으로 마음껏 육식(?)을 즐겼다.

“하아, 엄청 먹었네요!”

모드레드와 함께 설거지를 대충 마치고 나오자 넬과 린슬렛, 유하가 카운터 앞에 모여 앉은 채였다. 힐끔 시선을 보내는 린슬렛의 모습에 나는 그 옆에 앉았다.

“원래 이런 식이야?”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속삭였다.

“뭐가?”

“…. 아니, 넬이라던가.”

린슬렛은 조금 적응하지 못한 눈치였다.

“커피, 드실 거죠?”

거기에 대답하려던 순간 유하가 물어왔다.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보자 린슬렛은 잠깐 망설이다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평화롭네.”

그리고 그녀는 커피 머신이 작동하는 소리를 들으며 어깨에 힘을 조금 풀고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유하는 사람을 그런 식으로 편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나는 새삼 그 사실을 느끼며 숨을 내뱉었다.

“아까 무슨 말하려고 했던 거야?”

그리고 나는 줄곧 신경 쓰이던 것을 물었다.

“조금 중요한 이야기인데.”

린슬렛은 콧대를 매만지며 나를 바라보았다. 진지한, 또한 생각에 깊이 잠긴 눈동자에 나는 사뭇 그 중요함을 느꼈다.

“나가서 이야기할까?”

“아, 아니 그 정도의 이야기는….”

아니야.

그렇게 중얼거린 뒤, 길게 심호흡을 한 린슬렛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비비안이 지금 우리 집에 있거든.”

“…? 뭐?”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 일주일 정도 됐어. 말하자면 복잡해. 미안, 티티. 좀 더 일찍 말을 해줬어야 하는 건데.”

“아, 아니야. 그건 아니지만…. 넌 괜찮은 거야?”

“응?”

“혹시 위험할 수도 있었나 싶어서.”

“…. 저기, 이래 보여도 나 너보다 레벨도 높고 명색이 기사 랜슬롯인데 말이지.”

린슬렛은 조금 불만스러운 얼굴로 날 노려보았다. 어쩐지 재킷을 입고 있는 그녀의 품안에서 금방이라도 아론다이트가 튀어나올 것처럼 느껴졌다.

“어쨌든, 보호해달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래?”

“어떻게 생각해?”

“….”

생각하고 말 것도 없지 않나.

“실제로 지금 보호해주고 있는 거 아니야?”

“어, 음.”

린슬렛은 당황한 눈치였다.

“그냥, 조만간 해외에서 아는 사람이 데리러 온다고 하니까. 그때까지만 보호를 좀 해달라고 해서.”

말이 애매했다.

스스로도 아마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리라. 단순한 동정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비비안과는 그런 관계가 절대 아니기 때문에.

“게다가 사실 처음 만났을 때 느낀 건데. 아무래도 정말로 ‘탈출’한 것 같지는 않아서.”

“그게 무슨….”

“할 킬러즈가 배후에 있을 것이라는?”

거기에 대답한 것은 모드레드였다.

“응, 그도 그럴 것이, 아무래도 좀 이상하잖아?”

“예, 확실히. 불편한 몸을 생각하자면 누군가 개입하지 않는 이상에야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봐야겠죠.”

“…. 무슨 소리야?”

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랜슬롯 퀘스트 이후, 비비안은 지금껏 할 킬러즈에 의해 구금이 되어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가웨인이 그 사실을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 모를 거라고 생각해. 아마도.”

모드레드의 말에 린슬렛이 대답했다.

“장소를 알았다면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테니까.”

조금 씁쓸함에 물든 목소리에, 나는 생각에 잠겼다.

말인즉슨 가웨인은 그걸 빌미로 협박을 당하고 있다는 말이 되는 걸까. 확실히 그럴 가능성도 없지는 않아보였다. 녀석은 다른 요원들과는 달리 할 킬러즈가 벌이는 일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보였으니까.

하지만 왜…. 굳이 나에게 집착을 하는 것일까.

만약에 그런 일련의 행위가 단순히 할 킬러즈의 명령이었다면, 뭔가 이상하지 않나?

“그래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녀석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조금 빠져들 즈음, 모드레드가 입을 열었다. 거기에 반응해 나와 린슬렛이 고개를 들었다.

“마냥 보호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지 싶습니다만.”

“그러면…. 그냥 나가라고 해?”

“그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군요.”

모드레드는 단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린슬렛의 얼굴에 어두운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정하기 어렵다는 눈치에 나는 앞머리를 매만지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 가웨인에게 돌려보낸다는 방법도 있겠지.”

“티, 티티….”

어라 그쪽은 오히려 더 나쁘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거 말고 다른 방법은 없지 않나.”

나는 그런 생각이었다.

우리는 비비안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게임 바깥에서의 아이덴티티부터 시작해서 그 진의까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무작정 맞춰줄 수는 없었다.

그것은 위선이었다.

“게다가 나름대로 이득이 될 수도 있으니.”

딱히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

“일단 비비안하고 좀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린슬렛.”

“아, 응…. 알았어.”

그녀는 처음에는 조금 불안한 듯, 하지만 이내 나를 믿고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나는 살짝 웃었다.

“세 사람, 뭘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바로 그때, 조그마한 잔이 딸그락 하는 소리를 냈다.

“아….”

모드레드가 당황해 소리를 냈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 앞에 놓인 잔을 집어 들었다.

“고마워.”

“후후, 뭘요.”

씁쓸한 풍미는 역시나 완벽했다.

어쨌든 오늘은 좀 쉬어도 괜찮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유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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