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편
<-- Chapter 5 : 이상의 기사 -->
◇
“빌어, 먹을….”
이 자식들, 내려주질 않는다.
발바닥이 타오르는 것 같은 느낌에, 힘을 빼고 늘어지면 팔꿈치가 저리는 감각이 반복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손바닥에 피가 통하질 않아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원망스러운 얼굴로 텅 빈 방을 바라보았다.
밥이라도 좀 주지.
허기가 지고 목도 말라 어느 순간부터 말이 나오질 않았다. 디멘션 커넥터로 확인을 하니 벌써 만 하루가 꼬박 지났다. 그동안 오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바깥과의 통신도 불가능하고, 쇠사슬을 끊으려 이것저것 생각해보던 것도 다 허사였다. 말인즉슨 넬을 어디론가 보내 내 위치를 전하는 것도 무리라는 뜻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지.
생각해라, 이준. 이곳을 빠져나갈 아이디어를.
“…?!”
바로 그 순간, 문이 열렸다.
“어라? 자고 있지 않았네.”
놀라 고개를 든 나는, 그 앞에서 모습을 드러낸 가웨인을 발견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문의 바로 옆에 있던 스위치를 누른 녀석은 희미한 전등 빛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안으로 들어섰다.
“퀘스트 때문에 좀 자두는 편이 나았을 텐데.”
“…. 베개라도 주고 그런 말을 하던가.”
나는 어이가 없어 비아냥거리듯 이야기했다.
“하하, 역시 그럴 걸 그랬나.”
하지만 녀석은 그걸런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내 곁으로 다가왔다. 복부에 늘어져 너덜너덜해진 붕대를 바라보던 가웨인이 이내 손을 들었다.
“크윽…!”
그리고 나는 무릎을 꿇었다.
천장에 팔을 묶어놓고 있던 사슬이 갑작스레 사라진 것이었다. 온몸에 갑작스레 피가 돌아 숨을 크게 몰아쉰 나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가웨인을 향해 달려들려고 했다.
하지만 손에 수갑이 채워진 채였다.
“어이쿠, 이러면 곤란하지.”
“윽…!”
몸으로 들이받으려 했으나 가웨인의 행동이 더 재빨랐다. 녀석은 무릎을 들어 비틀거리며 돌진하는 내 어깨를 막고는 그대로 짓눌렀다.
“크헉!”
“사람이 도와준다고 하는데 왜 그래?”
“그 말을…. 어떻게 믿지?”
“속고만 사셨나.”
“매번 남을 속여 온 주제에…!”
나는 그렇게 소리치며 바닥에 눕혀진 상태에서 곁눈질로 가웨인을 노려보았다. 무릎으로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녀석이 사악하게 웃었다.
“그래?”
“린슬렛, 도…! 비비안도!”
하지만 내 말에 이어서 표정이 굳어졌다.
비비안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나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잘 지내냐? 그 여자는?”
“적당히 해둬.”
“안타깝겠어. 랜슬롯이 되어 걷게 하고 싶었을….”
머리채를 잡혔다.
“크흑!”
가웨인에 의해 억지로 일으켜 세워진 나는 그대로 벽에 밀어붙여졌다. 멱살을 쥔 녀석이 인상을 찌푸린 채 나를 노려보았다.
말은 없었다.
“더없이 인간적인 얼굴인데, 가웨인….”
“단 한 마디를 지려고 들질 않는군.”
“성질이 못 되 처먹어서 말이지.”
나는 지지 않고 받아쳤다. 그러자 입술을 빠득 깨문 녀석은 이내 손가락을 보란 듯이 내보이고는 아래로 슬쩍 내렸다. 나는 저도 모르게 아랫배를 가렸으나,
“…!!”
통증이, 파고들었다.
“그래도, 상황에 따라 조절하는 편이 나을 거야. 타나토스. 그게 안 되는 놈들은 이렇게 아픈 꼴을 보거든.”
차갑게 중얼거린 녀석과, 통증에 몸부림을 치는 내 시선이 마주쳤다. 하지만 이내 무언가 시선 너머로 쑥 들어와 가웨인의 얼굴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
전등 빛에 반사되어 그것이 첨예하게 빛났다.
검이라는 자각에 나는 통증으로 정신이 몽롱한 와중 고개를 돌렸다. 하나로 묶어 내린 검푸른 머리칼에 나는 쓰게 웃었다.
“무슨 짓입니까.”
하지만 우아랑은 대신 가웨인을 바라보았다.
“잠깐, 자기 상황을 각인시켜주고 있었죠.”
“고문은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있습니다.”
“그냥 놔주라고 말씀하시면 될 것을.”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은 가웨인은 손을 떼며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통증에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은 나는, 뒤를 이어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차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데리고 나오시죠.”
“…. 알겠습니다.”
새하얀 코트를 휘날리며 문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가웨인. 어떻게든 벽에 등을 대고 일어선 나는, 이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다시 무릎을 꿇었다.
“일어서라, 스컬.”
차갑게 식은 우아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력하고, 있다고….”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우아랑을 바라보았다.
“가자고….”
“….”
그런 내 모습에 녀석은 눈썹을 찌푸린 채로 돌아섰다. 하지만 이내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복장 정도는 제대로 갖춰둬라.”
그리고 다가와, 너절해진 붕대를 다시 꼼꼼하게 감아주었다. 나는 감각이 없었던 복근에 통증이 아로새겨지는 것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참아라, 아파도.”
그리고 녀석은 꼼꼼하게 단추를 매주었다.
셔츠 깃을 바로 세워주어, 녀석은 마지막으로 제멋대로 당겨진 내 머리를 매만졌다. 그리고는 불만이 섞인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뭐야…?”
하지만 그렇게 되묻자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섰다.
그 모습을, 나는 조금 당황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복부의 통증이 완전히 마비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쨌든 우아랑이 마음을 다잡은 것 같아서…. 솔직히 말해 조금 복잡한 기분이었다.
“계속 흔들어놓을 걸 그랬나.”
나는 저 멀리 앞서 나가는 녀석을 보며쓰게 웃었다. 만약에 그랬다면, 책임을 지라고 이야기를 했다면 솔직히 지금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낳을 수 있지 않았을까.
어울리지도 않는 짓이겠지만.
사실 우정현 회장의 딸이라는 사실과는 별개로, 나는 최근 들어 녀석을 볼 때마다 복잡한 감정이 드는 것을 느꼈다. 그것을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리고 물론 단호히 행동할 때를 잊지는 않았지만.
녀석이 나에게 느끼는 감정을 이용해먹고 싶지는 않은 것이었다.
“그런 거라고….”
중얼거린 나는 옆에 서있던 넬을 힐끔 돌아보았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경악하고, 분노하며, 때로는 슬퍼하던 녀석이 지친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그런 눈으로 보지 않아도 돼.”
“주, 주인님….”
“혹시 다른 녀석들하고 연락할 수 있겠어?”
“계속 시도는 해보고 있지만….”
그렇게 중얼거린 넬은 내 손에 채워진 수갑을 골치 아프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그게 방해가 되어서요.”
“이 수갑이?”
“네, 네트워크와의 연결을 제한하고 있어요.”
“끄응….”
골치가 아프다는 생각에 나는 가볍게 볼을 매만지려다 멈칫했다. 마스크가 만져졌기 때문이었다. 말인즉슨 아직 재킷이 제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모르가나가 지켜주고 있는 것일까.
“어쨌든, 계속 부탁해.”
“네, 주인님.”
고개를 끄덕이는 넬. 믿음직한 모습에 나는 안심하고 우아랑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
“이건….”
눈앞에 떠오른 팝업창을 완전히 다 읽은 우아랑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양피지의 모양을 한 퀘스트창을 보고 나는 슬며시 현기증을 느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
결국 참다못한 우아랑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퀘스트창을 내던졌다. 허공에 떠올라있던 그것이 휙 날아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붙잡았다.
“아니, 잠깐만.”
진정시키려는 요량에 이야기했지만,
“나는 이런 것 받아들일 수 없다!”
우아랑은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서는 소리쳤다. 대체 뭘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건가 싶었지만, 어쨌든 나는 수갑이 채워진 채 침착하게 그녀를 타일렀다.
“그럼 어쩔 건데.”
“윽….”
“방법이 없잖아. 방법이.”
“아니, 그래도 이건!”
뭔가 반박을 하려던 우아랑은 이내 괴로운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퀘스트창을 손에 든 채로.
일단 눈에 들어오는 건 각종 조리기구들에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는 풍경.
==============================
에픽 퀘스트
==============================
제목 : 갤러해드의 여정 4/10
난이도 : ‘정말로’ 알 수 없음
내용 : 협력해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를 하세요.
제한 시간 : 03:00:00
보상 : 경험치 30,000,000
==============================
그리고 그런 공간에서, 엘레노어에는 우리에게 말도 안 되는 짓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푸흐흐흡….”
“웃지 마십시오!”
감시를 맡기 위해 따라온 가웨인이 웃자 우아랑은 얼굴이 빨개져서 소리쳤다. 그런 모습에 나는 가볍게 앞머리를 매만지며 창문 바깥을 내다보았다.
방석복과 방패를 든 전경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검은 코트의 요원들이.
“왜 신경 쓰여?”
“아니.”
비웃듯 이야기하는 가웨인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다시 우아랑을 바라보았다. 어쨌든 이곳까지 오는 내내 넬이 열심히 외부와 연락을 시도해보았지만 되지 않았다.
나는 꼼짝없이 할 킬러즈에 의해 반강제로 퀘스트를 수행해야할 처지에 놓인 것이었다.
이곳은 시내에 위치한 ‘요리학원’이었다.
퀘스트의 장소로 지정되어 수강을 받던 학생들을 비롯하여 모두가 자리를 비웠다. 거기에 아서리안이 ‘먼지’를 가상의 존재로 덧씌운 것이었다.
“일단 청소부터 해야겠지.”
“하아.”
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우아랑이 앞으로 나섰다. 적당히 손에 잡히는 청소 도구를 집어든 나는 이내 수갑에 채워진 손을 한 채 돌아보았다.
“혹시 이것 좀….”
“그럴 순 없다.”
거기에 대답한 것은 우아랑이었다.
“네 처지를 망각하지 마라. 테러리스트.”
그렇게 이야기한 녀석은 팔을 들어 먼지 털이를 들고 앞장섰다. 그러자 검정 코트의 위에 분홍빛의 앞치마와 두건이 그림으로 그린 것처럼 덧씌워졌다.
“….”
우아랑의 몸이 굳어졌다.
“잘 어울리네.”
그렇게 이야기하자,
“여기서 죽고 싶은 거냐?”
녀석은 그르릉거리며 나를 돌아보았다.
딱히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은 아니었는데, 나는 조금 당황스러운 기색을 느끼며 빗자루를 들었다.
어쨌든 청소를 할 때였다.
퀘스트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