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편
<-- Chapter 5 : 이상의 기사 -->
나는 그것을 똑바로 노려보았고,
“너무 놀리지 말란 말이지. 우리 대위님.”
뒤를 이어 목소리가 들려왔다.
“…! 백 대위님!”
멈칫하며 뒤를 돌아본 우아랑은 문 앞에 서있던 남자를 알아보고 뒤로 물러섰다. 빛이 흔들거려 새하얀 코트와 붉은 머리가 드러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지금 뭐하고 계시는 거죠?”
“신경 쓰실 바는 아닙니다.”
핀잔을 주듯 이야기하는 가웨인의 모습에 우아랑은 검을 손바닥으로 밀어 넣어 사라지게 만들었다. ‘합금’이 검은 바람처럼 흩날렸다.
“어쨌든, 테러리스트의 심문은 제가 할 테니. 조금 쉬시는 게 어떨까요?”
“아뇨, 그거라면 제가….”
“그, 라이오넬한테 이야기는 대충 전해 들어서요.”
“네?”
“다들 걱정하고 있단 말이죠. 혹시 둘이서 정분이라도 나서 도망치는 건 아닐까. 하고.”
“대체 무슨…!!”
“아니시라면, 제가 맡아도 되겠죠?”
가웨인은 능숙하게 이야기하며 앞으로 나서 우아랑을 바라보았다. 우아랑은 그런 이야기에 수치심을 느꼈는지 얼굴이 빨개진 채 눈을 동그랗게 떴다.
“…. 마음대로 하십시오.”
하지만 이내 포기하고 물러섰다.
이쪽을 힐끔 돌아본 그녀는 주먹을 불끈 움켜쥔 채 방안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이내 가웨인의 시선을 느끼곤 고개를 들었다.
“? 둘이 진짜 하려고 한 거야?”
녀석은 셔츠의 단추를 풀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쪽에서 대답을 않자 금세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정말 요령이 없는 여자라니까.”
“….”
“그거 알아? 원리원칙 주의자라는 건 원래 피곤한 법이라고. 어기라고 있는 걸 지키려들기 때문에.”
녀석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유도리’라는 말이 있잖아?”
“네 녀석의 그런 예상치 못한 행동을 유도리라고 한다면 무척이나 우스운 결과가 나오는군.”
“응? 왜. 내가 갤러해드가 될 때까지 네 편의를 지켜보고 살뜰하게 엉덩이라도 만져줄 거라고 생각했어?”
“….”
사람이 적당히 미쳐야지.
“맞아. 그렇게 해줄게.”
하지만 녀석은 더 미친 행동을 보였다.
씨익 웃으며 다가와 내 엉덩이를 세게 움켜쥐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감각에 몸을 비틀자 가웨인은 내 귀에 대고 말을 속삭였다.
“내가 널 갤러해드로 만들어주겠다고. 타나토스.”
“큭…! 이 새끼가!”
당황한 나는 자유로운 발을 들어 가웨인의 배를 걷어찼다. 몸을 움찔 떨며 물러선 녀석은 고개를 떨어뜨린 채 웃었다.
“너는 완벽한 사람이잖아. 이 친구야. 그래서 갤러해드는 너일 거란 말이지.”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모르는 이야기는 아니잖아? ‘디멘션 커넥터’를 이용해 감시되는 세계에서, 엘레노어께서는 우리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계시니까.”
그것을 통해 기사는 선발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의도대로다.
“그러니까 내가 도와주겠다는 거야. 만약에 이 모든 게 그 ‘신’께서 정하는 의지라면, 내가 하는 이 행동조차 의도된 거라는 말이 되니까.”
“어째서….”
“네가 그렇게 완벽한 기사로 있어주어야, 부정당한 내가 틀렸다는 게 증명이 되는 거니까.”
가웨인은 씨익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다가와 내 복부를 매만졌다. 처음에는 또 이상한 짓을 하려는 건가 싶었던 나는, 이내 ‘손가락’이 파고들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크윽…!!”
“봐, 대단하잖아? 사람 새끼가 아니라고, 이거.”
그는 즐겁다는 듯 웃으며 손을 움직였다.
붕대가 풀어져, 그 사이에 벌어진 상처로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겨우 멈췄던 피가 치솟아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가짜 피에, 가짜 통증…. 하지만 눈앞의 너는 진짜.”
“으윽! 이, 빌어, 처먹을…!!”
“날 즐겁게 해줘. 타나토스. 이준.”
너무도 큰 통증에 눈앞이 희미해져갔다.
하지만 사악하게 웃는 가웨인의 얼굴만큼은 똑바로 눈에 들어왔다.
“날 죽여 버리란 말이다. 완벽한 기사로서.”
그러고 싶다.
눈앞의 머저리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사슬로 팔이 묶여, 거기에 나에게 부정 당한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가웨인의 모습이 어쩐지….
그걸 바라는 것처럼 느껴져서.
나는 다시금 정신이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
가게에는 아직 불이 켜진 채였다.
“으음, 영업시간은 끝났다고 나오는데에.”
옆에 선 트리슈가 팝업창을 띄워 가게의 기본 정보를 확인해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말대로 정보창에는 오후 11시에 마감을 한다고 적혀져 있었지만, 가게는 날짜를 넘긴 지금에 이르러서까지 영업 중이었다.
설마 싶어 잠시 몸을 의탁하고 있는 본인을 포함해 다 같이 확인을 해보러 온 것이었지만…. 그 설마가 이렇게 훌륭하게 들어맞을 줄이야.
“뭐라고 설명하면 좋지?”
린슬렛은 조금 곤혹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검게 물든 지붕 위에서 바람이 불어와 금발이 제멋대로 흩날렸다.
“잘 모르겠습니다.”
모드레드 역시 그런 기분을 느끼는 듯 슬며시 한숨을 내쉬었다. 고민에 빠진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트리슈는 어색하게 웃으며 볼을 긁적거렸다.
“이, 일단 가보는 게 낫지 않을까?”
“뭐라고 설명할 거니?”
“지금까지처럼 아서리안에 대한 건 빼놓고?”
“그럼 경찰에 붙잡혔다는 이야기가 됩니다만.”
“….”
모드레드의 한심하다는 시선에 트리슈는 어쩐지 뼈가 시려오는 것을 느꼈다.
“이, 일단 그렇게라도?”
“분명 기절하실 겁니다.”
“음, 그 정도면 나름 싸게 먹히는 게….”
“심정지가 올 텐데 말입니다.”
“그, 그 정도야?!”
놀란 트리슈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쳤다. 거기에 진지한 얼굴로 모드레드가 고개를 끄덕여, 린슬렛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어쨌든, 계속 이러고 있을 수만도 없잖아?”
두 사람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뭐, 평소처럼 다니는 대학에서 발생한 이벤트에 끌려갔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게 제일이겠지.”
“연락을 할 수 없는 환경인데 말입니까?”
“….”
금세 논파를 당했다.
“가, 갑작스레 끌려가서 지금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하고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되잖아?!”
이러고 있을 수만도 없다는 생각에, 린슬렛은 훌쩍 건물 위에서 뛰어내렸다. 당황한 두 사람이 따라오는 게 느껴져 그녀는 마음을 정리하며 가게로 향했다.
들어서자,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어서오…?”
가게에 온 손님을 향해 밝은 인사를 건네던 그녀는, 틴슬렛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뒤를 따라서 들어온 트리슈와 모드레드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 지냈어요?”
그런 유하에게 린슬렛은 살가운 척 인사를 건넸다.
“아, 네….”
“다, 다녀왔습니다.”
“어서 와요. 린슬렛 씨. 트리슈, 모디 양까지.”
“야, 야호! 유하 언니! 잘 지냈어?”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두 사람. 확연하게 연기를 한다는 티가 나, 길게 한숨을 내쉰 린슬렛은 부드럽게 웃고 있는 유하를 바라보았다
“그, 혹시 오늘 준을 본 적이 있나요? 아침에 나갔는데 아직 안 들어와서….”
뒤를 이어, 유하는 걱정을 하는 기색이 완연한 채로 물었다. 물론 그녀 역시 세 사람이 한꺼번에 들이닥친 시점에서 대충 눈치는 채고 있었을 터였다.
“어…. 그게 말인데요.”
그래서 말하기는 좀 수월했다.
“학교에서 일이 좀 생겼거든요.”
“동, 아리요…?”
“응응! 그, 갑자기 전설과 신화를 탐구하는 우리 동아리에서 행사에서 쓸 비품을 준비하고 있거든!”
“어머나아.”
유하는 당황한 듯 눈을 깜빡이며 볼을 매만졌다. 트리슈는 그런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웃는 얼굴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 그래서 당분간 집에 돌아오기 어려울 것 같으니 말을 좀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드레드까지.
“으음….”
유하는 그런 세 사람이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에 조금 생각에 잠긴 듯 입을 다물었다. 린슬렛은 어쩐지 이야기가 주먹구구식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거라면…. 어쩔 수 없겠네요!”
그걸 또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유하의 모습에 한층 더 어이가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세 사람 다 같은 동아리인 건가요?”
“그, 그렇습니다.”
“학교의?”
“그, 트리슈랑 모디모디는 학교 바깥의 사람!”
그런 모습에 린슬렛이 어이 없어하는 사이, 모드레드와 트리슈가 질문에 대답했다. 그런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유하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해주러 와서 고마워요.”
“타나 오빠 기다린다고 굳이 늦은 밤까지 가게 문 열어둘 필요 없다고? 오히려 그러면 더 걱정할걸?”
“아,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트리슈의 이야기에 유하는 가볍게 고개를 내저으며 모드레드를 바라보았다. 조금 걱정하는 기색이던 그녀는 갑작스레 시선이 집중되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저 말입니까?”
“그래요, 모디모디. 후후.”
“아, 아니! 유하 언니까지 그렇게…! 하욱?!”
‘모디모디’라는 이름에 당황해 소리치던 모드레드는, 갑작스레 유하가 확 끌어안자 가슴에 파묻혔다.
“아! 유하 언니의 동생은 이 트리슈지 않았어?!”
“후후, 물론 트리슈도 동생이죠.”
“헤헤, 유하 언니이.”
거기에 트리슈까지 합세해,
“하아….”
아까의 걱정이 다 뭐였냐 싶을 정도로 잘 풀린 사태에, 린슬렛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