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편
<-- Chapter 5 : 이상의 기사 -->
순간적으로 놀란 트리슈는 이내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분한 얼굴로 소리쳤다.
“노, 농담이잖아! 이 바보들아!”
“트리슈에게 그런 성벽이 있었을 줄은….”
“성…?”
“아, 아아. 발렌타인은 아직 몰라도 되는 말이에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여자 중학생(현실에서)의 모습에 베디비어는 당황해 막아섰다. 방금 전과는 달리 금세 또 여유를 되찾은 일행의 모습을 보고 모드레드는 조금 당황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아, 이 바보들. 심각한 상황이라고….”
린슬렛은 거기에 너스레를 떨었다.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킥킥거리며 웃은 그녀는 모드레드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
단숨에 표정이 진지해진 채로.
“…. 퀘스트를 수행하러 간 듯합니다.”
“거기에서 티티가 붙잡혔다고?”
“그게, ‘협력’ 퀘스트를 하다 그렇게 된 듯합니다.”
모드레드는 우정현 회장으로부터 들은 상황을, 그리고 자신이 한발 늦게 현장에 도착했을 때 보았던 순간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아랑과의 협력 퀘스트를 수행하고, 그게 끝난 직후 도착한 할 킬러즈에 의해 붙잡혔다. 먼 장소의 빌딩 위에서 수십 명이 넘는 할 킬러즈가 그를 데리고 가던 순간을 모드레드는 침착하게 설명했다.
“그나마 다행이군요.”
거기에 제일 먼저 반응을 보인 건 베디비어였다.
“다행…?”
“네, 재킷을 부수지는 않았으니까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발렌타인을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바라보았다. 뒤를 이어 트리슈가 진한 녹색의 머리를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이런 말하긴 그렇지만 타나 오빠는 녀석들 입장에서는 엄청난 거물이란 말이지. 만약 일반적인 에스콰이어처럼 다룰 거였다면 그 자리에서 당장 재킷을 부수더라도 이상하진 않았을 거야.”
“말인즉슨 어딘가에 이용할 생각이란 말이지.”
“네. 그리고 그건 아마도.”
갤러해드 퀘스트.
린슬렛과 모드레드를 마지막으로, 다섯 사람은 상황을 단숨에 정리하고 이해했다.
조금 조용해졌지만, 린슬렛은 어쩐지 입술을 꾹 다물고 있는 나머지 네 사람을 바라보며 놀라움을 느꼈다.
“자 그럼, 간단하지?”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렸다.
“으엑, 오그라들어.”
“….”
트리슈가 핀잔을 주자 다시 거두었지만.
“으, 으음. 어쨌든 마음은 같으니까.”
어색하게 웃은 베디비어가 고개를 끄덕여,
“구하는 겁니다. 완벽한 플랜으로.”
모드레드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리고 묶어두고 완전한 사육을….”
트리슈가 마무리를 지었다.
“….”
“아, 아니! 농담이라니까아!”
다시금 혐오스럽다는 듯한 모두의 시선이 이어져 버럭 소리를 내질렀지만.
◇
삐걱거리고 있다.
천장의 등이.
“…. 빌어먹을.”
제대로 된 방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벽의 재질 자체가 얇은지 옆에 있는 다른 방문을 열었다 닫는 소리가 그대로 들려오고, 그 영향이 빛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덕분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들려져 사슬에 묶인 팔은 감각이 거의 사라졌고, 빛 이외의 장소는 어두컴컴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정신이 나갔을 터였다.
“주, 주인님. 괜찮으세요?”
옆에서 시끄럽게 구는 이 녀석이 아니었다면.
얼굴이 울상이다. 보랏빛의 눈동자가 정처 ㄴ없이 흔들렸다. 새하얀 머리를 쥐어뜯으며 녀석은 내 몸 가득한 ‘상처’를 놀라 살폈다.
“아파 죽겠네.”
혹시 듣는 귀가 있을까 싶어 나는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넬은 내 복부에 길게 가로지르는 자상을 살폈다.
“여기는, 낫는 게 더디네요….”
“가웨인 그 빌어먹을 새끼가….”
“잠깐, 상태창을 살펴볼게요.”
중얼거린 녀석은 이내 눈앞에 내 스테이터스창을 띄우고 확인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것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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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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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 타나토스
Lv : 156
Knightage : -
JACKET : Necromancer
Exp : 78,350,550/104,85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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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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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력 : 750
방어력 : 50
민첩성 : 650
정신력 : 150
연산 속도 :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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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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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불신 : F
망령 신체 : B
의식 조종 : D
망자 소환 : A
근본 승계 :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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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변한 것은 없는데.
“아, 주인님…. 역시.”
하지만 넬은 심각한 얼굴이었다.
입술을 질끈 깨문 녀석은 데이터로 된 조각을 뽑아내 내게 보여주었다. 희미하게 반짝거리는 네모난 아이콘을 확인하고 나는 눈썹을 찌푸렸다..
디버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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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 이상 : 가레스 경의 붉은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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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 : 상처를 회복할 수 없습니다. 스테이터스가 하
강하며 지속적으로 통증이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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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배가 아픈 거였나.”
“네, 일단 붕대라도 좀 감아둬야….”
하지만 내 쪽으로 손을 뻗던 넬은 이내 흠칫 멈추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 모습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등이 흔들리며 빛이 까딱거렸다.
그 너머에 여자는 서있었다.
“스컬….”
우아랑.
표정이 좋지 못했다. 눈썹을 잔뜩 찌푸린 채, 그녀는 괴로운 듯 입술을 질끈 깨물며 내 쪽으로 천천히 다가와서 섰다. 코트는 벗은 채로 가녀린 어깨가 드러났다.
“미안, 하다….”
슬며시 팔꿈치를 움켜쥐며 우아랑은 면목이 없다는 듯 시선을 피했다. 나는 그런 모습에 약간 당황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노린 거지?”
“….”
조금 발끈하게 만들 생각이었는데, 우아랑은 도리어 더 침울해졌다. 그렇게 생각되더라도 별 수 없다는 듯 그녀는 괴로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난 어떻게 되는 거지?”
그래서 계속 질문을 던졌다.
“…. 모른다.”
입술을 질끈 깨문 그녀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며 애써 단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런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했다.
“갤러해드 퀘스트를 마칠 때까지는 형을 집행하지 않을 것 같지만…. 그 후로는 모르겠다.”
“여기 계속 매달아둘 생각은 아니겠지.”
“퀘스트를 진행할 때는 아마 수갑을 채운 상태에서 가웨인이 동행할 것이다. 일단 그런 쪽으로 이야기가….”
“나왔다?”
라고 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뒤를 이어, 순간적으로 복부에 아련한 통증이 일어나 나는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스컬?”
그것을 놓치지 않고 우아랑이 물었다.
“아니, 아까 찔린 게 좀 아파서.”
“…. 잠깐 확인해보겠다.”
우아랑은 그렇게 이야기하고는 다가와 내 재킷의 틈새를 벌렸다. 새하얀 차이나 셔츠의 자락이 붉게 물든 것을 본 그녀가 눈썹을 찡그린 채 단추를 풀었다.
“야, 야 임마!”
“조용히 해라.”
내가 당황해 몸을 비틀었지만, 우아랑은 단호했다. 셔츠를 끌러서 복근을 드러내게 한 녀석은 상처가 난 부위를 조금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배에 자상이 새겨진 채였다.
물론 진짜는 아니었다. 하지만 통증은 느껴졌고 시야 너머로는 푹 파인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비록 그 틈새가 회색의 노이즈로 표현되기는 했지만.
그리고 그것을 본 우아랑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다른 상처는 다 아물었는데….”
“가웨인이 낸 거야. 뭔가 새 스킬을 익힌 모양이더군.”
“일단 붕대를 감아두겠다.”
중얼거린 그녀는 팝업창을 띄워 조작했다. 그러자 손가락을 쓰지 않는 다른 쪽 손에 금세 흰색의 붕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꽉 묶어둘 테니, 조금 참도록.”
“윽…!”
복부에 세차게 붕대가 감기자, 나는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하지만 뒤를 이어, 조금 통증이 마비되는 듯한 감각에 숨을 몰아쉬며 정신을 차렸다.
눈앞에는 우아랑이 있다.
허리를 숙인 채, 내 상처에 열심히 붕대를 감고 있다. 그 모습을 조금 기시감이 들어 바라보던 나는 이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러다 갑자기 때리는 거 아니야?”
“그게 무슨 말이냐?”
“아니, 지난번에는 신나게 때렸던 것 같아서.”
“….”
농담이 통하질 않는 녀석이다.
침묵을 지키던 우아랑은 붕대의 끝을 마치 접착력이 있는 물체처럼 꽉 조여서 붙였다. 그리고 조금 망설이다, 이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
“애초에, 너는 테러리스트란 말이다. 네가 게임 퀘스트를 하나 수행할 때마다 얼마나 많은 피해가 일어난다고 생각을 하는 거지?”
틀린 말은 아니다.
“때문에, 나는 네 녀석을 일반적인 범죄자로서 대하지 않는다. 온몸에 폭탄을 두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우아랑은 단호하게 날 바라보았다.
“하지만…. 모르겠다.”
그리고 거기에 망설임이 감돌았다.
“너는, 민간인을 구하려고 들었으니까. 그리고 나를.”
“….”
그녀는 괴로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가장 혐오하고 있다는 말은 그런 의미였던 건가?”
말총처럼 하나로 묶은 머리가 찰랑거렸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우아랑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녀석은 이마를 쓸어 올리며 시선을 피했다.
“대체 왜…. 차라리 입대하는 길을 택했더라면….”
“그랬다면 너처럼 할 킬러즈의 개가 되었겠지.”
“네놈이 하는 소리는 너무 허황되어있단 말이다! 집단에 의해 검증되지 않은 목표를 가지고!”
“그 집단의 부패를 혐오하니 이러는 거야.”
“큭…!”
“네가 집단의 행동에 동조한다면, 지금 이 순간에 내 재킷을 찢어발기면 되잖아? 그리고 그로서 나는 너희들이 원하는 평범한 시민이 되는 거고.”
통제에 따르고, 저항하지 않고.
오직 국가와 집단의 평화를 위해 소모되는.
“나는 그게 아닌 거야.”
정확히는 그럴 수 없게 된 것이지만.
“개인적으로 복수할 일이 있는 거라고. 하느님한테.”
그리고 검이 들이밀어졌다.
“…. 그렇다면, 정말로 베겠다.”
우아랑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날 노려보았다.
“네가 시민과 국가의 안보를 위협하는 존재라면.”
더없이 괴로워하면서도, 그녀는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