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편
<-- Chapter 5 : 이상의 기사 -->
무뚝뚝하고 정적인 태도 아래에 섞인 눈동자는 마치 맹수의 그것을 연상케 했다. 언제 어느 때라도 야성의 감을 되찾을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녀석이 그런 남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
“….”
가만히 이쪽을 노려보던 라이오넬이 먼저 돌아섰다. 벽에 기대어선 나는 녀석이 닫혀져 있던 방문 손잡이로 손을 뻗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떻게 됐습니까?”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우아랑이 문을 열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채 모습을 드러낸 녀석은 놀란 얼굴로 그 앞의 라이오넬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그 너머의 벽을 확인했다.
“멜팅 케이프에…. 망자를?”
우아랑은 놀랍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꽤 괜찮지?”
“잘 해낸 모양이군요.”
뒤를 이어 우아랑의 옆으로 우정현 회장 역시 모습을 드러냈다. 갑작스레 옆에 서게 된 모친의 모습에 그녀는 당황했는지 그 어깨를 손으로 쥐었다.
“미, 민간인은 가만히 계십시오!”
“…. 으음.”
“아니, 회장님 말씀을 듣는 게 좋아 보이는데.”
“큭, 스컬!”
“그렇게 화내지 말라고. 괜찮은 아이디어였잖아.”
얼굴을 붉힌 우아랑을 무시한 채 나는 회장을 바라보았다. 나는 아마 그녀를 전혀 모르더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 터였다. 그만큼 오더는 효과적이었다.
“그럼…. 일단 퀘스트의 추이를 지켜보죠.”
회장은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뭔가 변할 거라는 말씀이신지?”
“아마도.”
그 말의 직후, 눈앞에 팝업창이 떠올랐다.
-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 경험치가 상승하였습니다.
“…?”
운이, 좋은 건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약간 의아한 채 눈앞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서있는 라이오넬의 뒤를 이어 우아랑이 눈썹을 찡그린 채 입을 열었다.
“이것으로…?”
“더 이상 공격해 들어올 구석이 없기에 소중한 사람을 지켰다는 판단을 내린 건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앞머리를 매만졌다. ‘소중한 사람’이라는 말에 회장이 슬쩍 입술을 깨물었고, 우아랑은 그런 반응을 피하듯 가볍게 혀를 찼다.
모녀 관계란 어려운 법이군.
“뭐 일단…. 여기까지인가.”
나는 분위기를 환기시키듯 이야기하며 우아랑을 바라보았다. 군대의 일원이라고 해도 이런 부분에 관련 되어서는 우리 쪽 녀석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어보였다.
“어쨌든, 수고했어. 대위님.”
“아, 아아…. 그래.”
그것을 느끼고 조금 편하게 이야기하자 우아랑은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내,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렇다면 다음 퀘스트는….”
우아랑이 먼저 말을 꺼냈다.
“뭔가가 뜬 거 같긴 하던데.”
전혀 적대적인 태도가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대답을 하고서도 좀 어색한 기분을 느끼며 퀘스트창을 열어 새로운 내용을 확인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뭣?!”
퀘스트는 끝난 게 아니었나 싶어 나는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곧바로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검은 코트를 입은 요원들이 곳곳의 유리창을 깨며 건물 안으로 날아든 것이었다.
“우아랑!”
상황을 파악한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정말로 당황하고 있는 녀석의 눈에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기색이 느껴졌다.
“아니, 이건…!”
당황한 우아랑이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하지만 거기에 반응하는 요원은 없고, 다들 제각기 도검류의 무기를 꺼내들며 나를 포위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새하얀 코트를 나부끼며,
“타나토스.”
붉은 머리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 가웨인.”
“너를 대 엘레노어 사태 특별법에 의거해 체포하겠다.”
“백 대위님!”
우아랑은 갑작스러운 사태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가웨인은 침착하게 요원들을 지휘하며 안으로 들어와 우정현 회장의 옆에 섰다.
“회장님, 위험하니 이쪽으로.”
“….”
그 상황에서 회장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모셔두고 있어.”
허튼 짓 하지 못하게 감시하라는 건가.
요원들에게 안전하게 ‘보호’되어 회장이 천천히 물러섰다. 그로서 주변에는 완전히 할 킬러즈 이외에는 남지 않게 되어 나는 입술을 빠득 깨물었다.
“뭐해, 체포 안하고.”
그리고 가웨인은 싸늘하게 명령을 내렸다.
“아니, 대위님…!”
“왜 그러시죠? 우 대위님.”
우아랑이 앞으로 나섰으나 가웨인은 미소를 지으며 검을 뽑아들었다. 머뭇거리던 그녀는 이내 입술을 비틀며 주먹을 세차게 움켜쥐었다.
“어떻게….”
“저는 병사들하고 친하게 지내는 편이니까요? 우 대위님하고는 다르게 말이죠. 그래도 이거 참 너무한데요?”
“대체 뭐가 말입니까!”
“테러리스트가 없다고 하셨는데, 여기 멀쩡하게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VIP에 버금가는 우정현 회장님을 이런 위험한 남자와 함께 두실 생각을 하다니.”
“큭, 그건…!”
“뭐 이상한 생각이라도 하셨던 건?”
거기에 우아랑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라이오넬도. 이런 상황을 알게 되었으면 곧바로 연락을 취하는 것이 교본 내용 아니었던가?”
“….”
“정말이지, 이유를 모르겠네. 그새 정이라도 들었다고 보면 되는 걸까.”
가웨인의 말에 두 사람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것을 감상이라도 하듯 즐겁게 바라보던 가웨인은 이내 피식 웃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체포해.”
거기에 반응해,
“…!”
제일 먼저 달려든 것은 우아랑이었다.
좁은 공간, 녀석의 검과 스파다가 부딪치며 날카롭게 불꽃이 튀었다. 벽으로 밀어붙여진 나는 크게 검을 휘두르는 우아랑의 모습에 이를 꽉 깨물었다.
“스컬…!”
녀석은 일부러 그런 행동을 보인 것이다.
그로서 조금 포위망이 옅어졌다. 나는 코끝을 파고드는 알싸한 감각과 함께, 조그마한 주먹 너머로 우아랑이 고개를 들이미는 것을 바라보았다.
“날 인질로 잡아라.”
그리고 녀석은 작게 속삭였다.
“…?!”
“그리고 이곳을 빠져나가는 거다.”
우아랑은 단호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녀석 나름대로 지금의 상황에서 도출한 최대의 해답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우아랑의 등을 노리고 검이 날아드는 것이 보였다.
갈라틴.
“큭?!”
놀란 나는 우아랑의 어깨를 붙잡고 밀쳐내려다, 이내 주먹을 들어 그 뺨을 후려쳤다. 갑작스러운 일격에 녀석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쓰러졌고,
“커헉!”
뒤를 이어 검이 복부로 파고드는 게 느껴졌다.
“…. 역시, 연약해졌어.”
그리고 목소리가 이어졌다.
“너, 어째, 서….”
나는 이해하지 못하고 검을 쑤셔 넣는 가웨인을 바라보았다. 커헉, 하고 뭔가가 입 밖으로 나와, 매만져보니 붉은 피가 시야에 들어왔다.
“너는 조금 강해질 필요가 있어.”
녀석은 얼굴을 들이민 채 속삭였다.
“뭐…?”
“내가 강하게 만들어주지, 예전의 너로 말이야.”
“커, 흑…!”
칼날이 밑으로 내려갔다.
복근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망, 령…. 신….”
정신이 아득해져가는 와중, 나는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것을 보며 씨익 웃은 가웨인이 주변에 있는 요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뭐해! 안 달려들고!”
그리고 몇 개의 검이 더 날아들었다.
내 목, 가슴, 옆구리, 손등, 허벅지에 이르기까지.
“크, 흑…!”
완전히 과녁판이 되어, 나는 고슴도치처럼 온몸이 꿰뚫리고 말았다.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통증이 밀려들어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왼팔을 천천히 들었다.
피투성이가 된 그것을 들어,
“….”
가웨인의 얼굴에 붉은 도장을 찍은 뒤,
나는 정신이 멀어져가는 것을 느꼈다.
◇
“어떻게 된 거야?”
다급하게 안으로 들어선 린슬렛은 제일 먼저 그런 말을 내뱉었다. 가게 중심의 소파에 모두 모여 있어 그녀는 인상을 찌푸린 채 그 곁으로 다가갔다.
“그 바보, 할 킬러즈에 붙잡혔어.”
먼저 입을 연 것은 왼쪽에 앉아있던 트리슈였다. 모드레드, 베디비어, 발렌타인에 이르기까지 한 결 같이 표정이 좋지 못했다.
“하아….”
전화에서 심각한 목소리에 설마 싶었지만, 그게 역시가 되자 린슬렛은 어깨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벽에 기대어 섰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비비안을 감시하며 조금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이렇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듣게 되다니.
현기증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일단, 물 좀 마셔.”
뒤를 이어 자리에서 일어서 다가온 발렌타인이 눈앞에 팝업창을 띄웠다. 그러자 허공에 컵이 형태를 갖추고, 옆에서 조그마한 메이드복을 입은 소녀가 물병을 든 채 모습을 드러냈다. 화이트였다.
“고마워어.”
그 호의를 사양하지 않고, 린슬렛은 화이트가 따라주는 물을 감사히 받아서 마셨다.
“이천 원이야.”
뒤를 이은 발렌타인의 말에 하마터면 뱉을 뻔했지만.
“….”
그래도 좀 재미없는 개그로 정신이 들었다.
“어떻게 된 건데. 정확히.”
그 정도로 엉망인 얼굴이었던 걸까. 하는 자각에, 린슬렛은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매만졌다. 어차피 틴트 정도 밖에 바르지 않기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제 실수였습니다.”
소파에 앉아있던 모드레드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책감을 느끼는 듯한 모습에 린슬렛은 가까이 다가가 그 어깨에 슬며시 손을 올려놓았다.
“네 실수가 아니야.”
“제가 옆에서 지켜봤어야….”
“뭐 너무 그러면 오히려 우리 기분이 안 좋단 말이지.”
“네?”
“그치? 트리슈?”
가볍게 윙크를 하며 바라보자 그 의도를 이해한 트리슈가 빙긋 웃었다. 소파 옆에 다리를 꼰 채 걸터앉아있던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맞아, 그러니까 이번에는 확실히 구해와서 여기다 묶어놓고 기르자. 먹이는 돌아가면서 주고. 어때?”
“….”
“….”
“….”
“트리슈, 그건 좀….”
모두들 당황한 가운데, 베디비어만이 점잖게 여동생을 타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