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재킷-216화 (216/321)

216편

<-- Chapter 5 : 이상의 기사 -->

“징징대는 소리마라!”

그리고 뒤를 이어 검이 날아들었다.

계단 밑의 적을 다 처리한 걸까. 난간을 밟고 내 쪽으로 날아든 우아랑이 곧바로 기사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이쪽을 나무라는 말에 그냥 듣고 넘길 만큼 성격이 좋지는 못해,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거기에 합류했다.

“내가 언제 징징댔다고 그래?”

나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눈앞의 기사를 베어냈다.

“시민 한 명의 목숨이 네 손에 달려있단 말이다!”

“….”

아니, 저 할 킬러즈 입대 안 했는데요.

“자각을 해라! 스컬!”

호기롭게 소리친 우아랑은 몸통을 노리고 날아드는 검을 막아냈다. 그러자 뒤를 이어 녀석의 등으로부터 남은 세 자루의 검이 꽃잎처럼 피어올랐다. 그것이 기사의 발목과 손목, 그리고 목 끝을 노리고 각각 날아들었다.

날카롭군.

눈앞의 기사를 상대하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움직임에 망설임이 없이 훌륭하게 단련된 형태가 느껴졌다. 그 모습을 조금 놀라 바라보던 나는, 어깻죽지에 날개와 같은 형태의 뼈를 피워 올렸다.

동시에, 눈앞의 몬스터들을 확인했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일곱 남짓 남은 검은 기사들이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느릿한 움직임에 묵직한 타격이 이어져 나는 린슬렛의 방패로 막아냈다.

“우아랑, 피해.”

“대위님이라고…. 뭣?!”

뒤를 돌아본 녀석은 내 어깨에 솟아오른 방패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일단 좀 정리를 해둘까.

“가디언 서핑.”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곧장 스킬을 시전 했다.

몸이 튕겨져 앞으로 날아갔다.

방패의 빛이 서핑보드처럼 둥그런 형태를 갖추었고 나는 눈앞의 기사들을 들이받으며 복도 끝까지 순식간에 돌진했다. 몇 번이고 충돌의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렇게 복도 끝까지 몬스터들을 몰아붙인 뒤,

“후우….”

나는 모드레드의 힘을 상상했다.

방패의 모양을 이루고 있던 뼛조각들이 부서져 내 주변에 가루처럼 퍼졌다. 동시에, 나는 시간이 무척이나 천천히 흐르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시야가 흑백으로 물들었다.

디멘션 커넥터를 통해 뇌가 순식간에 정보를 파악했다. 나는 현재 스스로의 모습이 현실에서 완전히 사라진 채라는 것을 깨닫고 뒤로 펄쩍 뛰었다.

동작이 재빨라졌다.

스킬을 사용하는 시점 동안 신체 능력이 극단적으로 상승한 것이었다. 그것과 모습이 사라진 것이 겹쳐져, 나는 모드레드의 순간 이동 스킬에 대해서 이해했다.

이런 원리였군.

“비켜라, 스컬!”

뒤를 이어, 우아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슬쩍 몸을 비틀며 물러선 나는 네 자루의 검이 서로 뒤엉켜 무너진 몬스터들을 향해 날아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너…. 새로운 스킬을 익혔군.”

검을 쫓듯 앞으로 나선 우아랑은 눈썹을 찡그린 채 나를 돌아보았다. 경계하는 듯한 눈빛. 나는 섣불리 스킬을 내보인 것을 조금 후회했다.

“어머니한테 연락이나 드려봐.”

그것을 피하듯 중얼거린 나는 주변의 상태를 점검하고 몬스터들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여왕이라면 그 분밖에 없지 않겠어?”

“아니, 왜 내가…!”

질색하는 얼굴이다.

“난 잘 모르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시치미를 떼자 녀석은 나를 살기를 담은 눈으로 노려보았다. 하지만 나는 지지 않고 말을 이었다.

“어서.”

“아니…. 그 사람이 이곳에 온다한들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면 어쩔 테냐!”

“설마 모친이라고 걱정하고 있는 거야?”

“…! 그건 아니다!”

격렬한 반응이 이어졌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고. 우리가 모인 위치는 회장님의 오피스텔이었잖아? 말인즉슨 그와 연관되어 그녀가 여왕일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않겠어?”

“큭….”

“알겠으면 빨리 돌아오시라고 해. 나는 만에 하나 이 층에 남아있는 사람이 없나 살펴볼 테니까.”

언제 다른 몬스터가 나타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고민에 빠진 우아랑을 뒤로 한 채 옆에 떠올라 있던 넬을 돌아보았다.

“일단 방부터 확인하자.”

“헤헤, 또 나쁜 짓이네요!”

“언제는 안 그랬다고….”

장난스럽게 웃은 넬이 모르가나를 꺼내들었다. 검은 보석이 긴 손가락 위에서 춤을 추는 걸 보면서도 나는 어쩐지 마음이 불편한 것을 느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차례대로 열게요.”

잠깐 기다리자, 허공에 떠올라 눈을 감은 넬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검은 보석이 빛을 발하며 나는 옆에 있던 방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아무도 없다.

“….”

방 두 개로, 회장의 방과 반대였을 뿐 구조 자체는 완전히 같았다. 꼼꼼하게 살핀 나는 남은 여섯 개의 방까지 완전하게 확인하고는 아무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스컬!”

마지막 방에서 나온 순간, 우아랑이 날 불렀다.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다가온 그녀가 손가락 하나를 펼쳐들었다.

“뭔데?”

“그 사람과 함께 라이오넬 대위를 부르겠다.”

“…?”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호위로 붙여두겠다는 거다.”

“뭐, 좋을 대로 해.”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라이오넬을 부르겠다는 이야기를 한 걸로 봐서는 녀석 역시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은 듯했으니.

“….”

“왜?”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조금 얼이 빠진 듯 있던 녀석은, 내가 되묻자 시선을 피했다. 그런 태도에서 이질감을 느끼던 나는, 이내 언제 몬스터가 다시 나타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몸을 돌렸다.

“난 민간인을 안전한 곳까지 데려다주고 올 테니까.”

“그, 래….”

녀석은 그런 나를 조금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아.”

벽에 기대어 선 아랑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테러리스트는 청소도구함에 숨어두게 했던 여성을 안아들고 창문을 빠져나갔다. 굳이 그를 ‘테러리스트’라고 지칭을 했지만 아랑은 조금 미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회장과 라이오넬에게는 연락을 해두었다. 두 사람이 도착할 때까지는, 몬스터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 조금 여유가 생겨 아랑은 피로감에 젖어 콧대를 매만졌다.

어제 잠을 자지 못해서 그런지, 정신적으로 피로했다. 신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복잡한 머릿속을 털어낸 그녀는 퀘스트가 진행되는 인근의 통제를 부대에 요청해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사실 가장 먼저 해두어야 했을 일인데.

“칫….”

이런 실수를 하다니.

바보 같은 스스로를 자책한 아랑은 곧장 부대로 전화를 걸었다. 짧은 통화연결음의 뒤를 이어 남자 병사가 전화를 받았다.

“통신보안….”

“우아랑 대위다. 내 위치를 전송할 테니 인근 지역에 A-3 레벨의 시민 통제를 부탁한다.”

“자, 잘못슴다?”

빠르게 이어진 말에 병사가 당황해 되물었다. 길게 한숨을 내쉰 아랑은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해 입술을 빠득 깨물었다.

일단 위치 정보를 전송.

“현재 이곳에서 퀘스트를 진행 중이다.”

병사들에게는 보안을 위해 상세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다. 때문에 적당히 말을 돌려서 한 아랑은 반대편의 반응을 침착하게 기다렸다.

“아, 그렇습니까? 바로 상부에 요청하겠습니다.”

“고맙다.”

하고 전화를 끊으려던 순간,

“전투 부대는 출동 시킵니까?”

병사의 말이 이어졌다.

“뭐?”

“그쪽에 테러리스트가 있으면 말입니다?”

“….”

거기에 우아랑은 다시금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걸 느꼈다. 평소에는 언제나 꽉 동여매어두는 머리가 느슨하게 풀어지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불편함을 느꼈다.

“아니, 없다.”

그리고 조금의 망설임을 지닌 채 중얼거렸다.

“알겠습니다. 그럼 통제 부대만 보내겠습니다. 충성.”

경례와 함께 전화는 끊어졌다.

팝업창이 눈앞에서 깜빡거리다 이내 사라졌다. 그것을 멍하니 보고 있던 아랑은, 이내 발 소리를 하나 듣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후우.”

창문을 타고 넘어온 그는 여전히 주변을 경계하며 그녀의 곁으로 돌아왔다. 훤칠한 키에 검정색 가죽 재킷, 하관을 뒤덮은 해골 마스크를 보고 아랑은 입을 열었다.

“시민은?”

“안전한 곳까지 데려다주고 왔어.”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중얼거렸다. 할 킬러즈의 요원과 별반 다르지 않은, 아니 사실 그보다도 훨씬 더 도움이 되는 면모에 아랑은 어쩐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그것은, 테러리스트답지 않은 모습이었으니까.

우정현 회장이 도착한 것은 머지않아서였다.

단편적인 정보들로 상황을 유추해낸 듯, 그녀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직후 나를 힐끔 돌아보았다. 무표정한 얼굴, 단정하게 귀밑까지 자른 암갈색의 머리칼. 침착한 태도에 나는 약간이지만 안심했다.

“라이오넬 대위님은 어디 있습니까?”

회장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 서있던 우아랑이 차갑게 질문을 던졌다. 자신의 친딸이 그런 냉정한 반응을 보이고 있음에도 회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열었다.

“머리가 천장에 닿아서 말이지….”

“네?”

“계단으로 오고 있다는 말이야.”

그렇게 중얼거린 회장은 닫히는 엘리베이터를 힐끔 돌아보았다. 거기에 상황을 알아차린 나는, 이어서 바닥이 미세하게 떨리는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

복도 끝의 계단을 디디고,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피부, 천장에 머리가 닿을락말락한 거대한 덩치. 평소와는 달리 검은 코트를 말끔하게 차려입은 그가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왔다.

“저, 대위님.”

우아랑이 조금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냈지만,

“간만의 조우한. 사자.”

그는 나를 바라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경계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와는 별개로 침착하게 판단하고 있다.

“번역기 성능은 여전한데.”

나는 그런 그를 보며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어쨌든 이쪽도 그다지 싸울 마음까지는 없다는 나름의 신호였다.

“수단, 존재하는. 나의 증명. 언어.”

“뭐…?”

방금 건 정말로 못 알아들었다.

“조국의 언어만이 나를 증명하는, 그리고 상대를 존중하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거다.”

“유창한 영어 솜씨로군.”

거기에는 나 역시 영어로 대답했다.

“…. 내 역할은 무엇인가. 대위.”

뒤를 이어, 고개를 끄덕인 라이오넬이 우아랑을 돌아보았다. 무의식에서 나온 행동인지 회장을 보호하듯 가리고 서있던 그녀가 번역된 영어를 듣고는 입을 열었다.

“우정현 회장님을 호위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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