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편
<-- Chapter 5 : 이상의 기사 -->
“윽?!”
바로 그 순간,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피곤한 듯 턱을 괴려던 우아랑이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잠깐 당황해 문 쪽을 돌아본 녀석은 이내 나를 보며 품안으로 손을 쓱 집어넣었다.
“스컬, 네놈 또 뭔가…?!”
“아,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혼란스러운 건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우아랑. 거기에 조금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대답한 나는 곧바로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왔다.
“아…. 아아…!!”
한 여성이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광경이 보였다. 그리고 그녀에게 그림자를 두르고 있는 검은 갑옷의 기사를 발견한 나는 스파다를 뽑아들며 달려나갔다.
기사가 든 거대한 장병기가 여성을 덮치려 하고 있다.
“히익…!!”
나는 그것을, 아슬아슬하게 막아냈다.
까앙, 하고 강철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깨에 강렬한 충격이 휘감겼지만 버텨낸 나는 자세를 잡으며 힘을 주어 기사의 공격을 버텨냈다.
“도망쳐…!”
엄청난 힘이다.
키는 3미터에 가까웠고, 투구와 갑옷으로 중무장한 괴물이었다. 몬스터의 스테이터스창이 떠오르는 걸로 봐서 에스콰이어는 당연히 아니었,
“큭?!”
바로 그 순간, 무언가에 어깨를 꿰뚫렸다.
여성은 도망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생각에 버텨낸 나는 눈앞의 기사를 통과해 날아든 화살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몸을 비틀어 확인하니 같은 갑옷을 입은, 석궁을 입은 기사가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석궁이, 조금 아래를 겨누었다.
“젠장!”
여성은 도망치지 못하고 있다. 입술을 꽉 깨물며 손목을 회전시킴으로서 장병기를 흘려보낸 나는 화살이 발사되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피할 틈이 없다.
“큭!”
나는 허리를 숙여 여성을 몸으로 감쌌다. 눈앞의 검은 기사가 장병기를 높이 치켜들었고 나는 곧바로 망령 신체를 시전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뭘 하고 있는 거지?”
다음 순간, 반대편에서 검은 인영이 날아들었다.
“우아랑?!”
나는 놀라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다. 코트를 휘날리며 달려든 우아랑은 순식간에 내 어깨를 밟고 뛰어올랐다. 여성을 감싼 채 있던 나는 놀라 고개를 돌렸다.
펄럭이는 코트로부터 두 자루의 검이 빠져나왔다. 짧은 순간, 검은 기사의 몸통을 지나치는 화살을 튕겨낸 우아랑이 동시에 날카롭게 검을 휘둘렀다.
우아한 동작이 기사의 팔목을 베고 지나갔다. 쩌억, 하는 소리와 함께 창대를 쥔 손이 떨어져 나왔고 녀석은 단숨에 파고들어 검을 휘둘렀다.
“묻지 않았나.”
그리고 돌처럼 굳어진 기사를 둔 채 날 돌아보았다.
“뭐?”
“뭘 하고 있는 거냐고 묻고 있다.”
“…. 아니 그, 시민의 구출?”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뭔가 불만이 생긴 듯 눈썹을 찡그리는 우아랑의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뒤를 이어 길게 한숨을 내쉰 녀석이 말을 이었다.
“우연히, 이해관계가 일치했군.”
그리고 기사가 무너져 내렸다.
“이번만큼은 말이다.”
기사는 검은 모래처럼 바닥에 스며들어 사라졌다. 그리고 뒤를 잇는 우아랑의 딱딱한 목소리에 나는 대충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에 대해서 파악했다.
나름대로 협력을 제안하고 있는 건가.
“시민의 대피 및, 전투 행동 전반에 관련된 사항은 모두 내가 통제한다. 알겠나?”
“….”
아니, 제안이 아니라 강요에 가깝군.
“이해했으면, 대답을 해라!”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치며 우아랑은 전방에서 날아드는 화살을 반으로 갈라냈다. 날카로운 대가 힘없이 잘려져 나가는 광경을 보며 나는 어쩐지 공포(?)를 느꼈다.
“아, 알겠어.”
“좋다! 상황을 정리하도록 한다!”
“….”
“네! 대위님! 이라고 대답해라!”
“아니….”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조금 당황하고 있자니,
“대답은?”
목에 칼이 들이대졌다.
“넵, 대위님….”
“좋아, 스컬. 너는 시민의 보호를 우선시 한다.”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인 우아랑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다시금 석궁을 장전해 이쪽으로 겨누는 기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깨끗한 움직임이다.
날아드는 화살을 완벽하게 베어내며, 녀석은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기사를 쓰러뜨렸다. 검은 모래로 돌아가는 기사의 모습을 보며 나는 여성을 부축했다.
“일어날 수 있겠어?”
“아….”
비틀거리던 여성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내 쪽으로 쓰러졌다. 그녀는 겁에 질려 몸을 파르르 떨었다.
“뭐하는 거냐!”
바로 그 순간, 우아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민의 안전을 우선으로! 빨리!”
버럭 소리를 지른 녀석은 맞은편에서 재차 모습을 드러낸 기사들을 상대하는 중이었다. 그 검이 길을 열어 나는 여성을 번쩍 안아들었다.
“눈 감고 있어.”
“힉…!”
부드럽게 진정시키듯 이야기하자 여성은 내 목에 팔을 휘감았다. 나는 곧장 우아랑을 따라 앞으로 달려 나갔고, 이어서 몬스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검은 바람이 휘감기며,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과 창, 방패로 중무장한 기사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몬스터의 스테이터스창이 곳곳에 마구잡이로 떠오르며 나는 침착하게 그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목을 노리며 날아드는 할버드를 피해내, 허공에 떠오른 검이 기사의 창을 튕겨내 길을 열어주었다.
“이쪽으로!”
멀리 서서 검을 조종하고 있던 우아랑이 소리쳤다. 벽을 박차고 기사를 뛰어넘은 나는 단숨에 녀석의 곁으로 다가갔다. 기사 하나를 쓰러뜨린 우아랑은 곤란한 듯 눈썹을 찡그리며 날 바라보았다.
“몬스터의 스폰 조건을 알 수가 없으니….”
“건물 내부의 CCTV를 보는 건 어때?”
“…! 좋은 아이디어로군.”
아니, 당연한 생각인데.
어쨌든 그런 내 말에 우아랑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감탄했다. 느릿느릿하게 계단을 오르는 기사 무리를 발로 걷어찬 녀석은 이어서 눈앞에 팝업창을 띄웠다.
“곧바로 협조 공문을 요청하겠다.”
“뭐?”
“이 건물의 주인에게 연락을 해서 곧바로 CCTV에 대한 접근 허가를 요청하겠다. 그것을 바탕으로….”
“이 멍청아,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소리쳤다. 그러자 우아랑은 놀랐는지 몸을 움찔 떨었고, 나는 한숨을 내쉬며 뒤쪽에 떠올라있던 넬을 돌아보았다.
“할 수 있겠어?”
“으음, 모르가나를 써도 될까요?”
넬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누구에게 말을 하는 거냐?”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우아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나는 어차피 말이 통하지 않을 상대라는 생각을 하고는 무시한 채 넬의 대답을 기다렸다.
“아, 됐네요. 바로 표시할게요.”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이 손에 휘감고 있던 검은 보석을 쥐었다. 뒤를 이어 나는 팝업창이 하나 눈앞에 떠오르고, 그것이 영상을 송출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어떻게…?”
우아랑은 적잖이 놀란 눈이었다.
“그런 스킬이 있거든.”
“…. 이 테러리스트가.”
내가 실상을 이야기하자 금세 눈썹을 찌푸렸지만.
“그럼 공문 협조나 요청하고 기다리던가.”
반쯤 무시하듯 중얼거린 나는 곧바로 눈앞에 떠오른 영상들을 눈으로 확인하기 시작했다.
일단 출근 시간이 지났기 때문인지, 복도에 사람의 기척은 보이지 않았다. 계단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6층짜리 건물 내부의 그 어디에도 인기척은 없었다.
“방안은 알 수 없나….”
“거기까지 CCTV를 달리가 없잖아.”
우아랑의 말에 나는 핀잔을 주듯 대답하고 계속해서 영상을 살폈다. 텅 빈 복도, 하지만 뒤를 이어 어느 한 화면에 검은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6층 계단.
바로 이곳이다.
“우리가 있는 장소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어서 바깥으로 탈출을…!”
화면에 나타난 기사들이 곧바로 계단을 올랐고, 그것을 검으로 베어낸 우아랑이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 뒤를 따르지 않았다.
“스컬…!”
“아니 잠깐만, 뭔가 이상해.”
“뭐가 이상하다는 거냐!”
바깥으로 나가는 건 퀘스트의 내용과 반대되는 행동이지 싶었다. 인상을 찌푸린 채 서있자니 휙 하고 뭔가 날아들어 얼굴 앞을 스치는 것이 느껴졌다.
“스컬!”
흠…. 여왕을 기다리라고 했지, 분명.
“주인님!”
“응? 뭐?”
갑작스러운 넬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고, 이어서 나는 칼자루가 눈앞에서 흔들거린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뭐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잡고 흔들자,
“꺄아아악?!”
“윽?!”
여성의 비명소리가 이어졌다. 놀라 칼의 날 부분으로 고개를 돌린 나는, 그게 기사의 얼굴에 박혀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큭!”
휘둘러져 오는 철퇴를,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허리를 숙이자 머리 위로 단단한 물체가 지나치는 감각에 나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기서 대체 뭘 하는 거냐!”
“아니…! 내려가면 안 되니까 그렇지!”
“그게 무슨…?!”
“우린 ‘여왕’이 돌아올 때까지 이곳을 지켜야 된다고!”
철퇴에 휘감기는 우아랑의 검을 놓으며,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뒤를 이어 스파다를 뽑아 우아랑의 검이 방해를 하는 틈을 놓치기 않고 파고들었다.
“네 어머니 말이다!”
기사의 목에 검을 찔러 넣으며 나는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는 톱날처럼 박힌 검을 휘둘러 목을 베어 넘기며 안전한 장소까지 후퇴했다.
“무슨…?!”
의아한 반응을 보이는 우아랑.
“살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오….”
여성은 완전히 공포에 질린 상태였다. 가볍게 혀를 찬 나는 그녀를 바닥에 내려놓고 몸을 돌렸다. 복도 쪽, 그리고 계단 쪽에서 계속해서 기사의 형상을 몬스터들이 생성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거 참….”
“주인님!”
바로 그때, 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쪽이요!”
뭔가 싶어 고개를 돌린 나는 계단 구석에 있던 청소도구함을 손으로 가리키는 넬을 발견했다.
그 의미를 단숨에 파악했다.
“이쪽으로.”
“네, 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있는 여성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청소도구함을 열어 거기에 있던 도구들을 모조리 꺼내고 여성을 들어가게 했다.
“걱정 말아요. 제가 반드시 지켜드릴 테니까.”
“네, 네에….”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하자, 이상하게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여성.
“주인님, 이런 순간까지도….”
“뭐가.”
문을 닫고 돌아서자 넬의 핀잔이 이어졌다. 거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중, 나는 갑작스레 날아드는 화살을 가볍게 피해내고 고개를 들었다.
열 명쯤 되는 기사들이 천천히 다가오는 게 보였다.
“지긋지긋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