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편
<-- Chapter 5 : 이상의 기사 -->
◇
최근 어머니가 집을 비우는 일이 늘었다.
“하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제 앞가림은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집안의 원칙에 따라, 린슬렛은 간단한 요리 정도는 할 줄 아는 편이었다.
밥을 짓는다던가. 아니면 빵을 굽는다던가. 아니면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는 것이 전부였지만.
이른 새벽, 진동 알람을 통해 일어난 그녀는 조그맣게 하품을 하고는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일단 커피를 끓었다. 밤새 뒤척이느라 제대로 자지 못했던 것이다.
카페인으로 뇌를 억지로 일으켜 세운 뒤, 린슬렛은 머릿속이 다시금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토스터에 식빵을 넣고 냉장고에서 우유와 버터, 잼 따위를 꺼내며 그녀는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뒤를 이어, 바닥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고개를 든 린슬렛은 휠체어를 탄 채 부엌 앞에 모습을 드러낸 소녀를 발견했다. 어둠 속에 있었을 때는 잘 와닿지 않았지만 다시 보니 머리가 회색빛으로 샜다.
“그 머리는?”
“아….”
별 생각 없이 묻자 비비안은 머쓱해진 듯 머리를 쓸어 넘겼다. 기사단 시절의 고고했던 여왕 같은 모습은 어디로 간 걸까 싶을 정도였다.
“아니, 일단 아침부터 먹자.”
“저, 저도 도울게요.”
“됐어.”
하고 린슬렛은 잠시 망설였다.
“칼을 맡길 정도로 신뢰하진 않고 있으니까.”
린슬렛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손에 쥐고 있던 버터나이프를 보여주었다. 행여나 비비안의 불편한 다리로 시선을 주려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 그런가요.”
조금 냉정한 듯 보이는 린슬렛의 대답에 비비안은 도리어 조금 웃었다. 뻔한 행동이었나 싶어 린슬렛은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식사의 준비를 계속 했다.
“그래서, 내가 언제까지 숨겨주면 되는데?”
“옛날부터 알고 지내던 대학 친구가 있어서요. 외국 쪽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는데 데리러 온다고….”
“남자?”
그 말에 비비안은 대답을 미루었다.
괜히 물어볼 필요는 없었나 싶어져, 린슬렛은 조금 자책하며 토스터에서 다 구워진 빵을 꺼냈다. 그리고는 조금 머뭇거리고 있는 비비안의 모습에, 상황을 눈치 채고 다가가 식탁의 의자를 치워주었다.
“고, 고맙….”
“정확한 날짜 같은 건 모르는 거고?”
딱히 감사의 인사를 듣고 싶지는 않아 화제를 돌렸다.
“일단 빠져나왔다고 연락을 취했으니까요”
“그쪽에서 받으면 연락이 올 것이다?”
그렇게 되묻자 비비안은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구워져 바삭한 빵에 잼을 발라 한 입 먹은 린슬렛은, 반대편에서 머뭇거리다 빵을 먹기 시작하는 비비안을 조금 냉정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거짓말이겠지.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음에도, 린슬렛은 그런 결론을 내렸다. 비비안의 행동이나 말투에서 어쩐지 크게 불편한 기색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뒤에서 조종을 하고 있다.
비비안을.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상황이 너무나도 많았다. 할 킬러즈에 의해 재킷의 능력을 빼앗기고 감금을 당해있었다고 했던 그녀가, 어떻게 그런 삼엄한 감시 체계로부터 탈출을 할 수 있었는지부터 시작해서.
왜 적이었던 자신을 찾아왔는지, 그리고 명확한 계획이 없이 무작정 몸을 숨겨달라는 부분까지.
“가웨인은 어떻게 할 거야?”
때문에 린슬렛은, 조금 떠보듯이 질문을 던졌다. 거기에 조금 놀란 듯 눈썹을 찡그린 비비안은 이내 씁쓸한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저는….”
좀 어렵다는 얼굴이었다.
“그와의 관계에서 뭔가를 선택해본 기억이 없네요.”
“그래?”
“네, 언제나 휘둘리는 쪽이었죠.”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계속 그러다보니…. 결국에는 이 꼴이지만요.”
공허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린슬렛은 비비안의 얼굴에서 어쩐지 그리움이 깃들어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더욱이 가웨인을 버리고 떠나려는 행동이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틀어쥐면 될 텐데.
“아니, 그건 어렵나….”
“네?”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비비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린슬렛은 어색하게 웃었다.
“아니, 남자는 결국 다 바보들뿐인 것 같아서.”
“그건, 그렇죠.”
“나만 해도 말이지. 바보 같은 남자 하나를 가만히 내버려둘 수가 없어서 말이야….”
그렇게 말을 늘어놓던 린슬렛은, 그에 대해 생각하자 어쩐지 심장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확실히, 다른 부분으로 고민을 하게 되었지만 예전보다는 낫다.
“표정이 좋아지셨군요.”
거기에 비비안이 반응을 보였다.
“뭐….”
“좋은 사람인가요? 그는.”
“전~혀, 완전 바보 멍청이야.”
린슬렛은 그렇게 말하며 식빵을 우지끈 씹어 먹었다. 목소리에 확연한 분노가 섞여,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는지 비비안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매번 어디서 위험한 짓을 하고 오는 건지, 자기는 나름대로 끌어들이지 않으려고 배려하려는 것 같지만…. 이쪽은 걱정하는 게 더 마음이 안 좋다니까?”
그녀는 그르릉 거리는 소리를 내며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비비안은 그런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린슬렛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람이 뭐 그렇게 진지하기만 한지 말이야. 가끔 어깨에 힘도 빼고, 적당히 쉬면 좀 좋잖아?”
“그, 그렇군요….”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비비안은 조금 따라가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황한 그녀의 얼굴에 흥분했다는 자각이 들어 린슬렛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뭐, 그래도…. 그게 좋은 거지만.”
“어째서요?”
“충실감이 있으니까.”
이해하리라는 생각은 없지만, 그렇기에 린슬렛은 확실히 이야기하지 않고 일어섰다. 다 마신 머그컵과 접시를 싱크대에 둔 그녀는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비비안을 발견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가웨인에게 느끼는 감정과 정반대라는 거야.”
“….”
그렇게 이야기하자 완전히 이해를 한 것 같았지만, 비비안은 말을 이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린슬렛은 한숨을 내쉬며 그 옆을 지나쳤다.
“그럼, 난 씻은 다음에 학교 다녀올 테니까.”
“네…?”
“적당히 쉬고 있어.”
조금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하자 비비안은 못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지나쳐 욕실로 들어선 린슬렛은 가볍게 잠옷 대용으로 입고 있던 셔츠를 벗었다.
충실감이라.
확실히 그런 표현이 어울렸다.
그를 만난 이후로는 전보다 생각할 게 많아지고 책임질 것도 많아졌다. 피곤한 날들이 늘었다. 하지만 그건 모두 린슬렛이자 주다연으로서 한 선택들이었다.
그게 좋은 것이다.
남들의 부탁이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린슬렛은 샤워기를 통해 따뜻하게 내리쬐는 물속으로 들어섰다.
◇
해가 뜨자, 느닷없이 퀘스트창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거 원, 제대로 쉴 시간도 안 주는군.”
쓰레기를 버리는 작업이 끝난 뒤 바로 온 메시지에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도심을 아래에 둔 채 질주했다. 출근 시간대가 막 지난 거리, 하지만 서울 중심부로 향할수록 조금씩 인적이 늘기 시작했다.
마커가 가리키는 장소는 서울 중심부에 있는 우정현 회장의 오피스텔이었다. 제한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아 걸음을 재촉해 날아오른 나는 곧이어 건물의 옥상에 가볍게 착지했다.
“여기인가…?”
하지만 퀘스트에는 변함이 없다.
“아뇨, 주인님. 아무래도 방안에 들어서셔야….”
“방안이면, 회장님의?”
그 말에 넬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분간은 우정현 회장에게 연락을 하지 말자고 생각했던 터라, 나는 그와는 정반대로의 흐름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어쨌든, 갈 수밖에 없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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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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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갤러해드의 여정 3/10
난이도 : 알 수 없음.
내용 : 갤러해드의 흔적을 ‘협력해’ 탐색하세요.
제한 시간 : 00:03:27
보상 : 경험치 20,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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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의 제한 시간을 확인했다.
협력한다는 의미가 조금 걸리기는 했고, 때문에 나는 어렵지 않게 우아랑도 이곳에 도착해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할 수 있었다.
“넬, 문을 좀.”
“네!”
내 말에 따라 넬이 옥상의 문을 해킹해 열어주었다. 삐걱거리며 열리는 문을 지나쳐 고급스러운 계단을 타고 내려간 나는 최상층의 복도로 들어섰다.
그리고 곧바로 눈이 마주쳤다.
“…. 스컬.”
검푸른 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성. 우아랑과.
“우리 꽤 자주 보는데?”
생각보다 적대적인 태도는 아니었기에 나는 일부러 인사를 건네듯 그런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우아랑은 거기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이내 눈앞에 있던 문을 열고 한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섰다.
“….”
일단 그 뒤를 따라갔다.
여전한 녀석이다.
무뚝뚝한 성향이라고 생각했는데, 차갑다는 느낌이 좀 더 강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날 싫어하는 것이겠지. 때문에 나는 협력이라는 말이 적혀져 있는 퀘스트창을 보자 절로 한숨이 쉬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녀석하고 협력이라니.
“할 킬러즈의 나리들한테는 이런 권한도 있나봐?”
“무슨 소리냐.”
“아니 민간 저택을 맘대로 수색하고 말이지.”
“…?”
의아한 표정으로 날 돌아본 우아랑은 아무렇지도 않게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냉장고에서 미네랄워터를 꺼내 마셨다.
플라스틱 생수병.
어쩐지 기시감이 있는 광경이다.
“일단은, 내 집이다만.”
무뚝뚝하게 중얼거린 그녀는 인상을 찡그린 채 거실로 걸어가 섰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피곤한 듯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앉는 그녀를 따라갔다.
“그래, 일단은….”
조금 기분이 나쁘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우정현 회장은 출근을 한 것일까. 자리에 보이질 않았다. 그녀가 없이 이 집에 들어온 것은 또 처음이지 싶어, 나는 어색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집을 나왔다고 하지 않았었나?”
그리고 언제나처럼 인상을 크게 찌푸리고 있는 우아랑에게 질문을 던졌다. 뭔가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검정 코트가 슬쩍 흐트러진 채 녀석은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걸 네놈이 어떻게?”
“지난번에 고문당할 때 말해줬잖아.”
“…. 심문이다.”
내 말에 기억이 난 듯 우아랑은 시선을 피한 채 중얼거렸다. 조금 어이가 없어 한숨을 내쉰 나는 이어서 퀘스트창이 변모하는 것을 느꼈다.
빛의 알갱이 같은 게 그것을 휘감았다.
“…?”
우아랑 역시 그 변화를 알아챈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회장의 집에서 우리는 잠시 입을 다문 채 그 내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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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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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갤러해드의 여정 3/10
난이도 : 알 수 없음.
내용 : 성의 내부를 배회하는 적들을 쓰러뜨리고, 여왕의 귀환을 기다리도록 하세요.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경험치 20,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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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게 대체 뭔 말이야?”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런 반응을 보였다. 성의 내부라는 말은 이곳을 지칭하는 건가? 그런데 거기를 배회하는 적들이라는 건 무슨….
[꺄아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