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편
<-- Chapter 5 : 이상의 기사 -->
나는 고함을 내지르며 추락하는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머리를 감싸 안은 채 안전하게 받아내자 모드레드는 몽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트리슈!”
치명상까지는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드는 것을 느꼈다. 눈을 부릅뜬 채 울부짖듯 소리치고는 날듯이 다가오는 트리슈를 바라보았다.
“모드레드를 치료소로!”
“타, 타나 오빠는?!”
“나는…!”
거기에 대답하며 나는 고개를 들었다. 피로 얼룩진 갈라틴을 털어내는 가웨인을 노려보았다.
“…!”
하지만 모드레드가 팔을 당겼다.
“그럴 때가, 아닙니다….”
그녀는 숨을 몰아쉬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주먹을 꾹 쥐고 분노를 참아냈다. 눈앞의 가웨인은 그런 날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도망치는 거냐? 타나토스.”
“…. 그래.”
도발을 능숙하게 받아넘기며 나는 모드레드를 안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웨인은 그런 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흥이 깨졌어. 잠깐 놀고 싶었을 뿐인데.”
“….”
알 수 없는 녀석이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시한 폭탄마냥. 장난이라고 하면서도 녀석이 내보였던 살기는 진짜였다.
“가자.”
하지만 진정한 기색을 느끼며, 나는 돌아섰다.
우아랑은 자리에 붙박이처럼 서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충분히 경계하며 돌아선 나는, 풀숲을 헤치고 나아가 갤러해드의 모습이 사라진 경계까지 걸어갔다.
풀숲 사이로 빛나는 무언가가 보였다. 둥그런 구체라는 자각이 들자, 그것이 떠올라 내 재킷에 스며들었다.
-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 경험치가 상승하였습니다.
일단 이것으로 됐나.
“….”
장소를 떠나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가웨인을 돌아보았다. 정말로 가는 거냐? 라고 묻듯 실망한 눈을 하고 있는 녀석을.
그리고 이내 불쾌한 감정을 느꼈다.
잠깐 놀고 싶었을 뿐이라니….
그렇다면 그 진심은 대체 무엇인가 싶어서.
◇
가웨인이 이준의 행동에 대해 처음으로 이질감을 느꼈던 것은 송전탑 위에서였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생각하던 대로의 모습이었다.
갤러해드의 모습이 보이자, 그는 사람이 변한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30미터 위의 상공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앗을 때는 솔직히 경외감이라는 감정이 일었다.
그것은 가웨인이 증오하던, 그리고 지향점으로 삼아 코트를 입은 생활을 버텨내오던 이준의 모습이었다.
무언가에 대한 강한 증오와, 망설이지 않는 행동력, 쓰러뜨릴 수 없던 근성으로 가득 찬…. 최악의 적.
자신은 그런 그에게 패배했었다.
그리고 그 패배로 인해, 몇 년간 준비해왔던 일은 모조리 박살이 났다. 사랑하는 여자를 지킨다는 말도 다 헛것이 되어버리고 무너져 내렸다.
그렇기 때문에 가웨인은, 새로운 목적을 지닌 채 버텨왔다. 그 의지를 꺾어버리고야 말겠다는 목적을.
하지만 그런 그가, 우아랑의 손을 잡았던 것이다.
“이상해….”
어둠 속으로 사라진 세 사람의 모습을 돌아보며 가웨인은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우아랑을 구해냄으로서 그는 어쩐지 그 신비성을 잃었다는 느낌이었다. 단호함은 없어지고 망설임이 피어올랐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날카로움, 이라고 해야 할까. 눈빛에서 툭 건드리면 베일 것 같은 감각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것이 무뎌져버리고 만 것일까.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정이나 인륜 따위에 휘둘리는 듯했다.
“왜 그러는 거냐….”
가웨인은 비참한 기분이 되어 중얼거렸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는 스스로가 했던 말처럼 가웨인이라는 존재를 부정해야만 했다. 가상을 이용해 현실을 유린하려는 집단 자체에 대적하는 상징이 되어주어야만 했다.
그게 아니라면, 가웨인은 갈 길을 잃어버리고 말기에.
“대위님…?”
바로 그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슬그머니 고개를 든 가웨인은 휑한 눈으로 앞에 서있는 아랑을 바라보았다. 당황한 듯한 그녀의 모습에, 붉은 머리를 쓸어 올린 그는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무슨 일이시죠.”
“…. 아닙니다.”
불쾌한 기색이 흠뻑 담긴 목소리에, 아랑은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마음이 싹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시선을 돌려 타나토스와 그 일행히 사라진 자리를 지켜보던 그녀는 이내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새로운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말인즉슨, 흔적을 먼저 획득한다고 해서 다가 아니라는 거군요.”
“네, 아마도….”
그렇게 중얼거린 아랑은 발생한 퀘스트창을 열어 면밀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그 내용이 꽤나 충격적이었지만, 상대에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
에픽 퀘스트
==============================
제목 : 갤러해드의 여정 3/10
난이도 : 알 수 없음.
내용 : 갤러해드의 흔적을 ‘협력해’ 탐색하세요.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경험치 20,000,000
==============================
협력, 이라니….
그 의미를 전혀 알 수 없는 내용에, 아랑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
“괜찮아?”
그렇게 묻자, 모드레드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긁힌 상처일 뿐입니다.”
“좀 쉬어둬.”
새벽녘이 다 되어가고 있다.
푸른 하늘을 가르며, 치료소에서 상처를 치료한 우리는 다시금 가게로 돌아왔다. 밤을 깨나 길었고 나는 재킷의 백업으로도 지우기 힘든 피로함을 느꼈다.
“그쪽이야말로 갈비뼈가 부러지셨으면서.”
“치료를 받았으니 괜찮을 거야.”
조금 걱정스레 묻는 모드레드에게 적당히 대답하며 나는 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디멘션 커넥터가 인증 과정을 거쳐 나와 모드레드는 어두운 방안으로 신발을 벗고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하아, 그렇게 봐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 그런가?”
“네, 어쨌든 저도 치료를 받았으므로.”
나와 마찬가지로 이야기가 빙빙 돈다는 감각을 느꼈는지, 모드레드는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하지만 이제는 거기에 조금 부드러운 기색이 섞인 채였다.
“쉬십시오. 체력을 온존해두는 것도 일입니다.”
“그럼 감사히 받아들이는 걸로 할까….”
그런 제안을 딱히 거절하는 일 없이 받아들인 나는, 재킷을 해제하고 벗었다. 그리고는 평소에 집에서 곧잘 입는 트레이닝팬츠를 들고 나섰다.
“그럼, 옷 갈아입고 있어.”
“…. 어차피 알몸도 다 본 사이 아닙니까?”
무시하자.
조금 허탈한 듯 이야기하는 모드레드의 모습에,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따라서 나온 넬을 돌아보았다.
“모드레드가 잠들면 바로 깨워줘.”
“…. 그러실 줄 알았어요.”
녀석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대답했다.
“어쩔 수 없잖아. 아침에 할 일이 있는데.”
거기에, 조금 변명을 하듯 대답해버린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정확히 오전 네 시. 적어도 여섯 시까지는 일어나야지 유하에게 괜한 고생을 시키지 않을 수 있었다.
“부탁한다.”
“네에.”
조금 무뚝뚝한 대답이다.
하지만 굳이 신경을 쓸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셔츠의 단추를 풀어 벗고는 바지를 갈아입었다. 말끔하게 접고 돌아보자 넬은 고개를 돌린 채였다.
“…. 그러고 보니, 요새 네넬이라고 안하지 않아?”
“아아, 이제야 눈치를 채 주셨네요.”
“흠.”
“흥흥, 왜 그러세요?”
“아니.”
조금 신기하다 싶어서.
그런 말을 삼킨 채, 나는 뾰로통하게 볼을 부풀리고 있는 넬을 바라보며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이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모드레드는 침대 위에 앉아, 벌써 잠이 든 채였던 것이다.
“많이 피곤했나보네.”
“상처를 회복하려는 인간의 습성인 거죠.”
“그래?”
조금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하는 넬을 돌아보며 나는 모드레드를 제대로 침대에 눕혀주었다. 어디선가 상품으로 받아왔던 내 커다란 티셔츠를 입은 채, 그녀는 세상모르고 깊은 잠에 빠져든 뒤였다.
“정확히는, 뇌가 그렇게 착각을 하고 있는 거지만.”
“….”
말인즉슨 그녀는 그와 흡사한 통증을 겪었다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가볍게 코를 골기까지 하는 모드레드의 검은 머리칼을 매만졌다.
그리고는 이내 몸을 돌려 다시 방을 빠져나왔다.
“아, 안 주무세요?”
“말했다시피, 모드레드가 잠들면 깨워달라고 했잖아.”
“하아, 나중에 골병들어도 저는 몰라요.”
“뭐, 그건 그때가서 생각하지.”
“40살쯤에 중풍 와서 갑자기 쓰러져도 주인님은 어떻게 해서든 일어나실 것 같아서, 조금 무섭네요.”
“그때까지 옆에 있을 거야?”
“….”
그렇게 묻자 넬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넬?”
“아, 아뇨! 갑자기 그런 ‘미래’를 자각하니 뭐랄까…. 조금 이상한 기분이네요.”
“사실, 나도 그래.”
게임을 끝낸 뒤에는 잘 모르겠다는 기분이었다.
소중한 가족에게는 그때가 되면 어른이 되겠다. 라고 이야기를 해둔 상태였지만…. 말이다.
“음, 주인님.”
“왜.”
계단을 내려가던 중, 넬이 부르는 소리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을 내며 서있는 녀석을 발견했다.
계단 위.
그리고 나는 계단 아래.
“안, 되나요?”
“응?”
“그때까지 옆에 있으면 안 될까 싶어서요…?”
표정은 잘 보이질 않았다.
일부러 숨기고 있는 건지, 아니면 무슨 이유에선지.
“아, 음…. 그런 의미는 아니었는데 말이야.”
하지만 조금 걱정을 하는 듯한 넬의 모습에, 나는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딴에는 조금 장난삼아서 한 말이었는데, 녀석은 ‘미래’라는 말을 상기하자 묘한 기분이 든 모양이었다.
“그래도 조금 자유로운게 낫지 않겠어?”
“네?”
“굳이 내 디멘션 커넥터에 국한되어서가 아니라, 그때쯤 되면 우리 집에 있는 네트워크를 기점으로 삼아서 행동하는 것도 괜찮지 않겠어?”
“그, 그래도 되나요?”
“집 주인만 허락을 한다면.”
눈을 반짝거리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너스레를 떨며 그렇게 이야기했다. 자애로운 집 주인께서 절대로 그 부탁을 거절하지 않으시리라는 계산에서 나온 말이었다.
“…. 준?”
바로 그 순간, 그 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