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편
<-- Chapter 5 : 이상의 기사 -->
멀리서 봤을 때 내 모습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검은 점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일 터였다. 하지만 보다 진화된 게임의 유저, 더욱이 트리슈라면 내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캐치해내리라.
“윽?!”
그것을 믿으며,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신체가 대기를 가르는 충격에 뇌가 뒤흔들리며 시야가 멀어져갔다. 재킷이 아무런 보호를 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평범한 인간인 나는 손쉽게 무력해졌다.
하지만 다음 순간,
“…. 나, 오빠!”
다급한 목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거센 바람에 금세 고통스러운 감각을 느꼈지만, 펄럭거리는 재킷 너머로 누군가 손을 뻗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이, 충돌했다.
“크헉!”
맹렬한 충격이 몸을 강타했다.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갈빗대에서 무언가 으스러지는 듯한 감각이 일었다.
“타나 오빠! 오빠…!”
가까이 다가온 트리슈의 목소리가 멀게 느껴졌다. 정신이 아득해져, 알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날아들어 나를 낚아챘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기침을 하자 입가를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숨을 쉬기가 고통스러웠다. 트리슈의 품에 안긴 채 다시금 철골 위로 다시 올라선 나는, 바람이 멎은 것을 느끼고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널, 믿고 있었다고….”
“타나 오빠, 왜 재킷을…?”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트리슈. 하지만 거기에 대답할 여력이 없어 숨만 몰아쉬고 있자니, 뒤를 이어 다른 인영 하나가 철골 위로 내려섰다.
“모르가나입니까?”
모드레드였다.
“아니…. 게임의 퀘스트, 때문에….”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안색이 창백했다. 다가온 그녀가 나를 부축해 갈빗대를 꾹 눌렀다.
“크윽?!”
“뼈가 부러졌군요. 거기에 피를 토하신 걸 보면 폐를 찔리신 것 같습니다.”
“아, 아니…. 조금 살살….”
“트, 트리슈가 잘못 받아서…!”
“죽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입니다.”
두 사람은 명백히 당황하고 있다.
그런 감정이 서로 다른 형태로 발현되고 있지만, 어쨌든 근본은 같다는 느낌이었다. 시야가 흐드러진 가운데, 나는 숨을 몰아쉬며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군.
“퀘스트라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뒤를 이어 모드레드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그녀의 조그마한 어깨에 팔을 걸친 채 나는 길게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재킷의 능력이 사라진 거야.”
“네…?”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다.
거기에 설명을 덧붙이는 대신, 나는 두 사람에게 퀘스트의 정보를 공유했다. 그 내용을 읽어보고, 두 사람은 풀숲의 끄트머리에 걸쳐진 그것을 바라보았다.
나 역시.
붉은 망토를 두른, 새하얀 기사를 바라보았….
“이 바보 멍청이가!”
“커흑!”
분노한 트리슈에게 곧바로 갈비뼈를 얻어맞았지만.
“그래서 뛰어내렸다는 거야?! 재킷의 능력이 돌아올 거라고 생각해서?! 사람이 무모한 것도 정도가 있지…!”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뭔데!”
단정한 눈썹을 찡그린 채 화를 내는 트리슈. 그 눈가에 조금 이슬이 맺혀 있다. 잠시 그것을 바라보던 나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 대신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를 믿었거든.”
쓰게 웃으며 이야기를 하자,
“뭐…?”
트리슈는 당황해 중얼거렸다.
“우리 트리슈를 믿었다고.”
“…. 바, 바보오.”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 그녀는 힐끔거리다 이내 시선을 피했다. 너무 대충 넘어가는 건 아닐까 싶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모드레드를 돌아보았다.
“일단 지상으로.”
“알겠습니다.”
“자, 잠깐! 뼈가 부러졌는데…?!”
당황해 중얼거리는 트리슈. 하지만 나는 거기에 대답하는 대신 그녀의 팔을 당겨 몸을 기댔다.
“부탁해.”
“사람이 쓰러질 줄을 모른다니까….”
볼멘소리를 중얼거리면서도 트리슈는 나를 부축했다. 그러자 반대편을 맡은 모드레드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네크로맨서가 아닙니까.”
“…. 니들 언제 이렇게 사이가 좋아졌냐.”
나는 그 사이에서 조금 떨떠름한 기분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두 사람은 거기에 대답하는 대신 내 팔을 쥐고 슬쩍 들어올렸다.
“…!”
입술을 빠직 비틀어 짜내 통증을 참아냈다.
철골 위에서 동시에 뛰어, 나는 두 사람과 함께 지상으로 내려섰다. 고통을 버텨내기 위해 입술을 질끈 깨물었지만 나는 견디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타나 오빠!”
“괜찮, 아….”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잠시 기다렸다.
- 상태 이상 해제 : 봉인
통증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윽….”
그 기분이 도리어 불쾌해, 나는 입술을 비틀었다. 몸을 일으켜 세워 입가에 맺힌 피를 소매로 닦아내고 신체에 작용하기 시작하는 정보량 송신 합금을 느꼈다.
“주인님!”
뒤를 이어, 넬이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금 인간을 초월한 존재가 된 나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넬이 입을 여는 걸 지켜보았다.
“무사하셨군요!”
“너야말로.”
거기에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뭔가 이질적인 감각을 느껴 고개를 숙이자, 다시금 갈비뼈 부근을 꾹꾹 누르고 있는 모드레드의 모습이 보였다.
“신체에 합금이 확실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회복된 거야?”
“통증이 느껴지십니까?”
“아니, 전혀.”
고개를 내젓자 모드레드는 눈썹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아마 완전히 회복이 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평범한 행동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어서 치료소에….”
바로 그 순간, 폭음이 울려 퍼졌다.
“뭐, 뭐야?!”
놀란 트리슈가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크게 일었던 흙먼지가 걷히며, 나는 다시금 스파다를 뽑아 손에 쥐었다. 그 사이 우아랑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스컬….”
그녀는 불쾌한 듯 인상을 찌푸린 채 나를 바라보았다. 그 옆에서 어깨를 툭툭 털고 나서는 가웨인의 모습에 나는 스파다를 꾹 움켜쥐었다.
“상태 이상은 해제된 거냐?”
“….”
대답은 없다.
하지만 검을 쥐고 있는 모습으로 인해, 나는 우아랑의 상태가 회복되었음을 알아차렸다. 잠깐 분위기를 살피고 있자니 모드레드와 트리슈가 무기를 꺼내 들어 나를 가리듯 앞으로 나섰다.
“빌어먹을….”
뒤를 이어, 짧게 욕지기를 내뱉은 우아랑이 검을 품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녀의 편에 서있던 가웨인을 포함해 우리 모두는 그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굳어졌다.
“네 승리다. 스컬.”
그걸 무시하듯 우아랑은 단호하게 중얼거렸다.
“이번만큼은 말이지.”
패배감을 곱씹어 삼키듯 입술을 깨무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스파다를 품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앞으로 나서 모드레드와 트리슈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가자.”
어쨌든 그 기분은 이해했다.
분한 듯 나를 바라보면서도 우아랑은 승부를 받아들였다. 경계하고 있는 두 사람을 진정시킨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갤러해드의 흔적을 쫓으려 했다.
“뭐야…?”
하지만 뒤를 이은 목소리에,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장난하는 거야?”
스릉, 하고 검이 튕기는 소리가 났다.
품안에 있던 갈라틴을 뽑으며 가웨인이 앞으로 나섰다. 막강한 살의가 느껴져,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녀석을 바라보았다.
“우 대위님…. 이게 무슨 애들 장난인 줄 아세요?”
가웨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리며 우아랑을 힐난하듯 바라보았다. 잠깐 무어라 반박하려던 그녀는 시선을 피하며 입을 다물었다.
“게임이라고 할 때는 언제고….”
그리고 그 몫은 내게로 돌아왔다.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꾸는군, 가웨인.”
“응?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니야?”
“….”
“두 세계가 대립하고 있는 시점에서, 인간은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녀석의 모습이 사라졌다.
희미한 잔영과 함께 뛰어오른 가웨인은 날카롭게 빛나는 갈라틴을 쥔 채 내 쪽으로 날아들었다. 거기에 반응해 스파다를 뽑으려던 나는, 앞으로 나선 모드레드에게 밀쳐져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제가 상대를…!”
“모드레드!”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늦었다.
나를 튕겨낸 모드레드는 그 가속을 통해 날아올랐다. 판초 안에서 수십 자루의 단검을 순식간에 쏘아 보내며 가웨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여자 주제에…!!”
하지만 가웨인은 그것을 모두 받아냈다.
검의 궤적이 그려졌다.
아니, 그것은 ‘그려졌다.’고 생각할 무렵에는 다음 궤적을 그리기 위한 시작점을 찍은 뒤였다. 푸른 궤적이 날아드는 단검을 모조리 튕겨내며,
“나서지 마라!”
검기가 날아들었다.
가로로 그어지는 불길한 빛이 모드레드의 몸을 베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 모습이 이내 희미해지며 부서져 내렸다. 찰나의 순간 가웨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딜 노리시는 겁니까?”
그리고 모드레드는 가웨인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단검을 역으로 쥔 채 판초를 펄럭이며 모드레드는 가웨인의 목을 그었다.
하지만 날카롭게 파편이 튀었다.
“핫, 조잘조잘 대는군.”
갈라틴의 날이 짧아진 채, 목을 그으려던 모드레드의 단검을 막아낸 것이다. 거기에 더해져, 나는 검붉게 변한 가웨인의 머리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기사도의 형상.
스스로의 방어를 견고히 다지는 가웨인의 양립하는 두 가지 스킬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내, 그 머리가 타는 듯 밝은 빛에 휩싸였다.
광폭화의 형상. 그 이름을 상기하듯 중얼거린 나는 저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피해!!”
“큭?!”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한순간 날카롭게 눈을 빛낸 가웨인이 허공에서 검을 휘둘렀다. 적어도 열 번 이상, 재킷을 입은 나조차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였다.
이 자식, 언제 이렇게….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확연히 강해져, 가웨인은 완벽한 동작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 날카로운 검술은 이전과 비교했을 때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윽…?!”
모드레드의 움직임이 멈췄다.
뒤를 이어, 그녀의 몸에 균열이 일었다. 마치 금이 간 도자기처럼 피부 곳곳에 선이 그어지고 벌어진 상처를 비집으며 붉은 혈액이 치솟았다.
“모드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