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편
<-- Chapter 5 : 이상의 기사 -->
“결국…. 그쪽하고 해결을 봐야하나.”
린슬렛은 볼을 긁적거리며 남은 한 가지의 답을 제시했다. 엘레노어가 가장 원하고 있을 그것을.
하지만…. 거대한 국가기관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짓이었다.
“타나 오빠한테 물어보는 건?”
“응?”
그리고 다음 순간, 뒤를 이은 트리슈의 말에 린슬렛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조금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은 그녀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생각해보니까, 갤러해드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타나 오빠 아니겠어?”
“그, 그것도 그러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드레드. 몰랐던 건가 싶어 린슬렛은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티티가 재킷을 잃기 전의 갤러해드를 마지막으로 만나면서 지냈다고 했거든.”
“…. 설마 그래서?”
“응, 동경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던데.”
“왜, 왜 그걸 먼저 말씀해주시지 않은 겁니까…?”
모드레드는 허탈한 듯 중얼거리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린슬렛과 트리슈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깜박 잊었다고 해야 할까?”
“보통, 잊을 일입니까…?”
조금 바보를 보는 듯한 눈이었다.
“어, 어쨌든! 그럼 지금 당장 물어보러 가는 걸로?”
그 혐오의 시선을 이겨내지 못하고 트리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서로의 눈을 돌아보고 이어서 모드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시죠. 아마 집에 있을 테니.”
“우리 타나 오빠. 오늘은 어디 안 나갔겠지?”
“설마, 제가 계속 붙어서 감시하고 있었고…. 오늘 아침에도 신신당부를 해두었으니 괜찮을 겁니다.”
“….”
“….”
“왜, 왜 그러십니까?”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무렇지도 않게 중얼거렸지만, 뒤를 이은 두 사람의 시선에 모드레드는 몸을 움찔 떨었다. 그리고 이내 린슬렛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모디모디, 그냥 우리 집 오지 않을래?”
“이, 이유라도 있습니까…?”
“아니…. 우리 집 티티네보다 한 네 배쯤 넓으니까. 부자거든. 펜트하우스 사는.”
“트리슈네도…. 오빠 방이 비어있는데 올래? 모디모디.”
“모, 모디모디는 또….”
““응?””
무섭다.
모드레드는 눈이 휑한 채 다가오는 린슬렛과 트리슈의 모습에 공포를 느꼈다. 등을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당황해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아, 타나 오빠다♡”
눈앞에 떠오른 팝업창을 본 트리슈가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 관심이 더 생겨 따라서 몸을 돌리는 린슬렛의 모습에 모드레드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응…? 아, 뭐?”
하지만 정작 전화를 받은 뒤, 트리슈는 눈썹을 찌푸렸다. 뭔가 안 좋은 소식이라도 들은 것일까.
“알았어. 지금 그쪽으로 갈게.”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그리고 곧장 전화를 끊는 모습에, 모드레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길게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린 트리슈가 천천히 거기에 대답했다.
“이 바보, 지금 갤러해드 퀘스트 하고 있다는데?”
“…? 그게 무슨 말이야?”
린슬렛이 놀라 물었다.
“일단 이쪽으로 올 수 있으면 와달라고 해서.”
“‘올 수 있으면.’이라니….”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고, 린슬렛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팔이 멀쩡해질 때까지는 가만히 있으라고 이야기를 해두었더니 또 저런 식이다.
어쨌든 빨리 따라가는 수밖에.
“빨리 가자. 어디래?”
“아, 잠시만.”
그렇게 중얼거리고 트리슈가 팝업창을 띄워 매만졌다. 그녀가 타나토스로부터 전송된 위치 정보를 지도에 표시하는 사이, 전전긍긍해진 린슬렛은 손톱을 깨물며 뒤를 돌아보았다.
“…?”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윽…?!”
아니,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사람과.
“여기야. 다행히 그다지 먼 곳은 아니네.”
뒤를 이어, 눈앞에 커다랗게 창을 띄운 트리슈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것을 확인하지 못하고, 린슬렛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랜슬롯님?”
그런 기색을 알아챈 모드레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하지만 린슬렛은 손가락을 하나 들어 까딱거리는 여자의 동작에 입술을 빠득 깨물었다.
잠깐 보자는 건가?
하지만 이제 와서 대체 왜?
“미안, 너희들끼리 가.”
“응? 왜?”
“….”
무어라 표현을 해야 할까.
“옛날 기사단장, 아니….”
그녀는 복잡한 심경이 되어 입술을 다물었다.
검은 휠체어에 앉은 검은 옷의 여자. 예전에는 얼굴에 불투명한 가면을 덧씌워 신비로운 인상이었던, 하지만 지금은 아닌…. 지금은 그저 평범하게 안경을 쓰고 있는, 초췌한 인상의 여자일 뿐이었다.
기억 저편에서, 린슬렛은 하나를 떠올렸다.
“옛 적이, 잠깐 보자고 해서.”
비비안.
◇
“결국 원하시던 바를 이루었군요.”
인근의 한적한 공원.
벽에 그래피티가 가득 새겨진 공원은 술에 취한 대학생들로 한가득했다. 그 중심의 가로등 앞에 선 린슬렛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어오는 비비안의 모습에 기가 차 웃음을 내뱉었다.
참고로 그녀는 이런 걸 무척이나 싫어했다.
이런 식으로 ‘여유’를 갖는 듯한 언사를.
“고작 그 말이 하고 싶어서 몇 달 만에 나타난 거야?”
그렇게 묻자 비비안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가로등의 불빛이 그 초라한 행색을 짙게 비추어, 린슬렛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인정한다.
조금 흥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걸.
하지만 어쩐지, 자신만 나쁜 사람이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몇 달 만에 나타난 여자가 완전히 닳고 닳아 무너져버린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일까.
슬픔도 아픔도 모두 잊은 듯한 얼굴이다.
“그러게요.”
“…. 뭘 하면서 지낸 거야?”
린슬렛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상황을 다시금 되새기듯, 그녀는 좀처럼 거기에 대답하지 못하는 비비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머릿속에 확실하게 한 가지 생각을 박아 넣었다.
눈앞의 여자는 확실한 적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휠체어를 타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비비안에게 있어 치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린슬렛은 그것을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 모든 걸 다 계산하더라도,
“얼굴이 엉망이네.”
비비안은 망가진 인형 같았다.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계산적이다. 마치 남이 시켜서 하는 행동처럼 느껴졌다. 감정이라고는 느껴지지 않고, 단순히 주어진 행동을 취하는 기계 같았다.
“저를 도와주시겠어요?”
그리고 마침내, 꿋꿋하게 입을 다물고 있던 비비안이 입을 열었다.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린슬렛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거기에 대답했다.
“너를? 내가?”
“네.”
“그래야할 이유라도…?”
그녀는 조금 어이가 없어지는 것을 느끼며 상황을 되짚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비비안이 이렇게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터라, 린슬렛은 조금 눈앞이 아찔해지는 감각마저 느꼈다.
이쪽은 배신을 당하고, 죽을 뻔했는데.
현실로부터 잠시 빠져나와 마음을 기대어왔던 기사단이 그런 걸 위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괴로워서 몇날며칠을 울었는데.
도와달라고?
“없지요. 도와주실 이유는.”
“하하…. 여전히 냉정하네. 비비안.”
린슬렛은 마른 웃음소리를 내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비비안을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이 당연히 도와줄 것처럼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린슬렛은 아론다이트를 꺼내들고 싶은 충동을 참아냈다.
“…?”
하지만 거기에 균열이 발생했다.
비비안의 정갈한 입술 안에서 이질적인 파열음이 들려왔고 뒤를 이어 입술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린슬렛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은 무언가의 신호다.
“도와주시겠어요?”
“…. 일단 이야기라도 들어볼게.”
같은 말을 반복하는 비비안의 태도, 하지만 그와 별개로 몸은 어떠한 수치심을 감내하고 있다. 그런 모습에서 린슬렛은 몸을 움직여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누군가 이 핏자국, ‘균열’을 볼지도 모르기에.
그녀를 이런 행동을 취하도록 명령을 한 누군가가.
“저를 구해주세요.”
“누구에게서?”
“….”
비비안은 어려워 하며 좀처럼 말을 잇질 못했다.
“말해, 누구에게서 구해달라는 거야?”
“할….”
“할 킬러즈?”
“아니, 아니에요….”
괴로워 보인다.
“가웨인…. 에게서.”
한참을 망설인 끝에 비비안은 그런 소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그녀는 조금 당혹스러운 얼굴로 서있던 린슬렛의 팔을 잡고 애걸하듯 말을 이었다.
“저는 더 이상, 이 게임에 관여되고 싶지 않아요!”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린슬렛은 휠체어에서 떨어지기 직전인 비비안의 모습에 혼란을 겪었다. 하지만 이내 모든 걸 제쳐두고 한 생각이 갑작스레 머릿속을 휘젓는 것을 느꼈다.
그녀를 돕고 싶다고.
◇
붉은 빛이 시야를 물들였다.
“후우….”
멀리서 보았을 때는 희미한 점멸에 불과했던 송전탑의 불빛은, 바로 옆에 위치하자 태양의 빛만큼이나 강렬하게 시야를 물들였다. 하지만 이내 게임의 시스템이 거기에 적당한 보정을 걸어 익숙해지게 만들었다.
바람이 불어와 재킷이 흩날렸다.
지상으로부터 30미터 상공. 위험천만한 철골 구조물 위에서 나는 중심을 잡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와 넬 이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걸까.”
“트리슈님이랑 모디님이요?”
“아니, ‘대위님’이 말이지.”
뒤쪽에서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오는 넬의 질문에 대답하며, 나는 송전탑의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저 멀리를 강화된 시야로 살펴도 좀처럼 다가오는 궤적은 보이지 않았다.
“주, 주인님! 위험해요!”
“….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랬겠지.”
넬의 만류에 나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싶어 대답했다. 철이 뼈대를 이루고 있는 이 거대한 탑은, 보통 사람이라면 중심을 잡고 서있기는커녕 자칫하다가 바람에 날려가지는 않을까 조심을 해야 할 터였다. 하지만 물론, 나는 그런 보통의 인간이 아니다.
재킷이 단단하게 몸을 감싸주고 있다.
거기에 균형 감각을 비롯해 뇌가 신체를 제어하는 모든 수단이 강고하게 다져져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무슨 혼잣말을 그렇게 하고 있는 거지?”
거기에 대답하던 도중, 누군가 말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