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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207화 (207/321)

207편

<-- Chapter 5 : 이상의 기사 -->

“끄응….”

나는 앓는 소리를 내면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생각보다 일이 빨리 끝나기는 했지만, 정신적으로 무척이나 지쳤다. 사실 이럴 때가 아니었지만 유하의 의미심장한 전화에 잠깐 가게로 돌아온 상황이었다. 나는 옆에 떠있는 넬을 돌아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바로 나갈 거야.”

“‘친구’ 분의 정체만 확인하시면요?”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을 둘러보았다.

플라스틱 컵이 있는 자리가 하나 있기는 했지만, 사람은 없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아 준, 왔어요?”

주방에 있던 유하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앞으로 나왔다. 나는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누가 왔다는 거야?”

“음,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요.”

“…?”

이상한 일이다.

나에게 개인적으로 맺고 있는 관계는 없다. 즉, 내가 알고 있는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모두 유하 또한 알고 있다. 그런데 친구가 와서 기다리고 있다니?

그리고 뒤를 이어 유하가 입을 열었고,

“그, 머리색이 붉은 분이신데….”

그 말에 나는 심장이 멈추는 것을 느꼈다.

“뭐…?”

“흰색의 코트를 입으셨더라고요.”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며 빙긋 웃었다. 하지만 나는, 이어지듯 문이 열리는 종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담배 피우기도 참 힘든 세상이야….”

귀찮은 듯 중얼거리며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머리의 남자.

가웨인이.

“와, 진짜 오랜만이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더욱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 어깨를 감싸 쥐고 끌어안았다. 멘솔 담배의 냄새를 풍기며.

“잘 지냈어?”

“….”

뒤에서 유하가 웃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알 수 있다.

그녀라면,

이렇게 나를 친한 사람처럼 끌어안는 가웨인을 보고 그런 표정을 지었을 터였다.

“아, 천천히 이야기 나눠요.”

그리고 발소리가 이어졌다.

돌아선 유하가 멀어져갔다. 아무래도 그런 우리를 배려하려는 것일 터여서 나는 그 발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충분히 기다렸다.

밀쳐내며, 스파다를 뽑아 휘둘렀다.

예상한 바였다는 것일까.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다. 길쭉하게 검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 갈라틴의 모습에 나는 이를 빠득 갈며 녀석을 노려보았다.

즐겁다는 듯한 기색이었다.

“아, 준!”

하지만 다음 순간 유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검을 튕겨내며 물러선 나는, 스파다를 품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런 나를 본 가웨인 역시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갈라틴을 넣었다.

“그, 마실 거라도? 친구 분은?”

그 직후, 유하가 주방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여유로운 목소리에, 나는 애써 흥분한 심장을 가다듬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 그럼 저기 저 하이퍼 초콜릿 우유라는 걸.”

하지만 뒤를 이은 가웨인의 목소리에 다시금 머리에 피가 몰리는 것을 느꼈다. 휙, 하고 돌아보자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를 으쓱.

“준은요?”

“나, 나는….”

일단 좀 시간이 걸리는 걸로.

“같은 걸로.”

“어머, 준은 단 거 못 먹지 않나요?”

“어, 어쩌다보니 먹고 싶어져서, 부탁할게.”

“후후, 맡겨만 주세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유하가 다시 주방으로 들어섰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저도 모르게 품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윽….”

하지만 참았다.

행여나 만에 하나라도, 결단코 유하를 다치게 할 수는 없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아니, 상상하기조차 싫은 일이다.

“이제야 좀 이야기를 할 마음이 생겼나.”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거지.”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

중얼거린 녀석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하지만 이내 실내라는 자각이 들었는지 내부를 둘러보고는 머쓱한 듯 바깥을 손으로 가리켰다.

“배려 좀 해주겠어?”

안에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싶어, 나는 돌아서는 가웨인을 따라 군말 없이 가게를 빠져나갔다.

가로등이 어둠을 짙게 비추고 있다.

“헥터, 말이야.”

찰칵, 하고 조그마한 불이 일더니 연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뒤를 이어 고개를 든 가웨인이 날 바라보았다.

“근신 처분을 받았어.”

“…. 그래서?”

“아니, 놀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가웨인은 킥킥거리며 웃었다. 그리고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날 돌아보았다. 가로등 빛이 붉은 머리 아래의 눈동자를 어둡게 만들었다.

“고작 근신 처분이라고?”

“….”

“생각해봐. 국내 언론을 제외하고 해외의 28개국 중 25개국이 그날 당장에 보도 성명을 냈어. 그런데도 그냥 ‘근신’이라고. 이게 뭘 뜻하는 건지 모르겠어?”

“그쪽 대장께서 연루된 일이라는 건가?”

나는 적당한 예감을 중얼거렸다.

“그래, 이제 대충 상황을 파악한 것 같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헛수고라는 거야. 네가 그렇게 싸웠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거지.”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군. 그게 네놈들의 비리를 까발리고 싶어서 한 일은 아니야.”

“그럼 뭐지, 헥터에 대한 분노?”

“그럴 수도 있고….”

소중한 동료를 건드려서.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은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가웨인의 담뱃재가 처량하게 떨어졌다.

“어쨌든, 무대는 갖춰져 가는 것 같네.”

“….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또 이런 식이군.

“말했잖아. 너와 결착을 낼 장소가 필요하다고.”

“정신병원 하나 추천해주랴? 네이버에 검색하면 많이 나올 텐데.”

나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그러자 뒤를 이어 가웨인이 즐겁다는 듯 빙긋 웃었다.

“재미있네.”

“어떤 부분이?”

“내 앞에서만 나오는 네 그 신랄한 독설이 말이지.”

“….”

‘내 앞에서만’

그것이 뭔가 특별한 의미라도 있는 듯, 가웨인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는 어쩐지 그 눈빛이 제대로 된 사람의 것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좋은 거야.”

그리고 그 기분 나쁜 안광이 번뜩였다.

“너는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증오로 바꿀 수 있도록 도와주니 말이지.”

“비비안에 대한 고민인가?”

그 이름을 듣자 가웨인의 표정에 불편한 기색이 감돌았다. 나는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그걸 고민이라고 말하는 시점에서 넌 쓰레기인 거야.”

“글쎄…. 그건 너도 그렇지 않아?”

“뭐?”

“네 누나 말이지. 왜 함께 있는 건가 싶어서.”

그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나는 그걸 어떻게 알게 된 걸까.”

몸이 굳어진 나를 향해 중얼거리며, 가웨인은 주머니로 손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는 몸을 돌려 카페 안쪽에서 자리에 음료를 놓는 유하를 돌아보았다.

“걱정 마. 부대에 알릴 생각은 없으니까.”

하지만 뒤를 이어, 녀석은 인상을 찌푸린 채 웃었다. 그 표정에 다시금 광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왜냐면 이건 너와 나의 일이잖아?”

“가웨인….”

“왜 그래, 이준. 백시호라고 불러야지.”

녀석은 증오스러운 사람의 이름을 되새기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뱀 같은 눈으로 유하를 살피는 녀석의 모습에 여유가 없어지는 걸 느꼈다.

“그게 우리의 관계잖아? 말해. 백시호라고 부르지 않으면 네 누나에 대해서 다 말할 거야. 라이오넬, 헥터, 뭐…. 캐러독이나 케이. 아니면 백 대령한테까지.”

“백, 시호….”

“아하하하! 좋아, 좋아. 아주 멋져, 이준. 사진으로 찍어서 평생 보고 싶은 얼굴이야.”

녀석은 비참한 내 표정을 보고는 크게 웃었다.

“역시 넌 날 지향하게 만들어….”

그리고 이내 손을 뻗었다.

내 볼을 툭툭 두드린다.

시비를 걸듯.

“컨텐츠는 없지. 추가적인 업데이트도 차일피일. 원하는 건 손에 들어오지 않아. 더러운 랜덤 드랍이지. 이 쓰레기 같은 환경 속에서 너는 플레이의 이유가 되어주는군. 레벨은 몇이지? 스테이터스의 분배는?”

“…. 156.”

꼼짝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오는 것이다.

“거 참 친구야. 아무리 그래도 너무 그렇게 순순히 대답하면 재미없잖아. 치트키 쓰고 게임하는 기분인데. 마치 모르가나라도 쓴 기분인 걸, 이거….”

볼을 쓰다듬고, 녀석은 그래도 내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멀찍이 떨어졌다. 서부극의 건맨 흉내라도 내려는 건지 양 손을 머리 위로 든 채.

“어쨌든 믿어도 좋아. 이준.”

그리고 녀석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갤러해드가 되기를 기다리겠어.”

그런 말을 남긴 채.

“…. 빌어먹을.”

그 진의를 알 수가 없어, 나는 욕지기를 내뱉었다.

쿠웅, 하고 소리가 서른 번째 울렸다.

벽의 내부는 엘레노어의 ‘지정’으로 코트의 힘이 발휘되지 않는 공간이다. 거기에 그녀는 코트의 힘을 마비시키는 게임의 아이템인 ‘수갑’까지 찬 상태였다.

사건이 터지고, 완전히 분노한 대장은 전 간부가 모여 있는 곳에서 헥터에게 특수 감방 15일의 중징계를 내렸다.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단호한 대처를 보인 것이다.

언론에는 축소 보도를 하고, 특수 범죄자를 잡으려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면서 변명을 해두기는 했지만 이 일을 빌미로 꽤나 입장이 곤란해졌다.

해서 일단은 사태가 좀 진정될 때까지 모든 플랜은 중지되었다. 헥터는 현재 15일간 특수 감방에 수감이 되어 현재 만 하루가 지난 상태였다.

주기는 점점 짧아졌다.

아무래도 패배에 의한 분노 때문이겠거니, 하고 라이오넬은 결론을 내렸다. 살면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기 위해, 그 누구보다 남을 속이고 조롱하며 살아왔던 여자는 현재 같은 꼴을 당하고 말았다.

헥터나 다른 고위급 인사들이 하고 있는 특별한 일에 대해서 모르고 있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라이오넬은 그것을 그다지 동정하지는 않았다.

결국 자신의 선택이다.

삶은 투쟁이고, 그녀는 전사로서 패배한 것이다.

“….”

하지만 그 과정에 흥미는 있다.

좁고 넓은 복도, 식사를 넣는 구멍 하나만 있는 좁은 감방이 십여 개. 좌우로 늘어선 채였다. 모두 독방으로 최근 들어 실적이 필요했기에 수감자들이 가득한 상황이었다. 아마 오늘 중으로 다들 집행이 이루어질 터였다.

그것을 무시한 채, 가웨인은 가장 끝에 있는 방으로 향했다. 쿵, 쿵 거리는 소리의 진원지였다.

“추, 충성!”

병사 한 명이 그를 알아보고 경례를 붙였다. 덩치가 큰 자신을 타인이 경외감과 공포를 담아 바라보는 건 조금 익숙했던 터라 라이오넬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포장해둔 초코볼 중 하나를 꺼내서 건넸다.

“이, 일병 김태준. 감사합니다.”

“밖에 나가 있도록, 병사. 용무가 끝나면 부르겠다.”

“…? 네, 넵!”

번역이 조금 이상했던 걸까. 고개를 갸웃거린 병사는 라이오넬이 손가락으로 바깥을 가리키자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돌아서는 모습에 라이오넬은 쿵, 하는 소리가 다시 들려온 감방 앞으로 다가갔다.

팝업창을 띄워 잠금 장치를 해제하려던 순간,

“어머,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그는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감방 안에 있어야할 사람의 목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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