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편
<-- Chapter 5 : 이상의 기사 -->
누가 장난이라도 친 걸까.
그렇다면 이런 스케일이 큰일을 장난이랍시고 벌일만한 것은…. ‘관계자’ 이외에는 없겠지.
“넬…?”
때문에 나는, 옆에 있던 ‘관계자’를 돌아보았다.
“네?”
하지만 녀석은 전혀 모른다는 얼굴이었다.
오히려 뭔가 할 말이라도 있냐는 듯 내 앞에 날아들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새하얀 머리칼이 가볍게 좌우로 흔들리는 모습에 나는 목을 움츠렸다.
잘못 생각한 건가.
“아니, 왜 퀘스트가 안 떠오르지 싶어서.”
“으음, 글쎄요?”
고개를 갸웃거린 녀석은 눈앞에 팝업창을 띄워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말을 이었다.
“퀘스트를 수행하셨다는 기록은 있는데, 다음 퀘스트의 조건에 뭔가 충족되지 않으신 게 아닐까요?”
“그게 뭔데…?”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물었다.
안 그래도 이쪽은 갑자기 퀘스트가 뚝 떨어져 무슨 상황인지 싶은데. 이제 와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서 넘어갈 수가 없다고?
“야, 너네 대장 불러봐.”
사람을 놀리는 것도 정도가 있지.
“주, 주인님?”
“이게 바쁜 사람 오라 가라 하고 있어.”
“에, 엘레노어께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건 주인님이 처음이세요오오….”
“어쩌라고.”
나는 유하와의 시간을 방해받아서 화가 난단 말이다.
“으음, 어쨌든 좀 기다려볼까요?”
조금 눈치를 살피는 넬의 모습에, 나는 길게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어쨌든 그 말도 일리는 있다.
“갤러해드 퀘스트라니….”
생각치도 못해 저도 모르게 흥분한 모양이었다.
“후후, 드디어 주인님의 소망이 이루어지네요!”
“….”
“왜 그러세요?”
“아니,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구나 싶어서.”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잠시 그 사람에 대해서 생각했다. 조금 짓궂은 형 같은 느낌이었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속이 깊었던 그 사람을.
….
이제 그 사람의 뒤를 잇는다.
내가.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네?”
“갤러해드 말이야.”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넬을 돌아보았다.
모드레드의 이야기를 듣고 확실히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이전의 갤러해드, 즉 그 사람에 비하자면 나는 전혀 그런 기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화, 확실히 주인님은 완벽하고는 거리가 멀죠.”
“….”
하지만 남의 입으로 들으니 좀 씁쓸한데.
“음…. 그리고 이건, 하나의 예상인데요.”
“뭐?”
“성배의 기사. 그렇게 보자면 우아랑 대위님이….”
“그렇게도 되려나.”
나는 일리가 있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엘레노어 자식이 대체 무슨 짓을 벌이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런 면에서 보자면 그 여자가 훨씬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
그렇게 중얼거리고 뒤를 이어,
“…?!”
뭔가가 날아들었다.
확실히 볼 필요도 없다는 생각에, 나는 몸을 비틀어 단순에 그것을 피해냈다. 날카로운 적의를 느끼며 코끝을 스치고 지나간 그것을 등진 채 중심을 잡았다.
눈앞에 서있다.
“네놈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인상을 잔뜩 찌푸린, 고압적인 외모의 여자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 그녀를 따라 검푸른 머리가 제멋대로 춤을 추었다. 그 주변을 맴돌던 검이 자리를 잡고 나를 겨누었다.
“우아랑….”
알아차렸다.
왜 다음의 퀘스트가 떠오르지 않았는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답해라, 스컬.”
“너, 퀘스트 받은 거 있지?”
“대답해줄 의무는 없다.”
여전히 짜증나는 여자다.
분명히 또 뭐라고 하면 범죄자니 뭐니 하면서 자기 혼자서 생각을 하겠지. 이제는 대충 그 성향에 대해 파악이 되는 걸 느끼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갤러해드의 여정.”
짧게 중얼거리자 우아랑은 의아한 얼굴로 눈썹을 찌푸렸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이내 확신에 차 말을 이었다.
“너도 그 퀘스트를 수행한 거지?”
“대답해줄 의무는….”
“매번 그런 식으로 회피하지 말고.”
말을 뚝 끊어버리자 우아랑은 불쾌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참으로 대화의 요령이 없는 녀석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침착하게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두 가지 방법이 있어.”
녀석이 그런다고 해서 나까지 그럴 순 없지.
“첫 번째는 싸우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일단 대화를 시도해보는 것. 어느 쪽이 좋아?”
“테러리스트와는 절대로….”
“아, 좋아. 대화가 진행되고 있군.”
“….”
녀석이 불만스러운 듯 입을 다물었다.
“나도 방금 완료했거든. 갤러해드의 여정을.”
“즉, 적이라는….”
“하지만 다음 퀘스트가 나오질 않잖아?”
말인즉슨 뭔가 조건이 있다는 말일 터였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우아랑의 안색을 살폈다. 단정한 얼굴에 조금 생각을 하는 듯한 기색이 깃들어, 나 역시 긴장을 늦추고 상황을 정리했다.
“협력을 바라는 걸까. 그 자식은.”
그리고 나온 결론은 간단했다.
할 킬러즈 측과 우리는 갤러해드로 연결되는 퀘스트의 조각을 나누어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우아랑과 내게 이런 식으로 첫 번째 퀘스트가 주어졌다는 말인즉슨, 무언가 행동을 유도한다는 뜻이리라.
엘레노어께서 말이지.
“우아랑.”
“친근한 척 이름 부르지 마라.”
“퀘스트와 관련된 데이터를 넘겨.”
“…?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녀석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쪽의 방식대로 했다가는 이 게임을 끝낸다는 목적은 달성할 수가 없어.”
“그럼 네놈의 방식은?”
“뭐?”
“뭔가 확실한 계획이 있냐는 거다. 현재의 사태를 확실하게 종결시킬 만한. 그게 아니지 않나? 그저 낙관적인 전망 하나를 품고 있을 뿐이지.”
중얼거린 녀석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러자 주변을 맴돌던 네 자루의 검이 사라졌고, 우아랑은 코트를 벗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대화를 하겠다는 신호였다.
“나에게는 책임이 있다. 이 사태와 관련되어 확실히 결과를 낼 행동을 취해야할. 왜냐면 내가….”
그 남자의 딸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는 무척이나 진중했고 여유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녀석은 그게 당연한 것인 양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어머니는 그 남자를 믿고 있는 거지. 때문에 사태를 해결하기보다도 관망하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방패막이로 삼아서.”
“방패라니….”
“그게 아니면 뭐지? 그 허울 좋은 소리를 위해서 대체 시민들은 얼마나 큰 위험에 노출되어야 하는 거지?”
“그걸 위해서 사태를 끝내자는 거잖아. 너희들이 하는 건 결국 제 잇속 불리기에 불과하다고.”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그렇다면 역으로 묻지. 네 그 이상론에 따라 엘레노어에게 반기를 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냐?”
“해봐야 아는 거지.”
“그래서 안 된다면? 도리어 그 행동이 엘레노어의 심기를 거슬러 더욱이 큰 문제로 발전한다면? 그 책임을 네놈 혼자서 질 수 있을 것 같나?”
나는 그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보다 조금 충격적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우아랑이 단순히 어머니에 대한 반발심만으로 할 킬러즈에 입대한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녀석은 다 알고 있음에도 이런 길을 택한 것이었다.
“너야말로 왜 그렇게 이 게임을 끝낸다는 것에 집착하는 거지? 대체 무슨 이유에서?”
질문은 계속되었다.
“평범한 민간인이 아니었던 거냐? 그렇다면 지금의 사태와 관련해서 일반 시민이 얼마나 큰 피해를 입고 있는지 모르진 않을 텐데.”
“그 피해의 절반은 너희 할 킬러즈에 의한 통제 때문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는데.”
“…. 말했다시피, 안전을 위해서다.”
“혹시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는데.”
나는 조금 예전의 일을 떠올렸다.
“너와 처음 만났을 때 말이지.”
“언제…?”
역시 기억하지 못하고 있군.
“라이오넬 퀘스트가 진행될 때였잖아. 올해 3월. 그때 지하철역에서 시민들 통제할 때 처음 만났었지.”
기껏 진지하게 이야기했지만 우아랑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똑똑히 기억했다. 재킷을 얻고 한국으로 돌아온 날, 집 근처의 역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시민의 통제가 일어났으니 말이다. 이쪽은 덕분에 바닥에 얼굴을 박아야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걸 기억하지 못한다.
“결국 그런 거야. 너도. 깨끗한 척은 혼자 다 하면서.”
나는 차갑게 중얼거렸다.
“권력의 하수인일 뿐이라고.”
그것을 인식하고 있는 우아랑조차, 권력을 이용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놈들이 있는 세계에서 진정한 의미의 평화가 이루어질 리가 없다.
“윽….”
내 말에 우아랑은 당황한 듯 받아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자신 또한 그런 문제를 인식은 하고 있는 걸까 싶어 나는 쓰게 웃었다.
“대답해주지. 왜 이 게임을 끝내는 일에 집착하는지.”
그리고 말을 이었다.
“내가 그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이 게임에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유린당한.”
“….”
“가해자인 네가 뭐라고 한들, 이 목표는 바뀌지 않아”
나는 변하지 않는다.
목표는 어디까지나 갤러해드가 되는 것.
그로서 게임을 끝내는 것.
“협상은 결렬이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난간 위로 올라섰다. 우아랑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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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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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갤러해드의 여정 2/10
난이도 : 알 수 없음
내용 : 옛 갤러해드의 흔적을 ‘먼저’ 획득하세요.
제한 시간 : 24:00:00
보상 : 경험치 20,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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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내용을 모두 읽은 나는, 고개를 들어 우아랑을 바라보았다. 녀석 역시 내용을 알 수 없는 팝업창을 눈앞에 띄운 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걸 정하라고 했던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