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재킷-204화 (204/321)

204편

<-- Chapter 4 : 파륜의 기사 -->

“….”

이거 큰일이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모드레드가 쥐고 들어 올린 내 오른팔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추욱 늘어진 내 손을 몇 번이고 주무르며 눌러보았다.

“감각이 아예 없으십니까?”

“그건 아닌데, 힘이 잘 안 들어가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이내, 모드레드의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고개를 들었다.

“또 무슨 짓을 한 거야.”

불만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리는 금발의 소녀.

“하아, 또 실컷 싸우다가 다친 거겠지.”

그 옆에서 한숨을 내쉬는 진한 녹색 머리의 소녀.

“으음, 재킷을 해제해도 증상이 있나요?”

“가상 세계에서 그런 것이라면 아마 별 차이는 없을 것 같은데요? 뇌가 놀란 것에 가까울 테니.”

그리고 커플 두 사람까지.

“별 일 아니라니까….”

나는 적당히 시선을 피한 채 중얼거렸다. 다들 부담스러울 정도로 내 움직이지 않는 오른팔을 관찰하는 광경에 조금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아침에 일이 끝났다고 연락하자마자 다들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찾아오고 말이지. 덕분에 카페가 무척이나 오랜만에 왁자지껄하게 붐볐다.

“넬, 어땠어?”

뒤를 이어 린슬렛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 내 뒤쪽에 떠올라 상황을 관망하고 있던 넬이 갑작스레 집중되는 시선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이 바보, 어떻게 싸운 거야?”

“어, 음…. 그, 글쎄요오오?”

그런 걸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는 듯, 넬이 시선을 피했다. 트리슈가 그런 반응의 의미를 정확히 캐치하고는 눈썹을 찌푸린 채 날 돌아보았다.

“설마 팔이 잘….”

“그, 그런 건 아니라고?!”

나는 당황해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다시금 수상하다는 시선이 날아들었고, 나는 등을 타고 식은땀이 주르륵 흘리는 것을 느꼈다.

“티티, 너 솔직하게….”

가까이 다가온 린슬렛이 내 어깨에 손을 올렸고,

“커피 나왔습니다!”

바로 그때 구원의 손길이 등장했다.

“아, 감사합니다.”

살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뒤로 돌아 커피를 가지러 가는 베디비어와 발렌타인을 지켜보았다. 트리슈와 린슬렛은 여전히 대답을 들어야겠다 싶은 얼굴이었지만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단 마시고 이야기하자.”

“….”

“….”

두 사람은 불만스러운 얼굴이었지만, 나는 모두가 둘러앉을 수 있도록 안쪽의 넓은 자리로 향했다.

“타나, 에스프레소였죠?”

“고마워.”

베디비어가 쟁반에 받쳐 들고 온 커피를 건네자 나는 조그마한 잔을 들었다. 그리고는 등을 기대고 자리에 앉아 추욱 늘어진 팔을 느꼈다.

설마 영영 움직일 수 없진 않겠지.

그런 걱정이 슬쩍 머리를 스치던 중, 나는 옆으로 다가 앉는 린슬렛을 보고 쓰게 웃었다. 입술을 비죽 내민 채 빨대로 음료를 한 모금 마신 그녀가 이내 옆으로 돌아서 내 팔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정말 아무 감각도 없어?”

“그, 그런 건 아니라니까.”

“….”

그 얼굴이 울상이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였던 린슬렛은 반응을 살피듯 내 얼굴을 힐끔거리며 팔을 마사지 해주었다. 부드럽고 조그마한 손이 내 손가락 하나하나를 자극했다.

“유하 씨한테는 말했어?”

그리고 그녀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카운터 안쪽에서 책을 읽고 있는 유하의 모습에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앞머리를 매만졌다.

“말할 수 있을 리가….”

“하아, 없겠지. 그래.”

말을 끊어내며 린슬렛이 마무리를 지었다. 한숨을 내쉰 그녀는 다시금 팔을 꼼꼼하게 주물렀고, 나는 맞은편의 베디비어와 발렌타인이 웃고 있는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아뇨, 아무것도.”

“…? 트리슈는.”

그러고 보니 그녀가 없다.

“여기 있지!”

그런 자각에 묻고 다음 순간, 뒤에서 목이 휙 잡아당겨졌다. 동시에 뭉클한 감촉이 느껴져 고개를 든 나는 내 머리를 끌어안고 있던 트리슈와 눈이 마주쳤다.

“타나 오빠, 매번 무리 한다니까. 사실은 이렇게 우리가 걱정하는 상황을 즐기는 거지?”

“그럴 리가 있냐.”

나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거기에 대답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어쩔 수 없었을 뿐이다.

“그래서…. 정확히 어떻게 된 거예요?”

“헥터의 가게를 완전히 박살내고 왔어.”

이어진 베디비어의 질문에 대답하며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내 테이블 앞에 멍한 채 서있던 모드레드를 바라보았다.

근데 저 녀석 왜 저기 서있는 거지.

“모드레드가 혼자 다 했지만.”

“….”

“솔직히 말해서 대단했어.”

대답이 없다.

“흐음, 그럼 이제 괜찮은 거야?”

트리슈는 가볍게 고개를 들어 모드레드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녀는 판초 밑으로 목을 움츠리며 물러섰다. 단순히 부끄러워 하는 건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도 그렇고. 지금 헥터 그 자식…. 현실 세계로 돌아왔으면 미쳐 날뛰고 있을 걸.”

“왜?”

“음…. 이거 말인데.”

나는 이야기에 조금 뜸을 들이며 팝업창을 매만졌다. 그리고 뒤를 이어 트리슈가 빼냈던 가게의 손님들과 관련된 데이터를 꺼내들었다.

“헥터와 협상을 하는데 쓰려고 했었거든.”

“그 중요한 걸 말입니까?”

조금 핀잔을 주는 모드레드. 이야기가 다 끝났다고 생각했더니 또 저런 식이다.

“아니, 별로 중요하지 않아서.”

거기에 난 조금 놀리듯 대답했다.

“…. 트리슈가 힘들 게 빼내온 건데.”

정작 상처를 입은 건 다른 쪽이었지만.

“그, 그런 의미가 아니라 트리슈.”

“그럼 어떤 의민데에….”

“이미 뿌려버렸거든.”

나는 앞머리를 매만지며 대답했다.

“…?”

“당신네들의 개인 정보를, 할 킬러즈의 요원이 개인적으로 수집하고 있었습니다. 하고 말이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팝업창을 다시 넣었다. 그리고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동료들을 돌아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 이야기였다.

반발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할 킬러즈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막강한 권한을 지니고 있는 집단이었다. ‘사태의 조속한 해결과 현실의 안보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그들은 인권 유린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왔다.

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으로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해왔기에 그것은 지금껏 숨겨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지.”

나는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시간으로 치면 열 시간 정도 전, 옥상에서 유하, 모드레드와 함께 고구마를 구워먹을 때. 각 나라의 언론사 메일로 뿌렸던 것이다. 그 파장은 지금 당장 터지더라도 이상한 일은 아닐 터였다.

이걸로 할 킬러즈는 조금 주춤해질 테고 계획하고 있는 일 또한 쉽사리 진행시킬 수 없을 테지.

“회장님도 한숨 돌릴 거야.”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

“뭐야, 표정이 왜 그래.”

뒤를 이어,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모드레드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두 시선이 집중되자 조금 머뭇거리던 녀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뇨, 음….”

뭔가를 망설이던 그녀가,

“솔직히 놀랐습니다. 생각을 하실 줄이야.”

말도 안 되는 폭언을 내뱉었다.

“무, 물론 하지.”

무뚝뚝한 태도에 나는 당황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은 변하지 않았나 싶었는데, 다른 녀석에게 거리감을 느끼는 부분부터 시작해 어쩐지 더 심해진 듯했다.

“그럼, 이제는 갤러해드 퀘스트입니다.”

그리고 뒤를 이어 모드레드가 테이블 앞에 섰다. 딱딱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그녀를 보고 트리슈가 갑자기 손을 번쩍 들었다.

“아 맞다. 그거.”

“네.”

학급 발표 시간의 선생님과 학생 같은 분위기다.

“우아랑 대위가 또 다른 후보자잖아.”

“네, 그쪽에서도 움직임을 보이겠죠.”

“흐음, 일단 좀 더 조사를 해보고 싶은데.”

“퀘스트에 관해서 말입니까?”

“응,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어서….”

그렇게 중얼거린 뒤, 트리슈는 천천히 나를 돌아보았다. 모드레드 역시 그렇게 하여, 나는 두 녀석을 번갈아 바라보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려,

“안 돼!”

하지만 린슬렛이 제지했다.

“얘 지금 팔이 이런데 또 뭘 하겠다는 거야! 오늘은 좀 쉬게 내버려두라고! 힉?!”

흥분해 내 앞을 가로막듯 올라선 그녀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무릎에 걸터앉았다. 그런 모습에 갑자기 어색한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 헤에.”

트리슈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아니 그, 잠시만…. 신발이 벗겨져서!”

부드러운 냄새가 풍겨온다.

당황한 린슬렛이 엉덩이를 내 다리 사이로 밀어 넣으며 테이블 밑으로 고개를 숙였다. 거기에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맞은편에 앉아있는 베디비어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냈다.

“…. 저쪽으로 가죠.”

“그, 그래.”

하지만 녀석은 발렌타인의 눈을 가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멀어져가는 두 사람을 보며 당황한 나는 움직이지 않는 팔을 뻗어보려고 했지만,

“린 언니가 먼저 부뚜막에 올라서다니!”

“크윽?!”

트리슈가 느닷없이 내 귀를 깨물어서…!!

“두 사람 다 진정하십시오.”

오, 오오 모드레드!

“으, 으음….”

차갑게 상황을 진정시키는 모드레드의 모습에 머쓱한 듯 두 사람이 떨어졌다. 모드레드가 반대편 소파에서 등받이에 턱을 괴었고, 테이블 밑을 통해 반대편으로 나간 린슬렛이 머리가 엉망이 된 채 앉았다.

“말씀하신대로 팔의 치료가 우선이겠군요.”

그리고 모드레드가 내 옆에 앉았다.

“음, 어떻게 하면 되려나.”

나는 그래도 조금씩은 움직이기 시작하는 팔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든 낑낑거리며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계속해서 자극이 가해져선지 그래도 좀 돌아왔다.

“일단 많이 움직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중얼거린 모드레드가 힘겹게 올린 내 오른팔을 쥐고 가져갔다. 그리고 조금씩 자극을 주어 매만졌다.

“….”

그러더니 돌연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왜, 왜 그래?”

거기에 조금 불안한 기분을 느껴 되물으니,

“그, 좋은 재활 운동이 있습니다만….”

그녀는 자신의 다리 사이에 내 팔을 끼워 넣었다. 그리고는, 어쩐지 촉촉하게 젖은 눈을 한 채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몸의 여러 곳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을 느끼며 어색하게 웃었다.

“마침 오늘 쉰다고 가정한다면의 이야기입니다….”

모드레드가 조금 달콤해진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헤에.”

“흐음….”

다음 순간, 나는 강렬한 살의를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둘이 언제부터 그렇게 사이가 좋아진 거야?”

싱긋 웃는 린슬렛.

“아, 리허빌리라면 트리슈도 같이 해도 될까?”

그와 똑같이 웃는 트리슈.

“아, 아니 그게….”

내가 거기에 무어라 대답하지 못하고 있자니,

“아, 그러시겠습니까?”

모드레드는 상황을 더욱이 악화시켰다.

“이, 이 바보 변태 여자가!”

“아, 아…. 지금 그런 말을 하면 안 됩니다….”

내가 놀라 버럭 소리를 지르자 모드레드의 허벅지가 꽉 조여들었다. 아니 이 여자 이런 말을 들어도 좋아하고 있다. 나는 그걸 알 수 있었….

“유하 언니에 트리슈에 린 언니에…. 대체 어디까지 손을 뻗는 걸까나아~ 이 오빠는.”

철컥, 하고 활시위가 당겨지는 소리가 났다.

“티티…. 물론 우리가 그런 사이는 아니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린슬렛이 테이블을 쥐고 으스러뜨렸다.

“아, 아니! 그게! 오해야! 나는 그…!”

““변명해봐!””

그리고 두 사람이 동시에 소리쳤다.

“….”

그러니까 이런 상황이다.

모드레드는 마약과 섹스에 중독되어 스스로의 몸을 망가뜨렸다. 거기에 헥터의 특제 마약에 중독되어 재킷을 입고서는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까지 내몰렸다. 지금은 물론 해결하기는 했지만, 그녀의 그…. 인간을 그리워하는 면모는 아직 남아있는 상태다.

“그, 나쁜 말 더 해주시면 안 됩니까?”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아뇨, 그냥 죽여주세요.”

나는 그것을 설명하기를 포기했다.

죽어도 말할 수 없다.

모드레드의 명예를 위해.

그렇게 죽음을 각오한 나는 싱긋 웃어 보였고,

방패와 화살은 처참하게 내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 작품 후기 ==========

챕터 4 끝.

이제 본격적으로 갤러해드 퀘스트가 시작이 되겠군요.

해서 말인데...

여러분은 어떤 히로인을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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