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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203화 (203/321)

203편

<-- Chapter 4 : 파륜의 기사 -->

늘어선 단검의 형태는 제각각이었다.

“넬 씨.”

“네, 넵!”

모드레드의 무뚝뚝한 목소리에 약간 멍하니 있던 넬이 앞으로 나섰다. 펼쳐진 판초는 석양의 무법자 같은 분위기로, 그녀는 내 앞을 가리듯이 선 채 말을 이었다.

“저 사람을 데리고 이곳을 빠져나가주십시오.”

“아…!”

“그렇게 둘 거라고 생각해?!”

히스테릭한 목소리의 뒤를 이어 헥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자 그 밑에 있던 파충류가 몸을 비틀며 움직였다. 도마뱀에 비견되겠다 싶은 생김새였으나 분위기로 봐서는 괴수 영화의 주연 배우처럼 보였다.

“빌어먹을…. 이 나를 놀렸겠다!”

그리고 그 위에 올라선 헥터는 분노로 완전히 이성을 잃은 채였다.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와 함께 게임의 필드였던 검은 풍경이 뒤바뀌었다.

박살난 벽,

불에 타오르는 술집.

“무사히 빠져나갈 생각은 접어두는 게 좋을 거야!”

“…. 하아.”

그리고 뒤를 이어, 정장을 입은 바운서들이 부서진 벽 사 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흰색 셔츠에 검정 바지. 갖가지 동물의 머리를 한 녀석들의 모습에 나는 질리는 감각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 주인님. 괜찮으세요?”

“네가 두 개로 보이는 것만 빼면.”

“으으으…. 왜 자해를 하고 그러세요!”

그 방법 밖에 없었다.

그런 말이 어쩐지 입으로 잘 나오질 않았다. 두 사람이 크게 걱정하는 기색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일단 거기에 대해서는 돌아가서 이야기를 하는 걸로 하죠. 일에는 우선순위란 게 있는 법이니.”

그리고 뒤를 돌아본 모드레드의 시선이 흉흉한 것도 한 몫을 했다. 여기에서 더 장난을 치거나 여유를 부렸다가는 칼에 찔릴 것 같았으므로….

조용히 하자고 생각한 순간 괴수가 울부짖었다.

“뒤로 물러나 계십시오.”

하지만 모드레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중얼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불길이 치솟는 가운데 앞발을 들고 반쯤 이러선 괴수의 위에 올라탄 헥터가 웃었다.

“혼자서 상대하겠다는 거야? 의기만큼은 칭찬해주지.”

“…. 혼자가 아닙니다만.”

“뭐?”

그리고 다음 순간, 모드레드의 모습이 사라졌다.

마치 바닥에 스며드는 것처럼, 검은 그림자가 된 그녀가 순식간에 다음 위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바운서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녀를 보고, 그 엄청난 속도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촤악, 하는 소리와 함께 그 목에서 피가 튀었다.

날카로운 단검을 움켜쥔 채, 모드레드는 목을 움켜쥐며 쓰러지는 바운서를 단호한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본 적이 없던 괴상한 형태의 스킬에 헥터는 놀란 듯 머뭇거리다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 뭐해! 빨리 포위해서 덤비라고!”

“괜찮습니다.”

“윽…?!”

“제 쪽에서 먼저 갈 테니.”

그리고 판초가 펄럭였다.

채앵, 하고 날붙이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그 안에서 제각기 다른 형태의 단검들이 쏘아져나갔다. 마치 화살처럼 허공을 가른 그것은 바운서들의 급소에 차례차례 치명상을 일으켰다. 모드레드는 하나의 포대가 되어 계속해서 단검을 쏘아 날렸다.

“…!”

하지만 그것을 헥터가 막아냈다.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단검을 채찍으로 잡아챈 그녀가 다시금 모드레드를 향해 날려 보냈다. 빠른 속도로 회전하던 모드레드는 단검을 튕겨내며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약병이 날아들었다.

모드레드가 내던진 단검이 그것과 충돌해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바람이 몰아닥쳐 비틀거린 나는 넬에게 기댄 채 물러섰다.

그리고 발견했다.

짙게 깔린 연기의 뒤를 이어, 아가리를 벌린 채 달려들고 있는 거대한 파충류의 모습을.

“위험해!!”

나는 저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괴수는 연기 사이로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모드레드를 단숨에 꽈악 물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윽…?!”

연기를 걷어내듯 포효하며 괴수의 고개가 빠져나왔다. 눈을 동그랗게 뜬 나는 단단한 이빨 사이로 빠져나온 모드레드의 팔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게 이내 사라졌다.

희미한 검은 바람으로 변해 모습을 감추는 모드레드의 팔을 보며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어떻게 그녀가 두 사람일 수 있는 건지.

하나는 만들어졌다는 말이다.

정보량 송신 합금을 통해 무척이나 정교하게.

아마 그것은 현실에서도 통용되는 거겠지.

“당신이 현실에서도 이런 괴수를 부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재앙이겠군요.”

거대한 괴수의 등, 헥터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모드레드가 쓰게 웃었다. 조그마한 그녀에게 있어서는 운동장만한 크기의 등이었다.

“그럴 리가 있나. 나는 ‘늪’인데.”

그리고 헥터는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섰다.

“한 번 해볼까? 두 기사가. 움직이는 배 위에서.”

괴수는 헥터의 가게를 박살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뒤쪽으로 몸을 돌려 이내 다른 가게의 지붕을 한 발로 디디며 고개를 들었다.

“주인님, 이쪽으로….”

나는 넬의 부축을 받아 무너지는 가게를 탈출하기 시작했다. 부서진 잔해들이 떨어져 내리는 가운데 넬이 방향을 지정해 나는 거기에 끌려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두 사람의 모습은 멀어져갔다.

“넬…!”

나는 괴수의 뒤에 올라탄 두 사람을 확인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거대한 돌 더미가 떨어지는 소리에 귀가 먹먹해졌기 때문이었다.

“네! 주인님!”

거기에 대답한 넬이 이미 떨어진 바위 위로 나를 끌고 올라갔다. 비틀거리며 무릎을 짚고 올라간 나는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었다.

“두 사람을 쫓자!”

“위, 위험해요!”

“아니, 나는 지켜봐야 해!”

두 사람의 싸움을.

모드레드와 헥터의 모습을.

이 두 눈에 똑똑히 새겨두고 싶었다.

바람이 불어와 판초가 펄럭거렸다.

“클라렌트…. 라고 했나?”

어느덧 검은 코트로 복장을 되돌린 헥터는 비릿하게 웃으며 그 판초를 입은 소녀를 바라보았다. 괴수의 움직임에 따라 내부가 첨예하게 드러났으나 그 안에 단검은 꽂혀있지 않은 상태였다.

반역으로 타락한 검.

목적을 승계하기 위해 내세워진 검.

그 검 자체에는 상징성 이외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추지 않고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역할만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성가신 상대가 더욱이 성가셔졌군.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단검이 날아들었다. 둥그런 차크람의 모습을 거의 코끝에 다다른 순간에 확인한 헥터는 허리를 숙여 그것을 피했다.

하마터면 머리가 날아갈 뻔했다.

그런 자각에 그녀는 주도권을 내어주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몸을 비틀며 훌쩍 뛰어오른 헥터는 모드레드를 향해 날듯이 달려들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전투는, 지금과는 정반대로 모드레드가 간격을 좁히려 들고 헥터 자신은 유지하려는 양상이었을 터였다. 하지만 단검이, 갯수의 한계가 없이 투척용으로 활용되면서 이야기는 달라졌다.

어떻게 해서든 간격을 좁혀야만 했다.

“큭….”

이 헥터가.

이런 굴욕을 맛보게 될 줄이야…!!

“모드레드!!”

헥터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채찍을 휘둘렀다. 좁은 간격에서는 채찍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으나 그밖에 수단이 없어 그녀는 입술을 빠득 깨물었다. 어떻게 해서든 ‘늪’을 깔기 위한 시간을 벌어야만 했다.

“…!”

물론 모드레드도 그것을 모를 리는 없었다.

날아드는 채찍의 끝을 단검을 던져서 쳐냈다. 그리고 뒤를 이어 단검을 빠른 동작으로 뽑아든 그녀는 자세를 바로하려는 헥터를 향해 달려들었다.

“큭?!”

뾰족한 단검이 헥터의 팔목을 꿰뚫었다.

단검을 뽑지 않고 놓은 모드레드는 그대로 몸을 휘둘러 헥터를 걷어찼다. 뒤쪽으로 날아간 그녀는 곧게 뻗은 괴수의 머리 부분에 충돌하고 추욱 늘어졌다.

하지만 모드레드는 멈추지 않고 단검을 날렸다.

퍼벅,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간 단검이 괴수의 머리에 꽂혔다. 허리를 숙여 빠져나온 헥터는 바닥에 손을 대고 늪지대를 생성하기 시작했다.

물론 거리가 멀어 그것은 제대로 모드레드의 발목을 묶질 못했다.

날아올라, 몸을 비튼 그녀가 다시금 단검을 날렸다. 인상을 찌푸린 헥터가 거기에 대응하기 위해 약병을 던졌고, 다시금 두 사람의 사이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거기에 휩쓸려, 모드레드는 나가떨어졌다.

“윽…!”

꼬리 부분까지 날아간 그녀는 단검을 거기에 꽂아 버텨냈다. 하지만 괴수가 통증을 느낀 듯 꼬리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해 주변의 건물들을 깨부수기 시작했다.

스킬을 가동시킨다.

그림자 도약.

한순간 시야에 안개가 끼며 그녀는 몸이 좀 더 자유로워지는 감각을 느꼈다. 신체 능력이 크게 향상된 것으로, 모드레드는 단검을 쥐고 있던 팔에 힘을 주어 동시에 위로 뛰어올랐다.

꽂힌 단검을 밟고, 다시 도약한다.

검은 바람에 휩쓸려 날아오른 모드레드는 다시금 괴수의 등 위에 착지했다. 직후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오며 그녀는 무릎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드레드….”

그것을 헥터가 놀란 얼굴로 바라보았다.

일시적으로 세계에서 모드레드라는 존재를 지우는 스킬…. 은 아니다 물론. 그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것은 그 대신 상대방의 눈에서 모드레드라는 존재를 지우는 기술이다. 지속시간이 무척이나 짧은.

즉, 순간이동이다.

“왜 그러십니까. 벌써 항복입니까?”

“으윽….”

상성 상 유리하다는 자각이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모드레드는 헥터를 압도적으로 밀어붙일 결심을 했다. 단검이 가득 담긴 판초를 보란 듯이 펼쳐 보이며 그녀는 두 명이 되었다.

아니 세 명.

네 명.

다섯.

여섯.

“저는 아직, 실력의 반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만.”

점점 숫자가 불어나는 모드레드의 모습에 헥터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기색이 서렸다. 하지만 그것을 떨쳐내듯 이를 악 문 그녀는 곧바로 바닥에 늪지대를 형성했다. 뱀처럼 뻗어나간 그것이 모드레드의 발을 묶었다.

“그건 가짜입니다.”

그리고 그 모드레드가 사라졌다.

“큭….”

바닥에 질퍽한 그림자 같은 형상을 남기며 사라지는 그것을 보며 헥터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느꼈다. 접근을 허용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해서 계속해서 늪을 쳐놓고 있을 수도 없다. 이곳 또한 안전지대가 아니다.

다음 순간 날아드는 수십 자루의 단검.

“커흑!”

거기에 온몸이 꿰뚫려, 헥터는 나가떨어졌다.

거대한 괴수가 크게 울부짖었다. 주인의 전투 능력이 한계에 다다름을 짐작하여 그것은 도심의 파괴를 멈추고 고개를 길게 빼들며 울부짖었다.

그리고 이내, 천천히 바닥에 쓰러졌다.

“후우….”

여러 스킬을 한 번에 사용해선지 조금 지쳤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모드레드는 모든 분신을 지워냈다. 필요에 따라 정보량 송신 합금으로 실체화하기도 하는 이 분신은, 다행히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 여러 명을 소환할 수 있었다.

무너진 몬스터가 검은 모래 바람처럼 흩어져 사라지기 시작했다. 점점 무너지는 바닥을 느끼며 서있던 모드레드는 이내 뒤에 다가서는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지친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다.

“이겼습니다.”

“…. 잘했어.”

넬에게 부축을 받고 다가온 타나토스가 한쪽만 남은 팔을 들었다. 그것과 함께 뒤로 불타오르는 도심을 보며 씁쓸한 감각을 느낀 모드레드는 가까이 다가갔다.

가볍게 하이파이브.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

뒤를 이어 타나토스가 물었다. 비틀거리며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는 그의 모습과 뒤쪽에 엉망이 되어 쓰러져 있는 헥터를 번갈아 바라보던 모드레드는 이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돌아가도록 하죠.”

“끝장을 낸다던가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가상의 세계에서는. 거기에.”

“…?”

어디선가 고함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거기 서라아아아. 하면서 우레와 같은 발소리가 이어졌다. 뭔가 싶어 타나토스와 넬이 뒤를 돌아보았고 이내 그 안색이 창백하게 물들었다.

“도망치는 게 나아보이지 않습니까?”

“동의한다.”

무뚝뚝하게 굳어진 목소리에 모드레드는 피식 웃었다.

냉동 참치를 든 고양이 주인으로부터 비롯되어, 온갖 곳을 다친 가상 세계의 주민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대체 어느 놈이 한 짓이여!!”

“가만히 두지 않겠어!”

“내 집! 내 집이이이이이!!”

이런 곳은 빨리 빠져나가는 것이 상책이다.

그렇게 생각한 모드레드는 옆에서 타나토스의 팔을 받쳐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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