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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202화 (202/321)

202편

<-- Chapter 4 : 파륜의 기사 -->

“…!”

절단된 단면에 묶인 천을 당기자 통증이 일었다.

“주, 주인님…!”

옆에 서있던 넬이 다시금 나를 부축했다. 이로 당긴 천을 꽉 물고 있던 나는 이내 길게 숨을 몰아쉬며 중심을 잡고 자리에 섰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찔해졌지만 버텨내고 넬에게서 떨어졌다.

“게임의 진행을.”

머뭇거리던 그녀는 내가 힐끔 돌아보자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반대편에 서있던 헥터는 그런 나를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깨어났을 때 후유증이 남을지도 모른다고요?”

“…. 그럼 어쩔 수 없는 거고.”

“바보 같은 사람. 그렇게 해봤자 누가 알아준다고.”

“너 같은 여자보다는 낫지.”

“네?”

“타인을 조롱하는 일에서 밖에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보다야….”

피식 비웃듯 중얼거리자 헥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뒤를 이어 카드가 뒤섞이기 시작해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한 손으로 그걸 집어 들었다.

“하….”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런 꼴을 하고서 아직까지 입이 살아있네.”

잔혹한 미소를 입에 머금은 헥터가 거대한 옥좌 위에서 뛰어내려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자 뒤를 이어 몸을 움직인 거대한 파충류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내 팔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어치웠다.

“언제까지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나 지켜보자고.”

가까이 다가온 그녀는 비틀거리며 서있는 내 뺨을 장난감처럼 매만졌다.

여유를 부리는 것이다.

내 도발에 슬쩍 흥분하다가도, 어떻게 해서든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거겠지. 왜냐면 그렇게 여유를 잃었을 때 헥터는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남을 조롱하는 입장에 서지 못하게 되니까.

“갤러해드. 카드는 제대로 쥐는 게 좋아.”

“….”

“피가 묻고 있으니까. 공정하지가 않다고?”

웃으며 이야기한 그녀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실크햇 아래의 외눈 안경이 반짝이며 빛났고, 뒤를 이어 피 묻은 카드가 내 손을 빠져나갔다. 원래의 카드와 한 다발이 되어 중간에서 모였다.

“아무래도 새 플레이어가 필요하겠어. 새 카드도.”

중얼거린 헥터가 자리로 돌아가며 피 묻은 카드 다발을 멀리 던졌다. 넬이 조금 당황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다시금 옥좌에 올라앉은 그녀는 새로운 카드 다발을 소환해 중간에 놓았다.

나는 그 광경을 조금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

물론 타당한 의견이었으나, 굳이 자신이 유리해질 상황을 바로 잡으려는 게 조금 의아했던 것이다.

“외팔이 대신 카드를 쥐고 있어줄 플레이어가.”

턱을 괸 채 웃은 헥터가 다시 한 번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뒤를 이어 갑자기 바닥이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진원지를 돌아보았다.

모드레드를 가두고 있던 철창이 땅 밑으로 사라졌다.

“타나토스…!!”

그러자 거기에 매달려 있던 그녀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숨을 몰아쉬며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녀석은 가까이 다가와 나를 부축했다.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날씨가 더워서 잘라봤는데.”

“이런 상황에서 대체 무슨 말입니까!”

그녀는 반쯤 비명을 지르고 있다.

눈물로 얼룩져, 단정한 얼굴이 엉망진창이었다. 솔직히 말해 그 모습은 나보다 더하지 않나 싶어….

“괘, 괜찮으십니까?!”

나는 비틀거리며 녀석에게 매달렸다.

“잘 들어.”

헥터로부터 반쯤 몸을 돌린 채 나는 모드레드를 향해 진지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솔직히 말해 기절하기 직전이었지만 그건 정신력으로 어떻게든 버텨냈다.

“네?”

“헥터가 무슨 사기를 치는지 대충 알 것 같거든…?”

“아니 그걸 알고 있으면서 왜 게임을…!”

“아야야야, 아, 아프다고.”

“죄, 죄송합니다.”

순간 흥분해 멱살을 잡아 올린 모드레드가 내 우는 소리에 황급히 그것을 놓았다.

“어쨌든, 내가 좀 이상한 행동을 할지도 모르지만. 거기에 절대로 토 달지 마.”

“….”

“알겠지?”

“당신은 정말로 바보 같은 사람입니다….”

애써 웃으며 되묻자 모드레드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이마를 쓸어 올리고, 이내 그녀는 입술을 꽉 다물며 잘려져 나간 내 팔을 쓸쓸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칠칠맞게 코나 묻히고 다니고.”

나는 그런 분위기를 좀 환기시키고자 모드레드의 코를 매만졌다. 당황했는지 굳어져 있던 녀석은 이내 내 손을 쳐내며 뒤로 물러섰다.

“무, 무슨 짓을….”

“드러워.”

“그런 거 아닙니다!”

당황한 그녀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뒤를 이어, 가볍게 헛기침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헥터를 발견했다.

“어서 시작하지?”

“아, 미안. 깜빡하고 있었네.”

“….”

거기에 다시금 도발을 건넸다.

“정말로 괜찮은 겁니까?”

날아드는 카드를 받아든 모드레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나를 돌아보았다. 게임이 시작되어 눈앞에 5분의 카운트와 함께 카드를 받은 횟수가 떠올랐다.

물론 처음에는 0이다.

“카드를 다섯 장 받아오겠어.”

“? 저, 저기….”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모드레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내가 단호한 눈으로 바라보자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앞에 날아든 카드를 받아들었다.

“나도 카드를 한 장.”

내 뒤를 이어 카드를 바라본 헥터가 그것을 가져갔다.

프레데터는 카드를 받을 때 조심해야하는 게임이었다.

같은 몬스터는 소환할 수 없다. 즉, 같은 족보를 여러 장 만들 수가 없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남는 카드가 늘어날 확률이 늘어나게 된다.

“카드를 한 장 더.”

하지만 나는 계속 카드를 받았다.

“….”

이번에는 힐끔 카드를 본 헥터가 입을 다물었다.

계속 그런 식이었다. 그녀는 내가 카드를 받아가는 걸 지켜보고 카드를 받을지 말지를 정했다.

“일단 이것을.”

나는 ‘페어 원’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하급 몬스터를 소환하는 가장 기초적인 족보였다.

“저 저기 이렇게 카드를 많이 받으시면….”

내 선택을 보고 모드레드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용히 하고 있어.”

“우읏….”

나도 알고 있다.

이렇게 해봤자 카드를 쓸데없이 남기기만 할 뿐이라는 걸. 하지만 나는 의문이 확신으로 변하는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계속해서 카드를 받았다.

그리고는 카드 두 장을 빼내 헥터가 집중하지 않는 사이 주머니 속에 넣었다. 뒤를 이어 뼈로 이루어진 몬스터가 필드에 모습을 드러냈다.

“…?”

그 모습에 모드레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필드 위에 소환되어있는 몬스터가 사실은 재킷의 힘을 이용해 만들어낸 망자였기 때문이었다.

“모드레드.”

나는 계속해서 몬스터를 배치하며 말을 걸었다. 헥터는 계속해서 좋은 카드를 뽑는지 상위의 몬스터를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어내고 있었다.

“네.”

“내가 한순간 틈을 만들면, 약을 뺏을 수 있겠어?”

“…?”

“난 이 팔로는 무리니까.”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모드레드를 바라보았다. 떨리고 있는 손바닥을 내려다본 그녀가 이내 입술을 비틀며 내 잘려져 나간 팔을 바라보았다.

“해보겠습니다.”

거기에 나는 빙긋 웃었다.

방법이 없지는 않다.

모드레드의 상태를 잠깐 정상으로 되돌릴 방법이.

“턴 종료되었습니다.”

그리고 턴이 끝나자 넬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선언했다. 두 진영의 몬스터들을 둘러본 헥터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말대로 차이는 명백했다.

헥터 쪽의 파충류 형태의 몬스터는 무척이나 많았고 상위급 몬스터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정반대로 약해빠진 몬스터들 밖에 없었다.

“후후, 이번엔 어디를 먹어볼까?”

헥터와 내 몬스터가 그대로 맞부딪쳤다. 하지만 그 중 하나, 내가 재킷을 통해 소환한 망자가 명령을 따라 파충류들을 밟고 위로 뛰어올랐다.

“…?!”

그리고 헥터를 향해 달려들었다.

“큭?!”

순간적인 상황에 대응하지 못하고, 망자가 헥터의 얼굴을 할퀴며 지나갔다. 외눈 안경이 바닥에 떨어지는 모습에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앞으로 나섰다.

“지금 장난하는 거냐?!”

그리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 뭐…?!”

“너 그 안경으로 카드 구분할 수 있었던 거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말도 안 되는 사기꾼 년이!”

나는 크게 화를 냈고 이쪽의 몬스터를 쓰러뜨린 헥터 측의 몬스터들이 달려들어 팔과 다리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이쪽이 완전히 흥분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아니, 무슨 소리야 대체!”

“카드 뒷면에 보통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약물 같은 걸 발라둔 거지? 이게 어디서 장난질이야!”

“무, 무슨 소리야! 증거 있어?!”

당황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대응하듯 나는 눈썹을 잔뜩 찡그린 채 팝업창을 띄웠다. 저장해두었던 데이터창을 띄워 전송할 준비를 마쳤다.

“승부는 결렬이야. 헥터.”

“하, 이거 진짜 어이가 없네…!”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다.

근거는 있지만 그게 증거가 되지는 못하니까.

솔직히 말해 블러핑이었다.

헥터는 확실히 항상 나보다 늦게 카드를 뽑았다. 피 묻은 카드가 쓰기 싫다고 했고 거기에 온갖 수상한 행동을 보였다. 하지만 그게 그녀가 정말로 외눈 안경으로 사기를 친다는 증거는 되지 못했다.

근데 뭐 어쩌라고.

“마음대로 해! 모드레드는 평생 그대로일 테니까!”

흥분한 그녀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소리치며 나를 바라보았다.

“윽…!”

거기에 조금 약한 기색을 보이자,

“뭐, 재킷을 입지 않은 평범한 인간으로는 살아갈 수 있겠지! 그런 저 여자에게 가치가 있냐 싶긴 하지만!”

“자, 잠깐…!”

나는 최대한 연기력을 발휘해 곤란한 듯 손을 멈췄다. 그러자 뒤를 이어 헥터는 조금 심리전에서 우위에 서려는 듯 약병을 꺼내 나에게 보여주었다.

“이거 세상에 단 하나뿐인데…? 부숴버릴까?”

“큭…! 헥터!!”

“그렇게 화를 내도 별 수 없다고. 갤러해드? 정정당당한 승부를 박살낸 건 오히려 네 쪽이니까!”

버럭 소리를 지른 그녀가 약병을 바닥으로 집어던졌다. 찰나의 순간, 나는 옆으로 쓱 비켜섰다.

“걸려들었군.”

그리고 모드레드가 뛰쳐나갔다.

재킷을 ‘벗은’ 모드레드가.

“뭐야?!”

놀란 헥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완전히 평소의 몸으로 돌아온 모드레드는 바닥에 닿기 직전의 약병을 낚아채 헥터의 다리 사이를 미끄러져 빠져나갔다.

“방심하셨군요. 헥터.”

“아니…! 너, 어떻게?!”

“간단한 답 아닙니까. 재킷을 벗었습니다.”

“윽…?!”

“불쌍하게도,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시는군요.”

그렇게 중얼거리며 모드레드는 엉망진창이 된 얼굴을 스윽 닦아냈다. 자신이 했던 말로 공격을 당하자 헥터는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분노했다.

“이…. 비겁한 자식들…!!”

뒤를 이어 그녀는 품속에서 약병이 휘감긴 채찍을 꺼내 내게 휘둘렀다. 어깨를 움츠리며 피하려던 나는, 무게 중심이 쏠려 중심을 잡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리고 채찍의 끝에 달려 있던 약병이 내게 날아들었다.

“…!”

콰앙! 하고 폭발이 일어났다.

머리가 휘날리는 감각에 나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하지만 뒤를 이어, 충격이 없어 조심스럽게 눈을 뜨자 판초를 펼친 채 서있는 모드레드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런 시대입니다. 안타깝게도.”

“모드레드…?”

나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모드레드가 둘이었던 것이다.

“인간은 재킷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거죠.”

멀리 서있는 그녀와, 가까이서 지키듯 서있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지는 것을 느꼈다.

“…. 칫.”

그런 모습에 헥터가 골치 아프다는 듯이 혀를 찼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모드레드는 쓰러진 나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어쩐지 자유로운 기분이군요. 그토록 붙들어 매놓았던 것을 풀어주어 버리니. 상쾌합니다.”

“젠장, 지금껏 실컷 고생시킨 만큼 일하라고….”

“좀 더 예쁜 말을 쓸 수는 없습니까?”

“이렇게 대단한 걸 보여주면 기대할 수밖에 없는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헥터를 포위한 채 서있는 모드레드‘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뒤로 돌아서 판초를 펼쳤다.

“클라렌트.”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단검이 걸린 채였다.

‘내세워진 자’의 검이.

========== 작품 후기 ==========

사악한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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