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편
<-- Chapter 4 : 파륜의 기사 -->
◇
헥터의 제안은 간단했다.
“내가 승리하면 해독제를 받는다.”
“그리고 제가 승리하면… 이 약을 맞아주셔야겠어요.”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녀는 약물이 든 주사기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이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모드레드가 맞은 약과 같은 종류인가?”
“아뇨, 그보다 열 배는 효과가 강한 약이에요.”
“내게 목줄을 채워두려는 셈이군.”
“후후, 재킷을 벗으면 사라지는 가짜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잖아?”
“그렇기 때문에 목줄로서 기능을 하는 거죠.”
헥터는 사악하게 웃었다.
맞은편 테이블에 앉아, 그녀는 흥정이라도 하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앞머리를 매만지며 다시금 녀석이 한 제안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헥터는 협상 같은 쪼잔한 짓보다는 서로 가지고 싶은 것을 취하는 편이 낫지 않겠냐고 이야기를 했다.
공정하고 즐거운, 서로의 감정이 상하지 않는 게임을 통해서 말이지.
내가 승리하면 해독제를 받는다.
그리고 헥터가 승리하면 추가적으로 내가 마약에 중독된다. 행여나 데이터의 복사본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 사람을 못 믿는 성격이군.”
“정확히는 ‘적’인 그쪽을 못 믿는 거죠.”
“타당해.”
“어머나, 감사합니다.”
결국 그런 말이었다.
헥터가 바라는 것은 총 두 가지. 내가 약을 맞는 것. 그리고 데이터를 돌려받는 것이다. 혹시 복사본을 준비해두었을까 우려해 보험을 심어두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순했다.
게임에서 승리해 해독제를 받기만 하면 되니.
“좋아 그럼, 어떤 게임으로….”
“그야 물론, 카드죠.”
요염한 동작과 함께 그녀는 테이블 위에 카드를 흩뿌렸다. 하지만 어질러지는가 싶던 그것들이 한데 뒤섞여 허공으로 떠올랐다.
“포커?”
“아뇨~ 요새 누가 그런 촌스러운 게임을 해요.”
헥터가 고개를 내젓고 이내 풍경이 뒤바뀌었다.
“….”
나는 그것을 눈썹을 찌푸린 채 지켜보았다. 테이블이 사라지며 눈앞이 검게 변했다. 반대편에 앉은 헥터가 부드럽게 미소를 짓는 모습에 나는 뒤쪽에 넬이 서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잠시 후, 빛이 돌아왔다.
그와 동시에 녀석의 발밑에서 부글거리며 무언가 솟아올랐다. 딱딱하게 연마된 듯한 녹색의 피부를 지닌, 네 발이 달린 짐승이었다. 거대한 파충류 같은 그것의 위에 헥터는 아무렇지도 않게 중심을 잡고 앉았다.
등받이와 팔걸이가 만들어졌다.
“요새 가상 세계에서는 ‘프레데터’가 유행이죠.”
“프레데터…?”
“아, 혹시 룰을 모르시나요.”
“그건 아닌데. 지금 분위기에 적응이 잘 안 되서.”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중얼거렸다. 거대한 파충류는 얌전히 자리에 엎드린 채였지만 그래서 더욱이 시선을 잡아끄는 듯했다.
“후후, 기왕 하는 거 재밌는 게 좋잖아요?”
헥터는 여유롭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검은 코트가 꼬리가 긴 턱시도로, 거기에 실크햇에 외눈 안경이 그녀의 모습을 치장했다.
“기왕 하는 거 즐겁게 해보죠.”
“…. 이쪽은 그대론데 말이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보란 듯 녀석의 앞에 재킷을 드러냈다. 어쨌든 그 화려함을 통해 심리적 압박감을 걸려는 수작은 알겠지만. 천박했다.
“그럼, 게임을 시작할….”
“잠깐 그 전에.”
허공에 떠오른 카드를 바라보며 나는 말을 끊었다.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헥터의 모습에 나는 뒤쪽에 있던 넬을 손으로 가리켰다.
“딜러는 이 녀석이 맡는 걸로.”
“…. 흐음.”
“뭐 문제라도?”
“아뇨, 역시 타나토스 당신의 펫이었나 싶어서.”
“동료지, 동료.”
“불쌍하게도,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는군요.”
“언제부터는 됐었다고.”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머뭇거리며 서있던 넬이 이내 헥터를 경계하듯 노려보며 내 귓가에 말을 속삭이기 시작했다.
“괜찮을까요?”
거기에 나도 귓속말로 응수했다.
“헥터가 분명 무슨 짓을 할 거야.”
“아, 그럼 넬이….”
“부탁해.”
곧바로 생각이 맞아떨어졌다.
“그, 그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넬이 헥터와 내 사이에 섰다.
검은 공간이 이어진 가운데 카드패가 뒤섞여 허공에 떠올랐다. 그리고 넬이 가볍게 팔을 휘두르자 카드 더미에서 패가 나와 헥터와 내 손에 쥐어졌다.
프레데터는 현실과 가상이 융합되며 만들어진 게임이었다. 준비된 카드로 족보를 만들어 상대보다 먼저 몬스터를 소환하고 그 몬스터로 상대를 공격하는.
말하자면 조그마한 전쟁이라고 볼 수 있겠지.
“아, 말씀드리는 걸 잊었는데요.”
카드를 살펴보고 있을 무렵, 헥터가 고개를 들었다.
“가상에서 이루어지는 프레데터는 좀 특별한데, 거기에 대해서는 잘 알고 계시죠?”
“…?”
“더군다나 재킷을 입은 저희에게는 더더욱.”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헥터.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하지만 뒤를 이어 넬이 게임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
콰앙!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온통 검던 세계에 빛이 찾아들어, 숨을 몰아쉬던 나는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조금 불길한 예감에, 나는 테이블 위를 집으며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윽….”
안으로 들어선 것은 모드레드였다.
내 모습을 본 그녀가 안색이 창백해져 신음을 뱉었다. 괴로운 듯 가슴을 움켜쥔 채 서있던 모드레드는 이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그리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이건 조금 예상치 못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완전히 피투성이가 된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니 뒤를 이어 분노에 차 헥터를 돌아본 모드레드가 품안에서 검을 내던졌다.
하지만 제대로 된 몸 상태가 아니었던 터라 그 동작은 느리기 짝이 없었다. 헥터의 주변에 가득 늘어서있던 파충류 중 하나가 날아드는 검을 쳐냈다.
“프레데터…?”
게임에 대해 알고 있는지 모드레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뒤를 이어 그 사이에 왕처럼 군림하고 있던 헥터가 비릿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맞아. 지금 진행 중이어서.”
“당신…! 왜 또 혼자…!”
모드레드가 분노로 뒤섞인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그녀가 오는 것은 전혀 상정해두지 않았던 상황이기에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넬을 돌아보았다. 몇 번이고 게임 진행을 포기하려고 했던 녀석이 그 시선을 피했다.
싸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는데.
항상 엉망이 되어버린다는 자각이 있어서.
“…. 물러서있어.”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모드레드를 옆으로 밀어냈다. 뒤를 이어 헥터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머리 위로부터 거대한 철창이 떨어져 모드레드를 가뒀다.
“타나토스 씨!!”
“방해꾼도 치워뒀으니, 계속 진행할까요?”
“…. 그래.”
상황은 좋지 못했다.
이 게임은, 가상 세계에서 이루어질 때 공격과 동시에 상대의 몸에 상해를 남기는 설정이 가능했다. 지금 헥터와 하고 있는 게임에서는 그 설정이 최대치로. 거기에 내 경우에는 이런 상해가 재킷을 통해 현실과 거의 동일한 통증으로 증폭되어서 들어왔다.
덕분에 온몸이 처참하게 베여 그 통증이 아주 제대로 느껴졌다. 정신이 아찔해지고 출혈에 따라 현기증이 생겼던 터라 나는 몇 번이고 바닥에 쓰러질 뻔했다.
하지만 패배하지는 않았다.
아직 게임은 진행 중이었다.
“그럼…. 다시 패를 섞겠습니다.”
넬이 계속해서 게임을 진행했다.
“타나토스으으으으으!!”
“하아, 뭐 영화 찍나 몰라.”
모드레드의 비명에, 뒤를 이어 헥터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뒤섞여 들어온 패를 바라보고 있던 나는 피투성이가 된 카드를 땅에 내려놓으며 피식 웃었다.
“넌 절대 모르겠지.”
“애초에 이런 상황이 싫거든요.”
“어떤 상황이?”
“감정적으로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게…?”
그녀가 카드를 바라보며 뽑아 낮은 레벨의 파충류를 필드에 소환했다. 그르릉 거리는 낮은 울음소리에 전투를 지켜보던 넬이 신음을 흘렸다.
“….”
나 역시 거기에 지지 않고 몬스터를 소환했다. 뼈로 이루어진, 스킬로 소환하는 망자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총 10턴. 카드는 원하는 만큼 계속 가져올 수 있지만 남겼을 시에는 패널티로 작용한다.
어쨌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거지만, 헥터는 뭔가 더러운 수를 쓰고 있다. 무슨 수단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그렇게 턴이 끝나고, 두 진영이 서로 맞붙었다.
“크윽…!”
별달리 몬스터를 모으지 못한 내 진영이 처참하게 패배했다. 그리고 남은 몬스터들이 내게 달려들어 목덜미와 팔과 다리를 물어뜯었다.
“윽…!”
차마 보지 못하겠다는 듯 철창에 매달린 모드레드가 고개를 돌렸다. 목덜미에 달라붙은 몬스터들이 한껏 상처를 내고 이내 희미해져 모습을 감췄다.
“이로서, 당신의 패배로군요.”
이어진 헥터의 선언에 나는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치? 딜러 아가씨.”
“네…. 헥터님의 승리입니다.”
넬이 거의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뒤를 이어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온 헥터가 주사기를 들었다.
“뭐, 솔직히 말해 별 거 아니었네요.”
“그, 그만…!”
철창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든 나는 반쯤 악을 쓰듯이 쇠기둥 사이를 빠져나오려는 모드레드의 모습을 발견했다.
“어머나, 이게 규칙이었는걸.”
그리고 역시나, 헥터는 가학적인 얼굴로 그것을 감상하듯 바라보았다. 그리고 뒤를 이어 녀석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내 재킷을 벗게 했다.
“와아, 이거 단단해서 바늘이 들어갈까 모르겠네요.”
살이 드러난 것을 보고 녀석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 그 전에.”
“네?”
“다음 승부를 정해두지.”
“할 수 있을까요? 약이 한 번 듣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분간이 되지 않을 텐데…. 한동안 죽을 정도로 강력한 쾌감이 몸을 감쌀 거예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좋아요. 전 데이터를, 그리고 당신은 해독제를 받는 걸로 하면 될까요? 물론 1인분만.”
“그렇게 하지.”
“좋아요. 그럼, 주입하겠습니다아~.”
여유롭게 웃으며 이야기한 헥터가 내 팔뚝에 주삿바늘을 꽂아 넣었다. 따끔한 감각과 함께 나는 주사기의 약물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체내에 퍼지려면 좀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아 설마, 그때까지 게임에서 승리하시겠다는 전략을?”
그런 나를 비웃으며 헥터는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넬과 뒤쪽에서 분한듯 철창을 뒤흔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두 번째 게임을 시작해볼까요. 아마 이게 마지막 게임이 되겠지만.”
다시금 카드가 세팅되기 시작했다. 뒤쪽의 모드레드가 괜히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나는 이내 결심을 마쳤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넬.”
“네, 네넬….”
“지혈을 부탁해.”
써걱, 하는 소리가 들렸다.
품안에서 빠져나온 스파다가, 약물이 스며들어있던 오른팔을 어깻죽지로부터 깨끗이 잘라낸 것이다.
“크윽…!”
피가 치솟으며, 나는 다시금 무릎을 꿇었다.
“타, 타나…!!”
“주인님!!”
“….”
중심을 잡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지려던 나는 넬의 부축을 받아 버텨냈다. 역시 있던 게 없어지니 곧바로 그 영향이 느껴졌다.
“이래선 안, 된다는 법은… 없지…?”
그리고 나는 비릿하게 웃었다.
“당신, 정신 나갔어….”
역시나, 헥터의 얼굴에서 여유가 싹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