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재킷-200화 (200/321)

200편

<-- Chapter 4 : 파륜의 기사 -->

물론 나오라고 한다고 해서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나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건, 뭔가! 좀!”

나는 놀라 소리를 지르며 눈앞에서 몇 번이고 휘둘러지는 장도리를 피했다. 그리고 이내 망치를 휘두르던 녀석이 지친 듯 거칠게 숨을 몰아쉬자 나는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주먹을 날렸다.

“커헉!”

빠각,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정장의 사내가 나가떨어졌다. 장도리 끝이 코의 바로 앞을 스쳐 나는 하마터면 따일 뻔(?)했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손님들은 대부분 방에 숨었다. 즉, 눈앞에 있는 것은 소위 말해 ‘바운서’들로 보이는 남자들뿐이었다. 뭐, 가상 세계인 만큼 실제로 취객들을 처리하거나 할 리는 없고 그저 분위기를 내기 위한 용도인 것 같았지만.

생긴 것도 제각기 다양했다. 사람부터 시작해 각종 맹수의 머리를 달고 있는 짐승들이 나를 둘러싼 채 위협을 가해오고 있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채로.

그리고 그 중 하나가 달려들었다.

“크아아악!!”

아니 둘, 셋이다.

맨 처음 달려드는 사자 머리의 바운서에게 나는 가볍게 펀치를 날렸다. 짧은 순간 녀석의 몸이 비틀거리며 나는 곧바로 돌진해 어깨로 들이받았다.

“큭!”

거기에 말려들어 뒤쪽에서 달려들던 바운서들까지 뒤엉켰다. 중심에 완전히 파고들자 바운서들이 당황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니들 주인 불러오라고 했잖냐.”

그리고 나는 그 중심에서 날뛰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 자식!”

물론 녀석들 역시 바보는 아니라 거기에 대응했다. 하지만 큰 덩치가 오히려 해악이 되어 나는 허리를 낮춘 채 이리저리 빠져나가며 차례차례 쓰러뜨려 나갔다.

열 명이 넘던 바운서들이 순식간에 쓰러졌다.

“후우….”

마지막으로 강렬한 하이킥을 올려붙였던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중심을 잡았다. 축을 두었던 발을 비틀며 내려서고 주변을 둘러보며 완전히 박살난 클럽의 내부를 확인했다.

“주인니임….”

바로 그때, 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뒤를 돌아보려던 나는 이내 경계를 늦추지 않고 중얼거렸다.

“아직 나오지 마.”

“아니 그럴 생각이었는데요오.”

“…?”

조금 당황한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이,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가까이 오지 마!”

어색하게 웃는 넬을 붙잡은 바운서의 모습이 보였다. 볼이 축 늘어진 흉악한 인상의 불독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지금 완전히 겁에 질린 채 깨진 병을 넬의 목에 들이댔고 나는 자리에 멈춰 섰다.

불독은 계속해서 나를 위협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이 여자는…! 깨갱!”

장도리를 던지자 조용해졌지만.

“히이익….”

“괜찮아?”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는 넬을 보며 나는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하지만 녀석은 울먹거리는 얼굴로 나를 원망스러운 듯 바라보았다.

“너무해요!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고요!”

“아, 아니….”

“이 무신경한 사람!”

“….”

할 말이 없군.

조금 당황하고 있자니 손을 잡고 일어선 넬이 내 재킷에 코를 풀었다. 빼앵! 하는 소리와 함께 나를 기가 밀린다 싶을 정도로 강하게 노려보았다.

찝찝한 게 묻지는 않았지만 찝찝하다.

“흥!”

그러더니 소파 뒤에 모습을 감추는 넬. 새하얀 머리칼이 삐죽 튀어나오는 모습을 보며 어색하게 웃은 나는, 곧이어 몸이 움찔 떨리는 감각을 느꼈다.

“….”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헥터가 서있었다.

“으음~ 협상을 하러 온 거 맞죠?”

녀석이 너스레를 떨었다.

오늘은 제대로 해볼 생각인지 검은 코트 차림이었다. 어깨에 살짝 닿는 금발을 하나로 묶은 채 그녀는 천천히 나를 향해 다가왔다.

“아주 화려하게도 해주셨군요….”

“조금 조용한 편이 좋아서 말이지.”

뇌까리듯 중얼거린 나는 헥터의 반응을 살폈다. 바운서들이 여기저기에 뒤엉키며 엎어진 모습을 둘러보던 녀석이 이내 가까이 다가왔다.

“안쪽으로 가시죠.”

“…. 아까 손님들이 들어가서 문 걸어 잠그던데.”

“제 개인 방이 있으니.”

조금 목소리가 딱딱해졌다.

아무래도 내가, 한껏 여유를 가장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걸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헥터는 분노를 감추듯 등을 휙 돌리고 나를 이끌었다.

다시금 안쪽의 긴 복도를 지나, 나는 헥터의 뒤를 따랐다. 시끄러운 음악이 사라진 상태에서 우리는 가장 안쪽에 있던 어두운 방안으로 들어섰다.

일단 눈에 들어온 것은, 얼기설기 기워진 듯한 테이블이었다. 반으로 베인 흔적이 남아 있어 나는 가볍게 눈썹을 찡그리며 소파에 앉았다.

“그럼,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요.”

“그렇게 말한다는 건 해독제가 있다는 거겠지.”

“이제와서 숨길 생각은 없다고요? 후후.”

다시금 여유로운 태도다.

가볍게 웃은 헥터가 품안에서 조그마한 약병을 하나 꺼내들었다. 투명한 액체가 담긴, 곧바로 주사기로 약물을 끄집어내 쓸 수 있는 그런 병이었다.

“신기하지 않나요?”

그리고 헥터가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저희는 ‘가상 세계’에 있죠. 그렇기 때문에 이 해독제는, 당신과 제 뇌가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의 데이터를 읽어 들이는 과정에 불과해요.”

“갑자기 무슨 소리야…?”

“결국 실존하지 않는다는 거죠.”

녀석은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하지만 모드레드는 확실히 금단 현상을 겪고 있을 거예요. 오한과 발열, 손이 심하게 떨리고 성욕이 들끓겠죠. 몸을 수천 개의 바늘로 쿡쿡 찌르는 느낌일 걸요.”

“….”

“물론 재킷을 입은 상태에서, 그게 뇌를 비롯한 신체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죠. 그래서 사실…. 이렇게 협상을 한다고 모인 것 자체가 좀 우습지 않나요?”

재킷을 벗을 수 없는 것도 아니고.

비릿하게 웃은 헥터가 이내 테이블 위를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그러자 그 위에 거품 같은 게 부글부글 끓으며 보랏빛의 액체가 담긴 잔이 피어올랐다.

내 앞에도 마찬가지로.

“어차피 다 가짜인데.”

“…. 확실히, 그래서 편하긴 하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가볍게 잔을 쳐냈다. 벽으로 날아간 그것이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깨졌다.

“어머나.”

하지만 이내, 다시 땅에 스며들듯 눈앞에서 사라졌다. 흔적이 완전히 지워진 모습을 보며 나는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조심해야하는 것이고.”

“후후, 한 마디를 안 지려고 하시네요.”

“자기가 가장 미쳐있는 주제에 남 보고 가짜라고 하는 성질 더러운 여자는 참을 수가 없거든.”

나는 지지 않고 받아쳤다.

그러니까 헥터는 모드레드를 조롱한 것이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해도, 몇 번이고 적대했을 상대가 이 세계에서 망가져가는 모습을 보며 고작 가짜를 가지고 저렇게 부서지는 거냐고 비웃은 거겠지.

하지만 그것은 헥터 자신에게도,

또한 우리 모두에게도 통용되는 말이다.

“그래서…. 무슨 거래를 제안하고 싶은 거지?”

“그 전에 일단, 정말로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헥터의 말에 나는 눈앞에 팝업창을 띄우고 트리슈가 가져온 데이터를 꺼내서 보여주었다. 그것을 가져가 확인한 헥터는 이내 빙긋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제가 여기서 이걸 확 가져가버리면?”

“물론…. 복사본도 있어.”

나는 당연한 말을 중얼거렸다.

“저로서는 그게 걸린단 말이죠.”

“우리에게 확실하게 복사본이 없는지?”

“네, 그래서…. 게임은 어떠신지요.”

헥터는 품안에서 다른 것을 하나 꺼내들었다.

약물이 담긴 주사기다.

“…?”

“저도 보험을 하나 정도는 심어두고 싶으니까요.”

그 손에 담긴 주사기가 위협적으로 빛났다.

금방 잠이 깨버렸다.

배가 가득차서 그런 것일까.

아까 맛있다고 고구마를 막 먹는 게 아니었는데.

하지만 다음 고구마가 호박인지 밤인지가 궁금해져버려서…. 어쩐지 멈출 수가 없었다.

“후우.”

결국 눈을 떴다.

어둠에 잠긴 방안에는 별빛이 쏟아지고 있다. 커튼을 쳐놓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방의 주인이 얼마나 부지런한지를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

자신은 바닥이 좋다며 유하는 기어코 침대를 양보해주었다. 옆으로 누운 채 있는 유하의 단정한 얼굴을 바라보던 모드레드는 이내 침대에서 일어섰다.

낡은 매트리스에서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얼마나 오랫동안 쓴 것일까 세월의 때가 고스란히 묻은 모습에 그녀는 조심하자고 생각했다.

복도로 조심스럽게 빠져나왔다.

근래 들어 이곳에 머무르게 되었으나, 사실 이렇게 혼자가 된 것은 처음이었다. 어두운 복도를 돌아보던 모드레드는 이내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계단마저 삐걱거린다.

대체 얼마나 오래된 집…. 이자 가게인 걸까.

유리창이 비추는 가게 안을 둘러보던 모드레드는 이내 다시 2층으로 올라왔다. 조금 걷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딱히 갈 곳이 없다는 자각이 들었던 것이다.

“….”

고민을 하던 그녀는 힐끔 눈을 돌려 타나토스의 방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밤중에 갑자기 들어가는 건 조금 무례한 행동이지 않을까.

아니 그렇게 치자면….

애초에 해버린 시점에서 좀 그렇지 않을까.

하고 싶지도 않아 하는 사람을, 약에 절은 몸으로 괴롭게 만들었다는 기분이었다. 그런 것치고는 그 역시 조금 즐거워 보였던 것도 같았지만…. 착각이겠지.

저렇게 예쁜 사람하고 같이 사는데.

아니, 왜 이런 고민을 하는 걸까.

“….”

스스로 조금 질투를 해버렸다는 감각에, 모드레드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감정에 대한 자각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갑작스레 날아든 감정에 자신이 도리어 제일 놀라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음….

사무적인 관계일 뿐이고.

그런 건 자신에게 있을 수 없는 감정이고.

필요하지도 않고….

그런 식으로, ‘비효율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며 머뭇거리던 모드레드는 이내 욕망을 이겨내지 못하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닫혀져 있는 타나토스의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

그 역시 별빛의 아래에 잠든 채였다.

셔츠를 벗고, 가벼운 반바지 차림이었다. 깊게 빠져든 건지 고개를 슬쩍 돌린 채 드러나는 턱선이 눈부셨다.

“윽….”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영문을 모르겠다.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모드레드는 멍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욕망을 이겨내지 못하곤 조심스럽게 다가가려던 순간,

“…?”

눈앞에 메시지가 하나 떠올랐다.

넬로부터였다.

눈앞에 푸른빛을 띈 팝업창이 빛나고, 그녀는 이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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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벌써 200화가.....

인데 한 4분의 2.5정도 온 느낌입니다.

앞으로 남은 분량...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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