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편
<-- Chapter 4 : 파륜의 기사 -->
◇
디멘션 커넥터를 통해 영상을 촬영하는 일은 현 세대에 이르러 기억을 남겨두는 일이 되었다.
신체를 중심으로 전 방향을 스캔하도록 설계된 귓바퀴의 장치가, 사용자의 뇌파를 읽어내 의식하는 영역을 집어내는 것이었다. 그것을 통해 하나의 기억처럼, 촬영하는 사람의 의식이 저장되는 것이다.
딱히 정신이 멀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
그저 눈앞의 풍경이 뒤바뀔 뿐이었다.
불길이 피어오르던 드럼통에 조금씩 배경이 덧씌워졌다. 나는 그것을 조금 긴장한 채, 하지만 그것을 티내지 않으려 들며 지켜보았다.
시멘트로 된 바닥을 새하얀 눈이 물들였다.
“여기는….”
“안데스 산맥입니다.”
조금 괴로운 걸까.
애써 무뚝뚝하게 중얼거린 모드레드가 천천히 내 옆으로 더 다가왔다. 나는 긴장한 티를 숨기려는 그녀의 손을 슬며시 움켜쥐었다. 평소라면 떨쳐냈을 모드레드는 긴장했는지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다른 모드레드가 있다.
“4년 전입니다.”
“…. 12살 때?”
“영상의 소리는 죄송합니다만 끄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모드레드가 곧이어 괴로운 표정을 애써 참듯 나를 올려다보았다. 왜, 라고 물으려던 나는 이내 그 의미를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칼 후퍼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조금 뒤쳐진 모드레드에게.
도무지 12살의, 자신의 딸에게 하는 행동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이고 소리를 지르던 칼 후퍼는 곧이어 가까이 다가가 모드레드의 뺨을 후려쳤다. 아버지의 배 이상 되는 짐을 든 모드레드가 눈 위에 쓰러져 괴로운 듯 몸을 떨었다.
“어린 딸을 데리고 산맥을 등정한다는 정신 나간 남자를 도와줄 현지인은 없었죠.”
“왜 저런 곳에?”
“모드레드 퀘스트의 마지막 목적지였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아버지는 엘레노어를 ‘이해’하려고 하셨으니까요.”
그렇게 중얼거린 모드레드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래서 그것을 증명하고 싶으셨던 겁니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지금보다 배는 조그마한 모드레드는 등에 진 짐에 짓눌린 채 아버지를 따라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칼 후퍼는 광기에 물들었다.
제멋대로 기른 수염이 얼어붙고 억센 모자와 방한복을 빠짐없이 갖춰 입어 얼굴이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그 가운데 안광만이 첨예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어째서 가상의 세계로 도망쳤는가. 왜 자신을 버리고, 한성진과 함께 떠나갔는가. 계속해서 고민한 끝에 그런 결론을 내리셨죠. ‘아서리안’을 통해 그녀를 이해하면 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래서 너를…?”
“네, 저를 앞세워 게임을 플레이하셨죠.”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나는 멍한 채 칼 후퍼와 모드레드의 모습을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새하얀 눈으로 물든 산을 올라 두 사람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엘레노어가…. 인간의 어떠한 의식 체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이러한 일을 벌인다는 생각을 하셨죠.”
그 모습을 모드레드는 씁쓸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 생각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가 죽어야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무슨 소리야…?”
“모드레드는 자신의 아버지, 아서왕에게 반역한 기사였습니다. 그러니 딸인 클레어 후퍼가 아버지를 죽임으로서 모드레드로 완성이 된다고 생각하셨죠.”
그리고 그건 의식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그건….”
미친 소리다.
“아버지는 그로서, 스스로가 엘레노어를 이해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모드레드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입술을 비틀며 웃은 그녀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었습니다.”
퀘스트 지역에 도달하자 모드레드는 짐을 내려놓고 거대한 몬스터와 싸우기 시작했다. 털로 몸이 뒤덮인 거대한 맹수와 싸우는 12세의 딸을, 아버지는 먼 곳에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아버지는 한 가지를 모르고 계셨습니다. 모드레드는 아서왕을 죽인 게 아니었다는 것을.”
“….”
“단지 치명상을 입혔을 뿐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인 아서왕의 검에 심장이 찔려서 죽게 되었죠. 전설상으로는.”
그렇게 이야기한 모드레드는 눈썹을 잔뜩 찡그린 채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저는 단지, 모드레드의 ‘반역’으로서의 상징을 따왔을 존재일 뿐이라는 겁니다.”
“그게 무슨….”
“아버지, 칼 후퍼는 자신을 아서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그는 도리어, 모드레드라는 기사와 협력해 ‘반역’을 이루려는 남자였던 겁니다.”
왜냐면 칼 후퍼는 클레어를 자신의 딸로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그는 아서왕이 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고 자신이 죽음으로서 딸이 모드레드가 되면 엘레노어를 이해한다는 것이 증명된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 증명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엘레노어를 이해하되, 그는 자신과 딸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 윽.”
“모드레드…!”
괴로운 듯 심장을 움켜쥔 모드레드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놀라 부축하자 모드레드는 길게 숨을 몰아쉬며 고통스러운 얼굴로 눈앞을 바라보았다.
몬스터가 쓰러졌다.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선 자신의 딸을 향해 칼 후퍼는 달려들었다. 그녀를 넘어뜨리고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괴로워하는 모드레드.
칼 후퍼가 무어라 거기에 계속, 소리를 지르고.
모드레드가 자신의 단검을 들자,
거기에 칼 후퍼는 스스로의 가슴을 밀어 넣었다.
“보지 마.”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모드레드의 눈을 가렸다. 내 팔에 괴로운 듯 매달린 채 모드레드는 말을 이었다.
“아버지는, 의아해했습니다. 자신이 죽어가면서도 어째서 자신의 딸이 모드레드가 되질 못했는지.”
칼 후퍼는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
“하지만 제 의식은…. 분명히 변화했습니다. 아버지의 생각대로. 엘레노어의 의지가 이끄는 대로. 본인은 그걸 알지 못한 채로 죽었지만.”
괴로운 듯 과거의 모드레드가 울부짖었다.
거대한 몬스터를 베어 넘기며….
“저는 반역을 결심했습니다.”
“….”
“그리고 클레어 후퍼는, 사라졌죠.”
영상이 끝나며 우리는 다시금 현실로 돌아왔다. 장작불이 피워진 드럼통과 옥상이 다시금 시야에 들어와 나는 떨고 있는 모드레드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래서…. 그걸 위해서만 살아가기로 한 거냐?”
자신의 반역을 위해?
“원망하고 있으니까요.”
“엘레노어를….”
“그리고 제 가족이었던 사람들을.”
그렇게 중얼거린 모드레드는 이내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조금 연약해진 그녀를, 나는 안아주었다.
“하지만 이상한 기분이군요.”
뒤를 이어 조금 젖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에게 말을 하여, 마음이 편안해질 줄이야.”
“…. 그건 당연한 거잖냐.”
“저는 그 당연한 걸 몰랐던 겁니까?”
배우지 못했다.
아무도 그것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광기로 인해 그것은 어느 순간부터 마음을 좀 먹어갔다. 모드레드를 게임의 캐릭터로서 만들었다.
재킷을 벗을 수 없다.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다.
“그래, 이 멍청아.”
“…. 자꾸 멍청이라고 하지 마십시오.”
모드레드는 볼멘소리를 중얼거렸다. 그리고 조금은 진정한 것일까. 내 가슴을 밀어내 조금 떨어진 그녀가 씁쓸하게 웃으며 드럼통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더 그런 주제에.”
“내가?”
영문을 몰라 되물었다. 그러자 곧이어 모드레드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가셨다. 그녀는 몇 번이고 무슨 말을 하려다 망설이고 그 끝에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냐면 당신은 아무 이유도 없이….”
얼굴이 조금 붉어진 채,
“고구마를 태우고 있으니까.”
모드레드는 드럼통을 손으로 가리켰다.
“뭣…?!”
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까부터 어디선가 탄내가 난다 싶더니 설마….
드럼통 앞으로 다가간 나는, 집개를 들어 내부를 휘저었다. 타닥거리며 불꽃이 튀고 나는 그 안에서 까맣게 타버린 고구마를 꺼내들었다.
“화력이 너무 강한 것 같더군요.”
뒤에서 모드레드가 놀리듯 목소리를 냈다.
“후후….”
그리고 뒤를 이어, 소리를 내 웃었다.
◇
가상의 세계가 다시금 눈앞에 펼쳐졌다.
“그러고 보니….”
어둡고 조용한, 또한 음침하기 짝이 없는 거리에 내려서 나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러자 뒤를 이어 나와 함께 이 세계에 내려앉은 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아니, 그래서 조금 즐거워했던 건가 싶어서.”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질척하고 어두운, 달조차 구름에 가려진 녹색의 거리는, 몇 번이고 말했지만 산업화시대의 영국 같았다.
모드레드가 태어났던.
물론 그녀가 살던 도시는 이런 풍경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평화로웠지만, 동화 같은 곳에서 접했던 과거의 영국을 떠올렸던 거겠지.
“흐음…. 모디님이요?”
“그래, 너도 느꼈어?”
“헤헤.”
넬은 대답을 하는 대신 쑥스러운 듯 웃었다.
어쨌든 우리는 다시 여기에 도착했다.
가상의 세계에.
딱히 연락은 해두지 않았지만 그쪽 역시 언제든 내가 방문할 거라는 사실은 기억해두고 있을 터였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나는 그대로 재킷 차림인 채 거리를 걸어 마커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었다.
“으음….”
“왜 그래?”
불안한 듯 뒤를 돌아보는 넬의 모습에 물었다. 그러자 녀석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
싱거운 녀석.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약간 걸음을 재촉했다. 이족 보행을 하는 동물들을 지나 붉은 빛을 발산하고 있는 거리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말 그대로 홍등가로군.
“오빠, 놀다가.”
“잘해줄게.”
안으로 들어서자 빼다 박은 듯한 지리멸렬한 말이 이어졌다. 분명히 인공지능이겠지만 나는 눈웃음을 지으며 교태를 부리는 여성들의 모습에 인간과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을 느꼈다.
“암고양이한테 깨물려봤어?”
뭐…. 특정 이상성욕자들을 노리고 만든 듯한 털 달린 동물들도 있기는 했지만.
어쨌뜬 그런 분위기였다.
영화나 만화 같은 곳에서 나오는 홍등가의 분위기를 그대로 빼다 박았다.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이 모조리 가면 같은 것을 쓴 채라 나는 재킷을 입고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도착했다.
섹스앤드러그.
“지리멸렬하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네온사인처럼 촌스러운 그것이, 산업화시대의 영국이라는 분위기와 맞지 않게 빛나고 있다.
“넬, 조금 떨어져 있어.”
뒤쪽에 서있던 넬에게 이야기하고,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스피커를 찢고 박살을 내는 듯한 음악에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검은 복도를 걸어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손….”
그리고 안쪽에서 곧장 모습을 드러내는 사내에게 호쾌한 펀치를 먹였다.
투콰앙! 하는 폭음에 가까운 소리와 함께 사내가 뒤쪽으로 나가 떨어졌다. 나는 그러는 사이 내부의 구조를 면밀하게 살폈다.
완전히 난교 클럽이군.
남녀들이 한데 뒤섞여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마음에 들면 들어가 마구잡이로 몸을 섞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금의 펀치로 튕겨져 날아간 사내가 그들 사이에 파문을 일으키며 떨어져 내렸다.
음악이 뚝 끊어졌다.
“니들 주인 나오라고 해.”
나는 주먹을 뚜둑 꺾으며 위협하듯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