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편
<-- Chapter 4 : 파륜의 기사 -->
◇
“하아, 회장님께 무슨 말버릇입니까.”
비좁은 방안, 전화를 끊고 침대 위에 털썩 주저앉은 모드레드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놀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뭘 했다고?”
“아뇨, 으음….”
하지만 녀석 역시 제대로 된 비난거리는 찾아내지 못한 듯싶었다. 밤이어서 날이 좀 쌀쌀해졌기 때문일까. 어깨에 검은 판초를 두른 그녀가 나를 노려보았다.
“바보.”
그리고 무척이나 원색적인 비난을 했다.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불만스럽다는 눈으로.
“너무 의지할 순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거기에, 나는 진심을 이야기했다.
“단호하게 쳐내는 것처럼 들렸다면 사과할게.”
“아, 아니 그러실 필요까지는….”
당황한 모드레드가 손사레를 쳤다.
하지만 모드레드의 지적으로 말이 좀 거칠었나 싶었던 것과는 달리, 마음에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우리의 상황도 문제기는 했지만 돌파구가 없지는 않았다. 헥터 개인의 행동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고객의 정보를 저장해두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의 사회적 파장은 꽤나 클 터였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굳이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굳이 상황에 대해 보고를 하지 않은 이유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회장은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에.
“할 킬러즈 놈들 제대로 할 생각이던데.”
“…?”
반쯤 혼잣말인 이야기를 하자 모드레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슬쩍 앞머리를 매만지며 팝업창을 띄우고 뉴스 기사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이런 뉴스들이 많더라고.”
그리고 보여주었다.
우한 그룹과 관련되어, 며칠 전부터 계속해서 나고 있던 뉴스 기사들을.
“이건….”
그것을 본 모드레드가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몇 년간 이어진 이 ‘아서리안 사태’의 조속한 해결과 안정화를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서 우한 그룹에 기술 협조를 요청한다는 기사였다.
즉, 언론을 통해 직접 압박을 가한다는 말이었다.
여기에서 거절을 한다면 안 그래도 사태에 책임이 있는 기업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질 터였다. 거기에 거절을 할 명분도 없는 상황.
“이걸 회장이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렇겠죠.”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 모드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회장의 도움을 구하기는 힘들 거라는 말을 한 것이었다. 오히려 우리가 구석에 몰린 그녀를 도와야할 판이었다.
회장이 그쪽으로 넘어간다면 다음은 우리였기에.
“그래서 뭐, 딱히 말 안 해도 되잖아?”
나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모드레드를 바라보았다. 뉴스 기사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던 그녀가 이내 뭔가 신기한 것을 봤다는 듯 나와 눈을 마주쳤다.
“….”
잠깐 입을 다물고 있던 그녀는,
“대단하군요.”
빙긋 웃어보였다.
그런 모습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지는 걸 느꼈다.
이 녀석이 웃다니, 처음 봤다.
“확실히 나쁘지 않은 판단입니다.”
하지만 나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어린 외모에 걸맞는 순수한 미소에 나는 조금 짓눌리던 어깨가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그러자 모드레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무래도 너무 빤히 보고 있던 모양이라 나는 적당히 시치미를 떼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것도.”
“…. 머리는 만지지 마십시오.”
또 저렇게 무뚝뚝한 시늉을 하려 들자 놀리고 싶은 마음이 슬쩍 들었지만.
“그렇게 웃으니까 예쁘네.”
“예…?!”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평소에도 그러면 좀 좋잖냐.”
“사, 사람이 기껏 칭찬해드렸더니…!”
모드레드는 항의하듯 고개를 치켜들고 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내 그 얼굴에 당황하는 기색이 석였다.
“저, 정말로 웃었습니까?”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 그랬나.”
“….”
“왜?”
갑자기 입을 다문 모드레드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자 잠시, 뭔가 이상하다는 듯 자신의 볼을 매만진 녀석이 말을 이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스스로도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저기, 모드레드.”
그런 모습에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려던 순간,
“준! 준!”
갑작스레 문이 벌컥 열렸다.
“유하…?”
신이 난 기색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무언가 거대한 박스를 들고 있는 유하의 모습을 보고는 다가가 받아들었다.
그것은,
“고구마?”
였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
“깜빡하고 몇 달 전에 사둔 걸 잊었지 뭐에요!”
그렇게 말하는 유하는 신이 나 보였다.
“…. 과연 먹어도 되려나.”
나는 조금 회의적인 의견이었지만.
“후후, 아직 싹은 안 난 것 같지만…. 이런 걸 상품으로 내놓기는 좀 그러니 저희가 먹죠!”
즐거워 보이는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드럼통에 마른 장작을 더 넣었다. 조금씩 불길이 치솟으며 주변이 금세 따뜻해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넬이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너도 먹을 거지?”
“물론이죠. 헤헤.”
내가 그렇게 묻자 씨익 웃었지만.
“저, 여기….”
그리고 다음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나는 어색하게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쟁반을 든 모드레드를 발견했다. 그 쟁반 위에는 은박지에 싼 고구마가 가득했다.
“고마워.”
나는 가볍게 인사하며 쟁반을 받아 고구마를 넣었다.
단순한 분업이었다.
나는 불을 피우고 고구마를 굽는 역할. 유하와 모드레드는 그런 고구마를 은박지에 싸서 옮기는 역할.
“와, 불길이 마구 일어나네요!”
그리고 넬은 그걸 구경하며 먹는 역할이었다.
“…. 이렇게 태평해도 괜찮은 걸까 모르겠습니다만.”
허공에 흩날려, 서울 시내로 퍼져는 불꽃을 보며 모드레드가 중얼거렸다. 어이가 없다는 듯한 모습에 나는 불길 속으로 파고드는 고구마를 보며 말을 이었다.
“밤이 아니면 움직이기 힘들잖아.”
“아무리 그래도….”
“몸이라도 안 좋아?”
“그, 그런 건 아닙니다.”
내 물음에 모드레드가 흠칫 놀라며 물러섰다. 그리고 도망치듯 유하의 곁으로 돌아갔다. 그것을 유하가 반겨 두 사람은 다시금 고구마를 골라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옥상 난간에 기대어 섰다.
“넬.”
그리고 불꽃을 지켜보고 있던 넬에게 말을 걸었다.
“네넬?”
“이따 결판을 지으러 갈 거야.”
“…. 음, 헥터님하고요?”
“서포트, 부탁해도 되겠지.”
“무, 물론이죠!”
조금 부드러운 어조로 이야기하자 넬은 눈을 반짝이며 돌아섰다. 어쨌든 생각해둔 바가 있어 나는 가볍게 디멘션 커넥터를 조작하며 고구마가 익기를 기다렸다.
“아, 모드레드한테는 비밀로.”
“또 혼자서….”
“어쩔 수 없잖아. 몸 상태가 저런데.”
“으음, 알겠습니다.”
넬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진행 중이던 작업을 적당히 마무리해두고 멍하니 불꽃을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
이런 식으로 불꽃이 타오르는 것을.
“…. 고구마는 잘 익고 있습니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드레드가 다시 쟁반을 들고 돌아왔다.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일렁거리는 불꽃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그녀를 보고 거기에 대답했다.
“조금만 있으면 다 될 거야.”
“그렇습니까.
무뚝뚝하게 대답한 그녀는 불꽃을 돌아보며 내 옆에 기대어 섰다. 유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유하는?”
“잠시 가져올 게 있다고 하셔서.”
아래에 내려간 걸까.
“….”
불꽃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모드레드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이내 쪼그리고 앉은 그녀는 그 불꽃에 빨려 들어갈 것처럼 바라보았다.
갑자기 뛰쳐나가면 잡아야겠군.
“저기, 타나토스 씨.”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던 중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거기에 반응하듯 나는 무릎을 끌어안고 있는 모드레드를 내려다보았다.
“당신이 밉습니다.”
그리고 꽤나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너무 놀려서?”
“네, 그리고 유하 언니도….”
“유하까지 밉다면 넌 세상에 좋아할 사람이 없겠는데.”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의외로 순순히 인정한다.
“그래도 좀 다행이네.”
“제가 당신을 미워하는 게 말입니까?”
“그래.”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목을 쭉 빼듯 나를 올려다본 모드레드의 시선에 의아함이 섞인 채였다.
“단지 비효율적인 인간은 아니게 되었으니까.”
“….”
녀석은 곧바로 그 말을 이해했다.
모드레드가 꺼려했던 나는 단지 비효율적인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이 게임을 끝낸다는 강렬한 목표가 있음에도 그것 이외에 눈을 돌려버리고 마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하기 싫다는 걸 매번 시키고…. 장난만 치고 입도 험하고, 제가 말하는 건 매번 무시하고….”
그것을 모드레드가 이야기했다.
나에 대해 갖는 감정에 대해서.
“그래서 밉다는 건가.”
“네, 정말로 밉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내가 되묻자 모드레드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확실히, 이러는 편이 더 효율적이군요.”
그리고 조금은 진심을 이야기했다.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니라니까. 그 집.”
나는 그 말을 금세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새하얀 방.
단순히 효율을 따질 뿐인 모드레드에게 있어서는 최적이었던. 하지만 그 안에서 괴로워하며 발버둥치고 있는 클레어에게는 최악의.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불꽃은 계속 일렁거리고 있다.
“오랜 옛날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기억인데.”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벽난로 앞에 모여앉아…. 가족끼리 시간을 보냈던.”
“….”
낡은 드럼통에는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춤을 추어 모드레드의, 생각에 잠긴 얼굴을 가만히 비추었다.
“당신이 이 게임을 끝내고자 하는 의지는, 분명 소망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겠죠.”
확인을 하듯 그녀가 물었다.
“맞아, 무척이나 개인적인 소망.”
“저와는 정반대입니다.”
“너는?”
“저에게는 그것이 소명입니다.”
중얼거린 그녀가 눈앞에 팝업창을 띄우고 조작했다. 그리고 뒤를 이어 내 앞에 메시지가 하나 떠올랐다.
“사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별 것 없습니다만.”
영상 파일의 재생을 받아들이겠냐는 메시지.
“짧으니 이 틈에 잠깐 보시겠습니까?”
그것은 모드레드의 마지막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