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재킷-197화 (197/321)

197편

<-- Chapter 4 : 파륜의 기사 -->

개인 회선으로 전화가 와서 순간 놀랐으나,

[모드레드입니다.]

뒤를 이은 무뚝뚝한 목소리에 우정현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차량은 길게 뻗은 도로를 달리고 있다.

주홍빛 가로등이 시선을 스쳐지나갔다. 그런 모습에, 정현은 그런 기색을 온전히 내비칠 수 없는 자신의 상황을 조금 환멸하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군요.”

[걱정을 끼쳤습니다.]

“상황은 좀 어떤가요.”

[지금 타나토스 씨와 함께 있습니다.]

“…. 다행이네요.”

[회장님.]

뒤를 이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혈기로 끓는 듯한 기색을 느껴 정현은 부드럽게 웃었다.

[한성진이 누구야?]

그 뒤를 잇는 말에 조금 당황했지만.

[잠…. 다짜고짜…!]

[넌 좀 가만히 있어. 멍청아.]

[자꾸 멍청하다고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뒤를 이어 투닥거리는 두 사람의 모습에 정현은 어안이 벙벙해지는 것을 느꼈다. 오히려 처음에 ‘한성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더욱.

모드레드가, ‘그’ 모드레드가 저렇게 목소리를 드높이는 걸 그녀는 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말씀드렸던 전 남편입니다.”

덕분에 조금 진정했다.

운전을 자동으로 돌려둔 정현은 이내 시트에 편하게 기대어 앉으며 대답했다. 잠시 반대편에서 조금 더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말이 이어졌다.

[그 찾아서 죽이겠다는?]

“네.”

그녀는 거기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뒤를 잇는 하나의 예감에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모드레드로부터 들으신 겁니까?”

[비슷하지.]

“그래서, 감상은?”

[뭐?]

“한성진이라는 남자를 만나본.”

[…. 깨나 능력이 있어 보이던데요.]

그는 조금 곤란할 때 예의를 차린다.

제대로 된 대답을 회피하는 듯한 기색에 우정현은 어쩐지 짜게 식는 것을 느꼈다. 아마 이쪽을 생각해주는 것이겠지만 그런 배려에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소년에게 동정을 살 정도라니.

자신은 그 정도로 연약해져 있었단 말인가.

이 우정현이. 이제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게 되었다고…. 단순히 보조를 맞추는 것조차 힘들어졌다고.

“만나자고 하셨던 것은, 그 확인을 위해서입니까?”

[저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죠.]

이준은 조금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능숙하게 행동하라고. 이용할 수 있는 건 뭐든지 이용하여, 목적을 위해서만 움직이라고.]

“그랬었죠.”

예전의 기억에 그녀는 쓰게 웃었다.

그런 걸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

이어지듯 전화가 끊어졌다.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쉰 정현은 이마를 쓸어 올리며 그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론을 낸 그녀는 마음이 복잡해지는 걸 느꼈다.

뭔가 돌파구가 생겼다는 걸까.

외통수에 몰린 정현으로서 조금 기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몰려버린 자신의 처지가 조금 비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현실과 가상이 융합된 세계는 문제를 더해가고 있다.

연일 사건과 사고가 발생하며, 인명 피해는 비교적 적었지만 재물의 손괴가 끝없이 발생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할 킬러즈는 배를 불리고 있다. 복구를 맡는 건설 업체와 결탁해 그들이 말하는 형태의 ‘생계형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건 결국 그런 것이다.

세계를 지속적인 위협에 노출시킴으로서, 이득을 쟁취하는 것. 인간을 개돼지로 만드는 것.

하지만 파고들 부분이 없다.

모든 것은 국가의 안보를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에 허용이 되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는 그 부패를 알고 있기에 일부러 다른 방식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며 협력을 꺼리는 태도를 취해왔지만.

아랑이 내세워진 시점에서 모든 것은 변화했다.

복잡하게 얽혀진 문제였다. 딸을 걱정하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백 대령이 그렇게 딸을 내세워, 그 모친인 우정현 역시 자연스럽게 한 배에 태우려 드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그런, 내부의 원형에.

오랜만에 듣는 이야기에 그녀는 쓰게 웃었다.

예전에도 그런 게 있었다. 이 나라는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권력을 쥔 자들이 결탁해 자유와 평등, 안전과 행복이라는 이념을 말하며 시민들을 바보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세계에서 나라는 하나의 거대한 공장으로서 그들의 잇속을 배불리기 위한 도구가 되어버렸다.

우정현 역시 싸웠다.

하지만 한계는 존재했다.

인간의 한계는….

그래서 그 남자는….

그렇기 때문에….

“윽….”

갑작스레 눈앞이 아찔해지는 감각에 정현은 이마를 짚었다. 구토감이 몰려들어, 그녀는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잠시 내렸다. 그리고 컴컴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준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여유가 생겼다.

지모를 점점 갖추어 나간다는 느낌이었다. 분명 모드레드가 그런 식으로 목소리를 드높이게 만든 것 또한 의도적인 행동이겠지.

우정현 자신은 하지 못했던.

아니 하지 않으려고 했던 행동을.

“그게 젊음이라는 걸까….”

그게 어쩐지, 부러웠다.

등에 짊어지고 있는 것이 많았기에 우정현은 함부로 행동을 하지 못하는 처지였다. 하지만 그는 정반대였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행동할 용기도, 그것을 쟁취할 실력과 동료들도 모두 갖추고 있다.

아니, 한 가지가 발목을 잡고 있지만.

송유하에 대한 문제가.

그렇게 생각한 정현은, 이내 피식 웃었다.

“애송이가…. 아직은 멀었다고요.”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고 했다. 일단은 준비는 해두어야겠지. 어른으로서 책임을 져야 했으니.

그를 이런 세계로 끌어들인 책임을.

한참 전에 소등 시간이 지났으나 아랑은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했다. 침대 매트리스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계속해서 내 마치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지금 자신도 그러고 싶은 기분이었다.

“후우….”

결국 길게 한숨을 내쉰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흐트러지지 않도록 망을 써서 묶어두었던 머리를 풀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얼굴이 엉망이다.

그것을 그녀 스스로도 느낄 정도였다.

타고 났지만 그다지 꾸미지 않는 외모는, 현재 불쾌하게 찡그리고 있는 채였다. 군용 민소매 셔츠의 밑에는 가슴에 붕대를 감아두어 스스로를 꽉 매어두고 있다.

그게 느슨해진 것을 느꼈다.

아니 잘 때조차 두르는 건 조금 이상하겠지.

그렇게 생각한 아랑은 셔츠 아래로 손을 넣어 붕대를 당겨서 풀었다. 그러자 조금 숨을 쉬기가 편해져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보기 흉할 정도로 커다란 가슴.

“….”

그것처럼, 세상만사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다.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가족도. 삶도. 그녀 자신의 미래도.

지금 마음을 복잡하게 하고 있는 한 남자까지. 모두가 그녀를 괴롭히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느껴졌다.

“왜 그 남자가 아버지를…?”

그 행동은 어딘가 이상하다.

때문에 잠에 빠져들지 못했던 것이다. 뭔가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기에, 아랑은 고민을 하고 또 했다. 그리고 그녀는 한 가지 희미한 예감에 휩싸였다.

지난번에 ‘심문’을 했을 때, 그는 이야기했다.

이 게임을 끝내려 하고 있다고.

처음에는 단순히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그의 행동은, 단순한 범죄자라고 보기에는 알 수 없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이라는 걸까.

게임을 끝내겠다는 말은.

“그럴 리가 없지….”

아랑은 인상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은, 마치 자신을 다독이는 듯했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왔다.

미등이 켜진 복도를 걸어, 그녀는 자판기 앞으로 향해 커피를 하나 뽑았다. 눈앞에 팝업창이 떠올라 1,000원이 지불되었다는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어머, 이 밤에 무슨 커피에요.”

“….”

종이컵을 들고 입에 물었을 무렵,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그대로 시선을 힐끔 돌려 옆에서 모습을 드러낸 여성을 바라보았다.

“거기다 그거, 프림 왕창 들어가 있는데.”

헥터였다.

“괜찮습니다.”

단 음식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철저한 관리 하에서 먹고 있다. 이 정도는 나쁘지 않으리라.

“잠이 안와요?”

“…. 조금.”

“저도 그런데.”

가까이 다가온 헥터가 빙긋 웃었다. 아랑은 그 모습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성향이나 할 킬러즈 내에서의 평판을 모르지는 않았다. 아랑은 애초에 내부에서 나뉜 파벌 중 전자. 다시 말해 기사가 아닌 자들에 속했으니까. 헥터가 남을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딱히 신경을 쓸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른 쪽에게 배신자라고 매도를 당해도.

기사들에게는 바보 취급을 당해도.

그녀는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했으니.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요새 들어 그 키만 멀대 같이 큰 테러리스트의 행적이 신경 쓰이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뭐 별 건 아니고 귀찮게 구는 날파리가 있어서 신경이 쓰이네요. 대위님은 무슨 이유로?”

“….”

아랑은 대답을 미루고 잠시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유를 반드시 듣고 싶다는 듯 웃고 있는 헥터의 모습을.

“딱히, 낮잠을 좀 자서.”

“헤에, 우리 우 대위님이 낮잠도 자요?”

“안 됩니까?”

“아, 아니이~ 그건 아니지만!”

“조용히 하십시오. 소등 시간입니다.”

아랑은 교태를 부리는 헥터를 향해 무뚝뚝하게 중얼거렸다. 이토록 원리원칙을 중시하기 때문에 그녀는 주변으로부터 박하고 융통성이 없다는 평가를 자주 받았다.

하지만 그게 자신도 모르게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껏 싸워온 한 남자로 인해, 아주 조금씩.

“저, 대위님….”

그녀는 커피를 단숨에 비우고는 입을 열었다.

“네?”

“혹시 타나토스에 대해 아무 정보도 없으십니까?”

“…? 다 아시는 분이.”

헥터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물론 그녀가 말하는 바를 아랑 역시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네트워크가 엘레노어라는 존재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세계에서 인간은 생각 외로 무력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숨기려 하는 정보는 알 수가 없다.

CCTV도 먹통이 되고, 섣불리 요원이 미행을 했다가 게임 세계의 제약을 받는다. 그렇다고 해서 평범한 인간이 디멘션 커넥터를 착용하지 않은 채 에스콰이어의 뒤를 따를 수 있을 리도 없다.

“저희는 무력한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주도권은 넘어간 거겠죠.“

아랑의 진지한 목소리에 헥터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거기에는 현재의 상황을 확실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기색이 있었으나 아랑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아마, 한 사람이라면 알지도 모르는데….”

단지 그게 즐거울 것 같았기 때문에.

========== 작품 후기 ==========

어머님과 달리 따님은 거유

아버지 쪽의 유전자를 물려받은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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