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편
<-- Chapter 4 : 파륜의 기사 -->
◇
“저녁, 다 됐어요!”
아래층에서 유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현실로 돌아온 뒤부터, 모드레드는 묘하게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문 앞에 서서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던 나는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안 가?”
“가, 가겠습니다.”
“뭐, 배 안 고프면 안 가도 되고….”
“그렇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 화를 내….”
“아니, 그…! 아까 이상한 말을 해버린 게 기억나서….”
부끄러운 듯 그녀가 중얼거렸다. 아까 했던 말이라니, 대체 무슨 말이었던 걸까 싶어 나는 차근차근….
아, 떠올랐다.
“그거 말하는 거야? 안에다 싸면 배부르….”
단검이 날아들었다.
“…?!”
꽂힌 단검이 벽 부근에서 디이잉, 하고 흔들렸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그것을 바라보았고, 그 사이 다가와 단검을 뽑은 모드레드가 싸늘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가시죠.”
그리고 먼저 방을 빠져나갔다.
“….”
완전히 딴판이란 말이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조그마한 녀석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드레드는 나를 힐끔 돌아보고는 쏜살같이 계단을 달려 내려가 버렸다.
“요새 자주 들어가 있는 것 같네요오….”
그리고 넬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만 참아줘.”
“힝힝, 요새 티아모의 마스코트가 바뀌지 않았나요.”
“…? 누구에서 누구로.”
“당연히 귀여운 넬에서 모디님으로죠!”
넬은 내 옆에서 볼을 부풀리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나로 땋은 새하얀 머리가 가볍게 흔들리는 모습에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었구나.”
“당연하죠! 넬도 사람인 걸요!”
“…. 그래?”
조금 재미있어다는 생각에 물었다.
“아니 뭐어~ 그 비슷한 무언가?”
“그게 인공지능이라는 거냐.”
“헤헤.”
내 대답에 녀석이 쑥스러운 듯 웃었다.
사람이라.
사실 이전까지만 해도 구분을 짓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조금 마음의 변화라도 생긴 걸까.
“빠, 빨리 안 내려오고 뭐하십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슬며시 웃고 있자니 아래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나는 계단 밑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모드레드를 발견했다.
“갑니다. 가요.”
한숨을 내쉬며 계단을 내려간다.
“식사 후에 회장님께 바로 연락을 드려보겠습니다.”
“밥 먹을 때까지 그런 말은 안할 거지?”
슬쩍 묻자 모드레드는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이 몹시도 풍부하게 느껴졌다.
“물론, 유하 씨의 앞에서 그런 이야기는….”
“모디 양!”
바로 그때, 조금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멈춰선 우리는 주방 쪽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는 유하의 모습을 발견했다.
“제가 뭐라고 부르라고 하였죠?”
“그, 그으….”
당황한 모드레드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기 시작했다. 유하에게는 꼼짝도 못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며 옆으로 슬쩍 물러섰다.
모드레드가 구원을 바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무시했다.
“네에?”
“어, 언니…. 라고….”
“그런데 방금은?”
“아, 음…. 그건….”
“왜 거리감이 느껴지게 유하 씨라고 부른 거죠?”
빈틈이 없다.
모드레드가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할 때마다 유하는 철저하게 봉쇄했다. 결국 모드레드는 거의 기절하기 직전의 얼굴로 나를 다시금 바라보았고,
“앞으로는 그렇게 부르겠대.”
나는 적당히 변호를 해주었다.
“정말인가요?”
“네, 네!”
“후후, 착한 아이네요.”
가까이 다가선 유하가 모드레드의 머리를 슬쩍 쓰다듬어주었다. 부드러운 미소, 장난과 진심의 미묘한 경계점 위에 선 행동이라고 나는 판단했다.
두 사람이 그러는 사이, 나는 주방 쪽으로 들어섰다.
“이거, 옮기면 되는 거지?”
“아, 네.”
안쪽의 커다란 쟁반에는 진수성찬이 준비된 채였다. 오늘 저녁은 구운 생선에 시금치무침, 열무김치와 불고기, 계란찜…. 그 숫자를 세다 포기할 정도로 많았다.
“꽤, 많은데?”
그것을 들고 옮기기 시작하자 밥이 담긴 다른 쟁반을 든 채 따라붙은 유하가 가볍게 웃었다.
“후후, 모디 양이 돌아오고 나서의 첫 저녁이니까요?”
“구, 굳이 신경 써주실 필요는….”
“그럴 땐 그냥 감사하다고 하면 되는 거야.”
“….”
나까지 그렇게 이야기하자 모드레드는 유하 몰래 슬쩍 이쪽을 흘겨보았다. 붉어진 볼 틈으로 약간 부담스러워한다는 기색이 느껴졌지만 그것을 알아챈 유하가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끼어들었다.
“모디 양, 음식 가리는 건 있나요?”
“네, 네…?”
“아니면 반대로. 좋아하는 음식은?”
“으음….”
생각을 하던 모드레드가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앞장서 2층으로 계단을 오르고 있던 나는 발소리가 멈추자 뒤를 돌아보았다.
“그….”
나를 힐끔 돌아본 모드레드가 이내 경계하듯 물러선 채 유하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뭔가 재미있는 내용인 걸까. 유하는 모드레드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후후, 좋아요. 내일 아침은 그걸로.”
“그, 죄,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안돼요.”
“그, 그럼 어떻게….”
“잘 먹었습니다. 라고 말하면 되는 거죠.”
“잘 먹었….”
“아이 참, 그건 맛있게 다 먹고 말하는 거잖아요?”
“아, 알겠습니다.”
“….”
무슨 컴퓨터 프로그램도 아니고.
기억해두겠다는 듯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드레드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
모드레드는 생각보다 음식을 가렸다.
“더, 더는 못 먹겠습니다.”
“안돼요. 이것만 다 비워요.”
“우으….”
조그마한 단위로 두 젓가락쯤 먹고 식사를 관두려는 모드레드를 유하가 계속 붙잡았다. 마지못해 모드레드는 그런 유하의 말에 따라 식사를 계속했다.
“그, 맛있습니다.”
“후후, 그렇죠?”
하지만 계란찜만큼은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유하는 조그마한 입에 계란찜을 뜬 숟가락을 넣는 모드레드를 어머니처럼 자애로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준은 어때요?”
“….”
대답하는 대신 나는 밥을 크게 한 숟갈 퍼서 입에 넣었다. 지금 입에 넣은 양이 모드레드가 깨작거린 양의 한 열 배는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맛있게 먹어주니까 좋네요. 넬도 그렇죠?”
“헤헤, 유하님의 요리가 최고에요!”
어쨌든 우리 ‘넷’은 이렇게 둘러앉아 자연스럽게 식사 중이었다. 나와 유하는 그런 풍경이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모드레드는 조금 당황스러운 눈치였다.
“모디님! 계란찜 정말 맛있어요!”
“그, 그렇습니까.”
“헤헤, 모디님이 입맛이 있으시군요!”
그걸 넬도 알기에, 일부러 좀 더 말을 거는 듯했다.
“….”
모드레드는 그걸 조금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저녁 시간은 그렇게 평화롭게 지나가고 있었다.
◇
나는 물에 잠겨 있던 접시를 들어 거품이 묻은 스펀지로 깨끗하게 닦아냈다. 하지만 싱크대에 거품이 묻은 식기가 가득 쌓여있자 의아해하며 고개를 들었다.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입니다.”
씻는 담당이 한눈을 파는 중이었다.
“뭐가?”
모드레드의 눈은 쭈욱 주방 바깥으로 고정이 된 상태였다. 그 시선이 그리는 궤적을 따라 힐끔 고개를 든 나는 카운터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유하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어질 모드레드의 말을 기다렸다.
“당신이 현실과 가상을 동등하게 생각하는 이유를.”
“씻기나 해.”
“으윽…. 사람이 진지하게 말하고 있는데.”
볼멘소리를 낸 모드레드가 이내 물을 틀고 거품이 묻은 식기들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먼저 설거지를 하자고 자청한 주제에 한눈을 팔고 있다니.
“유하 언니가 끝나면 맛있는 커피를 줄 거라고.”
“….”
“달달한 거 마셔도 돼.”
“아니, 괜찮습니다.”
“무리해서 아메리카노 같은 거 안 마셔도….”
“아니, 달달한 음료는 입맛에 안 맞아서.”
“그래?”
의외였다.
아니 보다 편견에 가까우려나.
하긴 어리다고 해서 무조건 달달한 음식을 좋아하리라는 보장은 없으니.
“이 가게의 그…. ‘하이퍼 초콜릿 우유’란 게 있지 않습니까?”
“유하가 개발한 거지.”
“먹고 죽는 줄 알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한 모금만 마셔도 당뇨가 올 것 같은 음료를 다 마시다니.”
어디의 모 회장이 들으면 기겁할 말이로군.
“어쨌든…. 자꾸 말 돌리시는 거 아닙니다.”
“내, 내가?”
“네, 유하 언니께서 그러기 때문이 아닙니까?”
“….”
내가 현실과 가상을 동등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맞을지도.”
“저 분은, 당신의 이상향처럼 느껴지는군요.”
“뭐, 멋진 사람이지.”
경외감을 느끼게 하는.
“맞아, 유하의 영향이겠지.”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다들 알아보는 것일까 싶었던 것이다. 내가 지금의 세계를 대하는 것에 유하의 영향을 짙게 받았음을.
“그렇다면 갤러해드는?”
“뭐?”
“그 사람은 당신에게 있어 어떤 존재였습니까?”
“으음…. 이렇게 말하긴 뭣하지만 바보였지.”
“그렇습니까?”
“꿈에 젖은 사람이었어. 올바르고 올곧은.”
나는 밤에 밖에 볼 수 없었던 그 사람을 똑똑히 기억하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언제나 위를 바라보며 밝고 즐겁게 게임을 플레이했던 올바른 그 사람을.
물론 있을 수 없다는 걸, 그 사람도 깨달았을 것이다.
이 게임을 밝고 즐겁게 플레이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을.
이 조그마한 카페가 불길에 휩싸이면서.
“저로서는 잘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그런 이야기에 모드레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꿈이라는 게 그렇게 거창한 걸까 싶은데.”
나는 접시를 다 닦고 고무장갑을 벗었다.
“너에게도 있는 거잖아. 꿈쯤이야.”
이 게임을 끝낸다는.
“그 이유는 모르지만.”
“…. 그렇게 말씀하셨죠. 다 보지 못하셨다고.”
“그래, 다 보지 못했어.”
그 우울한 영화를 말이지.
나는 그런 생각을 마음속에 묻으며 모드레드의 조그마한 등을 바라보았다. 굳이 캐물을 마음까지는 없었지만 궁금한 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모드레드를 바라보았다. 거품이 묻은 그릇을 씻어 내려가던 손이 멈추고, 그녀는 등을 돌린 채로 손을 들어 얼굴 부근을 매만졌다.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다행이고.”
“하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너도 말했었지. 타인에게 그 영상을 보여준 것은 처음이라고.”
“네. 안 보시리라는 생각은 없었지만, 그것을 보이고 제가 살…. 아니.”
그녀는 말을 멈추고 내 눈치를 슬쩍 살폇다.
‘살아돌아올 줄은 몰랐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걸까.
“각오를 해두었어야지.”
“예, 예상 밖의 상황이었단 말입니다!”
“그럼 그것도 예상을 해두었어야지.”
“우으…. 왜 계속 놀리시는 겁니까?”
“재미있으니까.”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가볍게 웃었다.
확실히 표정이 풍부해지는 그녀가 보기 좋았다.
========== 작품 후기 ==========
요새는 유하 엄마라는 느낌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