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편
<-- Chapter 4 : 파륜의 기사 -->
“일을 좀 도와달라고 하고 있었죠.”
싱긋 웃은 유하가 곁으로 다가왔다.
대충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한 기분이었다. 슬쩍 뒤로 시선을 보내니 그것을 피한 모드레드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빈 잔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손님이 왔던 모양이네.”
“네!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의 덕분일까요. 후후.”
“….”
유하는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모드레드는 주방 쪽으로 도망치듯 들어섰다. 조그마한 다람쥐 같은 궤적을 나는 이내 진지한 눈으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제보다는 컨디션이 나아진 것 같군.
하지만 증상이 언제 불거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꽤나 먼 거리였지만 손가락이 떨리는 게 눈으로 보였다.
어쨌든 최대한 빨리 해독제를 구해야겠지.
“준?”
바로 그때, 유하가 말을 걸어왔다.
“아, 응.”
가볍게 대답을 한 나는 뒤를 이어 미소를 지은 유하가 손을 뻗는 걸 확인했다. 그녀는 이
내 저도 모르게 앞머리를 매만지고 있던 내 손을 쥐었다.
“뭔가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군요.”
“….”
알아차린 건가.
“옛날부터 그랬었죠?”
“언제부터였더라….”
“적어도 제 기억이 있는 한에서는…?”
”그러면 적어도 초등학생 때부터인가.“
“후후, 준은 어렸을 적부터 항상 그랬죠.”
그녀는 어른스럽게 웃으며, 손가락을 조금 움직였다. 그렇게 어린 동생을 놀리듯 내 앞머리를 매만졌다.
“그럼 초등학생 때부터라는 거잖아.”
“그렇겠네요. 그리고….”
“응?”
“돌아온 뒤로, 옛날보다 훨씬 많이 늘어났어요.”
“….”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모디 양이 걱정인 거죠?”
다 알고 있다는 듯 유하는 미소를 지으며 뻔한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일부러 더 신경을 써주고 있는 걸까 싶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유하는 싱긋 웃으며 내 볼을 쥐었다.
“유, 유하?”
“왜 항상…. 귀여운 여자아이 뿐인 걸까요오?”
“어, 음…. 그, 그건 저도 잘 모르겠….”
꽈아아아악.
“크, 윽?!”
쥐어짜내는 듯한 통증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네에에에에?”
“죄, 죄송…!”
“아니이~ 죄송할 건 없지 않나 하는데요?”
“그, 그런…. 가?”
말과는 달리 볼을 쥐고 있는 유하의 손가락 힘이 더 거세졌다. 생글생글 웃고 있었지만 안색이 좋지 못한 채 유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뭐어, 저는 준의 가족이자 보호자이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 사는 사람이긴 하지만요?”
“유, 유하 누나아아아….”
나는 눈물이 찔끔 나오는 것을 느끼며 그 힘을 버텨냈다. 그리고 뒤를 이어 유하는 한숨을 내쉬고는 이내 꼬집은 볼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여러모로 복잡한 기분이네요.”
그리고 그녀는 씁쓸한 얼굴로 웃었다.
“누나로서는, 준이 어른이 되어가는 기분이어서.”
“…. 난 아직 어린애라고.”
거기에 나는 적당히 대답했다.
법적으로는 성년을 넘긴지 한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스로가 어른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책임을 질 줄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이 사람의 앞에서만큼은,
그러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은 내 가족이었으니까.
“후후, 이렇게 듬직한데요.”
“먹는 건 잘 먹었으니까.”
그렇게 중얼거리고, 유하와 한 번 눈길을 마주친 나는 그대로 지나쳤다. 유하는 남은 자리를 치우기 시작해 나는 마음이 진정되는 걸 느끼며 주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 무슨 말씀을 그렇게 오래하십니까?”
컵에 물을 받아놓고 있던 모드레드와.
“몸은 좀 어때.”
“어제보다는 괜찮습니다. 그보다….”
중얼거린 그녀가 인상을 찌푸린 채 돌아섰다. 묘하게 나무라는 듯한 기색이 느껴졌다.
“혼자 어딜 다녀오신 겁니까?”
“잠시 회장님을 만나러.”
“회장님을….”
“하지만 만나지는 못했어.”
그리고 나는 상황을 설명했다.
만나러 가던 도중에 우아랑과 헥터에게 습격을 받았던 사실을. 그리고 헥터와 협상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아니 그런 방법은….”
거기에 모드레드는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손가락 끝이 떨리고 있는데도, 거기에 어제 다 이야기를 해두었음에도 저런 태도여서 나는 슬쩍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클레어.”
“윽….”
거기에 그녀는 놀라 얼굴을 붉혔다.
“네가 무슨 말을 한다하더라도 변하지 않아.”
사실 해독제를 준다면 무조건 데이터를 넘겨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자신을 단순히 도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모드레드의 모습에 그런 대답을 했다.
데이터의 경우, 만약에 넘기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수단은 있을 터였다.
하지만 모드레드는 한 명뿐이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뭐,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몸조리나 잘하고 있으란 말이야. 또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이, 이상한 생각이라니…!”
발끈해 모드레드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뭐야?”
“아얏!”
나는 손가락을 튕겨 그 건방진 이마를 때렸다. 맞은 부위를 감싸 쥐며 물러선 모드레드를 보고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말을 이었다.
“죽는다느니 뭐니 그런 말 하지 마. 알겠어?”
“으, 으윽….”
“확실하게 대답해.”
“아, 알겠습니다…! 진짜….”
내 말에 대답을 했음에도, 모드레드는 뭔가 불만이 있는지 볼을 슬쩍 부풀렸다. 새하얗고 무뚝뚝하기만 하던 얼굴에 조금 표정이라는 게 감돌았다.
“불만 있냐.”
“그, 그렇다고 때릴 것까지는 없지 않습니까?”
“원래 말 안 듣는 애한테는 매가 약이지.”
“야만인….”
“뭐라고 했지?”
그렇게 이야기한 내가 다시 손가락을 들자,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모드레드는 흠칫 놀라며 물러섰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이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괜찮다니까. 조금은 의지해도.”
“때리면서 그러는 건 도리어 협박 아닙니까?”
“거칠게 해달라고 했으면서….”
“그, 그건!”
당황했다.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모드레드는 몇 번이고 반박을 해보려다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머리를 툭툭 쓰다듬었다.
“역시…. 당신과 있으면 이상합니다….”
그리고 모드레드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왜?”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당신의 말을 듣고 회장님께 연락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부끄러운 듯 이야기한 모드레드가 이내 내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는 머뭇거리다 가볍게 손을 뻗어 내 복부에 얹었다.
“모, 모드레드?”
나는 당황해 주방 바깥을 돌아보았다. 유하가 언제 들어올지 몰랐으나 모드레는 멍한 채
내 복근을 신기하다는 듯 매만지고 있었다.
“걱정하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거기에, 당신의 상황도 말씀을 드리고 해결 방안을….”
“그, 그럼 그것부터 하는 게?”
“하지만 어째선지, 성적으로 흥분하고 있습니다.”
“….”
너 너무 직설적인 거 아니냐.
“부탁, 드려도 되겠습니까?”
당황해 굳어진 나를, 모드레드는 촉촉한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
젖은 음부가 꽉 조여들었다.
“하앗…!”
그 틈새를 파고들자 모드레드는 놀라 턱을 들었다. 그녀는 버릇처럼 내 팔뚝에 자신의 자그마한 손을 올려놓고 손톱으로 긁었다.
상처가 남지는 않겠지만, 나는 통증을 느꼈다.
“하웁….”
뒤를 이어 벽에 몰아붙여진 그녀가 입을 맞췄다. 애정을 갈구하는 걸까. 아니면 자신에게 집중을 하라는 걸까. 모드레드는 내 입술을 질끈 깨물고 숨을 몰아쉬었다.
“클레어라고, 부르시면 안 됩니다아….”
눈동자가 깊게 젖어든 상태였다.
허리를 밀어 올리자 그녀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입고 있는 앞치마와 분홍 원피스가 벽에 짓이겨지며 유려한 몸매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건, 너무 파괴력이 강합니다….”
“어째서?”
“다, 흐읏! 잊었다고…. 그렇게 하려고…. 몇 번을….”
새하얀 목덜미를 깨물자 모드레드는 말을 채 잇지 못하고 턱을 높이 들었다. 나는 엉덩이 뒤쪽으로 손을 밀어 넣어 어린애 같은 원피스 속에 감춰진 그녀의 엉덩이를 세게 움켜쥐었다.
“조, 좀 더 세게에….”
그럼에도 모드레드는 만족할 줄 몰랐다.
나는 거칠게 몰아붙였지만 그녀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런 내게 달려들었다. 안겨있는 상태에서 내 가슴을 핥고 고개를 들어 칭찬을 요구하듯 바라보았다.
그게 조금 귀엽다고 생각했다.
“이 멍청아.”
“하윽…!”
벽에서 떨어뜨려, 나는 모드레드를 뒤로 돌려세운 채 다시 밀어붙였다. 가슴에 채 오지 않는 조그마한 그녀가 달콤한 신음을 냈다. 혀를 살짝 내밀고 엉덩이를 떨며 벽에 양손을 가져다댔다.
그것을 한손으로 움켜쥐어, 나는 모드레드를 소유했다.
“저, 저기이….”
하지만 조금 기다렸다.
“부, 부탁, 부탁드립니다아….”
잠깐 몸을 움츠린 채 있던 모드레드가 천천히 나를 돌아보았다. 방금 전까지는 찾아들 쾌락에 살짝 겁을 먹은 듯한 모습이었으나, 내가 움직임이 없자 애걸을 하듯 뒤를 돌아보았다.
“그, 그럼…. 제 쪽에서….”
망설이던 그녀가 스스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앗, 하읏…. 아앙….”
팔이 잡혀 신체가 부자유스러운 채 모드레드는 스스로 쾌락의 늪으로 들어섰다. 허리를 흔들며 내 그것에 매달리던 그녀가 이내 나를 돌아보았다.
“기분, 좋으십니까…?”
그리고 물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젖은 눈빛은, 자신과 함께 쾌락에 빠져들자고 말하는 듯했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허리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윽?! 하으읏…!”
숨소리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묻어나왔다.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었다.
모드레드의 반응은, 단순히 쾌락만을 좇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는 스스로를 쾌락의 늪에 빠뜨림으로서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부숴버리겠다고 했지만.
어쩐지 그게 아닌 것처럼 보였다.
“…!”
왜냐면 팔을 놓고, 조금 다정하게 안아주니.
“그, 그만…! 그건…!”
반응이 더 좋아졌으니 말이다.
언뜻 그녀는 모순적이다.
스스로의 인간으로서의 면모를 부수기 위해 섹스와 마약에 중독되었다고 말을 했다. 하지만 모드레드는 분명 나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이 따뜻함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고.
그것은 그런 말일까.
그녀는 결국 인간의 따뜻함을 가장 원하고 있었다는 말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