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편
<-- Chapter 4 : 파륜의 기사 -->
부딪친 서로의 검이 튕겨져 날아올랐다.
“큭…!”
반짝이며 햇빛에 반사된 두 자루의 칼날이 빛을 발했다. 인상을 찌푸린 우아랑은 곧바로 자신의 검을 손에서 놓았다. 허공에 떠오른 검에 검은 바람이 휘감기며 순식간에 네 자루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게 날아들기 시작했다.
“…!!”
첫 번째 검을 피해내,
“윽!”
두 번째 검이 아슬아슬하게 볼을 스치는 시점에서 나는 떨어진 스파다를 잡았다.
날아드는 화살과 같은 세 번째 검을 튕겨냈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어깨를 움츠리며 앞으
로 달려 나갔다.
“표정을 보아하니…!!”
맞군!
“스컬, 너 이 자식…!!”
우아랑은 당황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물러섰다. 지면을 박차고 튕겨져 날아간 나는 그녀의 얼굴에 휘감긴 의문과 분노에 저도 모르게 씨익 웃어보였다.
검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어설퍼!”
나는 몸을 빙글 회전시키며 그것들을 모조리 쳐냈다. 네 자루의 검이 제각기 방향으로 흩어지자 우아랑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윽…!!”
그리고 뻗어진 스파다가 복부를 꿰뚫으려는 순간,
“큭!”
등 뒤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내가 중심을 잃고 무너진 사이, 팔을 잡고 당긴 우아랑이 주먹을 들어 복부를 후려쳤다. 눈앞이 아찔해지며 나는 동시에 발이 부웅 뜨는 것을 느꼈다.
“…!!”
우아랑이 멀어져, 나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튕겨져 날아갔다. 강한 폭음과 함께 건물 벽을 꿰뚫고 처박힌 나는 복부와 등에 먹먹한 통증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이내 부서진 벽돌이 시야를 뒤덮었다.
무겁군, 제기랄.
“넬, 아직 멀었어?”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무너져 내린 벽돌에 붕대를 칭칭 감은 미라 마냥 깔린 채 나는 이어질 넬의 말을 기다렸다.
어두운 와중, 시야에 마커가 하나 덧씌워졌다.
[주인님, 이쪽으로!]
“저게 뭔데…?”
[하수도로 통하는 맨홀이에요!]
뭐 평소와 같은 방법이군.
하지만 이런 수단이 결국에는 가장 잘 먹히는 법이다. 어쨌든 길이 좁고 어두운데다가 베베 꼬이기까지 해 도망치기 쉬웠으니까. 그렇게 결론을 내린 나는 벽돌을 비집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후우.”
가볍게 한숨을 내쉰 나는, 우아랑과 헥터가 눈앞에 서있는 것을 확인했다. 우아랑은 표정에 잔뜩 날을 세워둔 상태였으나 헥터는 반대로 의중을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은 채였다.
“바퀴벌레마냥 끈질기군.”
“…. 칭찬으로 받아들일게.”
우아랑의 비난에 나는 적당히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하지만 어쨌든,
상황은 조금 더 불리해졌다. 명치에 완벽한 유효타를 허가함으로서 발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구토감이 몰려드는 것을 느끼며 나는 검을 바로 쥐었다.
우아랑이 먼저 달려들었다.
그녀의 손에 쥐어져있던 검은, 휘두름과 동시에 빠져나갔다. 스파다를 들어 한 번은 막아내더라도 몸을 움직이는 중심에 힘이 들어가질 않아 나는 점차 네 자루의 검이 공간 사이에서 나를 압박해오는 걸 느꼈다.
깨진 유리창을 밟고 로비로 물러났다.
“윽!”
“도망치지 마라!”
쫓아든 우아랑이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속도가 더욱 빨라져 나는 버티기 힘들다는 생각에 어깨에 린슬렛의 근본을 승계해 대응하기 시작했다.
화살의 비에 노출이 된 듯한 감각이었다.
튕겨낸 직후 곧바로 중심을 바로하고 날아드는 검은 갖가지 방향에서 날아드는 화살처럼 느껴졌다.
이대로는 안 돼.
우아랑의 검이 얼굴을 스치고 짧은 순간, 나는 어깨를 움츠리며 곧바로 튕겨져 나갈 준비를 했다. 저릿저릿한 다리를 지면에 제대로 디디고….
“윽?!”
바로 그 순간, 나는 바닥이 물컹거리는 감각을 느꼈다.
시선을 내리깔자 음습한 진액이 느껴졌다. 끈적거리는 늪에 발이 휘감겨 제대로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분명히 헥터의 공작일 터였다.
젠장, 대체 언제…?
“큭! 대위님!”
하지만 그 스킬에 당한 것은 나뿐이 아니었다.
우아랑 역시 늪에 발이 빠져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당황해 입술을 질끈 깨문 그녀가 뒤쪽에 서있던 헥터를 돌아보며 고함을 내질렀다.
“후후….”
정작 헥터 본인은 여유로웠지만.
“시간을 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 대위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우 대위님이 발을 묶어주신 덕분에 함정에 타나토스가 걸려들었어요. 이대로 체포하도록 하죠.”
그렇게 중얼거린 헥터가 늪 위를 걸어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왔다. 우아랑은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으나 자신과 마찬가지로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보자 입을 다물었다.
또 괜한 것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헥터를 바라보았다. 다가온 그녀가 코트의 안에서 수갑을 꺼내 내밀었다.
“…. 무슨 수작이지?”
“아무 수작도 없는데요오.”
다가온 그녀가 수갑을 천천히 내밀었다.
무척이나 뜸을 들여,
그것이 어떤 행동을 유도하는 듯했다. 나는 벌려진 수갑을 쥔 채 내 손목을 툭툭 때리는 헥터의 모습을 보며 이해하지 못하고 눈썹을 찌푸렸다.
그녀는 알고 있다.
내가 이 스킬을 탈출할 수단이 있음을.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아랑에게는 붙잡았다는 듯이 말을 했다. 그건 무척이나 이상한 행동이었다. 이유야 간단했지만 그 속내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뭐 굳이 보내주겠다는데.
“망설일 이유는 없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망자를 소환했다. 늪으로 이루어진 바닥에 검은 바람이 휘감기며 마치 솟아오르는 잠수함처럼 내 발을 휘감고 그것이 빠져나왔다.
“꺄악?!”
그리고 헥터는 그런 내 행동을 기다렸다는 듯이 뒤쪽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정작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우아랑에게 공격을 당했다는 기색을 보여주고 싶은 걸까.
“….”
사람이 적당히 미쳐야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바닥에 쓰러진 헥터를 어이가 없어져 바라보았다. 망자들이 계속해서 깨어나 징검다리처럼 딛고 건널 수 있는 지대를 형성했다.
“큭! 스컬!!”
그런 모습에 우아랑이 검을 날렸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뒤쪽으로 파고들어 스파다를 목에 들이댔다. 날아든 검이 우아랑의 코끝에서 멈췄다. 발이 봉쇄가 된 상황에 녀석이 이를 빠득 갈았다.
여기에서 끝장을 내는 방법 또한…. 있겠지. 하지만 그것은 아무런 해결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해, 우아랑.”
그래서 나는 충고를 했다.
“뭐…?”
“네 주변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거다.”
들을지는 모르겠지만.
“…큭!”
분한 듯 입술을 쥐어짜내는 우아랑을 남겨둔 채 나는 곧바로 뒤로 물러서 건물을 빠져나왔다.
“넬, 탈출하자.”
쫓아오는 기색은 없다. 나는 텅 빈 도로를 달리며 곧바로 넬을 불렀다. 높은 곳에서 돌아와 내 옆에 선 그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몸은 괜찮으세요?”
“아무렇지도 않아.”
고개를 끄덕인 뒤, 나는 골목으로 파고들었다. 마커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는 맨홀의 위치를 확인하고 뛰어들 준비를 했다.
“아하핫, 항상 쥐새끼처럼 숨어든다니까.”
헥터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멈춰 섰지만.
“….”
“주, 주인님! 왜 멈추세요?!”
놀란 넬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반응을 보이지 않고 천천히 뒤로 돌아섰다. 골목 끝에 멀쩡하게 서있는 헥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싸우거나 붙잡기 위해 왔을 리는 없고.”
“맞아, 우리 문제는 여기의 일이 아니니까.”
가볍게 웃은 그녀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가면을 바꿔 끼우는 것처럼 표정을 바꾸었다.
“재미있는 짓을 해주셨던데.”
“모드레드를 구한 게 말인가?”
“아니이…. 그건 그냥 준 거고.”
남의 사업장을 흐트러뜨린 게 말이야.
차가운 얼굴로 중얼거린 헥터가 손을 들어 내 얼굴에 씌워진 마스크를 툭툭 때렸다. 분노라는 감정이 묻어나오는 행동에 나는 감정을 숨겼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어머, 그렇게 나오기야?”
“마크 갤로워스…. 라고 했던가?”
“뭐?”
“아니 그냥, 유명한 NBA 선수잖아. 그냥 갑자기 이름이 생각나서 말해봤어.”
“…. 자기, 꽤 재미있는 말을 하네.”
내 말에 잠시 굳어져있던 헥터가 부드럽게 웃었다. 하지만 눈빛은 반쯤 죽은 채였다.
마크 갤로워스.
트리슈가 가져온 데이터 속에 있던 사람의 이름이었다. 나는 적당히 뉘앙스를 풍기며 헥터의 반응을 살폈다.
“해독제를 내놔.”
“…. 그딴 거 없어.”
“그럼 우리도 없다고 대답해야겠군.”
“하아, 진짜 이러기야? 그 여자가 좋아서 약하고 섹스하고 싶다면서 달라붙은 걸 어쩌라고?”
“가상의 마약이 그토록 강한 중독성이 있을 리가 없잖아. 아서리안의 아이템인 거겠지.”
“…. 이거 재미있네.”
그녀는 여유를 되찾듯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해독제를 내놔.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넘겨주는 것으로 하지.”
“없다니까 왜 자꾸 이렇게 나오실까.”
“그렇다면 협상의 여지도 없는 셈이야.”
“…. 일단 지금은 그렇겠네.”
중얼거린 헥터가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좋아,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보는 걸로….”
“꽤나 여유로운 태도인 걸.”
“마크 갤로워스라고 했지…?”
내 물음에 헥터가 가볍게 웃었다.
“해독제. 라고 대답해줄게. 타나토스.”
그리고 그녀는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해독제가 있다. 그런 뉘앙스를 풍김으로서 이쪽이 섣불리 데이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일까.
“글쎄….”
하지만 건네줄 마음은 없다.
나는 헥터가 사라진 자리를 한 번 강하게 노려보고, 이내 천천히 돌아섰다.
◇
엘레노어가 미행을 허락할 리는 없겠지만,
“후우….”
조금 걱정이 들었으므로 나는 느지막한 오후가 될 때까지 단편적인 퀘스트를 수행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우정현 씨로부터의 연락은 없었다.
애초에 어느 기점을 이후로 일반적인 형태의 연락은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좀 껄끄럽다는 느낌이었다.
일단 모드레드와 좀 이야기를 해볼까.
그녀는 우정현 회장과 오래도록 함께 해왔으므로 이런 사태를 대비해 이것저것 길을 터두었을 테니까.
“모드….”
가게 안으로 들어서며 자연스럽게 이름을 부르던 나는 이내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주인님, 무슨…. 헉.”
뒤를 따라들어오던 넬 역시 마찬가지였다. 눈앞에 서있는 충격적인 광경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굳어졌다.
“아, 이제 오네요.”
“…. 유, 유하?”
나는 놀라 말을 더듬거리며 물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앞치마를 입고 있는 유하의 옆에 누군가 선 채였다.
“오, 오셨습니까.”
모드레드가 애써 표정을 굳히고 중얼거렸다. 분홍색 원피스에 앞치마를 입고,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모습에 나는 계속되었던 긴장이 훅 풀어지는 걸 느꼈다.
“푸훗…!”
웃어버리고 말았다.
“어때요? 어울리죠?”
“….”
모드레드는 죽고 싶다는 얼굴이었지만, 유하는 무시하고 멋지게 그녀를 선보였다. 평소의 무뚝뚝하고 차가운 기운이 없어져 완전히 엄마 일을 돕는 소녀 같았다.
“어, 어울리네.”
“우읏….”
그렇게 이야기하자 모드레드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얼굴은, 조금 붉어진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