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편
<-- Chapter 4 : 파륜의 기사 -->
◇
모드레드는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으음….”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어두운 방안에서 혼자 고심에 빠진 채였다. 슬슬 새벽이 밝아올 시간이었지만 재킷의 능력으로 전혀 피로감이 몰려들질 않았다.
“왜 그러세요? 주인님.”
“아니, 별 거 아니야.”
저도 모르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일까. 넬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음을 던져 나는 자세를 바로 했다. 삐걱 거리며 매트리스가 우는 소리를 냈다.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던 것뿐이다.
그레일, 다시 말해 한성진이라는 그 남자가 엘레노어를 가상 세계로 도망치게 만든 주범이라는 걸까.
여러 의미에서 아내를 잃은 칼 후퍼가, 자신의 인생을 바친 개발을 그는 가볍게 탈취해갔다는 걸까.
그래서 결국 그가 누구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어쨌든 이후의 일이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었다.
모드레드는 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게임의 유저에서 ‘모드레드’라는 기사가 된 것일까. 나는 거기에 대해서 무심코 상상을 해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기사 모드레드.
자신의 아버지에게 반역한 기사.
결과는 어렵지 않게 도출되었다.
설마,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았으나….
“기사는 모두 불행해진다고….”
나는 트리슈가 했던 말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앞머리를 매만지며 고개를 들었다.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
눈앞에 있는 넬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치였다.
모드레드가 잠시 몸을 씻고 오겠다며 화장실에 들어간 지 30분이 넘었다. 나는 마음의 결심을 마치고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안에 들어가 있어.”
“으음, 괜찮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녀석이 되묻자 나는 가볍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샤워한다면서 30분 째 무소식인데 괜찮아 보이냐.”
“…? 아.”
녀석이 깨달았다.
“그, 그럼…. 힘내세요?”
그리고 이내, 얼굴이 빨개져 디멘션 커넥터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참으로 기묘한 언사라고 생각하던 나는, 이내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화장실은 아직 불이 들어온 채였다.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울려 퍼졌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문 앞으로 향해 가볍게 노크를 했다. 그리고 이어서 입을 열었다.
“모드레드.”
가볍게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반응은 없었다.
물이 떨어지는 소리는 무척이나 규칙적이었다. 몸에 닿았다 튕기는 소리가 없이 바닥에 뿌리는 듯했다. 인기척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
설마 싶어 나는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뿌연 수증기가 시야를 가로막아 나는 숨이 턱 막히는 걸 느끼며 안으로 들어서 우선 창문을 열었다.
“모드레드….”
그리고 욕조 안에 주저앉아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허억…. 헉…. 허윽….”
숨을 몰아쉬고 있다.
머리와 온몸이 흠뻑 젖어, 모드레드는 다리 사이에 샤워기를 댄 상태에서 어깨를 움츠렸다. 시선을 피한 채 그녀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이러다 감기 걸려.”
“그, 그런…. 절대, 결단코 그런 것은….”
귀 끝까지 새빨갛게 물든 상태에서 모드레드는 계속해서 사실을 부정했다. 그 모습을 지켜만 볼 수도 없어, 나는 샤워기를 끄고는 찬장 안에서 수건을 한 장 꺼내 모드레드의 어깨에 덮어주었다.
“자, 잠…?!”
놀란 모드레드가 고개를 들며 나를 바라보았다. 어찌나 체구가 작은지, 나는 허리를 감싸면 끝나는 수건이 몸을 완전히 감쌀 정도였다.
“조용히 해. 다 자고 있잖아.”
“힉?!”
그대로 욕조 안에서 번쩍 들어 올리자 모드레드는 놀라 몸을 움츠렸다. 물이 뚝뚝 떨어졌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화장실을 나와 방으로 돌아갔다.
“노, 놓아주십시오…!”
“내가 조용히 하라고 했지.”
“그, 그런 협박은 통하지….”
“한밤중에 남의 집 화장실에서 자위나 하고 있었던 녀석이 할 말이냐? 그것도 씻는다는 거짓말까지 하고선.”
“윽….”
조용해졌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있는 모드레드를 침대 위에 내려놓고 다시 화장실로 돌아갔다.
불을 끄고, 물기를 대충 닦고,
조금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며 돌아갔다.
“….”
모드레드는 침대 위에 있었다.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새하얀 종아리와 발끝이 살짝 밖으로 나와 있었다. 조용히 시선을 보냈지만 그녀는 숨을 몰아쉬며 필사적으로 그것을 피했다.
문을 딸칵,
“윽….”
닫자 그녀가 몸을 움츠렸다.
겁을 먹은 것일까.
아니면 참고 있는 것일까.
“하자.”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천천히 모드레드를 향해 다가갔다. 그렇게 말하자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가 한순간 나를 바라보았다.
검은 머리칼이, 비스듬히 볼에 달라붙은 채였다.
“아, 안 됩니다…!”
그리고 모드레드는 다시금 시선을 피했다. 입술 끝을 질끈 깨물며 그녀는 스스로를 다잡듯 몇 번이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모습에 나는,
“내가 하고 싶어서 그래.”
뻔히 보일 거짓말을 했다.
“….”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대답을 하지 않는 모드레드. 나는 짧게 중얼거리고는 셔츠를 벗으며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는 창문 쪽으로 물러서며 뒤집어쓰고 있는 이불을 여몄다.
물론 뻔한 내 ‘연기’에,
“절, 동정하시는 겁니까?”
그녀는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예상했던 바였다.
“왜 그런 식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는 거지?”
나는 침대 위에 무릎을 올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가까이 다가가, 시선을 피하려는 모드레드의 어깨를 쥐었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가녀린 그것을.
“네 아버지 칼 후퍼와….”
“그만…!”
칼 후퍼.
그런 이름에 흠칫 놀란 그녀가 내 손을 쳐냈다. 입술을 빠득 깨문 모드레드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리고 달려들어 뺨을 후려쳤다.
하지만 힘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당신 같은 사람에게…. 맡기는 게 아니었습니다…!!”
쥐어짜내듯 비명을 내지른 모드레드가 곧이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그녀를 지탱하려고 했으나, 모드레드는 뒤로 물러섰다.
“결국, 모든 걸 다 떠안겠다는 겁니까…!”
그리고 알아차렸다.
“….”
“랜슬롯도, 트리스탄도…! 그리고 이제는 저입니까?! 당신의 하찮은, 동정심으로…!”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건데!!”
나는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반대편 방에서는 유하가 자고 있다. 알고 있다. 그래서 조용히 하라고 이야기를 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널 버리는 게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거냐?”
“물론입니다!”
대답은 단호했다.
몸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주제에.
“헥터는 널 살려뒀잖아. 그 상황에서 약물로 유혹하면서 이쪽의 정보를 내놓으라고 한다면?”
“윽…!”
하지만 이어진 내 말에, 말문이 막혀 입을 다물어버리고 말았다. 수치심을 느끼는지 벌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고, 나는 스스로를 진정시키듯 앞머리를 매만졌다.
이러려던 건 아니었는데.
“넌 나에게 감정적으로 무모하게 움직인다고 했지.”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넌 그보다 더해.”
“제가, 말입니까…?”
모드레드는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넌 미쳤어. 마치 묫자리를 찾는 사람 같다고. 죽기 위해서 사는 사람 같단 말이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데?”
“저는, 단지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있을 뿐입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방해가 된다고 여겼을 뿐.”
“게임을 끝낸다는 목적이?”
내가 묻자 그녀는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클레어.”
왜냐면 그녀는 버리지 못했으니까.
동요하고 있으니까.
“클레어 후퍼.”
“그, 그만….”
“네가 무슨 이유로 그 이름을 버리기로 했는지는 몰라. 하지만 넌 그럴 수 없어. 오히려 버리려고 할수록, 네 내면은 비틀려 망가지게 될 거야.”
그리고 그것은, 표출이 될 터였다.
무척이나 더럽고 음습한 방향으로.
“그럼, 저는 어떻게….”
“널 도와주겠다고 말하는 거라고.”
“대체 왜….”
그녀는 거의 망가지기 직전이었다.
마음의 상처를 덮고 가만히 두는 것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내부에서 썩어 문드러져 어느새 그녀를 모드레드로 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모르고 있다.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이유는 없어.”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모드레드의 팔을 쥐고 당겼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그녀를 나는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사실 이유는 있다.
모드레드가 인간이기에, 또한 내가 인간이기에.
그리고 그녀가 필요하기 때문에.
“동정 같은 게 아니야. 이 멍청아.”
“…!”
빠져나가려고 했으나 팔로 억세게 움켜쥐자 그녀는 옴짝달싹도 못했다. 이불이 젖혀지고, 조그마한 가슴이 거친 호흡에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새하얀 피부는, 붉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나는 절대….”
이어서 이야기를 하던 도중, 나는 입술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까치발을 든 모드레드가 입을 맞춘 것이다.
“…. 이런 따스함이 싫은 겁니다.”
그리고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그 모습이 조금, 귀엽다는 생각을 해버렸다.
“도저히 버릴 수 없었기에, 이것만큼은….”
하지만 뒤를 이은 말은,
모드…. 아니, 클레어가 계속해서 그리워하던 것처럼 느껴졌다.
“괜찮아, 클레어.”
“아, 아니 그렇게 부르지 말아주십시오….”
“싫은 거야?”
“아니, 그런 것은 아니지만….”
조금 심장의 박동이 더 높아지는 기분이어서.
그렇게 중얼거린 모드레드가 내 가슴에 모찌 마냥 말랑말랑한 얼굴을 기댔다. 그런 행동에 나 역시 그녀처럼 심장의 소리가 커지는 것을 느꼈다.
“그, 그리고 한 가지만 더….”
“….”
묘하게 요구가 많은데.
“저, 저어….”
“뭔데.”
나는 조금 딱딱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러자 모드레드는,
“거칠게, 부탁드립니다….”
말을 채 잇질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