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재킷-190화 (190/321)

190편

<-- Chapter 4 : 파륜의 기사 -->

하지만 세상만사 뜻대로 이루어지란 법은 없다.

“….”

모드레드는 새하얀 방의 구석에 쪼그려 앉은 채였다. 나는 그 모습을 힐끔 거리며 계속해서 원형을 그리며 방을 맴돌았다. 솔직히 말해 오래 있을 수록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은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저어….”

그런 내 모습에 모드레드는 조금 눈썹을 찌푸린 채 고개를 들었다. 식은땀을 흘리는 모습에 나는 가까이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안색을 살폈다.

“응.”

“아니, 좀….”

허나 그녀는 내가 얼굴을 가까이하자 곧바로 벽 쪽으로 엉덩이를 들며 물러났다. 시선을 피한 채 모드레드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가,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그리고는 돌연 핀잔을 주었다.

“그리고, 정신 사나우니 가만히 좀….”

그렇게 중얼거린 모드레드가 이내 찌릿 나를 노려보았다. 돌연 이어진 말에 나는 당황해 볼을 긁적였다.

“다, 답답해서 말이지.”

“그러면 나가 계시면 될 것 아닙니까…?”

“네가 뭔가 이상한 짓 할 것 같아서 싫어.”

“아, 아무리 그래도 자위로 해소하진 않습니다…!”

“?”

“아니, 그….”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시선을 내리깐 그녀가 숨을 몰아쉬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괴로워 보이는 모습에 나는 가까이 다가가려다 이내 물러서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나중에 보자고 할까?”

“아니, 아닙니다. 지금….”

가상 세계로 돌입하려던 순간, 갑작스레 베디비어로부터 연락이 왔던 것이다. 모드레드의 안위를 물은 그가 이쪽으로 오겠다고 해 행위는 잠시 미뤄지게 되었다.

“몸은 좀 어때.”

“…. 성욕과…. 약물이….”

그리고 모드레드는 필사적으로 그것을 견뎌내고 있다. 이를 딱딱 깨물며 손톱을 물어뜯으려다 관두고, 분노에 휩싸였다 체념하기를 반복했다.

“아니, 당신이 신경 써주실 바는 아닙니다….”

“여기까지 와서 그런 소리야?”

“네…. 이건 전적으로 제 미스이기 때문에….”

괴롭게 숨을 몰아쉰 모드레드가 이내 무릎을 꽉 움츠렸다. 금단 증상이 무척이나 심해 보였으나 그녀는 연락이 오자 갑자기 참겠다며 의견을 바꾼 상태였다.

때문에, 또 사라지진 않을까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조금만 참아.”

“….”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볼 테니까.”

“죄송, 합니다….”

“미안할 게 뭐 있어.”

무뚝뚝하게 중얼거린 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쨌든 나라는 존재가 그녀를 괴롭게 만든다는 부분은 알았으므로 굳이 자극을 주지 않기 위해 떨어졌다.

새하얀 공간을 가만히 보는 건 성가셨지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 뭡니까.”

“이런 곳에서 먹고 자고 한 거야?”

“그렇습니다.”

“왜?”

“효율성의 문제입니다.”

중얼거린 그녀가 말을 이어나갔다.

“수면을 취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

“이불랑 베개 정도는 가져다 두지 그랬냐.”

말을 끊자, 모드레드는 나를 찌릿 노려보았다.

“재킷은, 방한 기능을 충실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거기에 신체의 근육을 적절한 형태로

항상 재구성하려 들기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나질 않는다고.”

“하…. 저를 사람이라고 생각하실 줄이야.”

“그럼 뭔데.”

“가상의 존재일 뿐입니다….”

그것은 약간 씁쓸한 목소리였다.

금단 증상으로 인해 스스로의 자아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서일까. 조금 감정을 드러낸 모드레드가 곧이어 내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넬을 바라보았다.

“이 녀석도 사람이야.”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건 참…. 어처구니가 없는 이야기로군요.”

그리고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스스로를 계속해서 옭아매고 있는 모드레드를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마치, 가상의 존재처럼 주어진 역할에만 충실하고 싶다는 듯했다. 그리고 그건 아마 ‘게임을 끝낸다.’라는 역할이겠지.

왜일까.

모드레드가 아서리안의 유저가 되었다는 사실을 칼 후퍼가 알게 된 이후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왜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은 모드레드는 어째서….

[타나, 도착했어요.]

고민에 빠져있을 즘, 베디비어로부터 연락이 왔다. 벽에서 등을 떼고 중심을 잡은 나는 곧이어 천천히 일어서는 모드레드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지금 나갈게.”

[네.]

베디비어의 대답을 듣고, 나는 곧바로 출구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제야 좀 바깥바람을 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안심하며 뒤를 돌아본 나는,

“윽….”

몇 걸음 걷지 못하고 무릎을 꿇은 모드레드의 모습을 발견했다.

“도와줄게.”

“괜찮, 습니다.”

애써 이야기하며 다가가자 또 이런 태도다. 검은 판초 바깥으로 손을 내밀어 쳐내려는 모드레드의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었다.

“윽?!”

반쯤 억지로 안아들었다. 한순간 눈을 동그랗게 뜬 모드레드는 내 가슴을 밀어내려고 했으나 이내 추욱 늘어져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

이제 될 대로 되라는 모습이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모두들 모인 채였다.

“발렌타인.”

가까이 다가간 나는 소파에 몸을 떨고 있는 모드레드를 내려놓았다. 가까이 다가온 발렌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날 올려다보았다.

“아, 네.”

“혹시 덮을만한 게 없을까?”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모드레드를 바라보았다. 바깥으로 나오자 갑자기 상태가 심해졌던 것이다.

“으, 으음…. 찾아볼게요.”

“미안, 부탁할게.”

고심하던 그녀가 가게 안쪽으로 사라졌다. 넬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모드레드를 내려다보았다.

“모드레드…?”

다가온 린슬렛이 모드레드의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명확한 사정을 모르기 때문인지 다들 조금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쉽사리 거기에 대해서 설명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자니 모드레드가 비틀거리며 자세를 바로 했다. 트리슈가 다가와 그 옆에 앉았다.

“전혀 안 그래 보이는데?”

“헥터의 약물에 당했어.”

어쨌든 설명은 해야겠지.

“중독성이 강한 종류야. 보이는 바대로 강한 금단 증상을 가져서 일상 생활도 불가능할 정도지.”

“으음…. 재킷을 일단 벗어두시면….”

다가온 베디비어가 상황을 살피며 물었다. 거기에 몸을 움찔 떤 모드레드가 눈앞에 팝업창을 띄웠다.

“그거라면, 네…. 가능합니다만.”

“모드레드. 무리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나는 그것을 제지했다. 거기에 몸을 흠칫 떤 모드레드가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다시금 쓰러지려는 그녀를 트리슈가 가볍게 자신에게 기대도록 했다.

“그럼 어떻게 해? 티티.”

“헥터에게 물어야하지 싶기는 한데….”

린슬렛의 물음에 나는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과연, 어떤 수단으로 그녀를 옭아 넣고 치료제를 내놓으라고 할 수 있을까 걱정이었다.

금단 증상, 그리고 마약.

그런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헥터가 스톰을 통해 모드레드에게 쓴 것은 사실상 독약에 가까웠다.

“으음, 타나 오빠.”

바로 그때, 트리슈가 날 불렀다.

“응.”

“혹시 트리슈 예쁜 짓 했으면 칭찬해줄 거야?”

“…?”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트리슈는 가볍게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자 거기에 연한 녹색으로 팝업창이 떠올라 빛나기 시작했다.

“섹스 앤 드러그. 헥터의 가게 이름이지.”

“그렇지.”

“거기 드나드는 고객들의 ‘정보’를 알아냈거든.”

웃으며 이야기한 트리슈가 그 정보를 내게 던졌다. 받아서 살펴본 나는 이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트리슈.”

“응응?”

“넌 정말 환상적이야.”

“히히, 조금 오그라들지만 받아들여줄게.”

그것은 고객들의 신상 명세서였다.

가상 세계에 들어오는 즉시, 개인의 정보는 암호화되어 보호된다. 하지만 지금 내가 들고 있는 팝업창에는 그런 정보들이 빠짐없이 기록이 된 채였다.

“트리슈는 단순히 그렇게 기록된 정보를 빼왔을 뿐이야. 헥터가 기록해둔 것 같던데.”

“내밀 카드가 하나 생긴 셈이군.”

나는 트리슈에게 다시 팝업창을 돌려주며 중얼거렸다. 헥터는 어떻게 생각할지 알 수 없었지만 이런 카드가 생긴 이상 협상의 여지는 생긴 셈이었다.

“그걸…. 어디에….”

거기에 모드레드가 반응했다.

몸을 바로 세우며 일어선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며 이내 경계하듯 천천히 물러섰다.

“일단 이야기를 해봐야겠지.”

“그 데이터가 사실이라면…. 할 킬러즈의 평판을 떨어뜨릴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렇겠지.”

“이상한 곳에 써서는 안 됩니다….”

타당한 말이었다.

지금의 데이터는 공개가 된다면 순식간에 화제가 될 터였다. 전 세계적인 유명인들이 얽혀 있는 일이었으니까. 말인즉슨 이런 정보를 일부러 남겨두어, 현실과 가상을 이용해 이득을 보려는 할 킬러즈의 추태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겠지.

잘하면 이번에 그들이 계획하고 있는 거대한 음모도 막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정보였다.

“걱정 마. 쉽게 넘기지는 않아.”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모드레드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진지한, 또한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았으나 그녀는 숨을 몰아쉬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애초에….”

하지만 말을 잇지 못하고 쓰러졌다.

완전히 정신을 잃은 모드레드를 부축한 나는 가볍게 안아들고 다시 소파에 내려놓았다.

“어쨌든, 이 바보 녀석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게 우선일 것 같은데.”

“응, 그게 맞는 것 같아.”

이어진 내 말에 동의를 하듯 린슬렛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파에 팔을 걸치고 선 그녀가 말을 이었다.

“어쨌든 우리 중에서 가장 베테랑이잖아?”

“그, 런가?”

조금 의아해 되묻자 린슬렛은 고개를 끄덕였다.

“할 킬러즈를 상대하는 일에는 확실히….”

“그럼 모드레드도 이제 동료인 거야?”

뒤를 이어 트리슈가 물었다. 나는 어쩐지 당황스러운 기색을 느끼며 앞머리를 매만졌다.

“그렇게 되려나…?”

“아서리안으로 치면 기사단이겠네요.”

베디비어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고 트리슈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타나토스 기사단?”

“누가 기사단 이름에 자기 이름을 넣어….”

린슬렛이 금방 핀잔을 주었지만.

“저어, 타나님?”

“아, 응.”

바로 그때, 발렌타인이 돌아왔다.

“죄송해요…. 찾아봤는데 딱히 없네요.”

“아, 아니야. 미안할 게 뭐 있어.”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그러자 뒤를 이어 발렌타인은 소파에 웅크린 채 누워 있는 모드레드의 곁으로 다가가 이마를 짚었다.

“뭔가 방법은 없을까요…. 보고 있기 안쓰러운데.”

방법…. 이라.

“금단 현상을 완화시킬만한 뭐, 그런….”

한 가지 있긴 하지.

하지만 절대 입 밖으로 낼 수는 없다.

나는 그런 사실을 자각하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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