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편
<-- Chapter 4 : 파륜의 기사 -->
◇
“티티!!”
시야가 좁아졌다.
뒤쪽에서 누군가 버럭 소리를 질렀으나 나는 무시하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좁은 길목의 끝에 있는 모드레드의 모습을 보자 사고가 정지했다.
망령 신체.
나는 스킬을 이용해 곧바로 신체의 감각을 망자의 것으로 되돌렸다. 좁은 복도의 안으로 달려 들어가자 곧바로 폭발이 일어나며 불길이 몸을 휘감았다.
하지만 통증은 없다.
약병이 날아들어 몸에 부딪치고, 그 내부의 파편이 몸을 꿰뚫고 지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설치된 각종 함정들을 그대로 받아내며, 나는 그저 눈앞에 있는 모드레드를 보고 끝까지 전진해 나아갔다. 주변에 있던 뱀들이 달려들어 온몸을 물어뜯었다.
“윽…!”
그것이 움직임을 방해해 나는 팔을 휘둘러 쳐냈다. 하지만 늪에 들어서는 것처럼 발이 푹 빠지고 그 부근을 뱀들이 휘감으며 타고 올라왔다.
발이 묶여 옴짝달싹도 할 수가 없었다.
“움직이지 마!”
바로 다음 순간, 목소리와 함께 녹색의 무언가가 귀 옆을 스쳐지나갔다. 일부러 의식해 멈춰선 나는 곧이어 몸을 뒤덮은 뱀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화살에 꿰뚫려, 몸을 뒤덮은 뱀들이 벽에 처박혔다. 트리슈의 지원에 나는 곧바로 몸을 움직여 앞으로 다가갔다. 스파다를 뽑아 휘둘러 사슬을 잘라냈다.
“모드레드!”
조그마한 몸을 받아내며, 나는 곧바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모드레드로부터 대답은 없었고,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뱀탕이나 다름없는 장소를 빠져나왔다.
함정은 미리 작동되었기에 돌아오는 것은 수월했다.
“티티!”
“타나 오빠!”
입구 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린슬렛과 트리슈가 다가왔다. 걱정한 기색이 한껏 깃든 두 사람의 모습에 나는 무뚝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난 괜찮….”
“이 멍청이가! 스킬 쓸 거라면 쓴다고 하던가!”
“어?”
갑자기 혼났다.
“타나 오빠. 일단 이쪽으로.”
“으, 으응.”
나는 당황해 품에 조그맣게 말린 것처럼 안겨 있는 모드레드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옆에 서있던 넬이 팝업창을 띄우고 조작해 그녀에게 가운을 입혔다.
“하여간 사람 놀라게 하는 일에는 재주 있어! 으응?!”
“리, 린슬렛. 아파.”
볼이 잡히고 당겨져 나는 당황해 중얼거렸다. 이를 바득바득 갈던 린슬렛은 이내 손을 놓고는 바닥에 누워있는 모드레드의 곁으로 다가갔다.
“넬, 상태는 어때?”
“확인해볼게요.”
중얼거린 넬이 팝업창을 띄우고 조작하기 시작했다. 린슬렛과 트리슈는, 창백한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는 모드레드의 모습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살폈다.
“….”
모드레드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시체처럼 축 늘어진 채 온몸에는 뱀이 휘감은 비늘 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상태였다. 그것을 차마 보기가 힘들어 나는 시선을 피했다.
빌어먹을.
분노가 치밀었다.
헥터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이런 식으로 바보 같은 선택을 한 모드레드에 대해서였다. 하지만 복잡했다. 모드레드의 행동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녀의 ‘과거’를 모두 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하지만 모두 본다고 해서?
그런다고 해서 뭐가 바뀌랴.
그녀는 이렇게 망가져 버리고 말았는데.
이 말도 안 되는 세계로 인해.
“젠장….”
애써 모드레드에게서 시선을 돌려, 나는 열고 들어온 문으로 다가가 바깥을 살피기 시작했다. 불그죽죽한 홍등가, 바로 옆이 헥터의 가게였으나 조용했다. 우리가 모드레드를 구하러 온 것을 모를 리는 없을 텐데.
마치 데리고 가라는 것처럼, 반응은 없었다.
“일단 신체에 문제가 있으신 것 같지는 않아요.”
그렇게 바깥을 살펴보고 있던 중, 넬이 침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힐끗 돌아본 나는 트리슈가 나서서 모드레드의 어깨를 잡는 것을 확인했다.
“모드레드!”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건지 린슬렛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인공호흡이라도 해볼까?”
“아뇨, 으음…. 일단 계속 이름을 불러보시겠어요?”
넬의 말에 트리슈와 린슬렛이 달라붙어 모드레드의 손을 쥐고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응은 없어, 나는 입술이 다물어지는 것을 느꼈다.
모드레드, 모드레드.
두 사람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반응은 전혀 없었다.
“…. 젠장.”
나는 가볍게 인상을 찌푸렸다.
“반응이 전혀 없으신데요. 으음….”
넬이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중얼거리고 나는 입술을 빠득 깨물며 곁으로 다가갔다. 눈을 동그랗게 뜬 세 사람이 물러서 나는 모드레드의 허리와 머리를 받친 상태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말했다.
“클레어…!!”
그녀의 이름을.
◇
우리는 가상 세계에서 튕겨지듯 빠져나왔다.
“큭…!”
갑작스러운 변화를 뇌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머리가 지잉 울릴 정도의 충격이 찾아들었다. 딱딱하게 굳어져 있던 몸을 일으켜 세운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온통 새하얀 방안.
나와 마찬가지로 현실로 돌아온 넬, 그리고 바닥에 누워있는 모드레드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반쯤 억지로 무릎을 굽히며 일어나 모드레드를 향해 다가갔다.
“모드…!”
그렇게 외친 순간, 칼날이 날아들었다.
“윽?!”
그것이 귀 옆을 스쳐지나가, 나는 아슬아슬하게 목을 비틀어 피해냈다. 뒤를 이어 순식간에 자세를 잡은 모드레드가 검을 내던졌다. 갑작스러운 행동으로부터 이어진 검은 궤적에 나는 당황해 팔을 들었다.
“주인님!”
푸욱, 하는 소리와 함께 통증이 퍼졌다.
“커헉!”
팔뚝에 단검이 꽂힌 사실을 깨닫고 다음 순간 모드레드가 달려들었다. 턱을 걷어차여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운 나는 곧이어 복부에서 강한 통증을 느꼈다.
“…!!”
무릎을 세운 모드레드가 살의를 담아 내리찍은 것이었다. 뒤를 이어 내 위로 올라탄 그녀가 단검을 쥐고 비틀어 뽑아냈다.
“모드, 레드!”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단검은 무자비하게 목을 노리고 내리꽂혔다. 나는 팔을 들어 모드레드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피가 타고 흘러 얼굴에 뚝뚝 떨어졌다.
“왜…!!”
그리고 그녀는 비명을 내질렀다.
“왜 구하신 겁니까!!”
“그냥, 놔둘 순…! 없잖아!!”
“저는 그저 짐 덩어리일 뿐이라고…!!”
“무슨 소리를…!”
나는 버럭 소리를 지르려 했으나, 이내 입을 다물었다. 모드레드의 검은 머리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는, 독기와 금단 현상으로 인해 반쯤 맛이 간 상태였다.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이후로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녀는 현실을 잃어버리게 된 것일까. 클레어라는 사람은 죽어버리게 된 것일까. 그렇게 입을 다물고 있자니 모드레드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다, 보신, 겁니까….”
그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고 나는 아니라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모드레드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더욱이 칼을 밀어붙였다.
“그런데도 어째서…!!”
“이, 멍청한 자식이….”
나는 팔에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모드레드는 고개를 휘휘 내저으며 고통스러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저는 여기까지이니…!”
“헛소리 하지 마!!”
그 말에, 나는 저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동시에 몸을 비틀어, 깃털보다도 가벼울 듯한 모드레드를 밀어냈다. 이번에는 반대로 위에 올라탄 상태가 되어 나는 바닥에 누운 모드레드를 노려보았다.
“아쉽게도 난 청개구리 같은 놈이라서 말이지…!”
“그 하찮은 동정심으로, 뭘 할 수 있다는 겁니까!”
“하찮다고 하지 마! 마약 중독자 주제에!!”
“…?!”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알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인 채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너야말로 유언장 써놓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미련투성이면서! 넌 너를 한낱 도구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난 아니란 말이다! 자살하면 누가 알아줄 것 같아?!”
“누, 누가…!”
“누구긴 누구야! 클레어 너잖아!!”
“그런, 이름은…!”
“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네가 재킷에 각성해서 그걸 알게 된 아버지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
“하지만 그래도 그런 헛소리 하는 거 아니야! 넌 괜찮아도 나는 뒷맛이 찝찝하다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 다음 순간,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타까운 표정을 지은 모드레드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내젓고 있었던 것이다.
팔뚝에서 흐른 피가 뚝뚝 떨어져, 모드레드의 입술에 닿았다. 몇 번을 망설이던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안 된단 말입니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이미 망가져버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단 말입니다…!”
“알아. 하지만 넌 싸워야 해.”
“대체, 왜….”
“내가 도와줄 테니까.”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어느새 칼을 놓은 모드레드를 진지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임에도 그녀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마치 그럴 방법을 잊은 사람처럼.
“당신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사람입니다….”
“나도 알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모드레드의 말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녀가 클레어라는 이름을 저버린 것처럼.
나 역시 엘레노어가 유도해 이렇게 되어버린 가상과 현실을, 병적으로 증오했으니까.
“…?”
바로 그 순간, 나는 무릎을 무언가 꾹 조여드는 감각을 느꼈다. 뭔가 싶어 고개를 숙이니 판초 아래로 뻗은 모드레드의 다리가 감싸들고 있었다.
“모, 모드레드?”
“이래서, 안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숨소리가 거칠었다. 뒤를 이어 내 팔을 움켜쥔 그녀가 피가 흐르는 거기에 입을 맞췄다.
할짝, 하고 핥았다.
“저는…. 지금, 끊임없이 성욕을 느끼고 있습니다.”
재킷을….
그런 이야기를 하려던 나는,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모드레드는 재킷을 벗을 수가 없다.
강제로 그랬다가는 완전히 망가져버릴지도 모른다.
“거기에, 너무…. 강해서….”
“뭐가 강한 건데.”
“당신, 이….”
“?”
그녀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내 재킷 밑으로 손을 넣어 복부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죄, 죄송, 합니다….”
“….”
“당신이, 신경 쓰실 바는 아닙…!”
모드레드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내가 입술을 겹쳤기 때문이었다. 한순간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가 이내 숨을 몰아쉬며 자연스럽게 혀를 밀어 넣었다. 모드레드는 마치 운동 끝에 물을 마시는 것처럼 매달렸다.
“….”
그리고 휙 떼었다.
얼굴이 새빨개진 채였다. 약물의 영향인 건지…. 아니면 다른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때, 조금이라도 나아졌어?”
그 말에 모드레드는 입을 꾹 다문 상태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새하얀 목에 땀이 주륵 흘러내려 나는 다시금 묻기 위해 입을 열었다.
“나라도 괜찮다면….”
“하, 하지만.”
그녀가 다급히 말을 끊었다.
“현실에서는…. 해본 적이 없습니다….”
“….”
아니 나도 그런 의미는.
잠깐 당황해 굳어져 있던 나는 이내 길게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었다. 설정 쪽을 조금 건드려, 비밀 방을 만들어내고 모드레드에게 내밀었다.
“저, 정말로….”
그녀는 조금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갈구하고 있었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강아지가 먹이를 내민 주인에게 ‘기다려’라는 명령을 들은 것처럼.
“괜찮아.”
내가 중얼거리고 모드레드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