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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188화 (188/321)

188편

<-- Chapter 4 : 파륜의 기사 -->

칼 후퍼는 인공지능을 창조하려고 했다.

그 명확한 기원은 지금의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는 애초에 그런 인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창조하여, 그로서 자신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시점에서는 뒤바뀌었다.

아내인 안네 후퍼가 사망한 이후로,

그리고 그녀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는 마치 모든 걸 잃어버린 사람처럼 거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기껏 깎았던 수염도 마구잡이로 자라났다.

마치 그가 광기에 물들어 가는 것처럼.

“…. 빌어먹을.”

나는 그것을, 불쾌한 기분이 되어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이후의 모드레드는 그런 아버지를 멀리서 지켜보기만 할뿐 다가가지는 못했다.

그리고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자각했다.

이건 모드레드의 과거뿐만이 아니라, 엘레노어의 탄생까지를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기록에 가까웠다.

엘레노어의 개발은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칼 후퍼의 옆에는 한성진이 함께였다. 그는 어느 샌가 칼이 가장 의지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내 예감이었지만, 나는 한성진이, 칼 후퍼를 세뇌한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모드레드의 경우에는 보다 못한 우정현 회장이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하고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해 괴로워했다.

교복 차림으로 나타난 우아랑이 모드레드를 챙겨주었으나, 전혀 통하질 않았다.

그리고 1년의 시간이 흘러,

엘레노어는 한성진과 칼 후퍼의 개발에 힘입어 ‘완성’되었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엘레노어는 칼 후퍼라는 남자의 계산을 뛰어넘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인공지능을 뛰어넘어, 신이 될 준비를 마친 엘레노어는 드넓은 가상 세계로 도망쳤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었다.

그리고 2031년,

“…?”

칼 후퍼는 도망치고 있었다.

상황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해, 나는 눈썹을 찡그린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평범한 세단, 바깥으로 쏜살같이 풍경이 스쳐지나갔다.

[젠장…. 어째서 이렇게….]

거칠게 휠을 돌리며, 그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운전을 지속했다. 조수석에 앉은 채였던 모드레드는 겁을 먹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 개새끼…. 내 엘레노어를 빼앗아?]

빼앗아?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내 그는 참지 못하고 유리창을 후려쳤다. 강화 유리에 쩌적, 하고 금이 갈 정도로 세게.

[그 짐승 같은 새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엘레노어를, 제기랄….]

분노로 일갈한 그는 반쯤 맛이 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친 듯이 머리를 쥐어뜯고 손톱을 물어뜯었다.

[파파, 무슨….]

[조용히 해!!]

불안한 딸의 질문에도 그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도망치는 것처럼, 그는 계속해서 차를 몰았다.

그가 말하는 ‘짐승 같은 놈’이란 누구를 말하는 걸까.

“한성진….”

나는 그런 의문에 저도 모르게 대답을 했다.

계속해서 영상에 등장했던 한성진이라는 남자가, 그가 말하는 것처럼 엘레노어와 함께 방대한 네트워크의 세계로 도망친 그레일이라는 존재인 걸까.

그는 대체 누구인 거지?

“….”

의문에 답을 찾기도 전, 나는 다시금 풍경이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 눈이 어지럽다 생각이 들 정도로 단발적인 풍경이 계속해서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엘레노어라는 존재는 방대한 네트워크의 세계로 도망쳤다. 그녀는 1년이 채 되지 않아 인간보다 훨씬 더 월등한 존재가 되어 세계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딸을 데리고 영국으로 도망치듯 돌아간 칼 후퍼는 이내 전 세계를 떠돌기 시작했다.

엘레노어가 만들어낸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서.

[되찾아야 해…. 그 남자로부터….]

광기에 물든 그는 자신의 딸조차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 과정 속에서 모드레드는 지켜줘야 할 어린 소녀가 아닌, 사막에서 타고 다니는 낙타보다도 못한 존재로 여겨졌다. 그녀는 단순히 칼 후퍼의 마지막 남은 인간성에 불과했다.

엘레노어로부터 ‘선택’을 받기 위해, 그리고 그로서 칼 후퍼가 자신의 딸이라 여기는 그녀를 되찾기 위해.

칼 후퍼는 점점 미쳐가고 있었다.

그 과정 속에서 모드레드는 점점 자신을 잃어갔다.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할 뿐인 그녀는,

그것이 허락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 외의 삶은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

풍경이 계속해서 변화하고, 각지를 여행하는 모드레드와 아버지의 모습이 비춰졌다. 중동과 유렵, 북아시아와 남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칼 후퍼는 엘레노어가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향했다.

게임의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

“잠시만….”

그리고 나는 놀라 중얼거렸다. 분명 모드레드는 그 시점에서 게임의 유저였기 때문이었다.

언제 어느 순간인지는 모른다. 그 기억은 기록되어있지 않다. 하지만 영상에서의 모드레드는 어느 순간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재킷의 힘을 활용해왔다. 그 힘이 없었으면 아마 그녀는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무관심과,

혹독한 환경 속에서.

외국의 모르는 남자들에게 몇 번이고 강간을 당할 뻔했고, 인신매매를 당할 뻔했다. 그런 상황을 모드레드는 재킷의 힘을 이용해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녀의 가장 큰 적은 결국,

[클레어….]

아버지였다.

[티티!]

바로 그 순간, 나는 다시 현실로 빠져나왔다.

“큭…?!”

실존하는 몸을 움찔 떨며, 나는 놀라 고개를 들었다. 뇌가 어질어질 하는 감각과 함께 나는 구역질이 몰려드는 것을 느끼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대답해! 티티!]

“린슬렛…?”

나는 당황해 거기에 대답했다. 귓속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애써 정신을 바로 잡으려 노력했다.

[아, 응! 지금 어떻게….]

“모드레드가 기록해두었던 영상을 보고 있었어. 이제 곧 배리어 속으로 들어갈 참이었는데. 너희는….”

[아니야! 안 들어가도 돼!]

“뭐?”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답했다. 반대편에서 모습을 드러낸 넬 역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눈치였다.

[죽지 않았어!]

“뭐야? 그게 무슨 소리야?”

[모드레드 말이야! 죽지 않았다고!]

“…?!”

나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일까. 폭발 소리가 연이어 들려오며 귓속을 마구잡이로 뒤흔들었다.

[지금…! 헥터의 가게에서…!!]

“린슬렛!!”

콰앙, 하는 폭발 소리에 나는 저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뒤를 이어 다른 침착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응, 타나 오빠?]

“트리슈!”

[지금 모드레드의 옆에 있는 거지?]

“지금 바로 옆에!”

[어떻게 해서든 데리고 돌아갈게. 하지만 타나 오빠가 좀 진정을 시켜주었으면 해.]

“무슨, 소리야?”

[일단 그렇게만 알아둬…! 절대 가상 세계로 오지 마!]

다급한 목소리의 뒤를 이어 통신이 휙 끊겼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 잠든 모드레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약물이 담긴 병이 날아들고 있다.

린슬렛은 곧바로 아론다이트를 휘둘렀다. 장식이 없는 평범한 방패의 끝에서 푸른 검기가 원형을 그리며 파장처럼 뻗어져 나갔다.

그것이 약병의 몸통을 반으로 가른 순간,

“크윽?!”

폭발과 함께 파편이 날아들었다. 그것을 방패로 막아내며 트리슈는 뒤로 뛰어 물러섰다. 하지만 여러 갈래로 나뉜 파편의 일부가 허벅지를 꿰뚫었다.

“린 언니는 물러서있어.”

“트리슈…!”

몸을 움츠린 린슬렛의 앞으로 트리슈가 한숨을 내쉬며 나섰다. 그런 모습에 린슬렛이 놀라는 것도 잠시, 가볍게 어깨를 푼 트리슈는 곧바로 팔목에 빛을 피워 올렸다.

“꽤 재미있는 스킬인데…?”

약간 너스레를 떨듯 웃으며 트리슈가 앞으로 나섰다. 붉은 조명으로 이루어진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으나 그녀는 심어둔 ‘함정’ 몇 가지만으로 헥터의 대략적인 성향에 대해서 파악한 상태였다.

간격이 넓다.

교활하고 지능적인 측면이 있다.

이런 식으로 ‘입구’를 만들어, 모드레드를 구출하려는 자신들을 끌어들인 것을 보면….

트리슈는 자리에 가만히 선 채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이런 식으로 지형을 구성해둔 헥터의 행동에 의도적인 측면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기는 했다.

타나토스라면 구하러 올 것이라고 생각한 거겠지.

그리고 원한다면 구해보아라.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한 트리슈는 눈썹을 찌푸렸다.

“린 언니. 타나 오빠를 오게 해서는 안 돼.”

“…. 그래야할 것 같네.”

길게 뻗은 복도.

온갖 함정으로 가득한 길의 끝에 있는 모드레드를 보고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같은 의견을 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뒤쪽의 문이 열리는 소리에 두 사람은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검은 재킷을 입고 있는 사내의 정체를 먼저 확인한 린슬렛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티, 티티?!”

“….”

심각한 얼굴의 그가 안으로 들어섰다. 옆에서 함께 들어오는 넬을 보며 트리슈는 그가 어떻게 이 장소를 금방 찾아내서 왔는지를 짐작했다.

“타나 오빠…!”

“모드레드는?”

“오지 말라니까!”

“…?”

갑작스레 길을 막아서는 두 사람의 모습에 타나토스는 뭔가 수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눈썹을 찌푸렸다. 하지만 린슬렛과 트리슈는 그런 상황에서도 차마 상황을 설명할 수가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대체 뭔데 그래?”

“안 돼. 타나 오빠. 보지 마.”

“그, 그래. 티티. 우리가 할 테니까 현실에서 모드레드가 깨어나는 걸 돌봐줘. 응? 그렇게….”

“잠시만.”

반쯤 애원하는 두 사람을 지나친 타나토스는 그대로 복도 안쪽으로 들어섰다. 불길한 예감을 느낀 채 고개를 든 그는 돌처럼 몸이 굳어지고 말았다.

함정으로 가득찬 복도의 끝.

그는 사슬에 묶여 천장에 매달린 모드레드의 모습을 보았다. 기절한 그녀의 주변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그것은 뱀이었다.

알몸인 모드레드의 몸을 뒤덮은 그것은,

분명히 뱀의 무리였다.

“빌어먹을….”

주먹을 꽉 쥐는 그의 모습을 보고 트리슈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린슬렛은 어떻게 해서든 진정을 시켜볼 요량에 타나토스의 앞으로 나섰지만,

“모드레드!!”

그는 소리를 버럭 지르며 뛰어나가 버렸다.

함정으로 가득한 복도. 그 끝에 있는 여자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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