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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185화 (185/321)

185편

<-- Chapter 4 : 파륜의 기사 -->

지난 사건 이후 쥬브나일 포르노는 점포를 옮겼다.

베디비어는 그렇게 표현을 했다. ‘점포를 옮겼다’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하고 생각했다.

외곽 순환 도로의 저편에서 거대한 트레일러 차량이 보였다. 그것은 묵직한 배기음을 내며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왔고 나와 베디비어는 타이밍에 맞추어 뛰어올랐다. 그러자 몸은, 마치 흡수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트레일러의 벽을 뚫고 안으로 들어섰다.

“타나 오빠!”

“윽…!”

시야를 되찾은 순간, 누군가 내 품안에 안겼다. 스톰을 들고 있던 상황에서 놀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트리슈가 어린애처럼 밝게 웃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트, 트리슈….”

“응응, 트리슈 보고 싶었어?”

“애 너무 부담주지 말래?”

귀엽게 애교를 부리는 트리슈의 모습에 당황하고 있자니, 뒤를 이어 린슬렛이 한숨을 내쉬며 다가왔다. 그리고는 트리슈의 목덜미를 쥐고 내게서 떼어냈다.

“고생했어. 세 사람 다.”

“너희도.”

나는 웃으며 린슬렛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옆에서 다가온 발렌타인이 이어서 입을 열었다.

“타나님, 그 분은 이쪽으로.”

“일단 깨어날 때까지 우리가 알아온 걸 이야기해줄게.”

발렌타인의 뒤를 따라가자니 따라붙은 린슬렛이 말을 꺼냈다. 나는 스톰의 상태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시궁창 냄새 때문인지 추욱 늘어진 녀석은 당분간 깨어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으므로.

“여기 그냥 앉혀둘까?”

평범한 개인실로 인도되어 소파에 스톰을 앉힌 나는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인 발렌타인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오랜만….”

그러자 화이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화이트를 감시로 붙여두죠.”

“아, 응.”

갑작스러운 등장에 당황해 대답하자니, 뒤를 이어 안으로 들어온 화이트가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조그마한 키에 졸린 눈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잘 부탁해.”

“….”

얼굴을 붉힌 녀석은 이내 스톰의 맞은편에 앉았다. 나는 추욱 늘어진 스톰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는 발렌타인을 따라 방을 나섰다.

“화이트도 타나님을 좋아하는 모양이네요.”

“그, 그래?”

“네, 보통 머리를 만지면 가만 놔두지 않거든요.”

“…. 어떻게 하는데?”

약간 불안해져 물으니,

“손을 잘라버려요.”

역시나 충격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아 물론, 진짜 손이 잘리거나 하지는 않지만.”

“참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군.”

나는 어이가 없어 피식 웃으며 바깥으로 나갔다. 중간의 커다란 소파 좌석에 모두들 앉은 채였다.

“자 그럼, 모두 모인 건 오랜만이군.”

발렌타인이 베디비어의 옆에 앉고, 그 맞은편에는 린슬렛과 트리슈가 있다 그 사이에 자리를 잡고 선 뒤, 나는 가볍게 생각을 정리하고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의 상황에 관해서, 명백하게 내 입으로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나는 동료들을 향해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우정현 회장에 관해서.”

그녀는 모르가나를 포함해 악용될 여지가 충분한 게임 상의 아이템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그게 할 킬러즈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버티며, 뒤쪽으로는 우리나 모드레드를 통해 그들에게 대항할 세력을 키워왔다.

하지만 얼마 전, 그녀는 할 킬러즈로부터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제안을 받은 상태다. 그것은 사실상 우아랑을 앞세워 협박을 하는 것에 가까웠으나, 대외적으로 봤을 때는 시도해볼만한 플랜이었다.

0과 1로 이루어져 있을, 그렇기 때문에 지금 현실에 끼치고 있는 영향이 ‘악의’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엘레노어를 구슬리기 위한 수단으로서.

할 킬러즈는 사업을 제안해온 것이다.

“물론 나는, 그 말을 신뢰하지 않아.”

거기에 퀘스트를 통해 엘레노어의 방향을 선회시킬 수 있을 거라는 그들의 낙관적인 생각 또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대외적으로 봤을 때는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이었다.

적어도 게임을 끝낸다는 생각보다는.

“…. 너희는 어떻게 생각해?”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스스로의 현실성 없는 생각이, 충돌을 일으킬 것이라는 각오를 마친 채.

“저는, 아까도 말씀을 드렸다시피.”

그리고 먼저 입을 연 것은 베디비어였다.

“더 이상 좌시하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할 킬러즈의 저의를 알고 있는 이상, 알겠습니다. 하고 따르는 것은 어딘가 이상하지 싶습니다.”

“….”

“물론, 대화를 해보는 편이 좋아 보이긴 합니다만. 상대방이 그럴 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게 문제죠.”

“대화, 라….”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

“왜 그래? 오빠.”

“아니, 음….”

트리슈의 물음에 나는 볼을 긁적거렸다.

확실하게 말해 나는 할 킬러즈가 아서리안 사태를 진정시킨다는 명목 아래에 어떠한 짓을 자행해왔는지 알고 있다. 녀석들은 그것을 통해 시민들을 착취하고 자신들의 잇속을 불리기 바쁜 악당들이었다.

라이오넬을 제외한다면.

녀석과는 한 번쯤, 대화를 나누는 편이 좋지 않을까.

“린슬렛, 네 생각은 어때.”

잠깐 고민에 빠져 있던 나는, 이내 뭔가 생각에 잠겨 있는 듯 보이는 린슬렛을 보고 물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응, 나?”

“어머님은…. 뭐라고 하셔?”

“걱정하시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한 그녀가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복잡한 마음이 드는 걸 느꼈다. 린슬렛의 어머니는 상황에 대해서 면밀히 파악을 해두어, 그만큼 딸에 대한 걱정이 클 터였다.

“티티.”

잠깐 입을 다물고 있자니 다시금 린슬렛이 날 불렀다. 고개를 든 나는 믿음직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모습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망설이지 마.”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선 그녀가 가까이 다가왔다. 멍하니 있던 내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린슬렛….”

“말했잖아. 네 방패가 되어주겠다고.”

거기에 무어라 형언하기 힘든 감정을 느낀 순간,

“우와, 되게 오그라드네.”

어느새 등장한 트리슈가 우리 사이로 끼어들었다.

“트, 트리슈?!”

린슬렛을 깜짝 놀라 얼굴을 붉히며 물러섰다. 뒤를 이어 트리슈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나를 돌아보았다.

“뭐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

“이 바보 오빠는 옆에 딱 달라붙어서 지켜줘야 하지.”

그 얼굴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고 있다.

발렌타인과 베디비어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스로의 판단에 의거해,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듯했다. 나는 네 사람으로부터 신뢰를 느끼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다섯 사람이지만.

“헤헤, 좋은 동료를 두셨네요. 주인님.”

“…. 그래.”

뒤쪽에서 넬이 빙긋 웃어보였다. 나는 누군가 등을 받쳐주는 듯한 감각에 어쩐지 긴장이 풀리는 걸 느꼈다.

“그런 김에, 가상 세계에서 알아낸 정보를 말해줄게.”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트리슈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소파 사이에 있는 테이블의 위에 영상을 띄웠다. 우리는 거기에 자연스럽게 집중했다.

“우아랑…?”

검푸른 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성이 영상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놀라 중얼거렸다.

“퀘스트 진행하러 서고에 갔는데 있더라고.”

트리슈는 가볍게 중얼거리며 영상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보여주기 시작했다. 우아랑과 전투를 벌이는 린슬렛의 모습과, 트리슈가 한 남자를 추적하는 모습이 번갈아 드러났고 나는 단숨에 상황을 파악했다.

“할 킬러즈도 조각을 가지고 있다는 건….”

“엘레노어께서 의도적으로 조각을 나누었다는 거지. 아마 우리가 결론을 내리기를 기대하는 것 같은데.”

“어떤…?”

“갤러해드 퀘스트를 누가 진행할 것인지.”

트리슈는 진지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반대편에 있던 발렌타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조만간 퀘스트가 내려오겠네.”

“아마도? 그러니까 그땔 위해서, 끝낼 수 있는 건 최대한 끝내둬야겠지.”

거기에 대답한 트리슈가 나를 돌아보았다. 뒤를 이어 가게 안쪽에서 남자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슬슬 다시 움직여야할 때임을 자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트리슈랑 린 언니는 다시 가상 세계로 들어갈게. 타나 오빠는 모드레드를 깨울 준비를 해줘.”

“안전한 방을 준비해둘게.”

고개를 끄덕인 발렌타인이 팝업창을 띄우고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본 기지개를 편 트리슈와 린슬렛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으음, 오래 누워있으면 허리 뻐근하던데.”

“아, 트리슈가 마사지 해줄까?”

“싫~어.”

중얼거린 린슬렛과 트리슈는 이내 발렌타인의 뒤를 따라 자리를 옮겼다. 잠깐 스톰에게 물어볼 거리를 정리하고 있자니 눈앞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스톰에게는 뭘 물어보실 생각이신가요?”

베디비어였다.

“헥터와 모드레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해.”

“저도 같이…?”

“아니.”

나는 말을 잘라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비명 소리가 들려오는 방으로 향했다. 거기에 들어서기 전, 뒤를 돌아보니 베디비어는 소파에 다시 앉은 채였다.

그를 믿지 못한다는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이건 역시….

나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나 혼자서 들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크윽…!! 여, 여긴 대체 어디야!”

내가 안으로 들어서자 화이트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바깥으로 나갔다. 나는 완전히 겁에 질려 있는 스톰의 모습을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그렇게 놀라고 있어?”

“?! 너, 너! 당장 재킷을…! 큭!”

분노해 마구잡이로 말을 지껄이는 스톰. 나는 적당히 상황을 이해시키기 위해 녀석의 목을 붙잡고 벽으로 밀어붙였다. 녀석은 몸을 비틀며 괴로워했다.

“그, 그만둬! 재, 재킷이 없으면…!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고오오오!!”

“그러니까 빨리 말하는 편이 좋을 거야.”

시간이 없으니까.

“모드레드는 대체 어떤 존재였던 거지? 그리고….”

그녀가 헥터의 함정에 빠져들었던 이유에 대해서.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스톰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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