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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184화 (184/321)

184편

<-- Chapter 4 : 파륜의 기사 -->

회색빛의 의수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어둠 속에 서있던 그가 푸른 달빛의 아래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무표정하게 있던 나는 잠시 후 뒤를 돌아보았다.

“….”

입을 다문 채, 이쪽을 노려본 스톰이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할 킬러즈의 요원들이 지상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밤에 불러내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내 등 뒤로 다가선 베디비어의 의수에서 기계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내부의 톱니바퀴들이 회전하며 실린더가 응축하고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쇼핑을 하잔 건 아니었는데.”

“하하, 농담이 늘었네요, 타나.”

“…. 그런가?”

“아니 원래부터 좀 그랬었나?”

녀석은 의아한 기색을 담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사이 열세 명의 요원들과 한 명의 에스콰이어는 주변을 완전히 둘러쌌다. 검은 코트를 입은 사내들을 한 차례 바라본 나는, 이내 검을 들어 스톰을 가리켰다.

“뭐, 뭐냐…!”

녀석이 몸을 움찔 떨었으나,

“저 녀석을 데리고 갈 거야.”

나는 뒤쪽에 있던 베디비어에게 말을 전했다. 의수의 상태를 점검하듯 확인하고 있던 녀석이 내 검이 가리킨 스톰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간단하군요.”

여유로운 태도에 할 킬러즈의 요원들이 조용한 분노를 내뿜었다. 달빛에 반사된 칼끝이 파르스름하게 떨렸다. 하지만 나와 베디비어는 그 과정을 통해 한 가지 협의를 간단하게 끝마쳐둔 상태였다.

뒤를 잇는 강한 살기.

그와 동시에 요원들이 순식간에 접근해왔다. 대형을 갖추어 둥그런 포위망이 좁혀져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베디비어는 이미 허리를 반쯤 숙인 상태였다.

바닥을 내려찍기 위해.

“…!”

허리를 움츠려 위로 뛰어오른 직후, 쩌엉 하는 소리와 함께 충격이 느껴졌다.

“크윽?!”

바닥이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땅에 발을 디디고 있던 녀석들이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개중에는 넘어지는 녀석들도 있어 나는 순식간에 상황을 판단했다.

가볍게 몸을 비틀며 린슬렛의 방패를 이어받아,

“히익?!”

나는 엉덩방아를 찧은 스톰을 향해 순식간에 날아들었다. 중간에 요원 하나가 막아서려 했으나 가디언 서핑의 돌진력을 받아내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이 자식…!!”

바로 앞까지 도달하자, 스톰이 이를 악문 채 일어섰다. 나는 목을 노리고 휘둘러지는 톤파를 검으로 가볍게 받아냈다. 하지만 녀석은 곧바로 몸을 비틀어 반대편의 톤파로 공격을 감행해왔다.

“큭!”

하지만 그것은 린슬렛의 방패에 가로막혔다. 당황한 녀석은 몇 번이고 톤파를 휘둘렀지만 나는 그것을 모두 막아내고 틈을 노려 목에 검을 들이댔다.

“돈 때문이었나?”

그렇게 묻자, 한순간 눈을 동그랗게 뜬 녀석이 검을 쳐냈다. 그리고 가볍게 뛰어 뒤로 물러났다.

“혼자 멋진 척은 다 하네! 븅신 새끼…!!”

“….”

“애초부터 돈 때문이었어! 당연한 거 아니냐?!”

“그렇군.”

“뭣도 모르는 정신병자 새끼가!”

사람은 할 말이 없으면 욕을 한다고 누가 그랬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거리를 벌린 채 악을 쓰는 스톰을 바라보았다. 솔직하게 말해 그런 녀석에게 딱히 말로서 몰아붙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럴 가치도 없는 녀석이라고 생각했기에.

“타이밍을 놓쳤군, 테러리스트.”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뒤쪽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고개를 돌린 나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요원들의 모습을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 앞을 베디비어가 막아섰다.

“타나?”

날아드는 검을 의수로 튕겨낸 녀석이 나를 돌아보며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고개를 들어 불이 꺼진 쇼핑몰을 올려다본 나는 가볍게 앞머리를 매만졌다.

헥터가 나올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건 아닌가.”

그렇다면 내 솜씨를 보고 싶다는 걸까.

생각을 정리하자니 거대한 풍압이 몸에 휘감겼다. 놀라 뒤를 돌아본 나는, 무슨 파일벙커마냥 말뚝이 솟아오른 베디비어의 팔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

“창, 이죠.”

“그, 그렇구나.”

조금 당황했다.

그리고 반대편을 넘겨다보니, 요원의 절반 이상이 그 충격에 휩쓸려 벽에 처박힌 뒤였다. 베디비어가 팔을 툭툭 털어내자 탄피가 튕겨져 나왔다.

이 녀석하고는 무슨 일이 있어도 싸우지 말아야겠군.

“넬.”

허탈하게 웃은 뒤, 나는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넬을 돌아보았다. 생각의 정리가 그 한방으로 인해 시원하게 끝이 났던 것이다.

“모두 JP로 모이라고 연락 좀 해줘.”

“네넬!”

여기서 말하는 JP, 쥬브나일 포르노의 의미를 이해한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섰다. 나는 할 킬러즈를 경계하고 있는 베디비어를 뒤로 한 채 스톰을 바라보았다.

“뭐, 뭐! 해보잔 거냐!”

“하아, 괜히 피곤하게 만들지 말고.”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아이템창을 펼쳤다. 그리고 모르가나를 선택해 손에 드러나게 만들었다.

“그, 그건…!”

녀석 역시 알고 있는 것일까. 놀랐는지 한순간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그것을 가만히 보여주며 스톰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

“아, 안 돼! 잠깐!”

곧바로 권한을 빼앗았다.

녀석의 몸에 휘감겨 있던 재킷이 사라지며 평범한 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도 훤히 보여 나는 다가가 스톰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잠깐 같이 좀 가줘야겠다.”

“젠장…!”

“허튼 수작 부릴 생각 안하는 게 좋아.”

“커흑!”

가볍게 명치를 후려치자, 게임 세계에서 빠져나와 평범한 인간이 된 녀석이 기절했다. 나는 추욱 늘어진 그를 어깨에 들쳐 멨다.

역시, 완전히 신뢰를 받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라쿠스 기사단 사태 이후, 할 킬러즈의 요원들이 모르가나에 대응할 수단을 지닌 것과는 대조적인 일이었다.

어쨌든, 들어둘 이야기는 있겠지.

“베디비어!”

“네!”

내가 크게 이름을 부르자 경계를 하고 있던 베디비어가 뒤로 물러섰다. 우리는 단숨에 뛰어올라 쇼핑몰의 난간을 디디고 날아올랐다.

“젠장…. 거기 서라!”

정신을 차린 할 킬러즈의 요원들이 뒤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리는 이미 충분히 벌어진 상황, 나는 앞장서있는 베디비어가 몸으로 깨고 지나간 창문을 뛰어넘어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타나, 이쪽으로.”

그 바로 아래에 있던 빌딩에 착지, 베디비어는 곧바로 나를 인도해 앞장서 나아갔다. 벽을 타고 내려가자 베디비어는 부드럽게 웃으며 맨홀 뚜껑을 열었다.

“역시 도망치는 데에는 지하만한 곳이 없죠.”

“하여간.”

하지만 딱히 이것보다 좋은 수단은 없어 보이는군.

시간은 10시 반. 기절한 스톰을 들고 있었기에 사람들 사이에 숨어들기도 애매했다. 아이템창을 열어 필터를 장착한 나는 그대로 구멍 안으로 뛰어들었다.

바닥에 발을 디뎌 고개를 들자, 맨홀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베디비어가 내 옆으로 떨어졌다.

“밤에 갑자기 부르셔서 뭔가 했더니.”

“혼자 이렇게 깔끔하게 빠져나올 수는 없었을 테니까.”

녀석의 의수는 생각을 벗어났다 싶을 정도로 위력이 굉장하긴 했지만, 뭐 어쨌든 더 좋게 된 셈이리라.

“일단…. 이야기는 대충 들었습니다.”

“이 녀석에 관한 것도?”

나란히 걸으며 나는 어깨에서 신음을 내고 있는 스톰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베디비어는 약간 놀란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아뇨.”

“이 자식이 배신자였어. 모드레드에게 헥터의 약물을 건네준 장본인이었던 거지.”

“음….”

베디비어는 복잡한 눈초리로 스톰의 얼굴을 살폈다. 그런 모습에 나는, 불현듯 직접 입으로 말해두지 않았던 사실을 떠올렸다.

“지금 어떤 상황인지는 알아?”

“우아랑 대위를 내세워 할 킬러즈가 그녀를 갤러해드로 만들기 위한 퀘스트를 진행 중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그 말이 뜻하는 바는?”

“글쎄요….”

베디비어가 쓰게 웃었다.

그 역시 모르지는 않을 터였다. 우정현 회장의 비호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걸. 아니 그것만이라면 차라리 다행일지도 몰랐다.

최악의 상황은 역시…. 지난번에 말했던 것처럼 우정현 회장이 우리를 팽해버리는 거겠지.

물론 그녀가 그렇게 할 사람처럼 느껴지진 않았지만.

아니 그건,

단순한 내 바람일 런지도 모른다.

“….”

“괜찮아요! 주인님!”

그렇게 생각하던 중, 갑작스레 넬이 내 앞으로 휙 날아들었다. 고개를 드니 그녀가 안심하라는 듯 밝게 웃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만약 그렇게 되면 엘레노어께서 개입하실 테니까요!”

“…. 사실 그것도 별로.”

마음에 드는 부분은 아니군.

“그렇다면 넬은요?”

“뭐?”

“넬은 언제나 주인님의 편일 거예요.”

“….”

“히힛.”

“어쨌든 그런 식이야, 베디비어.”

“주, 주인님!”

나는 넬이 하는 낯 뜨거운 말을 피하며 베디비어를 돌아보았다. 흥미로운 눈으로 우리를 보고 있던 녀석이 이내 미소를 지었다.

“상황에 따라, 잠시 몸을 숨겨야할 수도 있겠군요.”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지.”

“이런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 고, 고맙다.”

이럴 때의 녀석은 조금 부담스러울 때가 있단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걷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녀석이라는 생각을 했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알지만, 그걸 말로 하기 때문에 마음에 와닿는 달까.

사실 다들, 도덕적인 이유를 제외한다면 나를 위해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것이니까. 린슬렛, 트리슈, 베디비어, 거기에 발렌타인까지.

“….”

거기에 나는, 모드레드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렇게 보자면 녀석이 이 게임을 끝내려고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처럼 개인적인 이유일까. 그리고 그것은 대체 언제부터 이어져온 것일까. 그녀는 게임을 끝내기 위해 계속해서 그런 생활을 해왔던 것일까.

“아니….”

아직 확실한 건 아니었지만.

“무슨 생각하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고개를 휘휘 내저으며 시치미를 뗐다. 약간 씁쓸하게 웃어보이자 베디비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일 있어 보이는데요.”

“아,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타나가 웃는 거면 무슨 일 있는 거예요.”

“….”

네 안에서 난 대체 어떤 사람인 거냐.

“하아, 내가 함부로 말할 게 아니라고.”

어쩔 수 없어져,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확실히, 내 입으로 말하기는 껄끄러운 사실이었다. 정작 모드레드는 아무렇지도 않아할 것 같았지만.

그녀가 가상에서 마약과 섹스에 빠져 있었다니.

어느 누가 그걸 감히 상상이나 하였으랴.

“어쨌든, 이야기를 좀 들어봐야겠어.”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어깨 위에서 축 늘어져 있는 스톰을 툭툭 두드렸다.

“심문을 하실 생각인가요?”

“정확히 할 킬러즈 쪽에 넘어간 인원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해봐야겠지. 그리고….”

모드레드가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건지.

그리고 그녀를 구하러 간다.

그렇게 마음을 정한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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