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편
<-- Chapter 4 : 파륜의 기사 -->
◇
그녀가 집에서 나온 것은 오전 10시가 넘어서였다.
“….”
지하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검은 세단에 불빛이 들어오며 자동으로 문이 열리고, 그녀가 운전석에 올라탔다. 나는 룸미러 너머로 그녀가 내 얼굴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는 것을 확인했다.
“모르가나를 이런 식으로 사용하실 줄은 몰랐군요.”
그렇게 중얼거린 우정현 씨는 눈썹을 살짝 치켜뜬 채 짧은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뒷좌석에 앉은 채 나는 부드러운 시트 깊숙이 몸을 밀어 넣었다.
“누군가와 함께 계시는 것 같아서.”
나는 바깥에서 인근을 감시 중인 넬을 보며 중얼거렸다. 누군가 그녀와 나의 접선을 알아차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차에 숨어들었던 것이다.
“네, 가족입니다.”
“여동생?”
“네, 전 남편의.”
“분명 증오하는 사이시라고….”
전 남편과.
“제 일방적인 증오일 뿐입니다.”
“….”
더 끼어드는 건 자제해야겠군.
“그래서 무슨 일이신지?”
자동차의 운전대가 회전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정현 씨는 거기에서 손을 놓은 채로 가만히 날 돌아보았다.
“모드레드가 죽었어요.”
“…?”
그녀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가상 세계에서.”
“…. 운전대를 잡고 있었으면 위험할 뻔했겠군요.”
내가 곧바로 말을 잇자, 안도의 한숨을 내뱉은 우정현 씨는 머리를 쓸어 올렸다. 차량은 부드럽게 시내를 달리기 시작했고 나는 눈썹을 찡그렸다.
어떤 감정으로 그녀를 봐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심각한 상황이군요.”
뒤를 이어, 쓰게 웃은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그 얼굴에 복잡한 기색이 감돌아 나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알고 계셨어요?”
“뭘 말이죠?”
“그 녀석이…. 망가져 있었다는 걸.”
그건 조금 떠보는 듯한 질문이었다.
만약에 몰랐다면, 적당히 넘기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런 질문에, 입을 다물고 있던 정현 씨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나를 돌아보았다.
“이준 씨도 알게 되셨군요.”
그런 대답에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꼈다.
“그걸 그냥…. 가만히 놔뒀다고요?”
“제가 관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도 모르게 반박하려던 나는, 이내 흥분을 가라앉히고 입을 다물었다. 정현 씨가 ‘관여할 수 없다.’라고 했던 말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이준 씨가 사과할 일은 아닙니다.”
“….”
“그렇다면 그 망가진 부분이, 안 좋은 방향으로 작용했던 거군요. 모드레드는 그래서….”
“헥터의 약물에 당했어요.”
그리고 나는 천천히 상황을 설명했다. 모드레드가 헥터의 약물에 당하고, 거기에 심각할 정도로 중독되어 스스로를 가상의 세계에서 죽였다는 것을.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거겠죠.”
그리고 같은 목적을 공유하고 있는 나에게 게임의 클리어를 맡겼다. 몇 번이고 되새기면서도 나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참으로 그녀다운 행동이로군요.”
“그런가요.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네요.”
“궁금하시다면 말씀을….”
“그건 괜찮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을 잘라냈다.
“왜죠?”
“타인의 입을 빌려서 듣고 싶진 않으니까요.”
“….”
정현 씨는 살짝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어린애처럼 씨익 웃어보였다.
이런 표정은 또 처음 아닌가.
“왜, 왜 그러시죠.”
40대의 중년 여성이, 그렇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쩐지 어색해지는 걸 느끼고는 말을 더듬었다.
“아뇨, 너무 예상과 똑같이 들어맞아서.”
“…. 어떤 부분이요.”
“타인으로부터 듣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면 자신이 직접 알아내겠다. 라는 것 아닌지.”
“하아.”
이 사람 진짜 쓸데없이 남을 꿰뚫어 보는 부분만 아니라면 불편한 부분 없이 지낼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어쨌거나,
“네.”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드레드가 그걸 바라지 않더라도 말입니까?”
“물론이죠. 어차피 서로 증오해 마지 않는데. 하는 김에 녀석이 싫어하는 짓은 다 해줄 겁니다.”
“정확히 어떤…?”
“애들 모아다가 생일 파티라도 해주죠, 뭐.”
“그건 참, 모드레드가 싫어하는 일이군요.”
“그래서 할 가치가 있겠죠.”
그 무표정한 기색이 깨어져, 당혹감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가치는 있을 터였다. 그렇게 중얼거린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회장님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리고 물었다.
“….”
지난번에는 적당히 넘어갔던 질문을.
“모드레드는 그렇게까지 하려고 했고, 실천으로 옮겼어요. 저는 납득할 수 없지만.”
“그렇습니까.”
“확실히 대답해줬으면 해요. 우정현 회장님. 당신은 어떻게 하실 생각인지.”
동등한 관계로서.
“역으로 묻겠습니다만.”
잠깐 입을 다물고 있던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제가 만약, 이 모든 자리를 포기하고 할 킬러즈에게 굴복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런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고 싶지는 않은데요.”
“항상 생각을 해두어야 하는 법입니다.”
“….”
말만 듣자면 그것을 생각하고 있는 투였다.
하지만 얼굴을 보니 아니었다. 그녀는 마치, 언제나 그랬듯이 나에게 가르침을 주고자 하는 얼굴이었다.
최악의 상황이라.
우정현이 우리를 버리고 할 킬러즈의 작전에 참가, 그로서 나는 토사구팽을 당해 쫓기는 신세가 되는 그런 상황이 온다면…. 그로서 유하를 지킬 수 없게 된다면.
“당신을 막는 수밖에 없겠죠.”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
가상 세계에서 눈을 뜨자, 린슬렛의 모습이 보였다.
“…. 잭 더 리퍼라도 나올 듯한 분위기네.”
털 달린 재킷을 입은 그녀가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말대로 음울한 분위기의 거리는 더러웠고 읍습했다. 트리슈는 킥킥 웃으며 그 곁으로 다가갔다.
“그래도 트리슈랑 와서 기쁘지?”
“얘가 왜 이런데.”
팔짱을 끼며 엉겨 붙자 린슬렛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트리슈의 옷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채고 고개를 들었다.
“근데 너, 옷이 왜 그래?”
“헤헤, 예뻐?”
“뭐 그건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네.”
어이가 없어 웃었다.
트리슈가 가볍게 몸을 회전시키며 보란 듯이 옷을 보여주었다. 화려하게 금박이 수놓인 드레스였다. 귀부인들이 파티에서나 입었을 법한.
“근데 왜 그런 걸?”
“어머나, 린 언니도 멋진데?”
“…?”
뭔가 싶어 몸을 내려다본 린슬렛은 몸에 달라붙는 턱시도를 발견했다. 트리슈가 한 일이라고 생각해 입술을 우물거리자니 뭔가가 인중 위에서 느껴졌다. 매만져보니 수염이었다. 머리도 어느 샌가 하나로 묶여 린슬렛은 자신이 남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자기만 예쁜 거 입고.”
거기에 약간 불만을 지녀 이야기하자,
“원래 레이디의 곁에는 나이트가 있어야 하니까.”
가볍게 윙크를 한 트리슈가 팔짱을 껴왔다.
“우리 둘 다 나이트거든요.”
하지만 린슬렛은 거기에 다시금 핀잔을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트리슈가 키가 조금 더 큰 것을 확인하고 남이 보면 우스꽝스러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내 웃어버렸지만.
“어디로 가면 돼?”
그리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거리로 빠져나와 걷기 시작했다. 현실과 가상이 겹쳐진 아서리안의 세계에서는 적으로 만났던 종족이 가득한 세계를.
“호오…. 신기하네.”
눈앞을 지나치는 거대한 사자를 힐끔 돌아보기까지 한 트리슈가 웃으며 이야기했다. 이미 몇 번 다녀보기는 했던 터라 린슬렛은 피식 웃었다.
“처음 와봐?”
“응응, 린 언니는 아니야? 흉흉한 분위기에 놀라더니.”
“오랜만이어서 그렇지, 가끔 와보긴 했었거든.”
“호오, 호오.”
“여기 일정 주기마다 풍경이 바뀌거든. 내가 왔을 때는 중국 컨셉이어서 다들 와호장룡 찍고 있던데.”
“와호, 뭐?”
“옛날 영화야. 2,000년엔가 나왔던데.”
“히익, 린 언니 그렇게 옛날 사람이야?”
“아니 그냥…. 대학 처음 들어가고 나서 좀 동아리 같은 거 돌아다니다가 고전 영화 탐독하는 곳이 있더라고.”
거기에서 보여줘서 보게 되었다.
뭐 그런 이야기였다.
“…. 대체 얼마나 친구가 없었으면.”
“너보단 많지 않을까?”
린슬렛은 싱긋 웃어보였다. 그리고 그 말대로, 대학에서 어른스러운 성격으로 인망이 많은 린슬렛은 그와는 정반대인 트리슈에 비해 친구가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없잖아 있다.
그래도 역시 딱히 싫지는 않단 말이지.
이렇게 노골적으로 귀엽게 굴면.
“트리슈의 예쁜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침 묻었는데.”
“아 그거, 김 개그 아니야? 잘생김 개그….”
“빡침.”
“…. 우와, 린 언니.”
트리슈가 한껏 혐오감을 담아 바라보자 린슬렛은 뭐 어쩌냐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키득거리고 웃기 시작했다.
어깨에 힘이 좀 풀렸다.
자신에게는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해놓고서는, 자신처럼 남을 돕는 일에 혈안이 되어있는 멍청이 때문에 조금 긴장한 상태였는데.
왜냐면 돕고 싶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멋진 결과를 가져다주고 싶어서.
“너랑 있으면 진지해질 수가 없단 말이지.”
“미안…. 트리슈가 너무 귀여워서 그래….”
“이런 부분이 미워할 수가 없단 말이야.”
하고 린슬렛은 트리슈의 볼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자 그것을 능숙하게 피해낸 그녀가 말랑말랑한 볼을 매만지며 애교스럽게 린슬렛을 바라보았다.
“아 그래도, 얼마 있으면 미워질걸?”
“…?”
린슬렛은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
그리고 약 30분 뒤,
“후아….”
린슬렛은 땀에 젖은 머리를 털어냈다. 그리고 불편하게 코에 감겨 있는 수염을 짜증스럽게 떼어냈다.
“와, 벌써 끝났어?”
“….”
트리슈는 커피를 타온 상태였다.
“너, 너 진짜…!”
린슬렛은 눈앞에 쓰러져 있는 술집의 무뢰한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가게 곳곳에 처박혀 있는 수인 사내들은 모두 기절한 상태였고, 고양이 주인이 냉동 참치를 손에 쥔 채 오오옹, 하는 소리를 냈다.
“후후, 역시 린 언니가 최고야!”
“너 이것 때문에 같이 오자고 한 거지!”
“우웅, 하지만 기여운 트리쮸가 싸울 쭈는 없잖아~.”
죽이고 싶다.
“게다가 주변 감시도 하고 있으니.”
하지만 뒤를 이은 이야기에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하아, 진짜….”
트리슈는 헥터의 움직임을 경계하기 위해 주변에 카메라를 뿌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딱히 더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자 그럼, 다음은 어떻게 할래?”
“좀 편한 길로 해줘….”
“응, 알았어. 린 언니의 말대로 해줄게!”
뭔가 불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린슬렛은 어쩔 수 없이 트리슈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