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편
<-- Chapter 4 : 파륜의 기사 -->
◇
문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을 보자 나는 눈을 껌뻑거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트리슈….”
“응♡ 불렀어?”
웃으며 다가온 그녀가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기분이 좋을 때의 고양이처럼 볼을 대고 비비기 시작했다.
“타나 오빠….”
“으, 으응.”
예기치 못한 반응에 나는 얼떨떨해지는 걸 느끼며 대답했다. 그리고 뒤를 이어 어쩐지 불길하게 침대 건너편의 발렌타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다 들었어. 갤러해드의 정보를 모으러 갔던 거라며?”
“그, 그렇지?”
꽈악.
“윽?!”
볼을 꼬집혔다.
“근데에, 왜 트리슈는 안 데려간 거야?”
“으, 으으으윽?!”
활짝 웃은 채 굳어진 트리슈가 내 볼을 꽈악 쥐고서 당겼다. 거기에 이끌려 벌떡 일어서자 그녀는 무슨 목줄을 쥔 것처럼 능숙하게 회전하며 나를 유린했다.
“응응? 트리슈도 정보 특기 있는데에~.”
“아, 아니 거기에는 깊은 사정이….”
“그렇게 사정해도 용서해주지 않을 테니까아~.”
“아니 그건 동음이의어가 아닐…. 아야야얏?!”
“자꾸 그렇게 변명을 하는 건 이 입인가요오?”
“죄, 죄송합니다! 죄송! 윽?!”
못 이겨내고 사과를 하자니 마지막으로 볼을 세게 당긴 트리슈가 손을 놓았다. 나는 눈물이 찔끔 나오는 충격에 헤어 나오질 못하고 괴로워했다. 가까이 다가온 넬이 킥킥 웃으며 놀리듯 날 바라보았다.
“그래서, 얘는 지금 가상 세계에 갇힌 거야?”
그러는 사이 침대 옆으로 다가간 트리슈가 말을 꺼냈다. 모드레드를 힐끔 바라본 그녀의 시선이 이내 발렌타인에게로 향했다.
“응.”
“당신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고개를 끄덕이자 트리슈는 이마를 쓸어 올리며 나와 발렌타인을 한 번씩 돌아보았다. 매끄러운 진녹색의 머리칼이 어깨에서 물결 쳤다.
“음, 한 가지 괜찮을까.”
그리고 나는 뭔가 걸리는 사실에 손을 들었다.
“뭔데?”
“트리슈 너, 여기는 어떻게….”
“뭐어? 안 된다는 거야~?”
꽈, 악.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다시금 볼이 쥐어져 나는 세차게 비명을 내질렀다. 그조차 즐기는 것인지 싱긋 웃은 트리슈는 뒤를 이어 천천히 무언가를 꺼내 나에게 보여주었다.
붉은색으로 빛나는, 조각이다.
“이건….”
“발렌타인이 수집한 정보 조각을 타나 오빠도 볼 수 있도록 가공한 거야.”
“그, 그게….”
“뭐, 이 뒤로는 ‘전문가’들끼리의 이야기란 말씀. 후후.”
웃으며 다소 과시적으로 팔짱을 낀 트리슈가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는 내 눈에도 보이기 시작한 붉은 조각들을 진지한 얼굴로 눈앞에 띄웠다.
“으, 으음. 모드레드님은 이걸 우려하셔서 트리슈를 부르지 말라고 한 거네..”
발렌타인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얘가 뭐라고 했는데?”
“아니…. 아무것도.”
“헤에~ 말을 못하는 걸로 봐서는 좋은 이야기는 아닌 모양인데….”
쓸데없이 예감이 좋다.
눈을 가늘게 뜬 채 중얼거린 트리슈는, 이내 다시금 작업에 돌입했다. 붉은 조각들의 앞에서 손을 휘두르자 그것이 하나로 이어지거나 튕겨져 흩어졌다.
“뭐 이래?”
그런 식으로 튕겨지는 조각들이 대부분이자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뒤를 이어 발렌타인 역시 거기에 합류해 두 사람은 부서진 도자기를 끼워 맞추는 것처럼 조각들을 매만졌다.
“어떻게 되는 건데?”
“타나 오빠의 시점에서 설명하자면, 조각을 올바른 방향으로 맞추었을 때 퀘스트가 나타나는 거야. 하지만….”
“하지만?”
내가 되묻자 트리슈는 눈썹을 찡그렸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치맛자락에서 나온 카메라들이 가세해 주변을 맴돌며 조각을 맞추려 들기 시작했다.
“이런 건 처음이야.”
하지만 몇 번이고 조각의 단면을 이어도, 다시 튕겨져 나왔다. 그런 상황에 어이가 없다는 듯 트리슈가 중얼거렸고 반대편의 발렌타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이상하다고 하지 않았니…?”
“웅, 그랬지.”
“왜 사람 말을….”
“아니 아니, 밤에 잘 자고 있는데 전화해서 갑자기 나오라고 하니까. 그냥 네가 그리스 조각상만큼 아름다운 트리슈를 보고 싶어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
“너 그것도 병이야.”
“하아, 역시 미인박명이라는 말이….”
“맞아 죽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싱긋 웃은 발렌타인과 거기에 맞춰 마찬가지로 밝게 미소를 짓는 트리슈. 그렇게 두 사람은 티격대면서도 호흡을 맞춰 계속해서 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딱히 진전은 없었다.
“으음….”
“어떻게 생각해?”
“다시 한 번, 조사를 해봐야할 것 같은데.”
트리슈의 결론은 그러했다.
“역사 기록실에서 찾아낸 정보라며? 하나하나 제대로 열어보면서 조사한 거 맞아?”
“헥터와의 전투가 있어서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했어.”
“퀘스트를 거쳐서 정보를 얻어낸 게 아니라는 거야?”
트리슈의 질문에 발렌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길게 한숨을 내쉰 트리슈는 나를 돌아보았다.
“다시 가야할 것 같은데.”
“확실한 거야?”
분명 순간적으로 발렌타인이 현기증을 느낄 정도로 많은 정보가 흘러들어왔다. 그런데 그게 모자란다고?
“그건 아닌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그럼 이렇게 셋이….”
“아니, 타나 오빠는 따로 할 일이 있다며.”
그렇게 이야기한 트리슈는 뒤를 이어 잠들어 있는 모드레드를 가리켰다. 녀석은 시체처럼 움직임이 없이 희미하게 호흡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이렇게만 둘 수도 없으니까.”
“그건, 그래.”
“넬?”
착잡한 내 얼굴을 빗겨내듯 돌아선 트리슈가 넬을 바라보았다. 우리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던 넬은 갑자기 이름이 불리자 당황해 고개를 들었다.
“네넬?”
“타나 오빠가 모드레드의 무의식으로 들어가 정신을 깨운다면, 가상 세계의 정확히 어디에서 깨어나는 거야?”
“추, 충격을 정신이 이겨내지 못한 부분이요.”
“음…. 죽은 위치라는 거지?”
“그렇게 설명하는 게 더 편하겠네요.”
넬이 고개를 끄덕이자 트리슈는 생각에 잠긴 듯 입술을 슬쩍 핥으려다…. 그 동작을 멈추었다. 나 역시 조금 물러서 벽에 기대어 섰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나는 물끄러미 침대에 누워 잠들어있는 모드레드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안타까우시, 겠군요. 내일 아침도 함께 먹게 하실 생각이었을 텐데….]
그건 어떤 의미였을까.
그녀는 대체 어떤 사람인 걸까.
“….”
“타나 오빠.”
이름이 불리자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입술이 닿았다.
“…?!”
나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 허리를 잡고 당긴 트리슈가 아무렇지도 않게 키스를 했다. 처음에는 입술만 닿는 정도였던 그것이, 이내 아랫입술을 세차게 깨무는 가학적인 형태로 변질되었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진짜 바보….”
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린 발렌타인이 바깥으로 나가는 광경을 발견했다. 넬 역시도 싱긋 웃으며 나가, 트리슈는 안심한 듯 내게 더 밀착해왔다.
조금 길었다.
그녀 쪽에서 리드를 해, 나는 벽에 기댄 상태로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향긋한 사과 같은 향이 뇌를 새하얗게 물들었다.
어쩐지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 조금 진정했어?”
입술이 떨어지자, 슬쩍 들었던 발꿈치를 내린 트리슈가 싱긋 웃었다. 그 얼굴에 약간 장난기가 섞인 채여서 나는 의도를 알아채고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조금…. 아니.”
꽤 많이.
“뭘 그렇게 복잡한 얼굴로 서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타나 오빠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지 않아?”
“…. 트리슈.”
“왜앵?”
그녀가 애교를 부렸다. 내 품에 안긴 채, 꼬리라도 있으면 살랑살랑 흔들 것 같은 모습으로.
그것을 보자, 조금 진정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마음을 정했다.
“너와 만나서 다행이야.”
“히힛, 트리슈가 최고지?”
“조금 사람을 놀라게 하는 면이 있지만….”
“그게 이 트리슈님의 매력 아니겠어?”
“그럴지도.”
적당히 중얼거린 뒤, 나는 트리슈가 살짝 방심한 틈을 타 허리를 감싸고 당겼다.
“힉?!”
“배워볼까 싶은데.”
“…. 그, 그렇게 놀라진 않았는데?”
트리슈는 얼굴이 붉어진 채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런 반응에 나는 눈썹을 살짝 치켜뜨고는 그녀의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건?”
“조금 인정.”
그녀가 킥킥 웃었다.
우리는 다시금 키스를 했다.
◇
이야기를 정리하고 나오자 푸른 하늘이 보였다.
해가 서서히 하늘을 비추기 시작하여, 나는 가볍게 뛰어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렇게 건물을 뛰어넘어 달리던 중, 넬이 가볍게 내 옆으로 다가왔다.
“주인님, 뭐 하나 여쭤 봐도 되나요?”
“뭐?”
“트리슈님하고 무슨 이야기하신 건가 싶어서.”
“뭐…. 딱히 이야기를 한 건 아니었는데.”
“말을 할 겨를이 없으셨군요.”
넬이 눈을 가늘게 뜬 채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쩐지 부끄러워져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아니 뭐….”
“그럼 딱히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이가 되었다는?”
“….”
묘하게 집착하는데.
“아니 뭐.”
하지만 나는 거기에 연연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슬슬 카페가 보이기 시작해, 벽을 타고 좁은 골목길의 사이로 내려와 재킷을 해제했다.
“사실 좀,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을 예감해서였거든.”
“어떤….”
“헥터의 말이긴 했지만.”
모드레드는 딱히 그걸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가 헥터의 가게에 단골이었다는 말에 대해서. 하지만 그것 자체는 받아들이지 못할 것도 없었다.
문제는 그것이었다.
모드레드가 ‘그런 행동’을 했던 이유가….
어쩐지 내가 알고 있던 그녀에게 겹쳐지며, 희미하게 눈앞에 걸쳐졌다. 나는 그것을 쫓기를 두려워했던 걸지도 모른다.
알 것 같았기 때문에.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한 이유는, 아마….
“주운!”
바로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드니 카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온 유하가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일찍 일어났네요?”
“응, 잘 잤어?”
“네, 그런데…. 모디 양은 갔나요?”
“잠깐 어디 다녀온대.”
그렇게 중얼거리자 유하는 쓰게 웃어보였다. 시선을 피한 채로 있던 나는 그녀의 손을 쥐었다.
“데려올 테니까.”
그리고는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듯,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