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재킷-178화 (178/321)

178편

<-- Chapter 4 : 파륜의 기사 -->

“큭…!”

정신이 또렷하게 되살아나자 나는 곧장 몸을 일으켜 세웠다. 상반신을 타고 식은땀이 주륵 흘러내려 나는 감각이 온전히 되살아나는 것을 느낄 새도 없이 곧바로 복부를 움켜쥔 채 침대를 뛰쳐나갔다.

아니, 젠장….

복부를 움켜쥐는 동작을 관두며,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심호흡을 했다. 머릿속이 복잡한 것을 느꼈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욱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침착하자.

“넬.”

“주, 주인님….”

디멘션 커넥터 안에서 다 보고 있었던 모앙인지 넬은 착잡한 표정을 지은 채 바깥으로 나왔다. 나는 눈앞에 떠오른 그녀를 보며 말을 이었다.

“모드레드가 아직 가상 세계에 있어.”

“어, 어떻게 하죠?”

“빼낼 수 있는 방법이 없어?”

“…. 한 번 시도해볼게요.”

고개를 끄덕인 넬이 이내 뒤로 돌아섰다. 그 뒤를 따라 일어선 나는 천천히 문을 열고 반대편에 있는 유하의 방으로 향했다.

어둠에 잠긴 방안에는 두 사람이 잠든 채였다. 유하는 자신의 침대에, 그리고 모드레드는 바닥에 깔아둔 이불에 누워있었다. 나는 행여나 유하가 깨지 않도록 조심하며 모드레드를 안아든 채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어때?”

침대에 모드레드를 눕힌 뒤, 나는 그 상태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숨소리도 규칙적이어서 단순히 잠든 것처럼 보였으나 나는 불안한 감각을 느꼈다.

“잠시만요.”

그 앞에 선 넬이 팝업창을 띄우고 조작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코드가 오가는 광경을 보며 나는 저도 모르게 모드레드의 손을 꾹 쥐었다.

그런 예감이 없었던 건 아니다.

뭔가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분명하기는 했다. 눈앞에 있는 여자에게는, 뭔가 수상한 부분이 있다고.

하지만…. 뭐?

마약 중독? 거기에….

대체 그녀는 왜?

“….”

그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는 기분이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모드레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유하가 어렸을 적에 입고 있던 잠옷을 입은 그녀는 말이 없었다.

그런 모습에, 나는 짜증이 치솟는 걸 느꼈다.

자신은 끝이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말하며, 헥터를 향해 달려 나갔던 모드레드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녀는 마치 지금 이곳에서 자신이 죽어야한다는 듯이 말했다.

그건 마치…. 스스로를 물건처럼 대하는 듯해서.

기분이 좋지 못했다.

“안돼요. 할 수 없어요.”

바로 그때, 입을 다물고 있던 넬이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권한을 가져올 수 없다는 거야?”

거기에 넬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잠깐 고민을 하던 나는 이내 손바닥에 검은 보석을 소환했다.

“모르가나를 사용하면?”

“아, 아뇨, 그런 의미가 아니라요. 주인님….”

“왜?”

“음…. 엄밀히 말해 액세스를 할 수 없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 액세스를 해서 의식을 현실로 불러들인다고 생각을 했을 때,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어요….”

중얼거린 넬이 눈앞에 무언가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원형의 구체에 의식이라는 글자가 새겨지고 다른 구체가 나타나 신체라는 글자가 새겨졌다.

“기본적으로 가상 세계는, 디멘션 커넥터를 통해 진보한 인간의 뇌를 네트워크와 연결을 시킴으로서 만들어져요. 인간의 의식을 가상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거죠.”

두 세계.

이것을 현실과 가상이라고 가정했을 때 인간의 의식은 기본적으로 현실에 존재한다. 하지만 기술의 진화로 그것을 가상에 옮기는 것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지금 모드레드님의 의식은 가상에 있어요. 하지만 정확히 어떤 상태로 있는지는 저희가 알 수 없잖아요.”

“그래서 현실로 불러들였을 때….”

“네, 잘못하면 영영 깨어나지 못하실 수도 있어요.”

“가상 세계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거야?”

“그, 그건 아니지만…. 사용자의 의식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는 작동을 멈추게 되는 거예요.”

만약 모드레드가 그런 상태라고 가정한다면, 돌아왔을 때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건가.

“어떻게 하시겠어요? 주인님이 선택해주세요. 이대로 의식을 억지로 뽑아낼 수도….”

“아니, 안 그러는 편이 낫겠어.”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중얼거렸다. 넬은 안심한 듯 가슴을 쓸어내렸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스스로의 얼굴이 엉망이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아무리 흥분했어도, 앞뒤 정도는 돌아본다고.”

“네, 넬은 주인님이 다시 막무가내로 일 처리 하실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요?”

“…. 나도 그렇게는 말 안했는데.”

그 말에 넬의 몸이 굳어졌다.

“전문가의 의견이 그렇다면야 따르는 게 낫겠지.”

“그, 그건 넬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 밖에 누가 있겠어?”

“주, 주인니임~.”

감동한 넬이 내 쪽으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허리를 숙여 그걸 교묘하게 피해낸 나는 침대 위에 누워있던 모드레드를 안아든 채 천천히 일어섰다.

그 얼굴을 잠깐 내려다보았다.

비밀을 감춘 채 잠들어있는 모드레드를.

그리고 나는 방을 나섰다.

늦은 밤이었으나 발렌타인 역시 현실로 돌아오자 모드레드에 대한 걱정이 먼저 든 모양이었다.

곧바로 연락을 받은 그녀와 접선 포인트를 정한 나는 잠든 모드레드를 안아든 채 거리를 내달렸다.

어둠에 잠긴 도로.

그 끝에서 헤드라이트조차 켜지 않은 채, 거대한 트레일러 차량이 천천히 주행을 해 다가왔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 위로 뛰어들었다.

발밑이 잠겨들며 그대로 나는 안으로 흡수되는 것처럼 파고들었다. 순간 어둠이 이어지더니 곧이어 재즈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타나님….”

그리고 발렌타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온 그녀가 모드레드의 얼굴을 보고는 뒤로 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늦었는데 미안.”

나는 그 뒤를 따르며 이야기했다. 가게 안쪽으로 들어서자 지난번에 모드레드와 이야기를 했던 방안에 침대가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 말씀 하시지 마세요.”

모드레드를 그 위에 눕히자 발렌타인이 고개를 내젓고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뒤를 이어 안으로 들어선 졸린 눈의 화이트가 손에 들고 있던 이불을 덮어주었다.

“오랜만….”

그러더니 나를 힐끔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어, 음.”

그리고 나갔다.

“….”

“일단 이곳에서 계속 돌보는 것으로 할게요.”

뒤를 이어, 발렌타인이 이불을 정리해주며 이야기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부탁해.”

“네, 더 도와드릴 일은 없을까요?”

“글쎄, 일단 나도 생각을 좀….”

“정확히 어떤 상황이에요?”

그 말에 나는 섣불리 대답하는 대신 옆에 있던 넬을 돌아보았다. 앞으로 나선 그녀가 발렌타인에게 가상 세계에 있는 그녀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은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어.”

“모드레드님을 가상 세계로 진입해서 구출해오는 것은 어떤가요? 지금 당장이라도….”

“녀석이 살아있다는 보장이 없잖아.”

“그건…. 그렇죠.”

모드레드는 스스로가 여기까지라고 했으니.

그녀는 자신이 생각했을 때 목적을 이루기 위한 최적의 선택을 한 셈이었다. 적의 간계에 당했으나 짐 덩어리가 되고 싶지 않아 그 세계에서 죽겠다는 거겠지.

왜냐면 그것은 ‘모드레드’가 사라지지는 않으니까.

죽음에 이르러, 모드레드라는 기사가 사라진다면 그레일의 등장은 새로운 기사의 선정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요원해질 테니까. 그녀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것이었다. 자신의 존재는 남기되 의식을 죽이는 방향으로. 게임의 클리어에 지장이 없도록.

“…. 빌어먹을.”

나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런 생각을 하는 모드레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마치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다루고 있었다.

“넬, 만약 가상 세계에서 모드레드가 죽어있다면 되살리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하는 거지?”

“모디님의 무의식 안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어요.”

“무의식 안으로…?”

“네넬, 깊숙한 내면을 자극해서 깨우는 수밖에요.”

“….”

“그렇게 되면 가상 세계의 모디님이 살아나실 거예요. 그때 위치를 파악해서 현실로 데려오는 거죠.”

말인즉슨,

“둘로 나뉘어서 움직여야겠군.”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로 그런 결론을 내렸다. 모드레드의 위치를 파악해 구출해오는 쪽과 무의식을 파고들어 자극하는 쪽으로 나뉘어야한다는 말이리라.

“도와줄까?”

바로 그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움찔 몸을 떨며 고개를 돌린 나는, 문앞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현실로 돌아온 뒤, 헥터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스스로의 얼굴을 돌아보는 일이었다.

디멘션 커넥터를 매만져, 스스로의 얼굴을 스캔한 뒤 눈앞에 띄웠다. 상처 하나 없는 새하얗고 미끈한 얼굴에 헥터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게 재미있단 말이지.

마지막 저항이 거세 얼굴에 세로로 큰 상처를 입었다. 시야가 붉게 물들어 그 안의 근육이 다 드러날 정도의 커다란 상처였다. 하지만 지금은 멀쩡했다.

그것을 확인하자, 기분 나쁘게 남아있던 통증이 이내 잦아들었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남은 채였다.

그 괴리감이 어쩐지 즐거운 것이다.

“후우…. 화끈한 성격이시네.”

잠시 가만히 있던 헥터는 옆에 놓아두었던 보드카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그런 길을 택할 줄이야.

오랜 시간 모드레드를 봐왔던 헥터는 금세 그 행동에 대해서 이해했다. 딱히 서로 간에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었으나, 어느 정도 비슷한 구석이 있기 때문일까.

그녀도 자신처럼 이름을 버렸기 때문에.

“재미가 없는데.”

그렇게 중얼거린 헥터는 손 안에 든 잔에서 찰랑거리는 보드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모드레드도 이렇게, 자신이 흔드는 것에 맞춰 휘둘렸으면 좋았을 텐데.

그럴 바에야 차라리 죽음을 택하다니.

그런 충격적인 선택이,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직 그로서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 남자가 남아있으니까.

“과연…. 어떻게 저항하려나.”

아마 그라면, 자신이 최선을 다해 짓밟을 만한 굉장한 일을 벌일 터였다.

그런 예감에 어둠 속에서 헥터는 조용히 웃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