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편
<-- Chapter 4 : 파륜의 기사 -->
바로 그 순간, 나는 당겨졌다.
“윽…?!”
멱살이 세게 잡힌 나는 목이 조여드는 걸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한 번, 만…. 말하겠, 습니다….”
이를 딱딱거리며 부딪치고 있는 모드레드와.
“너….”
“퀘스트는, 발견을…. 하셨습니까…?”
그 눈동자는 필사적으로 자아를 유지하려 했다. 나는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하지 못했어.”
“스톰, 을….”
“찾아가라고?”
말을 이어주자 모드레드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한순간 피가 날 정도로 이를 세게 깨물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 모습에서 나는 뭔가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말을 이었다.
“잠깐, 너는…?”
바로 그 순간, 채찍이 날아들었다.
“큭!”
아슬아슬하게 반응한 나는 곧바로 어깨를 비틀어 그것을 막아냈다. 쫘악, 하는 소리와 함께 등줄기에 뜨거운 감촉이 휘감겼다.
“타나님!”
“모드레드를…!”
나는 눈앞에 서있는 발렌타인에게 모드레드를 넘겼다. 그리고 다시금 바람이 울리는 소리가 나 몸을 돌렸다.
린슬렛의 방패를 들어 채찍을 막아냈다.
“호오?”
쩌엉, 하고 소리가 울려 퍼졌다. 눈앞의 헥터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어 나는 어깨를 움츠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접근했다.
“…!!”
스파다를 뽑아들며 그 반동을 이용해 단숨에 베어냈다. 헥터의 가녀린 턱이 갈라지며 거기에서 피가 치솟았다. 하지만 녀석은 기가 죽지 않았다.
도리어 즐겁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튀어 오른 피가 중력에 의해 낙하하기 전의 짧은 순간, 헥터가 품안에서 약병을 꺼내 나에게 던졌다. 나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검으로 받아, 다른 쪽으로 쳐냈다.
뒤를 이어 녀석이 채찍을 휘둘렀다. 하지만 근접한 거리에서 나는 둥글게 말리며 날아들려는 채찍을 보고는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채찍은 활과 궤도를 같이한다.
속도는 빠르지만 방어의 기능이 없고, ‘당겨서’ 에너지로 전환하는 시간이 필요한 무기다. 그렇기에 나는 거리를 좁혀 헥터가 채찍을 당기는 사이에 날아드는 방향을 측정하고 피해낸 것이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크흑?!”
폭발이 일어났다.
등 뒤에서.
불타는 돌덩이에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검을 휘두르던 자세에서 앞으로 튕겨져 날아간 나는 벽에 거꾸로 처박혔다. 시야가 반전된 가운데 나는 이쪽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헥터를 발견했다.
“거리를 좁히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신 건가요?”
오른손에 채찍, 왼손에 약병을 끼운 채.
“하지만 뒤를 조심하시는 게 좋을 걸요?”
녀석은 빙긋 웃어보였다.
휘두른 채찍은 나를 공격하는 수단이 아닌, 튕겨져 날아갔던 약병을 회수하려던 거였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가누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썩어도 준치라고 자신 역시 기사라는 걸까.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닌 모양이었다.
도서관 내부는 엉망이었다.
내가 무너뜨린 책장과 헥터가 몇 번이고 폭발을 일으킨 덕분에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타닥거리며 튕겨져 높게 솟는 화염을 보며 나는 공기를 살폈다.
녀석이 다시금 움직이는 타이밍을.
그 밖에 다른 스킬은 없는 걸까. 약병은 폭발하는 종류로 한정이 되는 걸까. 중독성을 일으키는 약물이나 나를 이동시켰던 것은 대체 어떤 연관성이….
생각을 마치기 전, 채찍이 날아들었다.
“…?!”
약병을 휘감은 채 날아든 그것이 중간에서 폭발했다. 동시에 불꽃이 뱀처럼 팔에 휘감겨 나는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시야가 연기에 물든 상황에서 돌진했다.
하지만 헥터는 위치에 없었다.
“이쪽이에요.”
“윽!”
목소리가 들려오고 다음 순간, 나는 등짝이 달궈지는 감각을 느꼈다. 쫘악, 하는 소리와 함께 비틀거리며 뒤를 돌아보자 헥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까다로운 상대다.
자신만의 싸움에 능숙했다.
기본적으로 에스콰이어의 싸움은 거리를 재는 형태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내가 만나본 적들 중 가장 근접한 거리를 선호하는 게 라이오넬이라면….
“근본 승계.”
헥터는 정반대였다.
거리를 내어줄 생각이 없어 보여 나는 어깻죽지의 형태를 바꾸었다. 방패가 무너져 내리며 두 개의 카메라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주변의 망자들을 되살렸다.
“후후, 스킬에 ‘근본’이 없는데? 타나토스.”
자신을 포위하듯 둥글게 원을 그리는 망자를 보며 헥터가 쓰게 웃었다.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타인을 망자로 부리는 거지.”
“아하, 죽은 자를 모독하는?”
“글쎄, 그렇게 되려나.”
적당히 대답하며 나는 망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땅에 네 발을 붙이고 있던 수십 마리의 짐승들에게.
하지만 그것들은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하는 것이다. 바닥에 끈적거리는 무언가가 퍼져 거기에 망자들이 뒤엉키며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저는 함정을 치는 거미죠.”
그 중심에 선 헥터가 살짝 웃어보였다.
“….”
그것이 능력의 기본이라는 걸까.
‘함정’을 치는데 능숙하다. 그 사실을 기억해두자고 생각하며 나는 스파다를 손에 쥐었다. 늪으로 된 해자를 쳐두고 그 사이에 있는 헥터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실래요? 타나토스.”
“이렇게.”
그리고 다음 순간, 달려들었다.
헥터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늪에 점점 빠져드는 망자들을 가지런히 등을 보인 채 엎드리게 했다.
그 위를 징검다리 삼아…!
“하아아앗!!”
나는 중심부의 헥터를 향해 도약했다.
“칫!”
녀석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여유가 없어졌다. 나는 채찍을 휘두르려고 든 헥터의 팔을 돌진해 베어냈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크윽!”
설마 자신의 몸 부근에서 폭발을…?!
뒤쪽으로 구르며 물러나, 나는 새로운 망자를 소환해 늪의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다시금 도약, 도서관의 바닥을 디딘 상태에서 연기가 걷히길 기다렸다.
“당신…. 꽤, 하는데…!!”
그리고 헥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피부가 빨갛게 달아오른 채, 그녀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참아내듯 나를 비웃었다. 하지만 화려한 금발이 불에 그슬려 완전히 엉망이었다.
“머리에 붙은 불이나 끄시지.”
“타나토스!”
그런 도발에 걸려들어, 머리를 확인한 헥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여유롭게 웃어보이던 나는 다음 순간 차갑게 표정을 굳혔다.
“모드레드를 원래대로 돌려놔.”
“…. 해독제를 말씀하시는지?”
“뭐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없다면 만들어.”
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시금 망자들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점차 늪지대를 뒤덮어 시체로 이루어진 다리를 만들어냈다.
“거래를 하지 않겠어요?”
그런 망자들의 모습에 헥터는 질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손을 뻗어 망자들의 전진을 멈추게 한 나는 눈썹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 말해봐.”
“당신이 조건 하나를 들어준다면 모드레드의 몸을 원래대로 되돌려주겠어요.”
헥터는 다시금 그 퇴폐적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는 뭔가 불길한 예감에 휩싸이는 것을 느꼈다.
“당신이 갤러해드가 되는 걸 포기한다면.”
그리고 헥터는 뜬금없는 이야기를 했다.
“뭐…?”
거기에 놀란 나는 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단 한순간이지만 그 이유에 앞서, 고통스럽고 괴로워하던 모드레드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무언가 불길을 뚫고 날아들었다.
주사기.
그것을 알아차렸지만 몸은 움직이질 않았다. 갤러해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깨어진 탓이었다.
하지만 주사기가 복부에 꽂히려던 순간,
“읏…!”
검은 그림자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거기에 주사기가 꽂혔다. 불길이 일렁이며 나는 그것이 모드레드임을 알아차렸다.
“모드레드…!”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그녀. 깜짝 놀란 나는 팔을 들어 주사기를 쳐내며 모드레드를 안아들었다.
“모드레드!”
“이런 순간에서조차 무슨 생각을 하는 겁니까…. 이 게임을 끝낸다고 했으면서….”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으나 이내 그조차 힘겨운 듯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몇 번이고, 고개를 세차게 내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짐이 될 수는 없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윽!”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복부에 통증을 느꼈다.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자 모드레드가 피로 얼룩진 단검을 뽑아들었다. 나는 허리 밑으로 감각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너, 너…!”
“어서 현실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과다출혈로 이곳에서 사망에 이를 겁니다…. 그러니 빨리….”
“타나님!”
무릎을 꿇자 뒤를 이어 발렌타인이 나를 부축했다. 그녀는 지금의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고 뒤를 이어 모드레드가 우리의 앞에 섰다.
그리고 헥터를 노려보았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는 여기, 까지라고….”
그녀는 단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숨을 헐떡이며 모드레드는 단검을 손에 쥐었다. 반대편의 헥터는 그런 우리의 모습을 킥킥 웃으며 바라보았다.
“정제되지 않은 약이라도 맞으니까 낫지? 모드레드.”
그리고 비웃었다.
“필요한 데이터는 모두 제 몸에 저장되어있습니다…. 스톰을 만나 도움을 구하십시오…. 그리고….”
“모드, 레드!”
“끝내주십시오…. 이 게임을….”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녀는 나를 돌아보았다.
“안타까우시, 겠군요. 내일 아침도 함께 먹게 하실 생각이었을 텐데….”
초연한 얼굴로.
하지만 그런 자신이 있을 현실은 없다는 듯.
그녀는 헥터를 향해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