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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175화 (175/321)

175편

<-- Chapter 4 : 파륜의 기사 -->

초대를 수락하고 정신이 멀어지더니, 눈을 뜨자 아까와 마찬가지로 모드레드의 모습이 보였다.

“….”

여전히 조금, 기묘한 세계다.

온통 새까만 가운데 각종 코드들이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바닥 역시 같은 색깔이어서 거대한 우주 공간 안에 서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이 수많은 코드들이 별이라는 걸까.

“퀘스트는 지난번처럼?”

조금 감상적인 의견이었다고 생각하며 나는 모드레드를 바라보았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눈앞에 팝업창을 띄운 채 두드리던 그녀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조금 다른 방식으로 가죠.”

“음…. 어떻게?”

“쓰러뜨리고 붙잡히는 것으로.”

“경찰에게?”

약간 의아해 묻자 모드레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의구심이 더해지는 것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고양이 주인한테서 정보를 얻어야 한다며?”

“성 내부로 침입할 방법에 관해서였습니다만…. 다른 방법을 써보도록 하죠.”

“헥터의 움직임을 우려해서인가?”

“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도록 다른 방법을 쓰는 게 나아보입니다.”

“뭐…. 버리지만 말아달라고.”

“? 어째서 그런 말씀을.”

“처음에도 그랬잖아? 덕분에 고생했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드레드에게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굳이 이런 걸 말할 필요가 있었나.

예전 같았으면 그냥 담아두었을 사실이다.

“그건…. 불가항력이었습니다.”

“어째서?”

“구조 상 뛰기에 적합한 옷이 아니었으므로.”

“그래?”

“당시의 여성복은 내부에 코르셋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통증까지 재현하지는 않지만.”

“…. 그럼 달릴 수 있었다는 거 아냐?”

“그런 설정을 흉내 냈을 뿐입니다.”

딱 잘라 말한다.

그리고 입을 다문 채 모드레드는 계속해서 팝업창을 두드렸다. 가슴 부근에 오는 조그마한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이내 슬쩍 웃어보였다.

“좋아하는 거 아니야? 이런 거.”

“어떤 게 말입니까.”

“그냥…. 복식 같은 거?”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는 팝업창을 두드려 옷을 갈아입었다. 처음 여기에 왔을 때처럼 구질구질한 항만 노동자의 옷이다.

“빤히 보던데.”

“그런 적 없습니다.”

“그렇군….”

내 착각이었나.

라고 생각하려던 나는 이내 딱딱하게 굳어진 모드레드의 어깨를 발견했다. 그녀는 이쪽으로부터 좀 더 몸을 돌린 채였다. 동의를 구하듯 뒤를 돌아보니 넬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인 듯 킥킥 웃어보였다.

“어떤 쪽이 더 어울리는 것 같아?”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스치듯 그녀의 앞을 지나가며 나는 항만 노동자와 귀족 남성을 오갔다.

“좋으실 대로 하시죠.”

“여기서는 네 명령이 최우선 아니었어?”

“…. 그럼, 항만 노동자로.”

그쪽이 취향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모자를 푹 눌러썼다. 멜빵에 더러운 셔츠, 데님바지까지. 영락없는 항만 노동자다.

“….”

그리고 그걸 모드레드는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봐, 보고 있잖아.”

“아, 않았습니다.”

지적하자 곧바로 시선을 피했지만.

반응이 없지는 않다. 귀 끝이 살짝 상기된 채였다.

“아, 늦어서 죄송합니다.”

바로 다음 순간,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발렌타인이었다. 나는 그녀를 돌아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해요, 가게 문을 닫는 게 좀 늦어져서.”

“…. 이제 아예 정착한 모양이구나.”

“후후, 화이트의 운전 솜씨는 대단하다고요?”

약간 장난스럽게 물었으나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뒤를 이어 모드레드가 입을 열었다.

“바로 출발하도록 하죠.”

그리고 다시금 세계는 변화했다.

감옥은 전형적인 구조였다.

철창에 이끼가 낀 돌로 된 바닥, 간이침대와 화장실.

“꺄악…?!”

“거, 거칠게 다루지 마세요!”

“어서 들어가!”

반대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갑이 채워진 채 고개를 든 나는 바로 옆에 있는 감옥으로 들어가고 있는 세 사람을 발견했다. 모드레드는 입을 다물고 있었으나 넬과 발렌타인은 야단법석이었다.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당신들! 고소할 거야!”

철창이 삐걱이며 닫히는 소리가 들려오자 거기에 매달린 발렌타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경찰들은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이내 바깥으로 나갔다.

“….”

“푸후후, 재미있네요.”

“발렌타인님! 멋진 연기였어요!”

“너, 너희들 좀 진지해져봐라.”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건너편의 두 사람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뒤를 이어 네에~ 하고 의레적으로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모드레드로부터 지시는 없어, 나는 일단 침착하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한 평 남짓한 감옥이 세로로 주욱 이어지고, 복도처럼 좁은 길이 펼쳐진 구조.

반대편에는 바깥으로 이어지는 문이 하나 있고, 그 바로 옆에 감옥의 열쇠가 걸려있었다.

일단 저걸 얻어야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스킬을 시전 하려던 찰나, 누군가 열쇠를 집어 들었다. 나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모드레드?”

“조용히 하십시오.”

철창 밖에 서있던 그녀가 입술에 손을 가져다댔다. 그리고는 가까이 다가와 열쇠로 문을 열어주었다.

“어떻게….”

“스킬입니다.”

당황해 묻자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고는 바로 옆의 문도 열었다. 발렌타인과 넬 역시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 채 바깥으로 나왔다.

“그럼 일단, 바깥의 순경들을 제압하죠.”

“그, 그래도 되는 거야?”

“네, 모두 계산된 내용입니다. 두 분은 이곳에서 대기하고 계십시오.”

그 말에 넬과 발렌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반응을 확인한 모드레드가 천천히 문고리로 손을 뻗었다.

그 손이 조금 떨리고 있다.

“괜찮은 거냐?”

설마 아직 몸이 좀 덜 회복된 걸까 싶어 나는 그녀를 가로막고 앞으로 나섰다.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모드레드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뒤로 물러섰다.

역시 나중에 병원이라도 데려가 봐야겠어.

그런 결론을 내리고, 나는 문을 조금 열었다. 나무로 된 그것이 약간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고 바깥은 그런 소리가 다 울려퍼질 정도로 고요했다.

하지만 반응은 없었다.

말인즉슨….

“기다리고 있어.”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조심스럽게 문의 벌어진 틈 사이로 들어섰다. 허리를 숙인 채 들어서자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역시나.

나는 조금 어깨에 힘을 뺀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경찰들의 휴게실로 사용되는 듯한 지하였다. 아까 들어올 때 면밀하게 확인을 해두어 나는 바로 옆의 의자에 누워 졸고 있던 인간 사내의 뒤로 다가갔다.

“케흑…!”

단단하게 팔을 얽어 목을 조였다. 충격에 깨어난 사내가 발버둥 쳤으나 나는 버텨냈다. 그리고 뒤를 이어 사내가 앞에 있던 테이블을 걷어찼다.

그 소리에 반대편에 있던 사내가 정신을 차렸다. 파충류의 머리를 한 수인이었다. 나는 곧바로 그쪽으로 달려들 자세를 취했으나,

“…?”

기둥 뒤에서 모드레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윽…!”

버럭 소리를 지르려던 사내는 자신의 목에서 차가운 감촉을 느끼고는 굳어졌다. 모드레드는 그의 뒤에 서서 허리춤에 걸려있던 곤봉을 빼들었다.

“안내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어, 어딜 말이냐.”

“역사 기록실.”

“우읏….”

“괜찮습니다. 해는 끼치지 않을 테니.”

“…. 알겠다.”

파충류 사내는 인상을 찌푸린 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추욱 늘어진 남자를 놓고 뒤쪽에서 흥미로운 눈을 한 채 우리를 지켜보던 넬과 발렌타인을 돌아보았다. 위기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보였다.

알고 봤더니 경찰서의 지하에는 왕궁의 역사기록실과 연결되는 비밀 통로가 있다는 모양이었다.

“알고 있었어?”

어둑어둑한 길을 걸으며 나는 옆에 서있는 모드레드를 향해 물었다. 그녀는 파충류 사내를 묶고 있는 긴 포승줄을 쥔 채였다.

“뭘 말입니까?”

“역사 기록실과 연결된 길이 있다는 걸.”

“물론입니다. 누굴 그 정도 조사도 없이 무작정 뛰어드는 바보로 보십니까?”

“호오…. 누굴 그런 바보로 여기는 듯한 태돈데.”

“그런 적 없습니다.”

딱 잘라낸다.

새침하게 시선을 피하고 있는 모드레드의 모습에, 나는 킥킥 거리며 웃었다. 그러자니 뒤쪽에서 누군가 등을 툭툭 두드렸다. 돌아보니 발렌타인이었다.

“저, 타나님…?”

“응.”

“언제 두 분 이렇게 사이가 좋아지신 거죠…?”

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무표정하게 걷고 있는 모드레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는 피식 웃었다.

“정말로 그래 보인다면 병원을 가는 게 어떨까.”

“네…? 하지만….”

“다 들립니다만.”

발렌타인이 말을 이으려던 찰나, 모드레드가 우리 쪽을 돌아보았다. 눈썹을 살짝 찌푸린 채로.

“집중하시죠. 거의 도착했습니다.”

“네, 네에.”

발렌타인은 당황했으나, 익숙한 반응이었기에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다시 앞을 바라보자 조그마한 문이 하나 보였다. 거기에 도착해 파충류 사내가 지친 기색으로 우리를 돌아보았다.

“이 밖으로 나가면 곧바로 왕궁의 로비다. 오른 편으로 꺾으면 곧바로 역사 기록실이 나오지.”

“감사합니다.”

“그럼 나는…. 커헉!”

말을 이으려던 사내의 뒤에 선 나는 다시금 그의 목을 졸랐다. 경동맥으로 가는 혈액이 차단되어 사내는 순식간에 무너져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가시죠.”

육중한 몸체를 뛰어넘은 모드레드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사내를 적당히 자리에 앉혀놓고 나 역시 그 뒤를 따라 바깥으로 나갔다.

고전 영화에나 등장했을 법한 분위기의 로비였다. 경비병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나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사내가 설명한 방향을 확인했다.

유리창이 난 거대한 문의 안쪽에, 희미한 불빛이 점등하고 있는 도서관 같은 장소가 보였다.

-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 경험치가 상승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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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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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기록의 열람 (2/3)

난이도 : ★☆☆☆☆☆☆☆☆☆

내용 : 사서의 지시에 따르세요.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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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곳이…?”

퀘스트의 완료와 함께 다음 퀘스트로 이어졌다. 하지만 뒤를 이어 모드레드가 나를 제지했다.

“네, 잠시.”

“왜?”

“뭔가 이상합니다.”

그녀는 주변을 스윽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샹들리에가 높게 달린 로비에서는 기분 나쁠 정도의 적막함이 흘렀다.

그리고 누군가 저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

“하아, 레이디를 기다리게 만들다니.”

금색의 머리를 틀어올려 묶은 여자.

헥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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