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편
<-- Chapter 4 : 파륜의 기사 -->
◇
유하는 역시 대단한 사람이다.
나는 언제나 그녀에게 경외감을 느끼고는 했지만, 오늘은 그 정도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 모디 양.”
모드레드는 ‘모디’라는 애칭을 싫어하는 것 같았으나, 유하의 미소 앞에서 그 기색을 내보이기 힘들어 보였다. 유하가 내민 딸기 우유를 받아든 그녀가 물끄러미, 그 위에 자연스레 꽂혀있는 빨대를 바라보았다.
“계란도 까줄까요?”
“괜찮습니다.”
“아, 안돼요. 한참 먹을 땐데.”
모드레드의 거절을 그녀가 거절했다.
“….”
모드레드는 그럴 거면 왜 물어봤냐. 라고 물어보고 싶은 듯한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뒤를 이어 유하는 부드럽게 웃으며 계란을 까, 모드레드의 입에 넣어주었다.
물론 모드레드는 고개를 틀었으나,
“모디 양?”
그런 압박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받아들였다.
우물우물. 계란을 먹는 모드레드의 모습을 유하는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했다. 판초가 아니라 분홍색의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모드레드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여자애였다.
그리고 나는 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 조금 멀리 떨어져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주, 주인님?”
“왜.”
“대체 여기는…. 뭐하는 곳이죠?”
“아, 그러고 보니 넬은 처음이겠네. 찜질방.”
“찜질, 방?”
“그래, 가볍게 원기 회복하는 데에 이만한 곳도 없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중의 낮이어서 그런지 사람은 그다지 없고, 황토방이니 뭐니 하는 다양한 종류의 찜질방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모드레드는 유하에게 꽉 잡혀있는 상태였다. 식사를 마치고, 이번에야말로 돌아가겠다던 그녀를 유하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손길로 이끌었던 것이다.
모녀 같다고 생각하면 실례겠지.
하지만 역시 유하는 대단한 사람이다. 모드레드가 아예 거절을 하지 못하도록 부드럽게, 하지만 단호한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끌었다.
“호오, 확실히 땀을 쫙 빼면서 노폐물을 흘려보내고 신체의 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뭐 그런 거군요?”
“그래, 유하가 꽤 좋아하는 곳이야.”
쿠폰도 끊어서, 쉬는 날마다 왕성하게 다니고 있다. 그녀는 말하자면 찜질방의 프로라고 할 수 있겠지.
“모디 양, 양 모자 해줄까요?”
“…. 네?”
“양 모자요. 양 모자.”
“아니, 괜찮습니다.”
모드레드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으나 일단 거절을 했다. 하지만 유하는 능숙하게 수건을 말아 그녀의 검은 머리에 휙 씌워주었다.
“….”
“와아, 예뻐요! 사진 찍어도 될까요?”
“아뇨….”
“찍죠! 찍죠!”
모드레드의 팔짱을 낀 유하가 신이 나서 사진을 찍었다. 모드레드는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렸으나, 나는 도리어 그런 반응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반응이었으니까.
“유하님, 대단하시네요오….”
“대단한 여자지.”
나는 슬쩍 웃으며 매점에서 식혜를 주문했다.
“양 모자가 너무 잘 어울려요!”
“….”
“모디 양, 저녁은 뭘 먹을까요?”
“그냥…. 아무거나….”
“아, 고기 먹을까요? 오랜만에?”
“아니, 그….”
“땀을 쫙 빼고 노폐물이 빠져나가면, 그 뒤로는 단백질로 채워야죠! 이 근처에 잘하는 고깃집이 있는데….”
완전히 신이 났다.
일부러 그런 식으로 배려를 해주면서도, 유하는 자기도 즐기는 듯했다. 그것이 유하의 매력이겠지. 그녀는 다른 사람을 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유하.”
플라스틱 통에 담긴 식혜를 받아, 나는 두 사람에게로 돌아갔다. 이름을 부르자 유하가 금세 고개를 들었다.
“아 준! 모디 양. 귀엽지 않나요?”
“….”
밝게 말하는 유하의 뒤에서 모드레드가 차가운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수건으로 만든 양 모자를 쓰고 있어, 어쩐지 인간이 만든 족쇄에 묶이게 된 야생 다람쥐처럼 보였다.
“웃지 마십시오.”
“안 웃었는데.”
“방금 입 꼬리가 미묘하게….”
다람쥐가 그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려고 했으나,
“왜요오? 다 모디 양이 귀여워서 그런 거예요!”
“수, 숨 막힙니다.”
유하가 꽈악 끌어안아 제지했다. 유하의 가슴 사이에 파묻혀 모드레드가 비명을 내질렀고, 나는 피식 웃으며 두 사람의 앞에 앉았다.
“자 유하.”
나는 그녀를 향해 식혜를 하나 내밀었다.
“아, 고마워요…. 히꺅?!”
그리고 그걸 받아들려던 찰나, 갑자기 통이 세차게 흔들리며 그 안의 내용물이 유하의 얼굴로 튀었다. 나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유하는 느끼지 못했겠지만 분명히 아래에서, 모드레드가 손을 휘두른 것이다.
“하으…. 자, 잠깐 좀 씻고 올게요.”
얼굴에 끈적거리는 게 묻자 유하는 눈살을 찌푸린 채 일어섰다. 잠깐 멍해져 있던 나는 뒤를 이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앉아있는 모드레드를 돌아보았다.
“무슨 짓이야?”
“당신이야말로 무슨 짓입니까?”
“….”
모드레드는 당혹스럽다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양 모자를 번거롭다는 듯이 벗은 그녀는 잔뜩 인상을 찌푸린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뭐어, 나쁘진 않잖아? 하루 정도 더 자고 가도.”
“더 재울 생각이셨습니까?!”
“유하의 반응을 보자면 아예 수양딸로서 함께 사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할 기세던데.”
“그, 그럴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말을 더듬는 것조차 처음인데.
오늘은 모드레드의 색다른 모습을 무척이나 많이 본 듯했다. 무표정한 얼굴에 약간의 부끄러움이 뒤섞여 빨갛게 된 것을 보며 나는 피식 웃어버렸다.
“어쩔 수 없잖아. 오지랖이 넓은 성격인데.”
“당신이 말입니까…?”
“아니 유하를 말하는 거였는데.”
“당신 또한 만만찮아 보입니다.”
그녀는 지친 얼굴로 다시 앉아, 눈앞에 있는 딸기우유를 마셨다. 하지만 그건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는지, 잠시 후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시 내려놓았다.
뭐 그렇게까지 거리를 두지 않아도….
잠시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이윽고, 뒤쪽에서 신기하다는 듯 계란 껍데기를 관찰하고 있던 넬을 힐끔 보았다. 그녀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리고 모드레드가 유하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통을 쳐냈던 순간이.
“지금도 입고 있는 거야?”
“무엇을 말입니까?”
“재킷.”
“…. 굳이 대답해야할 의무라도?”
“아니 그건 뭐, 없지.”
나는 적당히 시선을 피한 채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역시나. 하는 생각을 짧게 했다. 모드레드가 이런 식으로 반응을 보인 건 처음이 아닌가 싶어서….
역시 그녀도 그게 ‘이상하다.’는 자각은 있는 걸까.
재킷을 ‘착용’한 상태로 계속해서 생활한다. 그게 뭐 딱히 엄청난 패널티를 주는 건 아니다. 하지만 몸이 평범한 인간을 초월한 상태에서 평범한 생활을 하는 것은 적지 않은 불편함이 따르는 일이었다.
말하자면 그런 거지. 세상이 깨지기 쉬운 유리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는 셈이다.
그녀에게는 그럴만한 이유라도 있다는 걸까?
“어쨌든 저는, 이만 가보는 것으로….”
바로 그때, 뒤쪽에서 털썩 하고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뭔가 싶어 고개를 돌린 우리는 이내 서로 다른 의미에서 몸이 굳어지고 말았다.
“모, 모디 양. 제가 뭐 불편하게 한 거라도?!”
유하였다.
모드레드에게 주려던 요량이었는지, 무릎을 꿇은 그녀의 앞에 만화책 같은 게 흩어진 채였다. 나는 모드레드의 턱을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걸 발견했다.
물론 웃었다.
◇
만화책만 보고 가겠습니다.
고기만 먹고 가겠습니다.
커피만 마시고 가겠습니다.
잠깐 소화만 시키고 가겠습니다.
“…. 자 여기.”
그리고 나는 모드레드에게 잠옷을 건넸다.
“감사, 합니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그것을 받아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금 샤워를 해서 머리끝이 살짝 젖은 채였다.
“잠만 자고 가는 거야?”
“…!!”
“미, 미안. 미안.”
적당히 장난을 쳐보았으나 너무 반응이 격렬해 사과가 나왔다. 단 한순간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모드레드는 이내 어깨를 떨며 내게서 몸을 돌렸다.
“사실 우리의 하루는 지금부터 시작이지만.”
너무 나갔다는 생각에 나는 슬쩍 진지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자 눈앞의 소녀는, 다시금 원래의 무뚝뚝한 모드레드가 되어 나를 바라보았다.
“오늘 퀘스트를 끝낼 생각입니다.”
“발렌타인에게는 말해뒀어?”
“네, 오겠다고 하십니다.”
중얼거리며 눈앞에 팝업창을 띄우는 모드레드의 모습에서, 나는 어쩐지 서두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두운 2층. 문지방에 기대어 선 채 그녀는 무언가를 면밀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슬쩍 흥미가 생긴 건지 넬이 그 뒤로 천천히 다가갔다.
“검사의 결과는…. 일단 괜찮군요.”
“문제 없다는 거지?”
“네, 정액이 있어야 좀 더 확실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만.”
“….”
“혹시 사정 속도는 어느 정도 되십니까?”
“아, 아니 너무 직설적으로….”
나는 슬쩍 목이 당기는 걸 느끼며 중얼거렸다. 그러자니 모드레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씀해 주십시오.”
“…. 평균 정도가 아닐까.”
“시간은 10시 40분….”
그리고 그녀는 불안하게 품안에서 길쭉한 풀라스틱 병을 꺼내들었다. 나는 아래쪽에서 가게 문을 닫고 있는 유하가 오는가 전전긍긍한 것을 느꼈다.
“최대한 빠르게 채취하죠.”
“….”
뭔가 되게 기계적인 목소리다.
“아니, 그! 잠깐만!”
“…? 왜 그러십니까?”
내 바지춤을 향해 손을 뻗던 모드레드가 이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무슨 집앞에 심어둔 고구마라도 채취한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내, 내가 혼자 하면 되잖아!”
“그럴 순 없습니다. 혹시나 검사 결과를 두려워하여 당신이 다른 정액으로 몰래 바꿔치기를 할 우려가….”
“내가 뭔 국가대표 애슬리트냐!”
하고 당황해 버럭 비명을 지르자니, 이내 킥킥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 바지춤을 붙잡고 있는 모드레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어서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농담이었습니다. 상태를 보아하니 괜찮아서, 정액을 채취하는 일까지는 필요 없을 듯하군요.”
“….”
“뭡니까?”
“아니 그.”
솔직히 좀 놀랐다.
모드레드가 이렇게 풍부한 표정을 지어보일 수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렇게 계속 빤히 보자 그녀는 이내 옆으로 시선을 피했다.
“아니, 조금 경솔했습니다….”
그 얼굴이 약간 붉어진 채였다. 도자기 인형처럼 새하얀 얼굴, 단정하게 자른 검은 머리.
“…. 왜 그런 곳에서 사는 거야?”
그리고 나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런 질문을 했다. 스스로 그렇게 묻는 게 신기하다고 느낄 정도로.
그건 어쩌면 내가 며칠 사이 모드레드와 가깝게 지내면서 가장 묻고 싶었던 한 마디였을 것이다.
“…. 당신은 그렇게 말씀하셨죠. 가상의 세계는 현실과 동등하다고.”
“그랬, 지.”
“하지만 저는 정반대입니다.”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가 달빛의 아래에서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자신에게는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