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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173화 (173/321)

173편

<-- Chapter 4 : 파륜의 기사 -->

“여기서 이야기하긴 좀 그런 거야?”

“네넬, 괜찮으시면….”

“알았어. 유하. 잠깐 다녀올게.”

그런 말에 유하가 미소를 지어보였고, 나는 넬을 따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허공에 떠올라있는 그녀를 따라 2층으로 다시 올라갔다.

아니 생각이 조금 바뀌어, 옥상으로.

“무슨 일인데 그래?”

“모디님의 집에 관해서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차가운 바람이 부는 가운데, 벌써 해가 뜰 시각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세상이 가장 조용한 시간, 나는 넬과 함께 옥상으로 나와 난간에 기대어 섰다.

“말해봐.”

“음…. 기본적으로 아서리안의 모든 도구는 재킷을 해제하면 원래의 합금 형태로 돌아가게 되어있어요.”

그녀는 말을 정리하듯 내 주변을 가볍게 맴돌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슬쩍 뒤로 누운 채, 마치 해먹 같은 곳에 들어가 생각을 하는 것처럼.

“그런데 모디님의 집은, 지하에 있단 말이죠?”

“그래서?”

“본래 용도는 오지나 산간에서 숙영할 때 잠깐 펴놓는 텐트 아이템일 거예요. 저렇게 두고 내부에 다른 가구 아이템을 펴놓는 식으로 쾌적한 숙영이 가능하죠.”

“무슨 게임도 아니고.”

아니, ‘게임’ 맞지.

“그런데 설치는 보통 주변에 방해물이 없는 공간으로 한정된단 말이죠.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재킷을 입고 있는 상태에서만 한정되고.”

“….”

그건 좀 이상한데.

모드레드의 ‘집’은 분명히 지하에 있다. 말인즉슨 그 공간을 파낸 상태에서 넣고 그대로 유지를 하고 있다는 말이겠지. 그렇다면 넬이 하고 싶은 말은….

“모드레드가 계속 재킷을 입고 있다는 말이야?”

“네넬.”

“아니, 음….”

그게 말이 되나?

나는 턱을 괸 채 잠시 생각에 빠졌다. 분명히 나는, 모드레드의 ‘모드레드’로서의 모습 이외에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넬의 말은 어쩐지 조금…. 이질적이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재킷을 계속 착용한 상태로 있다고?

“…. 일단 좀 생각해볼게. 말해줘서 고마워.”

“헤헤, 알겠습니다!”

부드럽게 이야기하자 넬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대로 녀석과 함께 계단을 타고 다시금 방으로 향했다. 좀 편한 바지로 갈아입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방문을 열고 들어선 나는,

“….”

이내 몸이 굳어지는 걸 느꼈다.

침대가 텅 빈 채였다.

머릿속이 어질어질했다.

아니 그러다 못해, 아예 뇌가 반 정도 사라진 기분이었다. 사고가 정지하여 모드레드는 비틀거리며 멍한 채 거리를 걸었다.

이곳이 어딘지도 모르겠다.

밝게 빛나는 네온사인이 시야의 저편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왔다. 마치 골동품이나 다름없는 만화경처럼 그 저급하고 퇴폐적인 빛깔이 눈을 유린했다.

술 냄새.

육욕의 냄새.

자각하지는 못하고 있었으나, 모드레드는 바로 그런 곳에 있었다. 남자와 여자가 뒤섞여 입을 맞추고 무언가에 취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 잊어버리는 장소.

모텔 방의 불이 켜졌다 이내 꺼지는.

“…. 콜록, 콜록.”

비틀거리며 걷던 그녀는 이내 무너져 내리며 마른 기침을 했다.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라 뇌세포 하나하나가 타들어가는 듯하여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바로 그때, 눈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저기, 아가씨….”

남자였다.

숫자는 셋, 술에 취한 듯 얼굴이 새빨갰다. 그런 정보를 기계적으로 확인하던 모드레드는 이내 그 중 하나에게 팔을 붙잡혔다.

“괜찮아요?”

맥없이 끌어올려졌다. 하지만 중심을 잡지 못한 모드레드는 비틀거리다 팔을 당긴 남자의 쪽으로 쓰러졌다.

뜨거워, 몸이.

머리가 멍해….

아무런 생각도 들질 않아….

그런 모드레드의 모습에, 당황한 듯 서있던 사내들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내 대충 어떠한 ‘협의’를 마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땡잡았다.

모두가 한 결 같이 그런 생각을 했다.

그들로서는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왔다는 기분이었다. 자세히 보니 몸집은 조그마했으나 큰 판초 아래로 숨기기 힘든 여성미가 느껴졌다.

하지만 다음 순간,

“어어…?!”

어깨 밑으로부터 쓱 파고든 누군가가 여자애의 엉덩이로 손을 뻗으려던 남자를 밀쳐냈다. 비틀거리며 물러선 남자는 하마터면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야, 너…!”

그리고 취기에 의해 자연스레 버럭 소리를 질렀으나,

“….”

“어, 음.”

숨을 몰아쉬며 서있는 남자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몸이 굳어지는 걸 느꼈다. 그것은 다른 두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셋은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훤칠한 키에 위압감을 주는 분위기, 검은 재킷을 걸치고 있던 남자는 그대로 여자애를 안아들었다.

그러더니 스윽, 뒤로 돌아서 가버렸다.

모드레드가 일어난 것은 정오가 다 되어서였다.

“….”

“이제 일어났냐?”

역시 손님이 없어, 카운터에 가만히 앉아있던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녀는 멍한 얼굴인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는…?”

“몇 번 와봤잖아? 우리 카페.”

“저는…?”

“모드레드.”

아직도 좀 정신이 덜 든 것일까.

“아니, 왜 이런….”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에게 입혀져 있는 옷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무릎까지 이르는 흰색의 차이나 셔츠. 팔 부분은 너무 길어 소매가 손을 넘어 대롱대롱 거리고 있다. 참고로 말하자면 내 옷이었다.

“미안, 그거 유하가 한 거라.”

“…. 그렇습니까.”

그녀는 납득한 듯했다. 하지만 뒤를 이어,

“…야, 너?!”

갑자기 셔츠를 휙 벗어던졌다. 나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며 팬티 한 장만 입은 채로 팝업창을 조작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가리려고도 하지 않은 채 그걸 매만진 그녀의 몸에 검은 판초가 덧입혀졌다.

“무, 무슨 짓이냐….”

“옷을 입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중얼거린 모드레드는 이내 에스프레소 머신의 앞에 와 앉았다. 머리는 엉망으로 뻗쳤고 잠이 덜 깬 듯한 모습이었다.

“주인님….”

“아, 그래.”

잠깐 당황해있던 나는 옆에 있던 넬의 신호에 정신을 차리고 에스프레소 머신을 작동시켰다. 유하가 가르쳐주었던 걸 어렴풋이 기억하며 커피를 내려….

“마셔.”

적당히 만든 아메리카노를 내놓았다. 머그잔을 멍하니 보고 있던 모드레드가 이내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곧바로 숨기지도 않은 채 떫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다. 솜씨가 없어서.”

“괜찮습니다.”

“….”

보통 아닙니다. 라고 말하지 않나.

아니 그보다, 어제의 일은 머릿속에서 도려낸 듯한 저 태도가 무척이나 신경 쓰이는데. 덕분에 나와 유하는 밤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건만.

“몸은 좀 괜찮냐?”

그래서 물었다.

“네, 어제는….”

“주운~!”

하지만 모드레드가 말을 이으려던 순간, 주방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입을 다물자 나는 사람 손을 거부하는 야생 다람쥐 같다는 생각을 하며 돌아섰다.

“응, 왜?”

“후배는 일어났어요?”

주방에서 달콤한 냄새가 풍겨왔다. 앞치마를 두른 채 유하는 가스레인지 앞에서 빙긋 웃어보였다.

“방금 막.”

“혹시 입맛이 있냐고 물어봐주겠어요?”

“알았….”

하고 고개를 돌린 나는 이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또 없다. 이 자식.

“자, 잠시만!”

그렇게 외친 나는 출입구 위쪽에 있는 종이 소리를 내는 걸 확인하고는 달려 나갔다. 진짜 사람 손을 거부하는 야생 다람쥐도 아니고…!

“모드레드!”

“…?”

카페를 나서, 거리를 걷던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그 곁으로 달려가 곧바로 팔을 움켜쥐었다.

“또 어딜 가는 거야?”

“집입니다.”

“그 컨테이너 박스?”

“네.”

일부러 좀 독설을 해보았지만 전혀 통하질 않았다. 어이가 없어 입을 다물고 있자니 모드레드는 눈앞에 팝업창을 띄운 채로 말을 이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오늘 밤에 다시 퀘스트를 진행하도록 하죠. 검사 결과는 이따….”

“시간?”

“….”

“무슨 시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골이 아파지는 걸 느끼며 허리를 쭉 편 채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그러자니 모드레드의 시선이 느껴졌다.

“….”

“몸은 괜찮은 거냐고.”

“네, 낮에는.”

“그러면 밤에는 안 좋은 거냐?”

그렇게 묻자,

“그래서 빨리 끝내고 싶은 겁니다.”

“…. 이 갤러해드의 단서 찾기를?”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일단 돌아가 보겠습니다.”

“유하가 밥 먹고 가라는데.”

“괜찮습니다. 필요 없는 일입니다.”

“….”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꼈다.

아니 뭐 그래, 좋다.

그렇게 나온다면 굳이 신경을 써줄 마음은 없다. 뭐 그런 새하얀 컨테이너 안에서…. 대체 뭘 먹고 어떻게 자고 생활을 하는 건지는 몰라도.

바깥에는 온통 쓰레기장이고 그나마 있는 편의점은 평범한 사람 걸음으로 30분이 넘게 걸리지만.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다.

“그래, 그럼…. 이따가 보는 걸로.”

“알겠습니다.”

중얼거린 그녀가 몸을 돌렸다.

가녀린 어깨가 살짝 떨리는 채였다. 커다란 판초 아래로 뻗은 쇠 젓가락 같은 다리가 눈에 보였다.

“아, 젠장.”

그리고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

“역시 안 되겠어. 밥 먹고 가라.”

“말씀이 다르십니다만.”

모드레드가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너 하고 싶은 대로만 하게 두기는 싫거든.”

나는 살짝 웃으며 이야기했다.

어쨌거나, 뭐 그런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눈앞의 무뚝뚝한 꼬마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말이지. 그게 뭐 호화로운 한정식에 가까운 유하의 식사를 대접하고 푹신한 이불 속에서 자는 거라면.

“그러니까 먹고 가.”

난 그럴 마음이 있다.

“….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왜?”

“비효율적인 일이 아닙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모드레드는 내가 팔을 잡아끌자 터벅터벅 따라오기 시작했다.

“저에게 이렇게 대해주실 이유는 없습니다.”

“…?”

“혹시 수컷으로서 욕구를 느끼시는지?”

내 살다 살다 이런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다.

아니 하지만, 거기에 악의라고는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이가 없어 자리에 멈춰선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모드레드를 바라보았다.

후드 아래로 드러난 가래떡처럼 말랑말랑해 보이는 볼, 커다란 눈망울과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얼굴만 보면 완전히 꼬맹인데.

“넌 내가 동물처럼 보이냐…?”

“인간은 동물입니다.”

“…. 그래, 하지만 동시에 인간이지.”

“무슨 말씀이신지.”

“어제 아파서 죽을 거 같았던 여자애를 아침에 일어나서 곧장 보낼 정도로 냉정하지는 않다는 거야.”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나야말로 그러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정말 이상한 녀석이었다. 매사에 효율이니 뭐니부터 시작해서, 지극히 이론으로서만 인간을 판단하고 역할을 수행한다는 기분이었다.

거기에 재킷을 벗지 않는다고 했던가.

“아, 돌아왔군요.”

잠깐 고민을 하며 다시 가게로 들어서자 유하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모드레드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몸은 좀 괜찮아요?”

유하가 그 앞에서 허리를 숙였다.

“….”

“열은 다 내린 것 같은데. 으음…. 일단 밥 먹을 수 있겠어요? 부담 안 되는 것 위주로 준비해봤는데.”

그리고는 모드레드의 이마를 짚고, 볼을 손등으로 매만지며 확인했다. 잠깐 멍하니 서있던 모드레드는,

“….”

이내 내 뒤로 숨었다.

“후후, 부끄러워 하지 않아도 되요.”

하지만 유하가 그 팔을 잡아끌었다. 자연스럽게 유하에게 이끌려 2층으로 올라가던 모드레드가 내 쪽을 한 번 힐끔 돌아보았다.

분명히 도와달라는 신호겠지.

“싫은데에.”

“역시 어머니는 강하네요!”

그리고 뒤를 이어 넬이 감상을 내뱉었다.

“아니 유하는 누구 엄마는 아닌데 말이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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