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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170화 (170/321)

170편

<-- Chapter 4 : 파륜의 기사 -->

“….”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모디님, 이건…?!”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일까 그 사실을 곧바로 알아챈 넬이 당황해 중얼거렸다. 모드레드는 뭔가 짐작이 가는 바가 있는지 가볍게 눈썹을 찡그렸다.

“으, 으음…. 무슨 상황이에요?”

“주인님이 사라지셨어요!”

뒤쪽에서 조심스럽게 발렌타인이 다가서자 넬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타나토스가 뛰어내릴 때만 해도 바닥 문은 새까맣게 물든 채였으나 지금은 일렁거리며 횃불이 늘어선 좁은 길이 보였다.

말인즉슨 그 전까지는 무언가 그 사이에 걸쳐져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 사람이 함정을 파둔 모양입니다.”

“그 사람이라는 게….”

“헥터.”

모드레드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말에 흠칫 놀란 넬은 곧바로 바닥 문의 상태를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확실히, 흔적이 있다.

누군가가 함정을 파두었던 흔적이.

“일단 추적해볼게요!”

넬은 희미하게 남은 그 흔적을 조사해보려 들었다. 하지만 시스템에 제약이 걸려 불가능했다. 그 말인즉슨, 이 또한 게임의 일부로서 작동한다는 말이었다.

“역시 안 되네요.”

“헥터의 고유 스킬이니까요.”

“저, 저어…. 여러분? 바깥에 경찰이 도착했는데….”

불안한 듯 힐끔힐끔 바깥을 내다보는 발렌타인. 하지만 두 사람은 거기에 대해 신경도 쓰지 않고 제각기 타나토스에 대한 것으로 고민을 거듭했다.

“겨, 경찰이 안으로 들어오는데요?”

“일단 아래로 대피하죠.”

발렌타인의 재촉에 모드레드는 곧바로 일행을 인도했다. 열린 바닥 문으로 뛰어들어 바닥에 착지했다. 그리고 발렌타인과 넬도 들어오자 그녀는 바닥 문 너머로 단검을 뽑아 던졌다. 고정되어있던 나무가 잘려지며 바닥 문이 스르르 닫혔다.

“그럼, 가시죠.”

“주, 주인님은 어떻게 하죠?!”

“짐작 가는 곳이 있습니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모드레드는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좁은 통로에 횃불이 일렁거려 벽에 세 사람의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타나토스, 맞죠?”

여자가 그렇게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금발 머리는 틀어올려 묶은 채로, 속이 비치는 붉은색의 네글리제를 입고 있다. 왕좌에 앉은 채 요염하게 다리를 꼬아 새하얀 허벅지가 그대로 드러났다. 푸른 눈동자의 색에 나는 그녀가 백인임을 알아차렸다.

“음, 얼굴 한 번 보고 싶어서 불렀는데. 태도가 그게 뭐야아~? 무뚝뚝해서.”

“너는 누구지.”

“어머, 모르시나?”

살짝 놀란 듯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웨인의 친구…. 라고 하면 되려나?”

“할 킬러즈라는 거냐.”

거기에 기사라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인간인지 인공지능인지 구분은 불가능한 상황에서 수많은 남녀가 뒤섞여 난교를 벌이고 있다. 거기에 나를,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장소로 이동시킬 수 있는 건 기사가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짓이겠지 싶었다.

엘레노어가 그걸 ‘윤허’했다는 것이니까.

“이름은…. 헥터. 하지만 헬레나라고 불러줄래요?”

“헥터라면, 기사로군.”

그리고 이어진 대답에 나는 곧바로 상황을 받아들였다. 헥터가 슬쩍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헬레나….”

“헥터.”

“아이 참, 왜 아무도 헬레나라고 안 불러주나 몰라.”

우우, 하고 슬쩍 침울한 소리를 내던 헥터가 이내 다시 퇴폐적인 미소를 입에 머금었다.

그녀가 손톱이 긴 손을 내밀자 주변에 남자들이 다가섰다.

“뭐 어쨌든, 딱히 싸우려고 부른 건 아니거든요?”

“….”

“그러니까 칼 내려놨으면 좋겠는데.”

“왜 부른 건지 이유를 설명한다면.”

“으음~. 글쎄요? 그러고 보니 왜 불렀지.”

조금 짜증나는 성격이로군.

일부러 그러는 거겠지 싶어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킥킥 웃는 헥터를 노려보았다. 그녀가 가볍게 손을 내밀자 보랏빛 액체가 담긴 잔이 거기에 드리워졌다. 그녀는 그것을 입에 머금고 옆에 있던 사내와 키스를 했다.

나갈 길은, 보이질 않았다.

마치 나는 섬에 고립된 듯했다. 주변의 넘실대는 인간의 파도가 욕설과 신음으로 가득 찬 채였다. 붉은 조명이 그들을 고깃덩어리로 만들었다.

“아, 오신 김에 술이라도 한 잔 드실래요?”

생각났다는 듯 웃는 헥터.

그녀가 뭔가를 던져 받아들었다. 잔에서 넘실거리는 보랏빛 액체에 나는 그것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세상에 없는 진미일 걸요?

“미안하지만 술은 안 좋아해서.”

나는 술잔을 다시 던졌다.

“어머나아. 그건 아쉽네요. 그럼 다른 건?”

그것을 다시 받아든 헥터가 교묘하게 웃었다. 그리고 주변에서 스산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헥터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주변을 살폈다.

알 수 없는 공기가, 벽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맡으면 아주 기분이 좋아지실 거예요.”

“….”

뭐하자는 거지?

안개가 퍼져 사람들의 모습이 거기에 묻혔다. 무언가의 약물인 걸까. 신음 소리가 더욱 격렬해지는 가운데 나는 아이템창에서 정화 필터를 꺼내 장착했다. 조끼와 셔츠 위에 해골 문양의 마스크가 씌워졌다.

마약의 일종인가.

붉은빛을 쬔 연기 사이에서 사람들이 더욱 격렬하게 움직였다. 서로에게 달려들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짐승들처럼 교접을 해댔다.

하지만 나는 꿋꿋이 서있었다.

“흐음, 이것도 싫으신 것 같네.”

그런 모습에 턱을 괸 헥터의 얼굴에 살짝 지루하다는 기색이 감돌았다. 잠깐 생각에 잠겨있던 그녀가 다시금 팔을 휘저었다.

“꺄아아아악!!”

그리고 곳곳에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리저리 몸을 비튼 여성들이 이내 좀비처럼 자리에서 일어서,

“남, 자….”

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뇌가 이상해져버릴 것 같은 광경이었다.

“헤, 헤에…. 오빠, 잘 생겼네에?”

알몸이 된 여성들이 나에게 달라붙었다. 인종도 제각기 다양해 다크 브라운의 피부를 가진 흑인 여성이 내 얼굴을 쥐고서는 얼굴을 붉혔다.

“어깨도, 넓고오…. 어머나아. 근육도 멋지네에?”

그리고 그 뒤쪽에서 남자들이 일어섰다.

“저, 씨발….”

“아, 아윽….”

내게 달려든 여성들을 보고 그들은 제각기 반응을 보였다. 참지 못하고 자위를 하는 녀석, 분해 주먹을 비트는 녀석. 완전히 인간 이하의 가축으로 전락했다.

“후후…. 재미있지 않나요?”

그리고 헥터가 입을 열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 현실로 돌아가면 대단한 사람들이에요. 미국 재계의 상속녀에 유명한 스포츠 스타, 영화배우까지. 그런 사람들이 지금 약에 취해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죠.”

“….”

“궁금하단 말이죠. 그런 대단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버릴 정도로 최고의 열락인데. 당신은 대체 무슨 이유로 끝장을 내버리려는 걸까. 아니….”

그녀는 조금 말을 쉬었다.

“무슨 이유로…. 싸우려는 걸까.”

“….”

“하아, 윽…. 아읏….”

쾌락에 취해 여성들의 눈동자가 위험할 정도로 떨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이내 뒤쪽에서 달려드는 알몸의 사내를 발견했다.

“꺄악?!”

여성을 밀치고, 동시에 남자를 능숙하게 받아넘겼다. 휙 벽 쪽으로 날아간 남자가 거기에 처박혔다. 나는 슬며시 몸을 비틀며 경계하듯 주변을 살폈다.

공기가 뒤바뀌었다.

남자를 받아넘기느라 주변에 넘어진 여성들을 보고, 바깥에 있던 다른 남성들이 흥분해 내 쪽으로 달려들었다. 수십 명이나 되는 사내들이 덮쳐왔다.

“…!!”

기분이 더럽다는 자각에, 팔을 휘둘러 떨쳐낸 나는 곧바로 헥터를 향해 달려들었다. 높게 뻗은 계단을 단숨에 타고 올라가 녀석의 얼굴에 스파다를 들이밀었다.

“호오.”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은데.”

“조금 더 서비스를 즐기시는 편이?”

헥터가 빙긋 웃으며 칼끝을 툭툭 건드렸다. 하지만 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녀석을 강하게 노려보았다.

“…. 지루한 사내로군요. 당신.”

거기에 또한 대답하지 않았다.

“뭐, 좋아요. 굳이 그러신다면, 말릴 이유야 없죠.”

헥터가 손을 튕기자 뒤쪽에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린 나는 바깥으로 나가는 통로가 열려 있는 모습에 다시금 헥터를 노려보았다.

“함정 아니에요오?”

이게 끝이 아니라는 예감이 들기는 했다.

“….”

하지만 역시 지금은 너무 위험해.

그런 생각에 나는 지체하지 않고 열려진 통로 쪽으로 훌쩍 뛰었다. 가볍게 무릎을 굽히며 착지해, 마지막으로 넓은 홀이나 마찬가지인 방을 확인했다.

그야말로 주지육림이군.

“칫….”

기분이 나빠져, 그제야 처음으로 감정을 내비추었다. 멀리 있는 헥터가 보지는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며 나는 천천히 통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두운 길이 이어지고 이내,

“윽?!”

뭔가와 부딪쳤다.

“하윽…?! 죄, 죄송합니다!”

“아니, 이쪽이야말로.”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손을 뻗었다. 그리고 이내 눈앞에 엉덩방아를 찧고 있는 새하얀 머리의 소녀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넬…?”

“흐엑?! 주, 주인님!”

나를 알아본 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손을 잡고 타고 올라와 단숨에 나에게 안겼다.

“거, 걱정했어요! 으앙!”

“…. 윽!”

복부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뭐지 싶었으나 나는 이내 넬을 돌보며 고개를 들었다. 반대편에서 무뚝뚝한 얼굴의 모드레드와 반갑게 인사를 하는 발렌타인이 보였다.

“타나님, 어디에 계셨던 거죠…?”

“웬 이상한 여자가 잠깐 놀자고 해서….”

“네?”

“….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해줄게.”

일단 가상 세계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위험할 것 같았다. 나는 주변을 경계하듯 살펴보았다.

평범한 거리의 풍경…. 은 아니었다.

“거기 잘생긴 오빠, 놀다가!”

“난 자기처럼 어깨 넓은 남자가 좋더라아~.”

“….”

소위 말해 홍등가였다.

좁은 골목, 질척하고 더러워 보이는 바닥. 무슨 정육점도 아니고 붉은 불빛 아래에 헐벗은 여자들이 전시되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왜,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야…?”

내가 당황해 묻자니 모드레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헥터의 함정에 걸리신 것 아닙니까?”

“그런, 데….”

그건 어떻게 아는 거지?

“이 근처가 그녀의 영역이어서, 타나토스 씨를 구출하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그런 건가.

“후에에엥…. 주인님, 이상한 짓 당한 거 아니죠?”

“그럴 리가 있냐.”

나는 쓰게 웃으며 넬을 진정시키고 떨어지게 했다. 복부에서 뭔가 계속 쿡쿡 쑤시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는 모습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

그리고 발견했다.

복부에 꽂혀있는 주사기를.

“타나…!”

바로 그 순간, 모드레드가 내게 달려들었다.

“윽?!”

“가만히 계십시오.”

벽에 밀쳐져, 나는 그녀의 안색이 창백하게 물든 것을 바라보았다. 당황해 굳어져 있자니 그녀가 조심스럽게 주사기를 뽑아냈다.

“…. 타나토스 씨.”

그것을 가만히 주시하던 모드레드가 인상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주사기에는 불투명한 약물이 담긴 채였다.

헥터의 얼굴에 검을 들이댔을 때 박힌 걸까.

“잠깐 제 주거지에 좀 와주셔야겠습니다.”

“뭐…?”

“약물이 신체에 상해를 끼칠 수 있으므로.”

“아니, 여기서 취급되는 건 다 영향이 없다고….”

“말하는 대로 좀 들으십시오!”

돌연 그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나와 나머지 두 사람은 동시에 굳어졌다. 안색이 창백해진 그녀는 가볍게 혀를 차고는 품안에서 약병으로 보이는 것을 꺼내들었다.

“주소는 보내드리겠습니다. 현실로 돌아간 이후에 바로 오셔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그녀는 조심스럽게 주사기에 담긴 약물을 병속으로 짜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품안으로 넣었다.

“아니, 그…. 하아. 알았어.”

무슨 이윤지는 모르겠지만.

거스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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