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편
<-- Chapter 4 : 파륜의 기사 -->
“큭?!”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는 깜짝 놀라 허리를 뒤쪽으로 눕혔다.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냉동 참치가 둔기처럼 휘둘러져 코끝을 스쳤다.
“이건, 또 뭐야?!”
“왕국에 대한 충성도가 뛰어나 저희 같은 ‘인간’이 거기에 뭔가 해를 끼치려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무슨 남 얘기처럼, 하지, 말라고!”
“오오오오옹!”
고양이 주인은 무슨 중국 무술가처럼 기괴한 고함을 내지르며 참치를 휘둘러댔다. 좁은 술집 안, 테이블을 걷어차고 뛰어넘으며 나는 공격을 필사적으로 피해냈다.
“이 더러운 인간 놈!”
“커헉!”
그리고 다음 순간, 등에 충격이 일었다.
튕겨져 날아간 나는 바 테이블을 넘어가 처박혔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거기 진열되어있던 술병들이 깨지며 바닥에 떨어진 내 위로 우수수 떨어졌다.
“너희들 따위에게 팔아넘길 정보는 없다!”
코뿔소 얼굴을 한 수인이 콧김을 씩씩 내뿜으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머리에서 알코올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든 나는, 마찬가지로 적개심이 가득한 다른 수인들의 모습에 목이 당기는 것을 느꼈다.
“…. 넬?”
“네넬!”
내가 조심스럽게 부르자니, 바 테이블 위로 넬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 옆의 모드레드는 내가 술을 잔뜩 뒤집어쓰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나 좀 도와줄래?”
“아, 죄송해요! 저는 마담을 보호해야 해서!”
“….”
마담은 또 뭐야.
“마담 모드레드님이요!”
언제 또 그런 설정이 생긴 거지.
“마담…. 이쪽으로.”
넬의 인도에 따라 모드레드가 자리에서 일어나 옆으로 빠졌다.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입을 열었다.
“그걸 또 맞춰 주냐!”
“퀘스트의 로직에서 벗어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뭐…?”
“퀘스트를 진행하는 NPC의 행동에는 크게 반발하지 않는 편이 여러모로 좋다는 거죠.”
“저기, 넬은 내 네비게이터거든?”
“….”
무시했다.
명백히 의도적으로 내 말을 무시한 모드레드와 넬은 구석으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 다시금 어이가 없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철컥, 하고 공이가 당겨지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Die, Mother Fuc(삐이이-).”
바 테이블 위에 올라선 다람쥐가 총구를 겨눈 채였다.
“크윽?!”
투다다다다, 하고 기관총이 연사되었다. 몸을 비틀어 피해내자 방금 전까지 누워 있던 자리로 탄흔이 벌집처럼 피어올랐다.
“아니, 야! 잠깐! 만!”
이를 악문 채, 나는 그대로 몸을 휘둘렀다. 바닥에 손을 짚고 튕겨져 날아오르며 다람쥐를 걷어찼다.
“Ughhhh!!”
“미친…. 뭔!”
그 뒤를 이어서 냉동 참치를 든 고양이 주인, 시가를 문 너구리, 이족보행을 하는 코뿔소와 공룡이…!!
“젠장!”
나는 바 테이블을 뛰어넘었다. 허리를 숙여 냉동 참치를 아슬아슬하게 피해내고는 전차처럼 돌진해오는 코뿔소의 코를 붙잡고 몸을 휘둘러 뛰어넘으며,
“하아아앗!!”
그 반동을 이용해 너구리를 걷어찼다.
“기운도 좋으시군요.”
“헤헤, 매사에 진지한 게 주인님의 매력이라니깐요?”
다 들린다. 이 여자들아.
◇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허억, 헉…. 허억….”
“이, 이럴 수가….”
명치에 강한 펀치를 꽂아 넣자 코뿔소 수인이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엉망이 된 술집 안을 돌아보았다.
창문에 대롱대롱 걸린 고양이 주인. 바 테이블에 처박힌 다람쥐와 너구리, 목을 쭉 뺀 채 뱀처럼 바닥에 쓰러진 공룡. 마지막으로 코뿔소까지.
서있는 놈은 없다.
“하아, 이게 뭐야?!”
나는 몸에 힘이 빠지는 걸 느끼며 바 테이블로 가 기대어 섰다. 숨을 몰아쉬며 축축하게 젖은 셔츠가 몸에 달라붙어 기분이 나쁜 걸 느꼈다.
“후우…. 빌어먹을.”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다가온 모드레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소리를 했다. 나는 바 테이블에 엎드린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다람쥐를 툭툭 건들며 입을 열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건데?”
“아마 신고가 들어갔겠죠.”
“무슨 신고…?”
“말씀드렸다시피 가상 세계는 엘레노어의 등장 이후 현실과 흡사해져가고 있기 때문에.”
“…?”
“치안 조직 또한 있다는 거죠.”
모드레들의 말이 끝나고 바로 다음 순간, 바깥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퀘스트 상으로는 고양이 주인을 깨워서 안내하지 않으면 냉동 참치를 녹이겠다고 협박을 해야 합니다만.”
“….”
거 참 안쓰러운 협박이군.
“일단 오늘은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네…?”
“어차피 이 이후의 퀘스트에서는 발렌타인 씨가 함께 계셔주셔야 해서.”
“그럼 전 왜 싸운 거죠.”
“혹시나 이 맨손 전투 퀘스트에서 패배한다면 다른 분기점이 발생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잘 깨는지 시험하러 왔다…?”
“그렇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번 퀘스트의 분기나 이후의 행동에 대한 공략은 나중에 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 그래.”
나는 어깨에 힘이 쭉 빠지는 걸 느끼며 대답했다. 그러자니 모드레드는 여유롭게 의자에 걸터앉았다.
“? 뭐해.”
“먼저 가시죠.”
“…. 뭐?”
“저는 퀘스트에 포함되어있지 않으므로.”
그리고 다음 순간,
“거기 서라!”
그런 외침과 함께, 가게 바깥에서 우르르 경찰들이 몰려들어왔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들을 돌아보았다. 대부분 인간들에 수인이 끼어있는 형태였다.
“얌전히 체포되어라!”
“제, 젠장!”
곤봉이나 권총, 그물망 같은 걸 들고 있던 녀석들이 달려들었다. 나는 곧바로 몸을 비틀며 날아드는 그물을 피해 앞으로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이게…!”
뭐냐고!
◇
그리고 다음 날,
“….”
아직까지도 분이 풀리지 않은 채였다.
가상 세계에서 경찰들을 떨쳐내질 못해서 몇 시간이나 도망을 다녔는지. 현실로 돌아온 뒤에도 그 영향이 짙게 남아 하루 종일 피곤한 기분이었다.
“타나 오빠?”
“아, 응.”
바로 그때, 앞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퍼뜩 고개를 든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트리슈와, 그 옆의 린슬렛을 발견하고는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 보니 퀘스트 중이었다.
“네 차례야, 티티.”
“으, 으음….”
린슬렛이 팔을 잡아끌자 나는 슬며시 스킬창을 확인하며 앞으로 나섰다. 거리를 다니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
목표물은 눈앞에 있다.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 회사원으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퀘스트는 저 사람을 미행하며, 몬스터들의 습격으로부터 지켜내는 일이었다.
남자는 평범하게 거리를 걷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그렇고 다른 두 사람 역시 마스크를 쓰고 있지는 않았다. 쓸데없이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끌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 망자 소환.”
내 경우에는 더더욱.
나는 조용한 목소리로 스킬을 시전 했다. 눈앞에 떠오른 뼛조각들을 내려다보며 그 중 적당해 보이는 녀석을 망자로서 벼려냈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뼈로 이루어진 호랑이가 나타났다.
그리고 전투는 시작되었다.
현실을 무대로 해, 철저히 가상의 몬스터들이.
남자에게 다가오지는 못하고 망자들에 의해 차단되어 현실에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지만, 사냥개 같은 몬스터들이 계속해서 공격을 해오고 있었다. 달려든 망자들이 사냥개를 짓밟고 목을 물어뜯었다.
“아, 11시 방향에.”
그리고 트리슈가 카메라로 주변을 크게 감시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11시에는 뭘 할까나….”
린슬렛은 숨을 쉬었다.
“저기, 근데.”
한참 망자들을 조종하던 나는 떠오른 의문에 뒤를 돌아보았다. 두 사람 모두 지루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왜 따라온 거야…?”
그런 말에 넬이 뒤에서 숨을 삼켰다.
“흐응~?”
“뭐라고?”
“아, 아니. 너무 고마워서.”
거기에 대충 눈치를 챈 나는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순간적으로 시선에 살기를 띄던 두 사람이 곧바로 흥, 하고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
호의는 그냥 감사히 받아들이는 걸로.
“끝나고 저녁이라도 먹을까.”
그런 생각에, 나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 트리슈는 곧바로 그런 내 생각의 변화를 이해한 것 같았으나 린슬렛은 눈썹을 치켜떴다.
“뭐, 뭐 먹을 건데?”
“음, 너희 먹고 싶은 걸로…?”
“트리슈는 레스토랑이 좋아!”
“어, 음.”
난 그런데 한 번도 안 가봤는데.
“린 언니는 어디가 좋아?”
“그, 글쎄? 티티 하고 싶은 대로 해.”
“…. 잠깐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라고 중얼거린 뒤, 나는 다시금 퀘스트에 집중하는 척을 고개를 돌렸다. 딱히 어려울 것도 없었지만 어쨌든 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
최근에는 계속 이런 식이었다.
130을 막 넘어서기 시작한 내 레벨이 아무래도 두 기사 분들께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으로…. 덕분에 수업이 끝나면 계속해서 퀘스트의 연속이었다. 상황이나 여건에 따라 트리슈가 계속해서 적당히 할 만한 레벨의 퀘스트를 찾아주고 도와주기까지 했던 것이다.
린슬렛은…. 같이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하긴 했다. 뭐 그거면 솔직히 말해서 차고 넘치지.
“저기, 넬.”
“네넬?”
“혹시 근처에서 가장 좋은 레스토랑은 얼마쯤 할까?”
나는 지갑의 잔고를 생각하며 물었다.
“두, 두 분이 가고 싶은 레스토랑은 그런 곳이….”
“음? 그럼 어떤 곳인데.”
“그냥 샐러드바 있는 고오오옷!”
“으헉?!”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시야보다 조금 아래, 린슬렛이 허리춤에 손을 올린 채 불만스러운 얼굴로 서있었다.
“뭐, 뭐?”
“그냥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하아, 거기다 왜 굳이 사주고 싶어 하는 건지.”
그 뒤쪽에서 트리슈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이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헤헤, 얼마 전에 음원 정산 수익도 받았다고?”
“와, 얼만데?!”
하지만 린슬렛이 눈을 반짝이며 묻자 어깨가 축 쳐졌다. 그녀는 힝힝, 하고 우는 소리를 냈다.
“…. 378원.”
한 세 명 들었다는 건가.
“아, 아니야! 그래도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우리의 약간 안쓰럽다는 듯한 시선에, 트리슈는 고개를 내저으며 힘껏 소리쳤다.
“아 그러면, 오늘은 트리슈가 쏘는 걸로?”
그 말에 내가 잠깐 당황하고 있자니,
“티티. 호의는 기분 좋게 받아들이자고?”
린슬렛은 짓궂은 얼굴로 윙크를 했다.
“아니! 378원이라니까아!”
“트리슈가 쏘는 걸로오~.”
트리슈가 항의를 했으나 린슬렛은 웃으며 뒤로 물러섰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어쩐지 즐거운 기분을 느꼈다.
- 대상 보호에 성공하였습니다.
- 경험치 5,000,000이 상승하였습니다.
-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메시지가.
“….”
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회사원은 계속해서 걸어, 천천히 멀어져가고 있다. 그 주변에 있던 망자들이 내 곁으로 돌아오고 쓰러져 시체가 된 사냥개들이 희미해지며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뭐….”
저녁이나 먹으러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