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편
<-- Chapter 4 : 파륜의 기사 -->
◇
진한 담배 연기가 허공에 흩날렸다.
“당신은 이런 곳에서조차 피우시는군요.”
“…. 니코틴이 중추신경계에 중독을 유발시켜서.”
적당히 맞는지도 모르는 말을 중얼거린 가웨인은 어둠에 잠긴 방안을 걸어다가갔다. 테이블 건너편에서 다리를 꼬고 있던 금발의 여인이 피식 웃었다.
“한 잔 하시겠어요?”
바깥에서는 귀에 거치적대는 커다란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30년 전에나 유행했을 시끄러운 덥스텝 장르. ‘다른 소리’를 묻어버리기 위함이었기에 그러려니 했다.
“글쎄, 뭘 탔는지 알 수가 있어야 말이지.”
가웨인은 슬쩍 너스레를 떨며 그녀의 앞에 의자를 두고 앉았다. 뭔지도 모를 보랏빛의 액체가, 잔에 담긴 채 그녀의 앞에서 찰랑거리고 있었다.
“너무하시네. 아무리 그래도 동료인데.”
“동료?”
가웨인은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되물었다.
“네, 술잔에 약을 타지는 않는다고요?”
“그런 주제에 동료의 여자를 붙잡아두고 협박을 하고 있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군?”
“어머, 그건 대장님 명령이시라.”
“명령 체계에 속하는 걸 가장 싫어하는 주제에.”
“후후, 그래서 하는 거죠.”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짓을 남에게 한다.
여자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걸 통해 인간을 관찰하고, 지배하며 아래에 두려고 하는. 병적일 정도의 사디스트. 그렇기 때문에 역으로 자신이 약자가 되는 것을 가장 싫어하겠지.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유도, ‘헥터’가 되어 이 과정에 깊숙이 들어온 것도, 모두 거기에서 기인할 것이다.
약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때문에 이런 거대한 성을 만들어둔 거겠지.
[아앗! 하아앙! 아악?! 아아아앗!!]
헥터가 입을 다물어, 그로 인해 조금 조용해졌기 때문일까. 벽을 넘어서 여성의 신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가웨인은 기분이 불쾌해지는 걸 느끼며 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헥터가 턱을 괸 채 빙긋 웃었다.
“음악 소리를 좀 더 키울까요?”
“아니, 됐어.”
그래봤자 궁여지책일 뿐이다. 가웨인은 인상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이, 비트가 조각조각 잘려지는 듯한 음색은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았다.
얼른 나가고 싶다.
“타나토스를 건들기로 했다면서.”
가웨인은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음악이 조금 조용해지고 탁탁 쳐내는 듯한 소리가 이어졌다. 그는 반대편에 있는 헥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머, 누구한테 들으셨을까.”
“당연히 백 대령이지.”
“그래요? 대령님도 참…. 무슨 의도신지 몰라.”
헥터는 입술을 핥으며 중얼거렸다. 가웨인이 타나토스에게 ‘쓸데없는’ 적개심을 지니고 있다. 그것을 백 대령 같은 인물이 모를 리도 없을 텐데.
하여간 남자들이란.
자신이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에 대해 단순한 말로 정리를 하며, 헥터는 쓰게 웃었다.
“어떻게 할 생각이지?”
“글쎄요? 뭔가 재미있는 걸 하겠죠.”
“알려주지 않겠어?”
“여성의 섬세한 조율이 필요한 문제라.”
끼어들지 말라는 말이었다.
애써 여유를 부리던 가웨인의 표정이 점점 굳어져갔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헥터는 즐거운 감정을 느꼈다.
조금 놀려볼까.
“특별한 감정을 지니고 계시는군요. 타나토스에게.”
“어떻게 알았지? 성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당신의 여자를 건드렸기 때문일까요.”
그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헥터는 깊숙이 파고들었다. 가웨인의 표정이 그제야 굳어졌다.
“그래서 당신이 쓰러뜨리겠다는? 멋진 무대에서?”
“…. 여기까지 해두지.”
그는 황급히 일어섰다. 그런 주제로 대화하기를 회피하려는 것일까. 흰 코트를 펄럭이며 돌아서 그대로 방안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한 가지 알아두는 게 좋아요. 가웨인.”
하지만 헥터는 그를 불러 세웠다. 많은 걸 짊어진, 아니…. 그런 시늉을 하고 있는 등이 보였다.
무슨 말이 좋을까.
고민을 하던 그녀는 빙긋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녀는 당신에게 있어 결국 도구일 뿐이로군요.”
“….”
“허울만 남은 당신의 정의를 충족시키기 위….”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테이블이 반으로 쩌억 갈라졌다. 헥터로부터 문앞에 서있는 가웨인까지 하나의 선을 남기며 그것이 잘려져 서로 안쪽으로 쓰러졌다.
더 강해졌네.
“미안, 테이블 위에 파리가 있어서.”
갈라틴을 휘두른 자세 그대로 멈춰선 가웨인이 상쾌한 미소를 입에 머금었다. 미리 빼내둔 술잔을 들고 보랏빛 액체를 한 모금 마신 헥터가 피식 웃었다.
“그런가요?”
대답은 없었다.
고개를 끄덕인 가웨인은 검을 넣으며 그대로 돌아섰다. 문이 열리고, 그 모습이 거기에 감춰지자 헥터는 얼음을 녹이듯 술잔을 빙글 흔들었다.
역시 끼어드는 것이 정답이었어.
그녀는 애처로울 정도로 평온함을 가장하던 그의 모습을 안주 삼아, 다시금 술을 들이켰다.
◇
눈을 뜨자 그곳은 내가 모르던 세계였다.
주변은 온통 검정색이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각종 글자들이 날아다녔다. 숫자와 영어로 이루어진 코드와 비슷한 것들이 마치 물속을 유영하는 물고기처럼.
“….”
어쩐지 디멘션 커넥터의 오류 보고 화면을 보는 듯했다. 나는 눈썹을 찌푸린 채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초대를 주었던 모드레드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호오, 이런 식이군요.”
하지만 넬은 뭔가 눈치를 챈 듯 주변을 날아다니던 코드 중 하나를 짚어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런 모습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설명 좀 해줘봐.”
“음~ 모드레드님 대단하시네요!”
“왜?”
“지금 접속을 일부러 우회하고 있는 거거든요.”
“어디로 접속을 하는 건데?”
“물론 가상 세계에 말이죠.”
후후, 하고 입술에 손을 올린 넬이 내 앞에서 음흉하게 웃었다. 허리를 숙인 그녀가 가볍게 몸을 회전시켰고 흰색의 머리가 춤을 추듯 흔들렸다.
“넬의 세계라고 할 수 있겠네요!”
“흐음.”
넬의 세계라.
뭔가 신비한 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상, 다시 말해 넬의 세계라는 건 역시나 조금 신기했다.
가만히 서있던 나는 팔을 뻗어 넬의 손을 쥐었다.
“….”
정말로 감각이 느껴졌다.
“어머나, 주인님도 참….”
“뭘 또 부끄러워하는 거냐.”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넬을 공중에 뜬 상태에서 휙 당겼다. 그녀는 마치 물속에서 끌려오는 것처럼 몸을 뉘인 채 나에게 날아들었다.
그걸 피해, 몇 번이고.
조금 재미있는 걸.
“아하하! 주인님 이상해요!”
이런 식의 활용법이 될 거라고는 상상치도 못했다. 나는 넬의 손을 잡은 채 신기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치 실존하는 듯한 넬을.
물론 내게 있어서 그녀는 그랬지만.
처음 만난 이후로 몇 달만에 처음으로 손을 잡으니…. 그리고 그 감각을 느끼니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우회는 왜 하는 건데?”
어느덧 녀석과 나는 즐겁게 공이라도 튕기는 것마냥 놀기 시작했다. 멀리 넬을 집어던지고, 녀석이 보이지 않는 벽을 밟고는 나에게 다시 돌아와 나는 밀어내고.
조금 유치한 것 같지만 뭐 어때.
“음, 개인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아서리안에서는?”
“물론 저희 역시 ‘이준’님 대신에 ‘타나토스’님을 접속시키고 있는 거긴 한데요.”
“그런데?”
“그렇게 놓고 보자면 좀 이상하긴 하네요. 굳이 다시 한 번 우회를 하시는 이유는 뭘까요?”
“감추고 싶은 거라도 있는 모양이지.”
“호오, 가상 세계에서 모디님은 유명한 범죄자라던가?”
“…. 네 상상력도 참.”
빈곤하구나 싶었다.
하지만 딱히 녀석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던 나는, 역시 뭔가 수상하다는 넬의 표정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모드레드는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았으니.
그러고 보니 그건 과연 뭐였을까.
맡길 사람이 나밖에 없다느니, 자신이라면 아이덴티티를 완전히 지워버렸을 거라느니.
그건 마치….
“아, 주인님?!”
다시금 넬의 손을 잡고 날려 보내던 나는, 갑작스러운 비명에 고개를 들었다. 휘잉, 날아가는 넬의 뒤쪽으로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160도 안 되는 자그마한 체구.
검은 머리를 짧게 자른….
“모드레드?!”
나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어느 순간 나타난 모드레드의 방향으로 넬이 중심을 잃은 채 날아들었다. 저대로 가다가는 분명 부딪칠…!
“뭘 하고 계시는 겁니까?”
하지만 모드레드는 침착했다.
“힉!”
그녀가 쓱 손을 뻗자 넬이 허공에서 움찔거리며 멈춰 섰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은 넬이 어색하게 웃어보였으나, 모드레드의 표정은 차갑기 그지 없었다.
“한심하군요.”
“…. 으, 으음.”
나는 얼굴이 빨개지는 걸 느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겁을 먹은 걸까. 주춤거리며 물러선 넬이 이내 내 뒤쪽으로 날아와 숨었다.
“그, 발렌타인은?”
“오늘은 기본 동작 테스트만 해볼 것이기 때문에.”
“걔는 먼저 했어?”
“아뇨, 필요 없습니다.”
“…?”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모드레드는 대답을 하는 대신 눈앞에 팝업창을 띄우고는 조작했다. 무심한 눈으로 각종 데이터를 눈앞에 크게 표시하고는 막힘없이 그것들을 누르며 뭔가를 확인했다.
“혹시 디멘션 커넥터나, 아서리안의 통합 언어에 대한 지식은 있으십니까?”
“…. 뭐?”
“하아, 어떻게 당신 같은 사람이 에스콰이어로 선택을 받았는지, 정말이지 한심하군요.”
길게 한숨을 내쉬며 폭언을 내뱉는 모드레드. 뭔가 반박을 해보려던 나는, 이내 입이 다물어지는 것을 느꼈다. 관계가 삐걱거리고 있지만 일방적이었다.
즉, 그다지 상대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넬…. 이라고 하셨나요.”
“네, 네넬?”
잠깐 고민을 하던 모드레드가 고개를 들어 내 뒤쪽의 넬을 바라보았다. 약간 경계하는 듯한 대답에 몇 가지 데이터를 골라낸 그녀가 날려 보냈다.
“이 데이터를 해석해서, 나중에 보내주시겠습니까?”
“이건…?”
희미하게 빛나는 데이터들을 확인한 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뭔가 복잡하게 구성된 지그소 퍼즐이라도 본 듯한 눈이었다.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도록.”
“으, 으음. 주인님?”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해.”
딱히 이걸로 모드레드와 입씨름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넬이 알아서 하겠지 싶어 나는 적당히 대답했다.
“….”
그러자 모드레드는 또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건지, 나를 빤히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신뢰하고 계십니까?”
이어진 질문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말조심해.”
그 말의 의도를 깨달아, 나는 곧바로 이를 드러내보였다. 하지만 모드레드는 여전히 차가운 시선을 한 채, 옆에 있던 넬을 돌아보았다.
“굳이 지금 시점까지 와서 드릴 말씀은 아니었군요.”
“어떤 시점이고 간에.”
그녀는 넬이 아서리안의 일부임을 상기시키고 싶어 하는 듯했다. 하지만 뒤에서 넬이 만류하듯 내 옷소매를 집어 나는 가볍게 혀를 차며 뒤로 물러섰다.
알고 있다. 그쯤은.
하지만 넬과 나의 관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에게 듣고 싶은 소리는 아니었다.
“일단 가시죠.”
“…. 어디를?”
침착하자.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스리며 물었다. 그러자니 모드레드는 다시금 눈앞에 팝업창을 띄우고 무언가를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새하얀 손가락이 푸른색으로 빛나는 가상의 키보드 위에서 춤을 추었다.
“가상 세계의 수도. 입니다.”
그리고 엔터.
“수도…?”
눈앞의 풍경이 뒤바뀌는 걸 보며 나는 숨을 삼켰다.
========== 작품 후기 ==========
예비군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