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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맨서 재킷-165화 (165/321)

165편

<-- Chapter 4 : 파륜의 기사 -->

어두운 방에 바깥의 빛이 들어오며 길을 만들었다 .

거기에 여성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이내 그녀는 안으로 들어왔다. 딸칵,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드리운 그림자가 어둠에 물들었다.

“불법 침입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하시는군요.”

“….”

딱히 그러려는 의도까지는 없었는데.

“죄송합니다.”

하지만 나는 솔직하게 사과를 하며 벽에서 등을 떼고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눈앞에 팝업창을 띄우고 조작한 우정현 씨가 한심하다는 듯 나를 보았다.

“연락도 없이 온 걸로 봐서는, 뭔가 들은 모양이군요.”

“글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그리고 이준 씨는 거짓말을 못하는 편이고요.”

“….”

이 사람하고 대화를 하면 나만 손해를 보는 기분이다.

방안에 불이 켜졌다. 우정현 회장의 개인 오피스텔. 검은 바지 정장을 입고 있던 그녀가 재킷을 벗으며 방안으로 들어섰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넬에게는 이야기하기 편하도록 들어가 있으라는 주문을 한 상태였다.

“무슨 일로 오셨는지?”

그녀의 목소리는 무뚝뚝했다.

이럴 사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이 심히 부담스러웠다. 목구멍에 찰흙 같은 게 퍽퍽하게 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뭐, 카드도 돌려드릴 겸해서.”

“아 그러고 보니, 여행은 잘 다녀오셨는지.”

“네 덕분에….”

방안을 들여다보려던 나는, 회장의 새하얀 등을 보고 벽에 기대어 섰다. 딱히 티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어쨌든 지킬 건 지켜줘야겠지.

“퀘스트는?”

“물론, 끝냈죠.”

“어떤 형식이었습니까?”

“…. 귀신에 제가 꾀여서 여자애들 앞에서 본심을 드러내보였죠. 뜨는 태양 같다고 말한다거나.”

부끄러움을 감춘 채 이야기하자 우정현 씨는 하얀 가운을 입고 나왔다. 나는 가볍게 팝업창을 조작, 카드를 꺼내 건네주자 보지도 않고서는 받아갔다.

“그래서, 관계에 진전은 있으셨는지?”

“딱히 거기까지 대답하고 싶지는 않군요,”

그 말에 그녀는 피식 웃었다.

어쩐지 이야기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보다 그녀가 하고 싶은 부분으로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능숙한 사람인 것이다. 눈앞의 능구렁이는.

샤워실에 그녀가 들어서고,

“어쨌든 그래서, 보상을 받았는데요.”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기사의 명예 말입니까?”

“네, 근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아서리안의 팝업창을 조작해 기사의 명예 중 남은 하나를 꺼내들었다. 원래는 두 개 다 ‘환전’을 하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거기다 모양도 미묘하게 달랐다.

조그마한 동전 모양의 그것에는,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그려진 채였다.

“뭔가 좀 이상해서요.”

“보여주시겠습니까.”

그런 대답에, 나는 문이 반쯤 열린 샤워실 안쪽으로 기사의 명예를 던져넣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그것이 돌아왔다.

“일단 가지고 계시죠.”

“…. 뭔가 안다는 듯한 눈치인데요.”

“예, 하지만 지금 말씀드릴 건 아닙니다.”

“그럼 언제쯤 말씀하실 수 있는지?”

나는 슬쩍 짜증이 밀려드는 걸 느끼며 중얼거렸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당신이 알고 있는 진실에 관해서요.”

“미안합니다.”

“그리고 지금 어떤 기분인지에 대해서도.”

아니면 앞으로의 계획이라던가.

“저희는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는 거죠?”

나는 그런 뒷말을 삼키며 가만히 벽에 기댄 채 입을 다물었다. 우정현 씨와의 관계에서 나는, 스스로가 동등해지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아닌 것 같아 조금 씁쓸한 기분이었다.

“이상론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그녀가 말을 이었다.

안에서 들려오는 물소리가 멎은 다음이었다.

“…?”

또 어려운 이야기를 하려는 건가.

“저는 사실, 이준 씨를 볼 때마다 뭔가 이상하다는 예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그래서 말을 아끼고 있는 겁니다. 그게 그렇게 보였다면 사과하겠습니다.”

“뭐가 이상하다는 거죠?”

“…. 조금, 정정하죠.”

가운 차림을 한 그녀가 바깥으로 나왔다.

머리끝이 살짝 젖은 채였다.

“타나토스에 대해서 말입니다.”

“….”

무슨 소리야, 대체.

“이 게임의 목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거실로 나간 우정현 씨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밝았던 거실의 조명이 은은하게 어두워졌고 그녀는 오픈 형태의 주방으로 가 냉장고를 열었다.

그리고 난 대답을 찾는 중이었다.

이 게임의 목적…. 이라 거기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본 적이 있나 싶었다. 평소라면 사람을 엿 먹이기 위해서라고 대답을 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뭐라도…. 드시겠습니까?”

“괜찮아요.”

“맥주 같은 거라도?”

“취하면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런 점에서는 저와 비슷하시군요.”

중얼거린 그녀가 조그마한 페트병에 든 물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생활력이라고는 조금이라도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 사람을 인도하는 것.”

그리고 나는 겨우 답을 냈다.

약간 불쾌해지는 것을 감수하면서, 엘레노어의 입장에서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우정현 씨는 빙긋 웃었다.

“여유가 좀 생긴 것 같군요. 이준 씨.”

“하아.”

그런 반응일 거라고 생각했다.

“예전 같았으면 눈에 살기가 감돌았을 텐데.”

“그랬겠죠.”

나 역시 동의하는 바였던지라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은 엘레노어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하고 바라볼 수 있게 된 반증일까.

“그런 상황에서, 타나토스에게 그런 ‘인도’가 이루어지는 게 조금은 이상하다고 여겼던 겁니다.”

“그게 뭐가요?”

“엘레노어의 입장에서 당신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유저에 불과하니까요.”

“기사가 아니라는?”

“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망이 있죠. 랜슬롯, 트리스탄, 베디비어. 기사들의 주군 같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 아서왕이라도 된다는 건가요….”

조금 질린 톤으로 대답하자 정현 씨는 피식 웃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러니까 그녀의 말은, 이런 것일 터였다.

엘레노어는 아서리안을 플레이하는…. 아니,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인간들에 대해 면밀히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 유저가 되는 자를 택해 방향을 인도한다.

퀘스트를 통해.

“기사는 그럼, 어떤 존재인 걸까요.”

“글쎄요. 그건 알 수 없겠죠. 희미한, 그리고 무척이나 불길한 예감 정도는 있지만.”

“어떤?”

“그거 아십니까? 세간에서는 한 가지 속설이 나도는 모양입니다. 기사가 된 자들은 모두 불행해진다고.”

“네.”

트리슈도 그렇게 이야기했지.

“그건 완전에서 불완전으로 떨어진 것이죠.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 그 기사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거죠.”

조금 불안해졌다.

“한 유저를 어디론가 인도하기 위해, 엘레노어가 자연스럽게 만들어둔 여로가 아닐까요?”

“….”

“이상론에 관해 아까 말했습니다만, 그래서 타나토스라는 유저가 이상하다는 겁니다. 그는 언제나 그런 길을 택해왔기 때문에.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엘레노어는 이상을 바라고 있다.

이 세계의 불완전함을 해결하는 이상을.

“….”

온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그녀는 이렇게 말한 것일까.

타나토스라는 유저는 그런 ‘이상의 실현’으로 인도되기 위해, 엘레노어가 특별하게 고른 에스콰이어라고?

“말도, 안 돼.”

“제 말이 꼭 맞는다는 반증은 없어요. 하지만 그런 만큼, 저는 한 가지 물어보고 싶군요.”

정현 씨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게임을 끝낼 생각이십니까?”

“…. 네.”

“그럴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나는 잠시 망설였다.

모드레드와 똑같은 질문이었다. 그녀는 마찬가지로 나에게, 의지에 대해 묻고 있다. 모드레드가 말하기에 무척이나 덜 떨어지고 연약한 의지를.

하지만 나는,

“물론입니다.”

그렇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됐어요. 언젠가 그 의지를 발휘해야할 순간이 온다면, 망설이지 말아주길 바래요.”

“…. 제 쪽에서 좀 물어도 될까요.”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반대편에서 창가에 기대어 서있던 정현 씨가 미소를 지었다.

“우아랑은 어떻게 된 거예요?”

“그 아이, 그래보여도 이준 씨보다 나이가 한 살 더 많은데, 너무 함부로 말씀하시는 건 아닌지.”

“제가 거짓말을 못한다면 정현 씨는 농담을 못하네요.”

“아, 방금 그건 좀 상처 받았습니다.”

그녀가 씁쓸하게 눈썹을 찌푸렸다. 하지만 내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심호흡을 한 뒤 말을 이어나갔다.

“그 아이의 선택입니다.”

“갤러해드가 되자고 한 것이?”

“네….”

그녀는 괴로운 얼굴이었다.

“왜 설득할 생각을 않는 거죠?”

“무엇이, 말입니까?”

“우아랑이 그때 이야기했거든요. 자신 역시 게임을 끝낸다는 목적을 지녔다고. 그렇다면 왜, 그녀를 설득해서 데려올 생각을 않는 거죠?”

“…. 한 가정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대답을 못 하시겠다?”

“네, 미안합니다.”

매번 사과만.

하지만 저렇게 괴로워하는 얼굴을 보자니 더 묻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사소한 오해가 크게 번진 거겠지 싶은 예감 정도는 있었다. 왜냐면 우정현 씨는 할 킬러즈에게 협력하지 않고 있으니까.

시민을 지키기 위해 엘레노어에 맞서는 국가 기관에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비상식적인지. 게임에 맞선다는 핑계로 무슨 일을 벌이려 하는지 알고 있는 우리와는 다르게…. 우아랑은 모르고 있다.

그거라면 이야기는 맞아떨어졌다.

“괴로운 일의 연속이군요. 정현 씨나 저나.”

“그렇습니까.”

“네.”

가볍게 대답한 뒤, 나는 몸을 돌렸다. 그녀를 지나쳐 창문을 열고 거기에 발을 걸쳤다.

“그러니까 뭐 힘든 거 있으면 이야기해요.”

“…?”

“도와줄 테니까.”

“이준 씨.”

“네?”

“역시 좀 변한 것 같군요.”

“…. 그런가요?”

약간 떨떠름하게 대답한 뒤, 나는 이어지는 대답을 듣지 않고 곧바로 밤하늘로 날아올랐다.

사실…. 변명의 여지가 없기는 했다.

“두 사람 다, 많이 먹어요.”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나와 넬이 가볍게 인사를 하고, 우리는 이내 식사를 시작했다. 조금 늦은 저녁이었지만 유하는 나를 기다려주어 오늘도 가족이 모여 앉았다는 느낌.

“유하님! 맛있어요!”

“후후, 정말요?”

“네넬!”

“아, 여기 밥풀이….”

넬의 볼에 붙은 밥풀을 유하가 가볍게 떼어냈다. 역시나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듯한 광경에, 나는 거기에 대해서 잊자는 생각을 했다.

그보다는 역시….

“준은 어때요? 입맛에 맞아요?”

“응, 맛있네.”

지적받은 부분에 생각을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동시에 유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가볍게 하나로 묶은 연갈색 머리, 내가 선물을 사다준 이후로 그녀는 계속해서 그런 헤어스타일을 고집한다는 느낌이었다. 청초한 꽃 같은 유하의 분위기에 화사함이 더해져 나쁘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부끄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저, 유하.”

“네, 준.”

“우리 같이 다시 살게 된지 얼마나 지났지?”

“음…. 어디보자. 넉 달 정도인가요?”

벌써 그렇게 되었나.

“왜요?”

“아니, 음.”

“뭐 불만이라도?”

“아니 그건….”

“누나를 좀 더 강하게 대하고 싶은 욕구라던가.”

“….”

이 사람도 좀 이상해졌어.

나는 눈살을 찌푸린 채 반대편의 유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강하게 헛기침을 하며, 부끄러운 듯 그녀가 시선을 피했다. 어쩐지 좀…. 알 수 없는 요구를 해올 때가 많다고 느끼며, 나는 이내 저도 모르게,

“하핫.”

웃었다.

“우읏, 놀리는 거죠?”

“아니야, 아니야. 내가 그럴 리가.”

“그런데 그건 왜요?”

“응?”

“왜…. 물어보는 건가 해서요. 우리가 다시 같이 살게 된 시간에 관해서.”

그 목소리에 약간 어두운 기색이 감돌았다.

“아, 아니. 그냥 물어봤어. 그냥. 별 이유는 없다고.”

아마 걱정하는 게 아닐까.

내가 다시 사라지진 않는지.

“다행이네요.”

베시시 웃으며 중얼거리는 유하의 모습에, 나는 그런 예감이 맞았음을 알아차렸다. 잠시 머뭇거리던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쓸데없는 걱정이야.”

“그렇군요?”

“그래.”

그렇다고.

========== 작품 후기 ==========

17일까지 동원 훈련 때문에 휴재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음@.. 연재 쉬고 싶지는 않았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18일 00시에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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