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편
<-- Chapter 4 : 파륜의 기사 -->
“…. 뭐?”
혹시나 싶어 되물었다.
“할 킬러즈의 우아랑 대위 말입니다.”
“끄응….”
역시나.
그 뒤의 이야기를 전해 듣지 않았음에도, 나는 본능적으로 골치가 아파지는 걸 느꼈다. 어두운 방안에는 부드럽게 조명이 비추어, 모드레드의 단정한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게 만들었다.
“이유는?”
일단 그렇게 물었다. 듣기에 불편한 사실인 걸 느끼면서도 어쨌든 중요한 일이라는 예감이 들었기에.
“할 킬러즈 측에서 새로이 제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이야기한 뒤, 모드레드는 잠깐 단어를 골라내듯 입을 다물었다.
“‘사업’에 대한.”
“사업…?”
그 뒤를 잇는 말에 나는 눈썹을 찡그렸다.
“네, 사업.”
모드레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했지만, 나는 어쩐지 불쾌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그녀가 말하는 사업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아서리안이 사업이라는 건가.”
“그들의 눈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그런 말에 대해서 이해를 했다. 그렇기에 협의를 의해 그레일을 얻은 뒤 아서리안의 통제권, 또는 그에 준하는 대가를 가져와 현실에 끼치는 악영향을 최소화시키겠다는 거겠지.
“너무 낙관적인 거 아닌가?”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었다.
엘레노어, 혹은 그레일이라는 남자가 그 제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보는 건.
녀석의 행동 패턴은 예측하기가 너무나도 어렵다. 인공지능의 범주 내에서 계산할 수 없는 일을 수없이 벌여왔다. 그런 가운데, 그레일이라는 변수까지 있는 와중에 아서리안을 통제하겠다는 제안을?
“저희의 목표야말로 더욱이 그렇다고 봅니다만.”
하지만 모드레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되받아쳤다.
컵에 남은 입술 자국을 검지로 닦아내며.
“뭐?”
“그레일을 차지해 게임을 끝내는 게 말입니다.”
“….”
“엘레노어를 설득해 이 게임을 기획하고, 만들어낸 그 정신 나간 남자가 순순히, ‘게임을 끝낸다.’는 소원을 이루어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게 안 되서 전투에 돌입하게 되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해봐야 아는 거야.”
“게임의 개발자를 이기는 게임 유저가 있다고 생각하시다니…. 제일 낙관적인 생각이군요.”
녀석은 비아냥거리듯 이야기했다. 나는 할 말이 없어지는 걸 느끼면서 이내 입을 다물었다.
“애초에 엘레노어와 그레일의 ‘관계’조차 모르는 시점에서, 이런 말을 해봤자 별 수 없
다고 생각합니다만.”
정말로 그런 생각일지도 모른다.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의 꼴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에 변함은 없었다.
“어쨌든, 그들도 저희의 상황이 그런 걸 알기 때문에 우아랑 대위를 내세운 것이겠죠.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단은 타협하지 않겠느냐고.”
“협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종용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군요. 그녀를 내부에서 중요한 위치, 갤러해드의 후보자에 올림으로서 이쪽의 협조를 이끌어내겠다는 일종의 시위겠죠.”
“우정현 씨는 어떤 반응이신데?”
“딱히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그녀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전부터 이미, 우아랑 대위는 회장님이 움직이기 힘들도록 만드는 일종의 억제제 역할을 하였습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지금의 상황은 조금 받아들이기 힘드시겠죠. 적의 선봉에 딸이 서있는 것이니.”
“…. 애초에 그 여자, 왜 할 킬러즈에 있는 건데?”
나는 그렇게 물었다.
우아랑 역시 자신의 목적이 우리처럼 이 게임을 끝내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런 말과 타협하지 않는 녀석의 성격에서, 나는 할 킬러즈 내부에서 그녀가 배척 받고 있음을 짐작했다. 여러모로 속아서 이용을 당하고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생겼다.
그렇다면 우정현 회장은 왜 그녀를 설득할 생각은 하지 않는 걸까. 하지만 그렇게 고민을 하던 내게 모드레드는 눈을 감으며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본인이 아니므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개인적인 문제라는 건가.
“그것보다는…. 아십니까? 의외로 이 사태를 ‘해결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건?”
그리고 모드레드는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지금껏 기계적이었던 그녀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에 뭔가 이질감을 느끼며 나는 고개를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그걸, 엘레노어라는 존재 자체가 사람들 사이에서 고차원적인 존재로서 인식이 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여깁니다만.”
“신이라도 된다는 건가?”
“네, 요새 들어서는 특히.”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나는 일축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태의 해결을 진지하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자연 재해처럼 여기고 있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거야?”
설마 싶은 마음에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물었다.
지금 모드레드가 하고 있는 말은…. 어쩐지 불길했다. 마치 지금껏 우리의 공통된 목표였던, ‘이 게임을 끝낸다.’는 말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듯한 말이었다.
“현상의 유지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그게 입으로 나왔다.
“할 킬러즈의 제안이기도 한.”
“하….”
나는 눈썹을 찌푸렸다.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이 게임을 끝내려는 이유는 무척이나 개인적인 거라고.”
“그러셨습니까?”
모른다는 듯이 묻는다.
이 녀석에게는 설명을 하지 않았나.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어 나는 가볍게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엘레노어와 ‘협상’을 하자고 제안을 한다는 건…. 무슨 뜻으로 들리는 건지 알지?”
나는 도리어 약간 차분해지는 것을 느끼며 이야기했다. 어쩐지 시야가 좁아지며 눈앞에 모드레드 하나만이 남는 듯한 기분이었다.
“제가 제안을 한 적은 없습니다만.”
하지만 녀석은 교묘하게 빠져나갔다.
조그마한 입술이 조금 새침해 보이기도 했다.
“….”
“단지 개인적으로 확인해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뭘.”
“당신이 이런 이야기를 들어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지 말입니다. 우정현 회장님의 협조를…. 어쩌면 더 이상 구할 수 없을지 모르는 상황이 오더라도.”
“그래도 난 싸울 거야.”
“국가를 적으로 돌려도 말입니까?”
“그래.”
“당신의 동료들이 등을 돌려도? 아니면 그들이 당신의 길을 따라오다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그, 래.”
“송유하 씨는?”
“….”
거기까지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연약하군요. 역시 당신은.”
“그게 무슨 소리야.”
“비효율적인 인간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약해빠진 사람이라는 거죠.”
“….”
“당신 같은 불쾌한 사람에게 기대야만 하는 현실이…. 조금은 개탄스럽습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저라면 송유하 씨와의 연 자체를 끊었을 겁니다.”
그리고 모드레드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실존하는 아이덴티티 자체를 아예 지워버리는 거죠. 엘레노어가 통제를 하고 있다고 한들, 사람은 눈이 있으니까요. 186cm에 85kg의 건장한 근육질의 체격. 특유의 눈매, 헤어스타일. 패션. 족적. 얼마든지 이준이라는 남자에 대해서 파악해낼 수 있다는 거죠.”
거기에 틀린 말은 없다.
“거기에, 어머님께서 이리저리 손을 뻗어둔 랜슬롯과는 달리 당신은 무력한 개인에 불과합니다. 회장님의 비호가 없어지면 단숨에 붙잡히겠죠. 들킨 적은 없습니까? ‘이준’이라는 남자의 정체를. 한 개인에게.”
“….”
나는 붉은 머리의 남자에 대해 떠올렸다.
어딘가에 다녀오던 날, 집 근처의 공원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남자에 대해서.
분명 승부를 내자고 했지.
“표정을 보아하니 들킨 것 같군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유하 씨나, 당신 주변의 사람들이 위험에 처하지 않은 이유는…. 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들군요. 제가 할 킬러즈였다면 송유하 씨를 인질로 붙잡았을 겁니다.”
“결국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
되물었지만 이번에는 모드레드 쪽에서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한동안 물이 다 비워진 잔을 매만졌다.
“역시 그래도, 당신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일이겠군요.”
그리고 입을 열었다.
“맡겨?”
“….”
“하아, 정작 중요한 때에 침묵하면 어쩌자는 거야?”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물었다.
어쩐지 녀석이 이상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감각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모드레드에 대한 의심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확실하게 나와 같은 목표를 지니고 있다.
이 게임을 끝낸다는.
잠깐 기다리고 있자니 모드레드가 입을 열었다.
“갤러해드 퀘스트를 슬슬 시작할 때라는 말이죠.”
그리고 뭔가를 슬쩍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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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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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기록의 열람 (1/3)
난이도 : ★☆☆☆☆☆☆☆☆☆
내용 : 역사 기록실을 찾아내세요.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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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서리안에서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한 기록이 보관된 장소로 가는 퀘스트입니다.”
퀘스트창을 받아든 상태에서 몸이 굳어졌다.
“갤러해드는 최초로 게임에서 ‘탈락’한 기사이기 때문에 이런 쪽으로 정보를 모아보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발렌타인 씨도 괜찮은 방법 같다고 하시더군요.”
“맞아요.”
그리고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온 것일까. 발렌타인이 개인 룸의 앞에 서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온 그녀가 테이블 위에 무언가를 올려두었다.
조그맣게 빛나는 그것은,
“종이 조각?”
정확히는 찢겨진 파편으로 보이는 무언가다. 발렌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다시 손에 들었다.
“정보의 파편이에요. 기본적으로 퀘스트에 대한 정보는 이걸 모아서 완성이 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죠. 하지만 갤러해드 퀘스트에 대한 건 보이질 않네요.”
“그게 열람실에 있을 것이다?”
“네, 아마도.”
“그런데…. 어디로 가면 되는 건데?”
나는 다시금 퀘스트창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수락을 했는데도 딱히 지도에 마커가 표시되는 일은 없었다.
“현실이 아니에요.”
그러자 발렌타인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렇다면….”
“네, 가상.”
역시 그곳인가.
“효율적으로 보자면 가는 것은 저와 당신. 발렌타인 씨 정도가 괜찮겠군요.”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싶어 떨떠름한 생각을 지니고 있자니 모드레드가 말을 이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트리슈는?”
“또 시끄러워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게 비효율적인…?”
“네, 물론.”
“….”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모드레드의 모습에 나는 트리슈와는 상극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입니다. 밤이 될 때쯤에 해서 다시 연락을 드리는 걸로….”
“아 잠깐.”
나는 일어서려는 모드레드를 제지했다. 그리고는 가만히 옆에 서있던 발렌타인을 돌아보았다.
“미안, 발렌타인. 잠깐 자리 좀.”
“…? 네.”
한순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던 그녀는 내 이야기에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나는 모드레드를 돌아보았다.
“하나만 묻자.”
“무엇입니까?”
“왜 그래?”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만.”
“아니…. 너 좀 뭔가 이상한 것 같아서.”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이내 너무 광범위한 물음이라고 생각했다. 말인즉슨 나 역시 그녀의 이런 이상한 점을 무엇이라 특정 짓지는 못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아무것도.”
그리고 역시나 대답은 그런 식이었다.
“끄응.”
역시 이 녀석과 대화를 하는 건 불편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모드레드는 그러니까…. 계속해서 은연중에 언급을 해왔듯 나를 무척이나 혐오하는 모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는 말과는 달리 연약한 나의 모습을.
나 역시도 거기에 대해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면은 있다. 지나서 생각해보면 너무 무모하지 않았나 싶을 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솔직히, 그녀의 앞에서는 그런 점을 다 들키는 것 같아 불편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
뭔가가 계속 걸렸다.
“또 뭐죠?”
일어서 나를 지나쳐, 문 앞에 서있던 그녀가 나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기껏 불러 세웠음에도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했던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자, 잘해보자.”
결국 나온 건 그런 말이었다.
“….”
약간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뜬 모드레드의 옆얼굴이 보였다. 멍하니 조그마한 그녀와 눈을 마주치던 나는, 이내 뭔가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벽을 짚고 있는 모드레드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심할 정도로.
“그럼, 이만.”
거기에 대해서 뭔가 물어보려던 순간, 모드레드는 훌쩍 방을 나섰다. 잠깐 멍해져 있던 나는, 긴 의자 위에 몸을 눕히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본인을 만나봐야겠어.”
그리고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회장님을요?”
그때까지 가만히 우리의 이야기를 듣던 넬이 불쑥 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앞머리를 매만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아랑과 우정현의 관계. 우정현의 향후 행동. 그리고 이번 퀘스트로 받은 ‘보상’에 관해서도.
모드레드 저 녀석, 카드 안받아가기도 했고 말이지.
◇
========== 작품 후기 ==========
열심히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