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편
<-- Chapter 3.5 : 잠깐의 휴식 -->
◇
사실은 가장 큰 문제는 나일 터였다.
결국 모든 걸 받는 쪽은 나라고 생각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과분하다고 여겼었던 것이다.
“티티…! 웁?!”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려는 린슬렛의 턱을 쥐고 입을 맞췄다. 한순간 얼굴이 붉어지며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의 허리를 당겨 꾹 끌어안았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어버리면…!
“남자로서 참을 수 없다고.”
“타, 타나 오빠 뭔가 무섭…. 히익!”
“너희들은 날 성인군자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트리슈의 목덜미를 살짝 깨물었다. 가녀린, 그 새하얀 선을 목이 멘 짐승처럼 좇았다. 초식동물처럼 굳어진 그녀 역시 가까이 당겼다.
“아니, 음….”
당황해 눈을 동그랗게 뜬 린슬렛. 그녀의 손을 트리슈가 잡고 꾹 쥐었다. 나는 나란히 누운 두 사람을 진지한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오, 오빠?”
두 사람은 볼이 상기된 채 나를 올려다보았다.
당연히 참았던 거다. 왜냐고? 당연하잖아. 남자로서 이렇게 예쁜 두 사람을 앞에 두고서, 그런 감정이 들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거다.
“뭔가 오해를 한 모양인데.”
“뭐, 뭐가?”
“남자는 기본적으로 짐승이야.”
“하윽…! 아니, 티티이이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그, 그러기는 했지만! 너무 갑작스러워서!”
“참을 만큼 참았으니까.”
나는 무뚝뚝하게 중얼거리며 린슬렛의 셔츠 아래로 손을 넣었다. 차갑게 식은 복근을 매만져 그녀가 얼마나 가녀린지 확인했다. 허리 뒤쪽으로 손을 넣어 맛있게 느껴지는 몸을 당겼다. 군살이라고는 없는 척추 부근을 매만지자 그녀는 몸을 떨었다.
“아아…. 아, 안 되는데….”
“안 되긴 뭐가 안 돼.”
“아니, 그…. 으….”
그녀들이 무얼 생각했는지 알 것 같았다.
자신들만 어리광을 부리는 게, 마치 내가 아무런 감정도 지닌 거 같지 않아서 싫었던 것이다. 오히려 그래서 일부러 그런 티를 덜 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야말로 어리광을 부리는 쪽이었다.
아니지. 단지 그렇게 설명하기에는 내가 지은 죄가 너무나도 크다. 나는 비릿하게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가볍게 생각을 하자 입고 있던 셔츠가 사라졌다.
나는…. 솔직히 말해 나쁜 새끼였던 거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그녀들을 적극적으로 대하지 못했다. 조금 눈치가 없는 성격도 거기에 한 몫을 했겠지. 일부러 눈을 돌리고.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러질 못했다.
이 관계를 그저 가만히 놔둔 채로.
하지만 조금 변화한 기분이었다.
“너희들이 괜찮다면.”
나는 나쁜 새끼가 되어도 좋으니까.
“타나 오빠….”
상황을 먼저 받아들인 트리슈가 몸을 일으켜 입을 맞췄다. 불쑥 들어오는 혀에 나는 이성이 마비되는 걸 느끼며 그것을 살짝 깨물었다.
놀란 그녀가 물러섰다. 하지만 나는 다른 손으로 조금은 거칠게 트리슈의 뒷목을 감싸 쥐었다.
떨어질듯, 말듯.
그 간격을 유지하며 나는 트리슈와 키스를 했다. 혀가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와 휘감겨 우리는 서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트, 트리슈…!”
“왜? 린 언니.”
“왜, 냐니! 뭘 그렇게 또 아무렇지도 않게!”
“어머, 트리슈는 여자라도 괜찮다고 했잖아?”
“농담이라며! 농담이라며!”
“…. 진짜 이런 부분은 타나 오빠랑 똑같다니까.”
“뭐가 똑같은데?”
내가 물었다.
“한없이 진지해빠진 구석이, 말이죠오.”
웬 존댓말인지.
“지금의 오빠가 어쩐지 무서워서?”
“내가 무서워?”
“왜 좋잖아? 감정을 느낀다는 게.”
“….”
“진짜 사람에 대한 감정. 두근두근거리는.”
그렇게 중얼거린 트리슈가 슬쩍 몸을 돌려 린슬렛의 위로 올라탔다. 그리고 당황한 그녀가 무어라 대답하기 전, 입을 맞췄다.
“후읍?! 읍…!”
“린 언니, 귀엽단 말이지이.”
“너, 너어…!”
린슬렛이 얼굴이 빨개진 채 소리를 지르려 했으나 트리슈는 가만히 두질 않았다. 두 사람의 혀가 얽히며 린슬렛은 트리슈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이내 팔을 잡혔다.
나는 그 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것이 맹렬히 존재감을 발산하는 걸 느끼며.
“보, 보지 마…! 티티!”
“빼앗기는 기분이 어때? 타나 오빠.”
“….”
부끄러움에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의 린슬렛과 도발하는 트리슈. 무어라 행동을 못하고 머뭇거리던 나는 이내 무언가를 가상의 공간에서 꺼내들었다.
물론 오일이었다.
“…?!”
트리슈가 우뚝 굳어졌다.
“왜, 해보고 싶다며.”
“아니, 그…. 타나 오라버니?”
얼굴이 빨개진 그녀가 등을 들었다. 나는 슬쩍 웃으며 그녀가 입고 있던 니트의 등 부분을 슬쩍 매만졌다. 그러자 앞치마처럼 새하얀 맨살이 드러냈다.
“이, 이건 또 뭐야?!”
“그러니까 남이 만든 방에 함부로 들어오면 안 되지.”
“착의…! 아니 그런 취미도…! 힉!”
차가운 오일이 닿자 그녀는 등을 꼿꼿이 펴며 비명을 참았다. 끈적거리는 그것을 잘 바르며 나는 트리슈의 반응을 확인했다. 매끈한 엉덩이가 파르르 떨렸다.
“….”
그리고 그걸 린슬렛이 지켜보고 있다.
“왜?”
“줘, 줘봐.”
얼굴이 빨개져, 눈물마저 고인 트리슈의 모습에 흥미가 동한 것일까. 그녀는 내 손에서 오일을 넘겨받았다. 트리슈는 몸이 굳어져서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안 돼! 린 언니! 트, 트리슈가 잘못했어어…!”
“너야말로 너무 귀여운 거, 아니야?”
“히이이익?!”
드러난 가슴골 사이로 오일이 뿌려졌다. 그리고 린슬렛은 뾰로통한 얼굴로 양손을 들어 트리슈의 니트 안에 있는 커다란 가슴을 거칠게 붙잡았다.
“가슴만 큰 주제에.”
“하윽! 하앙?! 그, 그게 무슨 말이야아아앙!”
“이렇게 반응 좋으면 안 넘어갈 사람이 있겠냐고!”
능숙하게 애무를 하는 린슬렛과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트리슈.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짧은 치마처럼 허리와 하반신을 감싼 니트 밑으로 손을 넣었다.
“…?!”
“젖었는데.”
“벼, 변태애애….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아아….”
“왜? 너는 하면서.”
나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돌리고 있는 트리슈에게 키스를 했다. 내 몸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등 위에 걸쳐지며, 그곳에서 뜨겁게 달아오른 오일이 느껴졌다. 몸에 넓게 뿌려진 오일은, 솟아오른 엉덩이를 넘지 못하고 꼬리뼈 부근에 고여 있는 상태였다.
니트 아래에서 음부를 매만지던 손을 뻗었다.
“하읏…. 으읏…. 흐으윽…!”
“음란하네, 트리슈의 몸은.”
“그, 그런, 그런 안대는데에에….”
엉덩이 사이로 파고든 손이, 꼬리뼈 부근의 오일을 당겼다. 나는 트리슈의 달아오른 몸 구석구석을 애무했다. 여성스러운 그녀의 몸은 반응이 확실했다.
음부 사이로, 오일에 젖은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하아앗…?!”
그리고 다음 순간, 트리슈가 앞으로 무너져 내렸다. 엉덩이를 치켜든 채 그녀는 몇 번이고 몸을 파르르 떨었다. 꽉 조여든 그것이 손가락을 놓아주질 않아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트리슈를 바라보았다.
“갔구나?”
그리고 린슬렛이 미소를 지었다.
“….”
반쯤 눈이 풀린 채, 자신의 위에 축 늘어진 트리슈를 그녀는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머리를 끌어안고 입술을 깨물며 키스를 했다. 반쯤 무의식에 휩싸여 트리슈 역시 거기에 응하듯 혀를 내밀었다.
오일에 젖어든 두 사람의 몸이 뒤엉켰다. 트리슈의 몸에서 희미한 빛이 일어나며 니트가 사라졌다. 새하얀 살결이 그대로 드러나는 모습에 나는 두 사람의 위로 겹쳐지듯 누웠다.
“트리슈.”
“으응….”
절정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걸까. 트리슈는 멍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의 귓불을 깨물었다.
“다음은 린슬렛이 어떨까 싶은데.”
그렇게 약간 유혹하듯이 묻자,
“아니….”
트리슈는 대답하며 몸을 비틀었다.
“오빠가 더 맛있을 것 같아.”
“뭐?”
그리고 나를 밀쳤다.
아니, 밀친 게 아니다. 몸이 제멋대로 뒤쪽으로 튕겨져 날아간 것이었다.
“윽?!”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나는, 뒤를 이어 양팔이 무언가에 의해 들리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평범한 호텔 방이었던 풍경이 회전하며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뭔가 강한 빛이 드리우고,
“역시…. 티티가 제일 낫지?”
“응, 그동안 이런 걸 쭉 ‘참기만’ 했었단 말이야?”
두 사람이 천천히 걸어왔다.
순백의…. 간호사복을 입은 채.
“타나 오빠. 잊었어? 내 특기 분야가 ‘정보’라는 걸.”
“그, 그게 무슨….”
“이런 권한 뺏는 것쯤이야, 얼마든지 가능하단 거지.”
가까이 다가온 트리슈가 내 얼굴을 비추던 조명을 다른 곳으로 치웠다. 보아하니, 나는 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받는 긴 의자에 앉아있는 모양이었다.
팔이 사슬 같은 것에 묶인 채로.
“환자 분~ 너무 움직이시면 위험해요.”
“아니, 그…. 린슬렛!”
“왜애? 환자 분.”
“….”
“움직이시면 아플 수도 있어요.”
“대체 너희들 뭘 하려고 그러는 거냐….”
두 사람은 대답하지 않고 내 앞에 나란히 앉았다. 얼굴을 붉힌 채 서로의 안색을 살피던 린슬렛과 트리슈는, 이내 조심스럽게 내 다리 사이로 손을 뻗었다.
“어, 음…. 린 언니?”
그래도 역시 부끄러운 걸까.
“왜, 왜?”
“먼저 해….”
“….”
린슬렛은 딱히 거절하지 않았다.
상반신만 벗은 채 묶여 있는 나를 힐끔 올려다보더니 이내 몸을 일으켜 세워 올라탔다. 그리고는 얼굴이 빨개져서는 시선을 보냈다. 그러자 뒤쪽에 부끄러운 듯 앉아있던 트리슈가 고개를 힐끔 들었다.
“괴, 괴롭히는 거 아니었어?”
“난 여기가 좋아.”
“…. 하아.”
트리슈의 한숨을 무시하듯 그녀가 입술을 겹쳐왔다.
순백의 천사가 가볍게 내 근육을 쓰다듬었다. 윤곽이 확연하게 잡힌 복근을 린슬렛의 손가락이 피아노를 치는 것처럼 스쳤다. 그리고는 흥미롭다는 듯이 나를 커다란 곰 인형이라도 되는 것처럼 끌어안았다.
“린슬, 렛….”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