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편
<-- Chapter 3.5 : 잠깐의 휴식 -->
◇
별장 안은 침묵으로 가득한 채였다.
실실 웃으며 벽난로에 모여앉아 노래를 부르자던 타나토스가 갑자기 휙 정신을 차리고 한 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 이후로 돌아온 린슬렛과 트리슈 역시 무척이나 충격이 받은 얼굴로 방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타나토스 역시 마찬가지로 침대에 틀어박힌 채였다.
“….”
“타, 타나. 괜찮아요?”
남자 방. 베디비어는 꿈쩍도 하지 않는 타나토스를 달래는 중이었다. 조심스럽게 묻자 침대 2층에서 거대한 이불 덩어리(?)가 되어있던 그가 안으로 파고들었다.
“아니.”
“으음, 불가항력이었잖아요?”
“그래도 정신적으로 버틸 수가 없어.”
“그, 그건…. 이해하지만요.”
“잠깐 자살 좀 하고 와도 될까.”
“하고 ‘와’요?”
“응. 30분이면 될 거야.”
“….”
이제는 다른 쪽으로 정신이 이상해진 걸까.
잠시 그런 타나토스를 곤란하다는 듯 바라보던 베디비어는, 이내 벽에 기대어서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스윽 얼굴을 든 타나토스가 불만이 섞인 눈으로 그런 베디비어를 바라보았다.
“뭐가 우스운데.”
“아, 아뇨…. 우스운 게 아니라.”
“뭐.”
“음, 신기한 경험이구나 싶어서요.”
“….”
“처음 만났을 때의 타나는, 어쩐지 다가가기 힘든 구석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말도 잘 안하고, 항상 화가 난 것처럼 보여서.”
“미, 미안하구먼. 그건.”
“그래도 그게 타나라고 생각했었죠. 방금 전까지는.”
“…. 그렇다면 지금은?”
“굳이 대답을 하지 않아도 알잖아요?”
“잠깐 자살 좀 하고 올게.”
“노, 농담이에요! 농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려는 타나토스를 보며 베디비어는 서둘러 사태를 수습했다. 그리고 뒤를 이어 인상을 찌푸린 채 있던 타나토스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건 다 잊어줬으면 좋겠는데.”
“저는 친근해서 좋다고 느꼈습니다만.”
“…. 진심이냐?”
“네,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한들, 타나의 내면에 있는 진심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단 느낌이었죠.”
“그, 그런 거 아니거든.”
“그러면?”
“…. 억눌러둔 만큼 크게 나왔을 뿐이야.”
“그렇군요.”
역시나. 라고 중얼거리며 베디비어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있는 타나토스를 바라보았다. 솔직하게 말해준 것이 조금은 기뻤다.
평소에 항상 그런 식으로 행동한다는 식이다.
금욕적이라고 해야 할까. 무척이나 절제된 사람이라는 기분이 들기는 했다. 가끔씩 깜짝 놀랄 정도의 충동에 휩싸이는 타입이기는 했으나 그건 모두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는 느낌. 린슬렛과 트리슈.
“갤러해드…. 는, 사람인가요?”
마지막으로 현재의 타나토스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부품인 듯한, 그 남자에 관해서까지.
“그럼 뭐겠냐.”
“어떤 사람이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애매하군.”
“왜요?”
“내가 함부로 잣대를 대고 평가할 사람이 아니거든.”
“그런, 가요?”
“그야말로 완벽한 사람이었으니까. 조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는다 싶은 게 유일한 단점인?”
그는 피식 웃으며 먼 기억을 떠올리듯 중얼거렸다.
“뭐, 그 말도 안 되는 소리도 내 앞에서만 했지만.”
“가족 분들과 관계가 있는 분이셨나요?”
“아니? 다들 모르고 있었지.”
타나토스는 고개를 내저었다.
“애초에 만난 것도…. 음, 유하가 그때 직장을 다니면서 집에 돌아오는 게 좀 늦어지게 됐거든. 그래서 내가 밤마다 마중을 나갔다가 마주치게 된 거라.”
“호오.”
“매일 자기가 모험한 이야기를 신나게 해주면서 어찌나 극성이던지. 매일 그 이야기를 듣다보니 친해졌어. 그렇게 1년 정도 가깝게 지내는 사이가 되었지.”
“밤에만 찾아오는 마법 같은 친구였군요.”
“그런데 일이 터져버린 거야. 우리 집은 카페를 했는데, 아버지와 여동생, 유하와 나까지. 아서리안이 엮인 사고로 카페가 박살이 나면서 여동생과 아버지가 죽었거든. 갤러해드는 그걸 필사적으로 막아내려 했지만.”
“그렇, 군요.”
“갤러해드는 막아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버티지 못하고 자신의 기억을 소거시켰어. 비겁하게 일상으로 도망쳤지. 그리고 나는 유하와 함께 남겨진 거야.”
아무렇지도 않게, 아니 절망이 석인 기색을 필사적으로 감추며 타나토스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베디비어는 입을 다물고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때의 나는…. 유하를 보는 것조차 괴로웠어. 그래서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유하를 남겨두고 해외로 나간 거야. 아서리안의 에스콰이어가 되려고. 주로 남아메리카 쪽을 전전하면서 정보를 모았었지. 3년 간.”
“20살부터?”
“응, 그리고 귀국한 게 올해 초.”
에스콰이어가 되어.
갤러해드가 되어 게임을 끝낸다는 목적을 이룰 첫 번째 단계가 끝난 상태로.
타나토스는 그때 당시의 자신을 무척이나 날이 선, 하지만 지친 상태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조금 변했지.”
그리고 그는 슬쩍 웃었다.
어색하다는 듯이.
“처음 만났을 때의 당신은 모두를 증오했죠.”
이 게임에 정신을 빼앗긴 에스콰이어 전부를. 가상의 세계에 빠져 현실을 보지 못하는 무리들을.
“그건 지금도 그래.”
“그런가요?”
“그래, 하지만 그건…. 목표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야.”
“목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서 이 게임을 끝내느냐는 목표를. 그래서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거려나.”
그렇게 중얼거린 타나토스는 이내 깊은 사색에 잠겨 입을 다물었다. 그런 모습에 베디비어는 그가 자신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자신뿐만 아니라, 린슬렛과 트리슈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있다.
타협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자기 자신에게는 더욱이 엄격한 그이기에 그럴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의점을 도출해 함께 나아간다.
“동료잖아?”
“아직 좀 영향을 받으시는 것 같은데.”
“아니, 진심이야. 그래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고. 너희들도 좀 더 편하게 이야기해줬으면 좋겠어.”
“흠, 타나의 여성 편력이라던가?”
“…. 이거 다들 듣고 있는데.”
“네?”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베디비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타나토스의 앞에, 희미하게 빛이 일어나며 넬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씨익 웃으며 말없이 브이자를 그려보였다.
“먼저 이야기하고 싶었어. 별 것도 아닌 과거지만. 그래서 좀…. 거리감을 느낀 거라면 미안해.”
타나토스의 얼굴이 붉어졌다. 린슬렛과 트리슈, 발렌타인 역시 이런 이야기를 들은 걸까 싶어 베디비어는 이내 어깨에 힘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
“타나는 참, 신기한 사람이네요.”
“그래?”
“네, 왜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할 마음이 들었는지….”
“아, 그건 이유가 있는데.”
“무슨 이유요?”
“…. 오빠인 너에게는 절대 말할 수 없어.”
“…?”
알 수 없는 말에 베디비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쨌든, 이런 나지만 나름대로 너희는 동료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불만이 있으면 혼자서 끙끙 앓지 말고 이야기하란 말이지.”
“하하, 그럴게요.”
“아까 정신적으로 이상해졌을 때 한 말은 다 잊고.”
“단 둘이 노는 거?”
“아니 그러니까 그건….”
“타나가 여유가 없어서 꾹 눌러두고 있는 일종의 욕망 같은 거라는 거죠?”
“하아.”
한숨을 내쉰 그가 침대 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휙 하고 불만이 섞인 얼굴로 베디비어를 돌아보았다.
“그러니까 내일, 온천 가자.”
“온천이요?”
“응, 아까 알아보니까 수영복 빌려서 수영장처럼 놀 수 있다고 하던데. 오늘 내가 망쳤으니까.”
머쓱한 듯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중얼거린 그가 팝업창을 띄워 무언가를 눈앞에 떠오르도록 했다.
검과 방패가 새겨진 동전 모양의 아이콘.
기사의 명예.
“추가 금액은 전부 내가 부담할게.”
“저야 뭐, 거절할 이유는 없죠.”
“그래 그럼, 유하한테 말하고 올 테니까.”
“부끄럽지 않으신가요?”
“…. 중간에 자살하고 올 거야.”
짜증스럽다는 듯 중얼거린 그가 방을 나섰다. 가만히 빛이 스며드는 걸 바라보던 베디비어는 빙긋 웃었다.
◇
뻐억, 하고 안면에 주먹이 꽂혔다.
“이…. 바보 멍청아!”
이어진 목소리와 함께 튕겨져 날아간 나는 물수제비처럼 수면에 몇 번이나 튕기고는 수면 아래로 빠져들었다. 뭔가 무지막지하게 화가 난 린슬렛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채 나는 멍하니 굳어졌다.
그리고 누군가 헤엄을 쳐 다가와 팔을 잡았다.
진한 녹색의 머리칼이 눈에 들어왔다.
“푸하앗!”
참았던 숨을 내쉬며 나는 물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그러자 곧바로 손을 놓은 트리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해변가에 위치한 린슬렛에게 돌아갔다.
그러더니 등 뒤로 몸을 감췄다.
“…. 트, 트리슈?”
“말 걸지 마.”
당황해 물었으나 대답은 참혹했다.
“말하기 싫고! 잔다니까! 왜 부른 건데!”
“아니, 음…. 확실히 대답을 못 들어서.”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물 바깥으로 빠져나가 두 사람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렇게 가상으로 먼저 부른 건 처음이 아닐까 싶었다.
머릿속이 조금 복잡했지만.
단숨에 좋다고 한 유하나 발렌타인과는 달리, 두 사람은 방안에 처박혀서 대답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여러모로 어색하면서도, 서둘러 대화를 하고 싶었다.
“가까이 오지 마!”
“아니, 음…. 그럼 이쯤?”
“좀 더 멀리!”
나는 좀 더 떨어졌다.
거리상으로 200미터 정도까지.
“그, 목소리 들려?”
“들려.”
이래서 가상 세계는 편하단 말이지.
나는 그것에 도리어 경계심이 생기는 걸 느끼면서도 두 사람을 향해 돌아섰다. 파도가 치고 석양이 비추어 두 사람의 모습이 조그맣게 보였다.
“알았어, 갈게. 가면 되잖아. 됐지?”
“….”
이거 뭐 엎드려 절 받기도 아니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맞은편의 두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부끄러운 듯 고개를 휙 돌리고 있는 트리슈와, 정반대로 화를 내고 있는 린슬렛을.
“미안해.”
그리고 나는 사과를 했다.
“기껏 놀러 와서는…. 고생만 시키고. 내가 좋았던 분위기나…. 계획 같은 걸 다 망쳤네.”
“우리만 놀러왔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아니야. 나도 놀러오고 싶었어.”
“믿을 수 없어.”
“맛있었어. 매운탕.”
“….”
두 사람이 침묵했다.
나는 천천히 걸었다. 백사장을 밟으며, 그 감각이 현실이라고 생각하며 두 사람을 향해 다가갔다. 서로 마주볼 수 있는 위치까지. 린슬렛이 날 올려다보았다. 뒤쪽의 트리슈가 힐끔 시선을 보내왔다.
“음, 그리고….”
잠시 망설였다.
이걸 뭐라고 말해야할까.
“뭔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언제라도….”
“정말 아무것도 모르네.”
린슬렛이 말을 끊었다.
“뭐?”
“아무것도 모른다고. 티티. 너는.”
당황해 눈을 동그랗게 뜨자 그녀는 불만이 섞인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옆의 트리슈가 앞으로 나섰다.
“타나 오빠는 매번 그런 식이잖아.”
“내, 내가 뭘.”
“멋대로 결론내리고, 책임질 줄만 알지.”
“그런, 가?”
“응, 그런 식이야. 우리가 정말로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서 그런 이야기를 했을 거라고 생각해?”
“오일….”
“가, 갑자기 구체적으로 말하지 말고!”
트리슈의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그녀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딱히, 우리에게만 맞춰줄 필요가 없다는 거야.”
린슬렛이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바로 그래서야. 우리가 기분이 나빴던 건….”
린슬렛이 희미하게 웃었다.
“네가 뭘 좋아하는지, 뭘 기뻐하는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 말해주지 않으니까.”
“….”
나는 머리가 띵해지는 걸 느꼈다. 트리슈 역시 남은 손을 잡고 눈썹을 찡그린 채 날 바라보았다.
“같이 하자고 하면 좋았잖아? 퀘스트. 신나게 노는 것도 좋지만! 괜히 부담 주는 것 같아서…!”
“혹시, 우리가 이러는 거 부담 돼?”
린슬렛이 물었다.
슬쩍 겁에 질린 그녀를 느꼈다.
“아니, 그….”
나는 말문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그, 혹시 트리슈랑 린 언니가 정말로 부담이 되는 거라면…. 확실히 말해주면 이제부터는….”
“아니야!”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흠칫 놀란 두 사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어쩐지 머릿속이 텅 비는 것을 느꼈다. 그런 식으로 생각했을 거라고는 도저히 예감하지 못했다.
“아니, 그.”
나는 입술을 꽉 깨물며 제대로 말을 하질 못했다. 시선이 하나로 묶은 린슬렛의 금발을 바라보고, 뒤를 이어 우아하게 기른 트리슈의 진녹색 머리칼로 향했다.
나는 언제나 그녀들을….
“소중하게 생각해.”
그래서 조금….
“어떻게 대해야할지 몰랐던, 거야.”
아니 그게 아니다.
“나는 어떻게 대해야하는지 몰라.”
유하에게도 늘 그런 식이었기에. 그리고 그게 그녀들을 편하게…. 더욱이 좋게 만들어 주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던 거다.
“읏….”
나는 얼굴이 빨개져 뒤로 물러났다. 내가 했던 생각을 그녀들 역시 반대로 나에게 하고 있다는 자각을 하자 어쩐지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는 그녀들이 행복했으면 했다.
그리고 그걸 반대로 ‘받는’ 경험은….
“티티….”
“타나 오빠….”
모르겠다.
뇌가 사라지는 듯한 기분에 나는 두 사람을 끌어안고 백사장에 털썩 드러누웠다.
아니, 백사장이 아니라
침대 위에.
내 뇌가 만들어낸 현실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