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네크로맨서 재킷-158화 (158/321)

158편

<-- Chapter 3.5 : 잠깐의 휴식 -->

확실히 그건 인정한다.

“하앗!”

린슬렛은 방패를 휘둘러 원형의 검기를 쏘아 보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코가 닿을 정도로 근접한 거리에서 타나토스는 몸을 날려 그것을 피해냈다. 어둠 속에서 그의 눈동자가 빛을 발했다.

역시나 강한 에스콰이어였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레벨은 100 초반. 거기에 기사도 아니다. 단순한 능력치 자체로는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었으나, 임기응변과 스킬 활용에 능숙했다.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달라붙어 어떻게 해서든 계속해서 몰아붙였다.

그런 말이 없이도 가웨인에 라이오넬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을 터였다. 더욱이 상성 상 우위를 점했다거나, 미리 상대의 스킬을 알고 전투에 임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 두 사람은 ‘랜슬롯’ 또한 쉽사리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였다.

거의 본능에 의거한 전투였다.

기본적으로 이 게임은, 유저의 뇌 활동에 개입해 어느 정도 정형화된 구조의 전투 시스템을 제공하도록 되어 있다. 유저 개인의 감각이 강해질수록 영향을 적게 미치게 되어있지만 레벨 50 이하는 실제로 무술을 배웠다고 하더라도 그 도식의 영향을 짙게 받았다.

하지만 그는 아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 본능적인 전투는 완성이 된 상태였다. 공포나 망설임이라는 반응이 거의 없고 단순히 확률에 의해서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느낌이었다.

말하자면 그런 것이었다.

상대의 스킬을 알아서 승리할 수 있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그 스킬을 맞아줄 수 있는? 얼마나 큰 고통을 느껴도 이길 수 있다면, 그로서 지정된 목표를 향해 전진할 수만 있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에 임하는?

하지만 그게 과연 어디까지 통용되는 걸까 싶었다.

만약에 한 명의 적을 쓰러뜨려 게임을 끝낼 수 있다고 치자. 오랜 싸움이 이어진 끝에 타나토스는 쓰러지기 직전이다. 그리고 눈앞에는 함께 떨어질 수 있는 용암이 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행동할까?

아니, 이준은….

린슬렛은 머릿속을 스치는 불안한 예감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스파다를 휘두르던 타나토스가 뭔가를 눈치 채고는 눈썹을 찌푸리며 팔을 들었다.

왼쪽 어깨의 방패에 녹색의 궤적이 날아들었다.

“헤에, 꽤 버티네. 타나 오빠.”

웃으며 중얼거린 트리슈는 머플러를 휘날리며 땅에 착지했다. 린슬렛은 타나토스의 자세가 흐트러진 틈을 타 몸을 굽히고 스킬을 시전했다.

그녀는 푸른 궤적이 되었다.

가디언 서핑.

순식간에 날아든 그녀는 타나토스와 충돌했다. 쩌엉, 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몇 그루나 되는 나무를 뚫고 날아가 바위에 처박혔다. 바위에 거미줄 같은 주름이 피어올랐다.

“리, 린 언니 너무 심한데…?”

“빨리 끝내.”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트리슈를 뒤로 한 채 린슬렛은 앞으로 뛰쳐나갔다. 바위에 처박혀 꿈쩍도 하지 않는 그에게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그녀는 아론다이트를 내던졌다. 회전하는 방패로부터 검기가 치솟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

타나토스는 곧장 앞으로 달려들었다. 수면에 파장을 퍼뜨리듯 검기를 날리는 방패에 정면으로.

망령 신체인가…!

알고 있음에도 순간적으로 놀랄 정도였다. 검기에 베이면서도 그는 거기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다른 방패를 꺼내든 린슬렛은 이내 그와 충돌했다.

“큭!”

공격을 해도 통하지 않기에, 그리고 그가 그걸 알고 이용하려 들었기에 순간적으로 정신이 멍해졌다. 방패가 튕겨지자 휘둘러 막아내려던 린슬렛은, 그게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몸이 굳어지는 걸 느꼈다.

검이 팔뚝을 베고 지나갔다.

피가 튀었다.

“…!!”

이런 감각이네.

린슬렛은 눈썹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섰다. 한순간 정신을 진정시키려 했으나 대응책이 떠오르질 않았다. 그 사이 타나토스는 계속 쇄도해들었다.

“하아, 린 언니. 너무 봐주는 거 아니야?”

그리고 다음 순간, 화살이 날아들었다.

푸욱, 하는 소리와 함께 타나토스의 가슴이 거기에 꿰뚫렸다. 잠깐의 틈을 타 되돌아오는 아론다이트를 잡아낸 린슬렛은 거리를 벌렸다.

타나토스는 움직이지 않고 그것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통증과 대미지는 제로일 텐데도 불구하고.

“봐준 거 아니거든.”

“그럼 뭐야, 정말 강해?”

“….”

물론 이것만으로 강하다고는 할 수 없다. 망령 신체라는 것은 단순히 조커일 뿐이었다. 그 하나로는 타나토스에 대해서 설명할 수는 없었다.

“뭐, 라이오넬을 쓰러뜨린 남자니 당연한가.”

“정확히는 그 남자가 아니지만.”

“생긴 것도, 말하는 것도, 스킬도 똑같은데?”

“….”

“아하하! 어느 쪽으로 생각하고 있어?”

“아마 같은 쪽이겠지.”

눈앞의 사내가 가짜임을 알기에, 도리어 진짜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드는 것이리라. 그 남자가 가장 진지하게 대하고 있는 부분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듯해서.

“하아, 놀러 와서 이게 무슨….”

“내일 하루 더 쉬다 갈까?”

“그 성격에 그러겠어?”

그렇게 이야기하니 트리슈 역시 동의한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 서로의 눈을 바라본 두 여성은 이내 반대편에 서있는 사내를 돌아보았다.

슬슬 눈치를 챘던 것이다.

그의 어깨에서 방패가 사라졌음을.

그리고 나타난 것은 두 대의 검은 카메라.

그것이 타나토스의 발치를 비추며 망자들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분명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나 린슬렛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트리슈를 돌아보았다.

“아하핫! 재미있네!”

그리고 망자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각종 뼈로 이루어진 금수들이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한 속도와 물량에 린슬렛은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아론다이트를 휘둘렀다.

강철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망자가 부서져 그 파편이 얼굴을 스쳤다. 하지만 그 뒤로도 수많은 망자가 있어 린슬렛은 계속해서 푸른 검기를 날렸다.

그리고 이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 넌 안 싸우니?”

트리슈가 등 뒤에 붙어있음을.

“아, 응? 뭐?”

“안 싸우, 냐고!”

허공을 가르며 아론다이트가 날았다. 능숙하게 다음 방패를 뽑아 공격을 막아내고 반격. 볼링핀처럼 쓰러져 나가는 망자들을 보며 린슬렛은 눈썹을 찌푸렸다.

“음, 곧 도착할 거야.”

“뭐가?”

트리슈의 말에 반응을 보이고 바로 다음 순간, 화살의 비가 내렸다. 린슬렛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 방패로 머리 위를 막아냈다.

“윽?!”

“괜찮아~ 전부 컨트롤 하고 있으니까.”

“마, 말은 좀 하고 하란 말이야!”

여유로운 목소리. 그리고 뒤를 이어 등에 붙어있던 트리슈가 린슬렛의 어깨를 짚으며 훌쩍 뛰었다. 새하얀 허벅지를 드러내며 그녀는 가볍게 윙크를 했다.

“방패 좀 부탁해.”

“하아….”

한순간 그런 행동을 이해한 자신이 싫었다.

딱히 오래 만난 것도 아니고 전투를 함께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인데. 린슬렛은 슬쩍 짜게 식은 얼굴로 방패를 댔다. 거기에 몸을 웅크린 트리슈가 올라탔다.

“뭘….”

힘을 주어,

“어쩌려는 건데!”

날려 보냈다.

부서져 내리는 망령들 사이를 날아 트리슈가 달려들었다. 그녀는 멍하니 서있는 타나토스의 앞에 내려앉아,

“후후, 뭔가 배덕감이 드는데?”

볼에 키스를 했다.

“?! 너, 너 무슨 짓이야!”

“왜애? 닳는 것도 아닌데. 아, 닳으려나?”

“아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뭐 못하던 말 같은 거 하면 어떨까 싶어서?”

타나토스는 대답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치맛자락에서 튀어나온 카메라가 방향을 틀어 검을 흘렸다. 그걸 조종하듯 팔을 휘두른 트리슈는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을 보이며 그의 무릎을 밟고 뛰어올랐다.

“타나 오빠, 나중에 오일 플레이 같은 거 해볼래?”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했다

“무, 무무무무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 변태가!”

“이럴 때는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야. 린 언니. 좀 더러운 것부터.”

당황한 린슬렛이 소리쳤으나 트리슈는 즐겁다는 듯 웃었다. 음흉한 기색이 얼굴에 번졌다.

“트리슈는~ 몸매 되게 야하니까. 오빠가 하고 싶은 거 다 해줄 수 있는데에~.”

“….”

“근데 오빠는~ 정작 매번 할 때마다 뭔가 꾹꾹 눌러참는단 느낌이란 말이지~. 막 다뤄도 괜찮은데에~.”

린슬렛은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꼈다.

뒤쪽으로 돌아 등을 걷어차며 할 소리는 아니지 않나.

궤적을 그리며 이쪽으로 타나토스가 날아들었다. 저도 모르게 피하려던 린슬렛은 이내 자리에 멈춰 섰다.

“…!!”

받아냈다.

뒤로 지익 밀려나, 중심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정신을 차린 린슬렛은 자신의 배 위에 벌렁 드러누운 타나토스를 보자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물론 곧바로 검이 날아들었지만.

방패로 튕겨냈다. 동시에 그녀는 타나토스의 얼굴을 잔혹하게 후려치며 부끄러운 소녀가 되어 입을 열었다.

“티, 티티….”

타나토스는 저항했지만 그녀는 봐주질 않았다. 눈썹을 귀엽게 찡그린 린슬렛은, 타나토스가 팔을 휘젓자 그것을 뒤로 꺾어 다리 사이에 끼웠다.

“리, 린 언니?”

가까이 다가온 트리슈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랑곳 않고 린슬렛은 몸을 비틀어 타나토스의 팔과 다리를 봉쇄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 내 친구들이 너 보고 싶다고 하거든.”

그녀는 끝내 감춰두려고 했던 사실을 이야기했다.

목을 조르며 동시에 팔을 꺾는 죽음의 관절기, ‘블랙 위도우’를 건채로.

“그때 봤을 때…. 음, 나는 아니라고 했거든? 근데 자꾸만 남자 친구 보자고 해서, 말이야.”

케엑, 켁, 켁. 하면서 타나토스가 죽어갔다.

“혹시 괜찮다면 나중에 시간 좀 내줄 수 있을까?”

“시간 대신 생명을 내줄 것 같은데….”

“시끄러워.”

린슬렛은 가까이 다가온 트리슈를 휙 노려보았다. 어색하게 웃은 그녀가 항복하듯 양손을 든 채 뒤로 물러서자 안심하고는 말을 이었다.

“음, 그리고 혹시 괜찮다면 거기서도 남자….”

말을 이어가던 중, 타나토스가 추욱 늘어졌다. 몸을 바들바들 떠는 모양새에 그녀는 얼른 기술을 해제했다.

“티, 티티…?”

조심스럽게 묻자 이내 그의 모습이 희미해지며 사라졌다. 그리고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연기 같은 게 자욱하게 휘감겨 린슬렛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그러고 보니 퀘스트였지, 이거.

“아, 벌써 퇴치하면 어떻게 해!”

성난 트리슈가 가까이 다가왔다.

“뭐, 더 할 말이라도?”

“음, 트리슈 좋아하냐고 물어보려고 했지.”

“….”

“린 언니는? 그런 거 물어보고 싶지 않아?”

“모, 몰라!”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언가 형태를 갖추며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걸 바라보았다.

[죄, 죄송합니다!]

“….”

소년의 모습을 한 유령이었다.

10대 초반쯤 되었을까.

[그리고 감사합니다! 누나들 덕분에 드디어 성불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정말이지 알 수 없는 게임 설정이야.

린슬렛은 그렇게 생각하며 소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솔직하게 마음을 고백하지 못한 채 죽어서(왜 여기서 죽었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이 조금 솔직해지는 방향으로 씌이면서 성불할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다.

는데.

“…. 뭐?”

[네, 네?]

“잠깐, 솔직해진다고?”

[네에….]

소년이 대답했다.

두 사람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니 그러니까. 그 솔직의 솔직?”

[네, 네, 그 솔직의 솔직.]

“….”

뭔가에 조종을 당했던 게 아니라, 그게 타나토스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러고 싶어서 행동을 했다는 말에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태양보다 반짝인다던가.

아니면 내 안에는 네가 있어. 라던가.

그게 전부 사실이라고…?

충격을 받아 멍해져 있던 두 사람은 이어진 소년의 말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아 그리고, 지금 누나들이 솔직하게 말한 것도, 다 형한테 들리도록 했으니까요! 전하고 싶으신 이야기인 것 같아서. 헤헤, 감사합니다! 누나들!]

“….”

“….”

그리고 유령은 사라졌다.

검은 숲속, 달빛도 들어오지 않는 가운데 린슬렛과 트리슈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 아으, 아으아아으아으아아아…!”

“으앙! 나 이제 시집은 어떻게 가!”

그리고 두 사람은 동시에 비명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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